천도교 교령의 사명에 대해: 다시 천도교의 신관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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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교령의 사명에 대해: 다시 천도교의 신관을 돌아보며
인내천이라는 말은 포덕 52년(1911년) 일본에서 출판 간행된 ≪대종정의≫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인격신관은 절박한 역사 환경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생겨나기 마련이다.
중동지역의 절박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하는 ‘사막형 종교(desert religion)’인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초월적 유일인격신관이 발달하여 자연이 아닌 ‘역사’ ‘인간’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일대의 숲과 산이 많은 지역에 등장하는 ‘수림형 종교(forest religion)’에서는 범신론적인 신관이 발달하여 역사가 아닌 ‘자연’이 중심이 된다. 한국은 사막형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고난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민족은 유대인들과 같이 그 가슴속에 역사 속에 살아있는 인격신을 간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역사적 이유와 함께 원시종교로부터 유래한 하날님 숭배사상이 그대로 지켜져 왔으며 중국이나 일본과도 달리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유교와 불교에 의하여 수천 년 동안 잊혀져 온 ‘하날님’ 인격신을 수운이 다시 발견하였으며, 하날님은 역사의 현장에 살아있는 신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서양은 니체 이후 초월 인격 신관에 대한 거부현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구한말 조선에서는 그 반대 현상으로 실학자들마져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에 담긴 초월신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수운의 인격신관 수용방법은 실학자들과는 달랐다. 초월 인격 신관은 전혀 다른 범신론적 요소가 가미된 범재신론(汎在神觀)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범신론(pantheism)은 범재신론(panentheism)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즉 범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다(All is God)"는 것이고, 범재신론은 ”모든 것이 신 안에 있다(All is in God)"는 경우이다. 과정신관의 신관은 범재신론적 신관이다(핫츠혼). 초월적 신관의 ‘유신론(theism)’과 범신론을 결합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한국의 김경재는 동학의 신관을 범재신론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김상일은 천도교의 인내천 신관은 “All is in God and God is in All”이라며 이러한 신개념은 한국의 신관을 지닌다고 했다.
이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김상일 교수는 개같은 왜놈을 하룻밤에 물리치기 위해 하날님 조화를 받아야 한다고 <안심가>에서 말한 수운의 신앙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훼신과 같이 강력한 기적을 발휘해 추적하는 이집트 군인들을 수장시키고 홍해바다를 무사히 건너게 해 달라는 기도와 다를 바 없는 신앙형태인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수운이 기독교의 초월 인격신관을 그대로 수용해 말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운은 서학의 신관에 대하여 “천주당 높이 세워 거소위(擧所謂) 한난도(扞難道)를 천하에 편만(遍滿)하니 가소절창(可笑絶唱) 아닐런가” 하면서 “우리 도는 무이이화(無爲而化)”라고 했다. 저절로 화하는 것이 있는 신관이다. 즉 범신론적 요소가 빠진 단일 극성적인 초월적 기독교 유신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수운의 입장이다. 유대교-기독교의 서학의 인격신관은 가는 곳마다 공략하고 쳐부수고 빼앗고 갈등을 조장해왔다고 수운은 보았다. 인간의 역사를 파괴하다 못해 이제는 자연까지 파괴하고 있다.
인격신관과 초월신관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의 극만을 신관에 적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틀린 것(wrong)’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partial)’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천주(일신관)와 인내천(범신관)은 신의 양극성을 조화롭게 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래서 동학사상의 체계는 21세기 미래의 신관으로 그 우수성을 과시하게 된다.
필자는 평소 천도교의 범재신관적 체계로 인간중심의 새로운 ‘인간론’ 세계관을 정립하여 배달겨레의 민족통일을 주도해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유물론과 유심론의 세계관에 기초한 남북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양대 이데올로기를 대립물의 통일로 지양(止揚)한 '인간론' 세계관으로 동학의 통일민족주의(민주주의)로 이념을 정립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정치이념으로 천도교 청우당을 재건하여 민족통일을 견인해가야 한다. 그리하여 동학혁명을 주도한 해몽 전봉준장군, 3ㆍ1운동을 이끈 의암 손병희성사와 같이, 우리 천도교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도교의 교령이 앞장서서 이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작금에 출로가 막혀있는 평화통일의 당면과제를 두고 이 시대의 해몽과 의암과 같은 교정쌍전(敎政雙全)의 지도력을 발휘할 인물을 앞으로 있을 교령선거에서 새삼 기대하게 된다.
* 이상의 동학ㆍ천도교 신관은 김상일교수의 『수운과 회이트헤드: 동학주문 21자에 대한 과정철학적 풀이』의 내용을 원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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