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간> 자전거 위에서 만나는 새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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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암의 한울모심 생명이야기>
자전거 위에서 만나는 세상
한울모심 생명이야기를 하기에 제가 적절한지 못내 망설여집니다. 우리 경전에 나와 있는 생명 이야기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천도교 경전은 경외감이 절로 생기는 생명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해월신사 법설에는 제가 참여하는 환경단체나 생명평화 단체의 선언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생명 존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오늘의 우리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간’으로부터 몇 차례 집필 권유를 받았지만 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전거가 운명처럼 오다
생명 사상이나 이론을 글로 쓴다면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글은 넘치고 넘칩니다. 굳이 제가 끼어 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제가 선택하고 어렵게 이루어가는 생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목암의 한울모심 생명이야기>가 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풀어가는 생명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첫 이야기를 자전거로 하겠습니다. 자전거를 칭송하는 금언들이 많습니다만 제가 자전거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은 우연히 제게로 자전거가 왈칵 왔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이야기라고 하면 바로 자동차를 떠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연관이 깊습니다. 자동차 중독에서 벗어나는 결단과 말입니다. ‘중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알게 모르게 무언가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이 중독입니다. 자동차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 곳에서도 짧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제 자전거 이야기는 자동차 처분과 연결됩니다. 자동차를 처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입니다. 그래서 자전거가 제게 ‘왈칵’왔다고 한 것입니다. 저는 4륜 더블 캡 트럭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머니랑 여행 다니는 전용 자동차였습니다. 트럭의 뒷좌석과 짐칸에는 온갖 어머니 용품들이 가득 찹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안 계신데도 운전대에 앉을 때마다 옆자리에 어머니가 앉아 계시는 것 같은 착각이 계속되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곁의 어머니 자리에서 오줌냄새와 똥냄새까지 풍기는 것 같기도 하고 굽은 길을 돌 때는 한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는 어머니를 붙들기 위해 내 한쪽손이 나도 모르게 옆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기어를 흔들기도 하기 때문에 내 오른손은 늘 기어를 감싸듯이 놓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습관처럼 기저귀와 물티슈, 패드 등을 차에 싣고 어머니 휠체어까지 끌고 가서 트럭에 묶고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안고 가려고 방으로 향하다가 울컥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고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동안 멍했습니다. 이 트럭을 계속 타다가는 무슨 사고라도 생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트럭 번호판을 처음 봤을 때부터 특별한 자동차로 생각했었습니다. 번호판은 묘하게도 제가 어머니 모신 것을 운명처럼 연결 해 주었습니다. “86세 되신 우리 어머니. 이제 저한테로 이리오세요.”라는 번호판이었습니다. (‘86모 2154’였다). 꼭 8년 전인 그 해가 어머니 나이 86세 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중고로 트럭을 처분하면서 다른 자동차를 사는 대신 자전거를 샀습니다. 이렇게 운명처럼 자전거와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해발 600미터 고지대에 살기 때문에 언덕길에서는 전기 동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전기자전거를 샀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접는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4년 전 쯤 노인장기요양법 상 가족요양을 신청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진안읍내에 있는 요양보호사 학원에 다니면서 일부 구간을 자전거로 다녔습니다.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버스는 너무 간격이 넓고 나 혼자 큰 트럭을 타고 다니기도 왠지 미안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안 터미널에서 읍내 외곽에 있는 학원까지 걷기도, 택시 타기도 애매해서입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준 선물
5만원 주고 산 중고 접이식 자전거 덕에 두 달 동안 학원을 잘 다니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 어머니는 내로라 하는 일류(!)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게 됩니다.
근 30년 만에 내 명의의 자동차가 없어지고 나니 생활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그동안 주변사람에게 신세지면서 살았는데 트럭 값에서 자전거를 사고 남은 돈을 빌려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 짓는 후배에게 200만원을 주고 또 200만원은 중국을 오가면서 주역 책을 쓴다는 후배의 집필비로 줬습니다.
아래에 자세하게 얘기 하겠지만 큰 폭으로 달라진 내 생활들은 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주시는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 어머니는 제 품에 안겨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도 너 하나 만큼은 잘 되도록 해 주꾸마”라고요. 어머니의 첫 선물치고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자동차를 없애고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어머니 아니었으면 시도 하지 못할 결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동차를 없애면서 염려 했던 불편들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뒤에 짐칸을 달아서 20킬로그램 택배 하나 정도는 읍내까지 싣고 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비가 오면 십 수 년 전 중국 북경에서 사 온 자전거 전용 비옷을 입으니 안경은 물론 바지도 젖지 않고 편하게 페달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이 비옷은 자전거 인구가 많았던 중국에서 고안 한 비옷이라 기막히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땀도 차지 않고 자전거 앞뒤로 비 가림이 완벽합니다. 농사일도 주변 분들의 트럭을 잠시 빌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차가 없다보니 밤낮없이 함부로 나다니는 쓸데없는 외출도 사라졌습니다. 툭하면 자동차를 몰고 나가는 습관은 자동차가 없어야 고쳐지는 것 같습니다. 하루 일정을 짜는 것도 계획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편이 없는 곳의 모임에는 아예 마음을 접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를 없애면서 정한 원칙 하나는 남의 차를 얻어 타려고 애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에 32리터씩 제게 나오던 농업용 트럭 면세유가 끝내 아까웠지만 추가 기름 값이 들지 않아 결과적으로 이익이었습니다. 자동차의 감가상각비와 보험료에다 세금, 기름 값과 정비요금 등을 대충 계산해도 한 해에 250만원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셈이었는데 그게 절약되는 것으로 됩니다.
이렇게 제 생활이 바뀌다보니 불쑥 불쑥 걸려오는 전화에서 “근처 지나고 있는데 집에 계시나요? 한번 들를까 하구요.”라는 요청을 거절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없으니 아무 방문약속이나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던 생활원칙입니다.
자전거에서 만나는 생명들
전기자전거는 중국제 ‘알톤’을 샀는데 기대 이상으로 성능이 좋았고 절로 운동을 하게 해 줍니다. 특히 충전지가 성능이 좋아서 왕복 15킬로미터의 읍내까지 거뜬히 오갑니다. 안내서에는 50킬로미터까지 기동되는 성능이라고 하니 페달을 밟아 가는 구간을 생각하면 100킬로미터도 달릴 수 있는 전기자전거입니다. 제가 평지에 산다면 전기자전거를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자전거로 웬만한 볼일을 다 볼 생각이라면 평지에 살더라도 전기자전거를 탈 만 하겠습니다.
자동차로 갈 때보다 자전거로 가면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길가에 새로 피는 꽃이나 가로수의 변모가 생생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새 품목을 들이는 농장에는 멈춰 서서 살펴 볼 수도 있고 노인 일자리 구역을 지나다 보면 우리 동네 뿐 아니라 아랫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 인사도 나눕니다. 자동차를 탈 때는 어림도 없는 일들입니다.
이른바 로드킬(자동차에 받혀 죽은) 당한 동물을 길가로 치울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호미를 싣고 다니면서 인간의 자동차에 죄 없이 죽어 간 이 생명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묻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를 몰고 다닐 때는 로드킬을 보면 기겁을 하며 핸들을 꺾어 피해 가는 것에 그쳤는데 자전거를 타니 비명횡사를 한 동물들에게 가해자인 인간 종족의 일원으로 최소한의 예의를 표할 수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우리나라의 교통 정책은 잘못되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대중교통을 발달시키지 않고 국민 세금으로 자꾸 도로만 만들어대니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늘고 환경파괴는 물론 농지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자동차 관련 사고도 많습니다. 자전거를 타니 더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전거나 농기계, 사람이 다닐 공간을 두지 않는 도로구간이 많습니다. 시골 국도는 대부분 그렇습니다. 인도 자체가 없어서 자전거가 한 자도 안 되는 좁은 갓길을 가야 합니다. 대형트럭이라도 과속으로 지나가면 아주 위험합니다.
특히 터널은 더합니다. 갑자기 길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터널은 그것이 시골 국도라해도 자전거는커녕 인도도 없습니다.산을 넘어서 가라는 말인지 아득합니다. 국토부나 농식품부에 건의서를 낼 생각입니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너나 없이 규정 속도를 안 지킨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도 자전거를 타고 나서입니다.
생활자전거의 필요
저도 그랬을 것입니다. 오른 발바닥으로 엑셀에 살짝만 힘을 줘도 자동차는 시속 100킬로미터를 쉽게 넘나듭니다. ‘권력이 있으면 남용하기 쉽고 자동차가 있으면 과속하기 쉽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공부라는 생각을 자전거 위에서 합니다.
한번은 후배가 자동차를 두어 달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습니다. 제가 자동차가 없다는 것을 아는 그가 잠시 외국에 나간다면서 자기 자동차를 주겠다고 했지만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니면 가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까지 가 있는 제 생활 기준에 따라 거절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정한 원칙인 것입니다.
지식인 승려인 혜민스님이 쓰신 책 중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을 ‘빠른 자동차에서는 만나지 못했지만 느린 자전거에서 만날 수 있을 것들’이라고 바꿔도 되겠습니다.
나라의 정책도 바뀌고 자전거도 용도에 따른 다양한 모델이 개발되어 나오면 좋겠습니다. 자전거를 타다보니 우리나라의 자전거는 기능성 자전거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입니다. 생활자전거가 절실해 보입니다. 건강이나 운동, 다이어트용 자전거가 대부분이다 보니 짐칸이 없습니다. 산악전용자전거가 있지만 일상생활을 담보하는 자전거는 아닙니다. 유모차 기능의 자전거나 짐을 싣는 자전거. 어린이를 두 명 정도 태울 수 있는 자전거는 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전거들입니다. 탈착이 자유롭기도 합니다.
제가 자전거 뒤에 짐받이를 하나 달면서 그라인더로 안장 축을 갈아내야 했고 뒷바퀴 축에는 와셔를 넣고 죄어야 했습니다. 자전거 수리점도 찾기 어렵지만 있더라도 완제품을 팔지 부품을 팔지 않습니다. 수리 할 수 있는 제품인데도 버리고 새로 사야 하는 실정입니다.
공공기관이나 대형 건물들로 이어지는 도로나 주차장들이 자전거 이용을 편리하게 바뀐다면 좋겠습니다. 보면 볼수록 자전거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힘의 작용과 물리 법칙을 절묘하게 이용한 최고의 장치입니다. - 천도교 <신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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