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3)
페이지 정보
본문
한씨부인이 회임했다는 소문은 제환 처 입을 거쳐 제환․근암은 물론 친척들과 이웃들 귀에도 나오른다. 제환 처는 십 년이 넘도록 집안에 아기 울음이 끊긴 것을 자신 탓으로 보던 사람들 눈총에서 좀 벗어났다싶기도 했지만 절간과 진배없는 집안에 아기 울음이 퍼질 것을 헤아리면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건 제환이나 근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촌들은 찐덥지 않아했다. 특히 제환 동생들이 심했는데 아마 양자 간 제환의 위치가 흔들려 상속재산이 줄지 않을까 걱정해서일 게다.
그래서 그들은 한씨부인이 딸이나 낳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씨부인은 정성들일 때마다 아들이기를 빌었는데 그것이 근암이나 제환의 근심을 덜어드리는 거여서다. 외동딸로 태어난 한씨부인은 집안에 아들이 없는 비운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한씨부인이 배속에서 태동하는 아기를 느끼고 이따금 놀랄 즈음이다. 하구리 단골네가 ‘받걷이14)하러 왔다가 한씨부인을 보자 갑자기 멈춰서드니 한참을 하늘을 보는데 종달새 높이 떠 비비배배 하며 구미산 쪽으로 날아든다.
“치하 드립니다. 부인께서는 알님을 잉태하셨습니다.”
큰 바가지에 벼를 담아 오던 제환처가 이 소리를 듣고
“알님을 잉태하다니요. 변고란 말이오?”
“새 누리를 여는 분은 알에서 태나네.”
하구리 단골네는 굿을 예술의 경지로 이끈 예인이다. 근암이 19세 때에 첫 부인 정씨가 배가 붓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아버님이신 종하 어른께서 병굿을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단골네는 시어머니를 도와 병굿에 참여했었다. 그 뒤 시부모가 늙자 남편 화랭이15)와 함께 구미산 일대 지역을 세습, 이제껏 무의식(巫儀式)을 이끌어 왔다. 영남․호남․제주도는 사제권(司祭權)이 세습되는 옛 내림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곳이다. 무당의 옛 이름은 ‘산이’요 ‘화랑’이기도 했다. ‘산이’란 당을 산에 짓고 산에서 살아서 산인(山人)에서 나온 말이다. 산인이 중국으로 건너가 선인‧신선(仙人·神仙)이란 말로 변해 되돌아와 선도가 되었으며, 이 선도의 뿌리는 단군이어서 ‘삼국사기’에서는 단군을 ‘선인왕검(仙人王儉)’이라 칭한 거다. 중국 후한 이전에는 仙(선)이란 글자가 아예 없는 걸 봐도 한국 산속의 무도(舞道)에서 기원했다는 설은 설득력을 갖는다. 남무를 ‘화랭이’라 하는 것도 신라 ‘화랑’에서 연유한 말이며 화랑이 ‘풍류도’의 사제(司祭)였으며 ‘풍류도’가 ‘충효·무위·선(善)’과 같은 도덕성을 ‘유·불·선’에 앗기고 퇴화한 것이 이제의 ‘무속’이다. 그러니까 무도(舞道)에서 선도·풍류도·무속으로 이어져 온 거다. 그 무도의 사제였던 화랑이 세습무가 되어 무의식을 여태까지 주관해온 거다. 세습무들은 강신이 되어서 산이(무당)가 된 것이 아니라 혈연관계에 따라 무의식(巫儀式)을 세습 받은 사람들이어서 굿을 멋지고 맵시 있게 진행하는 솜씨에 치중한다. 그런데 하구리 단골네는 무가의 소리맵시가 구성질 뿐 아니라 점을 신통하게 잘 친다는 소문난 분이다. 그네도 이제 워낙 늙어 며느리에게 굿을 넘겨주고 점이나 봐 주고 ‘받걷이’나 하러 다닌다. 그래서 제환 처는 한물간 단골네의 되잖은 말이라 흘려버리려했으나 궁금증이 일었다.
“이제 뭐라 하신 거요.”
“내 눈에 그렇게 보였어. 나도 몰라.”
그러고 부리나케 아랫집으로 ‘받걷이’ 하러간다. 그네 남편인 화랭이가 아랫집 대문 앞에서 볏섬이 실린 지게를 지겟작대기의 아귀로 바쳐놓고 기다리는 게 보인다.
구미산 아래에 귀인이 태어날 때면 구미산이 운단다. 울음소리는 <웅‧‧‧.>인데 여운이 길단다. 수운 7대조 정무공 최진립(1568~1636) 장군이 구미산 아래 하구리에서 태어날 때 구미산이 울었단다. 그는 3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9세에 경주 내남면 이조리로 이사 가고, 다음 해 아버지마저 여윈다. 25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마을 이조리를 점령하자 의용군을 조직하여 왜군이 잠자는 집에 불 질러 뛰쳐나오는 자마다 활로 쏘고 칼로 베어 큰 전공을 세운다. 2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뭇 전투에 참여하고, 병자호란 때는 69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남한산성에 갇히자 공주의 영장으로써 군사를 이끌고 용인 험천에 가서 청군을 만나 싸우다 전사한다. 그 뒤 조정은 병조판서로 추서(追敍)하고, 깨끗이 일했다고 청백록(淸白錄)에 올리고, 경주 내남면 이조리 가암 마을에 ‘용산서원’을 세워 기리었다. 이 같은 정무공(최진립)이 태어날 때 울었다는 구미산이, 수운이 태어난 음력 1824년 10월 28일에는 3일을 울었단다. 이따금 <웅‧‧‧.>하는 여운이 길고 깊게 들렸단다. 집 둘레엔 안개가 자욱했단다.
수운은 태나자 귀신 쫓는 개 이름인 ‘복술’이로 그의 어머니 한씨부인에 의해 불린다. 머리의 긴 털이 눈을 가리어 귀신 쫓는 개가 된 복술이처럼 귀신을 잘 쫓아내 장수하라는 의미로 붙인 거다. 그런데 그의 눈망울(홍채)은 어머니 눈을 닮아 금색인데 어머니 눈빛은 안으로 향해있어 고요하지만 그의 눈빛은 자라면서 엄습해 오는 호랑이 눈총을 닮아간다. 그의 태어남을 마땅찮게 여긴 사람들은 역적 눈이라 수군거린다. 수운(복술)은 네 살이 되어 여동생을 보고, 그런 지 한 달이 넘어 조카 세조를 본다. 제환 처가 끝내 저를 닮은 둥글넓적한 얼굴의 건장한 세조(1827년)를 낳은 거다. 세조는 울음소리도 크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젖을 물릴 때까지 울어댄다. 말이 트인 수운은 세조가 울면 젖 달라고 우는 것을 알고 형수한테 가서 “세조 울어.”라고 전한다.
가정리·하구리 일대는 십여 대를 월성 최씨가 터를 닦아온 최씨 집성촌이어서 친척에서 밀려나면 천더기가 된다. 제환 처의 권유로 수운 증조부 제사에 한씨부인도 참여를 하게 된다. 친척들과 사이를 없애러 갔지만 도리어 차임을 당해 더 사이가 벌어진다. 한씨부인만 차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수운도 제사에서 뒤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한다. 물론 아직 어린애니까 밀어낸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자기와 제환처가 주관하는 수운 할아버지 제사에서도 그런 수모를 사촌들로부터 당하는 꼴을 본다. 분이 보글보글 끓어올라 안간힘써 삭히었는데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생채기가 된다. 그네는 붙박이 친척들로부터는 개가한 흠결여인으로 젖혀져 개밥의 도토리 취급을 받는다. 그네는 집안서는 인정을 받아서 가족의 하나가 되었으나 친척의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겪는다. 재가녀란 굴레로 앞날이 막질리고 보니 자식을 낳아 가족의 일원이 되고 친족의 일원이 되어 더덜이16)없이 살고픈 꿈이 갈가리 찢긴다. 수운을 보면 불상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답답해서 속이 곯아 가고, 마침내 수절 못한 한을 품는다.
그네는 그나마 가족이 인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아직 근암이 건재하시기 때문이라 여긴다. 근암이 돌아가시고 제환이 가장이 되면, 더구나 세조가 어른이 되면 가족 분위기도 어떻게 바뀔지 모를 거란 겁이 들면서 맘이 타달타달 떨린다. 이따금 숨이 콱콱 막히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당한다. 자식이 눈에 띄면 죄의식이 맷돌이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천더기 되어 동구 밖으로 밀려난 자신과 자식의 몰골이 떠오르면 다물린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14)받걷이:제 울타리 주민에게서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벼 3되걷는 일.
15)화랭이:장구등을 치는 남무.
16))더덜 이: 더함과 덜함
- 이전글길로 정경흥님의 글을 보고 15.10.03
- 다음글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2) 15.10.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