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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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최제우
전기소설 길로 정경흥
차례
1. 왜 태어났나‧‧‧1쪽
2. 풍류도. 금강산. 무극대도.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12쪽
3. 주역. 신유학. 무극대도는 몸속에 있다‧‧‧25쪽
4. 명리학.근암돌아감. 허령이 마음으로 화생한 까닭. 결혼. 무과시험‧‧‧30쪽
5. 집 불탐. 무극허령의 진상을 봐야 한다‧‧‧39쪽
6. 장삿길로 나서고 마음점 치다‧‧‧43쪽
7. 장사를 정리하고 한의원으로 가다‧‧‧50쪽
8. 남원에 가며 무극대도를 사유하다. 병고치고 도심(道心) 헤아리다‧‧‧54쪽
9. 여시바윗골에서 천서를 받고 무극한울님께 기도하다‧‧‧57쪽
10. 적멸굴에서 49일 기도. 정울산 결혼. 용광업 파산‧‧‧63쪽
11. 용담으로 돌아오고, 몸속한울님께 몰입하다‧‧‧66쪽
12. 4월 5일 득도.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을 깨알다‧‧‧69쪽
13. 초학주문 짓고, ‘장생주’ 고쳐받다‧‧‧77쪽
14. 가족포덕하다‧‧‧82쪽
15. 초청포덕을 6월 1일 시작하다‧‧‧84쪽
16. 금지령 내려 방문포덕에 나서다‧‧‧92쪽
17. 남원 은적암에서 ‘동학론·검가·수덕문’ 짓다‧‧‧95쪽
18. 박대여 집서 사람으로 태어난 도리로 살다‧‧‧100쪽
19. 9월 29일 박대여 집에서 잡혀가다‧‧‧105쪽
20. 손봉조집에서 접 조직하다. ‘지기성품’으로 사유하는 방법‧‧‧108쪽
21. 용담정에서 ‘사유호흡’을 터득하다‧‧‧110쪽
22. 해월 최시형에게 도통을 넘기다‧‧‧114쪽
23. 수운의 생일잔치. ‘아냐그래. 팔절’ 짓다‧‧‧116쪽
24. 죽음은 환희다‧‧‧121쪽
1. 왜 태어났나
신라 천년의 꿈이 서린 경주
구미산(龜尾山) 봉우리에 먼동이 튼다. 봉우리 서북쪽 골짜기 중턱에 뿌리를 박은 100m나 되 보이는 골진 바위너설1), 그 골로 용이 굼틀거리듯이 물이 흘러내려서 사람들은 ‘용치골’이라 한다. 용치골의 끄트머리엔 한 길 남짓한 폭포가 떨어져 넓적한 바위를 쪼아 맷방석만한 옹당이2)를 이뤄냈는데 이를 ‘용옹당[龍湫]’이라 한다.
이 ‘용옹당’에서 조각바위들로 수두룩한 골짝을 50m쯤 아래로 내려가면 너부렁넓적한 안마당만한 바위가 폭포처럼 ㄱ자로 꺾인 아찔한 낭떠러지이다. 그 오른쪽에 지붕 추녀가 손끝에 닿을 3칸살의 초가집인 ‘용담정(龍潭亭=龍潭書舍)3)’이 있다. 용담정 과녁빼기에는 산을 뚫고 나온 거북머리처럼 생긴 바위옹두라지가 있는데 그 아래쪽에서 돌샘이 빗줄기처럼 흘러내린다. 이 샘터에서 조심스레 빠져나와 오솔길 따라 20m쯤 내려가면 왼편에 5칸살의 와룡암(臥龍庵)4)이 들어앉았고, 여기서 오른쪽 깎아지른 골짜기 이슥한 곳이 용마(龍馬)가 멱감았다는 용담(龍潭)5)이다.
용담 위아래로 형성된 골짜기를 ‘용마(龍馬)골’이라한다. 용담에서 겉가량으로 300m쯤 내려가면 산에서 바스락거리는 토끼 같은 걸 잡아 살아가는 산문 밖 장씨네 세 칸짜리 외딴 집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꾸불꾸불한 계단식 논배미들이 층을 이룬다. 이 계단식 논 서쪽으로 구미산의 꼬리가 가무리되고, 이 모퉁이 기슭에 옹기종기 모인 여섯 채의 초가집들이 용마((龍馬)마을6)이다. 이 마을 뒤 산모퉁이를 에돌면 밭과 논들이 개울 쪽으로 기울은 넓은 들판이 드러난다. 그 개울 건너편 야트막한 산기슭에 10여 호로 이뤄진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이곳이 ‘경주(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의 중심 마을이다. 그 마을 서쪽 자리에 안채와 사랑채를 갖춘 초가집이 있는데 ‘수운(최재우)’ 할아버지인 종하 어른이 지은 집이요, 아버님인 근암(최옥)이 태어난 곳이요, 수운도 이 집에서 음력 1824년 10월 28일 태어난다.
수운 할아버지 종하 어른은 세 분의 아드님을 두었는데 근암(최옥), 최규, 최섭이다. 맏이인 근암(최옥)은 8세에 “봉덕종부”라는 한시를 지었는데 많은 사람이 즐겨 읽었다 한다. 그래서 종하 어른은 용담 윗녘에 있는 초가지붕의 절간과 그 근처 땅을 매입하여 절간을 수리하고 ‘와룡암(臥龍庵)’이란 현판을 건다. 그리고 현판 글씨를 쓴 퇴계학파인 기와(畸窩 李象遠) 선생에게 근암(최옥)의 글공부를 맡기고 과거에 응시하게 하였다. 하지만 향시에 늘 합격하였으나 복시엔 9번이나 떨어진다.
9번이나 떨어진 몸으로 고향을 향해 오다가 해넘이 앞서 문경 새재의 주막집에 다다르려고 불나게 걸었다. 마침내 어스레할 무렵 고갯마루 주막집에 이르러 한숨 돌리고 고향 땅 남쪽을 바라본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의 유언인 ‘과거····.’에 응시해 꼭 붙으라는 바람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또 낙방거사로 돌아오는 자신이 가엽게 여겨져 눈물이 난다. 뒷간에 갔다 오던 주막집 꼬부랑 할미가 최옥을 보고 “당신이 눈물을 흘리면 열두 번 낙방한 최옥은 벌써 자살해버렸을 거야.”라고 한다. 깜짝 놀란 근암 최옥은, 할미가 최옥이 자기임도 모르고 최옥에 빗대어 위로 하는 말을 듣고 보니 절로 미소가 인다. ‘최옥’이란 이름이 ‘12번(실제는 9번) 낙방거사’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에 놀랐으나, 매번 올곧게 과거에 응시한 자부심이 일어 살짝 웃음이 난 거다. 기득권자들의 알음알음으로 실시되는 과거에 줄곧 올곧은 선비의 정신을 지켜온 보람이 있으니 이젠 그만 접어도 되리라싶었다.
근암 최옥(1762-1840)은 17세(1778년) 10월에 흥해현 매곡에 사는 오천정씨(1758~1797)와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얻었으나 닁큼 잃고, 부인도 16년간 배가 부어오르는 병으로 고통을 모질게 견디다가 칠성판 타고 칠성계로 돌아갔다. 다시 부친의 명에 따라 근암 최옥은 다음 해 37세(1798)에 달성서씨(1773-1811)와 재혼하였으나 서씨도 13년 뒤 딸 둘만 남겨놓고 유암(乳癌)의 통증을 모지락스럽게 배겨내다 돌아갔다. 제사지낼 아들도 없어서 밑에 동생 최규(1772-1832)의 삼남 중 장남인 최제환(1789~1851)을 양자 들여 장사지내게 했다. 그러고 2년여 동안 유람하다가 54세(1815년)에 이르러 양자들인 제환한테 통틀어 맡기고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와룡암을 수리하고 그 건너편에 ‘용담정’을 짓는다. 이미 퇴계학을 이은, 글 잘 짓고 잘생기고 올곧은 선비로 알려진 최옥이라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용담정 건너편의 와룡암에서 가르친다.
근암이 61세(1822)가 된 해 가을이었다. 근암의 7살 위 선배인 순부 한문언의 외동딸이 시집가자마자 남편이 죽어 집에 와서 10년째 수절하고 있었다. 순부는 마루에 앉아 딸을 다시 출가시키고 수양아들을 구하기로 마음을 도사리다가 깜빡 졸았는데, 딸이 하얀 목면에 싸인 아기를 안고 들어와서 근암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래 갓난애를 안고 웃다가 깨어보니 백일몽이었다.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어 근암에게 배운 손자벌인 한상원에게 근암에게 재혼을 권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한상원이 근암에게 순부의 뜻을 전했더니 첫마디로 거절하므로 다시 최제환에게 얘기했다. 1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최제환은 반기며 그를 따라가 그의 고모 벌이 되는 한씨부인을 보고 놀란다. 선녀처럼 귀티가 나는 부인이라 어머님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든 거다. 그래서 양아버지인 근암(최옥)에게 재혼을 권했으나 역시 ‘쓸데없이 일거리 만들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그런지 보름쯤 뒤에 순부(한문언)는 가정리 아랫마을인 하구리 처가 집에 왔다 들린 것처럼 근암이 집에 오는 날을 택해 직접 찾아왔다. 그런데 근암은 젊어서 향시에서 순부(淳夫)가 7살이나 위여서 어른 대접했었다. 그렇게 근암은 순부를 방안으로 모셨다. 하지만 순부의 백일몽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을 뿐 반응이 없어서 순부는 강권하다시피 재혼하라고 했으나 끝내 못들은 척한다. 순부는 제풀에 수그러져 일어나다가 “자네도 아들이 없지 않은가”라고 언짢아한다. 근암이 어물쩍거리자,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원망 내는 투로 “아들 없이 죽으면 죄인이 되는 거야.” 하고 문턱을 나섰다.
그런 지 한 달쯤 지나 찬바람이 용마골을 타고 오르는 동짓달이 된다. 근암은 새물내7) 나는 옷으로 갈아입을 7일째가 되어 집에 갔더니 제환이 하는 말이 “한상원 고모님이 대추나무 밑에 쓰러져계셔서 방안에 모셨으니 놀라지 마십시오.” 한다. 근암은 한상원 고모가 여기까지 와서 쓰러졌다는 것이 의심스럽고 너무 놀라워서 얼른 들어가 보니 갓 서른에 접어든 듯한 여인이 진솔8) 흰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아랫목에 고추앉아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데 눈자위와 뺨이 저리도 해맑을까싶었다. 선녀 때깔이 나는 그네의 기품에 이끌린 근암은 자신의 시선이 매초롬한9) 그네의 금색 눈망울(홍채) 속 깊은 동자에 말려드는 걸 의식하자 사달 났다싶어 얼른 체통을 차려 입술을 뗀다.
“무탈하시니 천만 다행이외다.”
그네는 고개를 숙이고 남 얘기처럼 사근사근 풀어 말하기를
“저는 금척리 사는 한씨로 20세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서 10년간 수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몸이 떨리고 붉은 해가 앙가슴에 안겼는데, 신령한 기운에 이끌리어 오다가 그만 얼을 잃었나 봅니다.” 한다.
금척(金尺)리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어릴 적 꿈에 신인으로부터 금자(金尺)를 받았다는 구미산 너머에 있는 곳으로 선배인 순부 한문언이 사는 곳이다. 그곳으로 순부처럼 외로운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갈 한씨부인을 헤아려10)보니 죄스럽고 찜찜하기도 하고, 그 모습이 외로운 제 뒷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제환이 자식을 갖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10년 넘게 자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재혼을 권한 마음도 자꾸 걸린다. 그러나 뒤이어 재혼은 무책임한 짓이라는 반론이 여전히 인다. 그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재가녀(再嫁女) 자식은 문과에 응시할 수 없다고 한 걸 알아서다. 또한 일반에서 재가녀 자식은 첩의 자식처럼 홀대하는 것도 잘 알아서다. 이런 구렁텅이에 한 생명을 떨어뜨리는 것은 죄라는 의식이 들어 찜찜해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제환은 한상원고모를 안방에 모셔놓고는, 이건 최씨 집안과 한씨 집안의 문제여서 일꾼한테 금척리 가서 한상원을 데려오게 했다. 이참에 아버님이 객심먹지 못하도록 해야겠다는 맘이 들어서다. 그는 밖에 나가 장작을 패며 한상원이 오기만 기다렸다.
1)바위너설: 바위가 삐쭉삐쭉 내민 험한 곳. 2)옹당이: 움푹 패어 물이 괸 곳
3)용담정: 마루1칸·방2칸·부엌1칸의 3칸살의 집. 득도한 곳. 1칸=6자=1.82m
4)와룡암: 곳간1칸·부엌2칸·안방4칸·마루1칸·건너방2칸의 5칸살의 집. 절간·공부방·살림집’으로쓰였음
5)용담: 용이 목욕했다는 못. 6)용마마을: 이제는 보이지 않는 사라진 마을임. ‘마룡’마을이라고도 했다함.
7)새물내: 빨은 옷에서 나는 냄새. 8)진솔: 한 번도 빨지 않은 새 옷
9)매초롬하다: 젊고 아름다운 태가 있다. 10)헤아리다: 세다. 미루어 짐작하다.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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