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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꼭,,바로잡아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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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황숙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816회   작성일Date 14-06-24 21:49

    본문

    상주 은척면의 “ 동학교 ”

    늣은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바로잡아서

    다시는 “난법 , 난도”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동학이라는  명칭을 사용 못하도록 특단의 조치를

    엄중히 결정하시어  관계기관 ( 중앙부처 와상주시청 )

    통지하시어  “동학의 앞날”에 큰문을 열어주시어

    천도교 상주교당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삼풍(三豊) 김주희 선생  가계보


    * 김주희 ==> 김덕룡 ( 자 ) ==> 김정선 ( 손 )




    # 김주희 선생 약력 내용


    * 1904~1912 년  경천교 부교주 역임

      1915~1944 년  은척면 우기리 “ 동학교 ” 설립



    # 교리 내용


    1, 체천 體(체)天(천)     2, 선천회복 先天(선천)回復(회복)

    3, 교정분리 敎政(교정)分離(분리)


    # 교기는  녹청색 바탕에 亞(아)字(자)문양이 중앙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올리면


    삼풍 김주희 선생이 설립한 삼풍식 신흥종교일뿐

      ( 시천교/상제교/경천교/청림교/동학교 ..등 )


    동학의 창시자이신 대신사님의 가르침하고는

    거리가 멀고   동학의 경전을 볼모로한

    짜깁기이고  각색하여 만든 것이라 사료 됩니다

    동경대전의 목판본이 있다고는 하나 이또한

    대신사님을 볼모로한  삼풍식 변형의 난법입니다


    하여   급기야는

    중앙총부의 수수방관 또는 유야무야 속에서

    이곳에서는  수운 선생님으로 분위기를 잡아놓고

    알속은  삼풍으로  “동학”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듯

    동학정신을 정통으로 계승한 “삼풍 동학교”가

    “ 상주동학교” “ 상주동학” 이라고

    제멋되로 이름을 갔다 붙이는 맹랑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호는 하나이고 헌법이 둘일수가 없듯이

    대한민국에는 “ 동학”이 둘일수는 없습니다

    대신사님외에  또다른 설립자가 있어서도 안되며

    동학의 지류가 본류가 될수도  되어서도 안됩니다


    창시자 대신사님의 “동학”하고

    삼풍 선생이 설립자인 “ 동학교”하고는

    모든 것이 영판 틀리는 것이기에

    지금

    분명히 해야할일이 있습니다


     동학을 하시는   존경하옵는  모든 동덕님 과

     천도교중앙총부에서는  분연히 일어서시어

     후세에 웃음꺼리가 되지 않도록 엄연한 결정으로

     짝퉁 동학교가  난법 난도 하는 일이 없도록

     엄중한 결행 있으시기를 간곡히 심고 올림니다


    “동학” 하고   “ 동학교”는 다름니다

     다르다는것은  “동학”이 아닙니다

     여기에 “분명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여

     이참에 .. 모르는 믿고 따르는 후학들에게 바름으로

     이끌어주고   선량한 상주시민에게도 알려서

     천도교 상주교당이 바로가고 훌륭한 어른 “동학”이

     될 수가 있도록  간곡히 ..  간곡히 심고 올림니다


    삼풍식“동학교”는  작퉁도 아니고  지류도 아닌

    설립자 삼풍교일뿐입니다



    ‘ 천도교 상주교당  

       카페 : http://cafe.daum.net/sangjuctmini0C0

       경 암   황 숙  심고


       # 저의 가계보입니다


       황우원 증조할아버님

       황신오 할아버지

       황국환 아버님

       황  숙 ( 자 : 3남 )  전화 010 8850 5600  번



    동학농민혁명/증조부님의 증언록|부활의 동학 새세상이 온다

    鏡菴 黃 琡 | 등급변경▼ 준회원 정회원 우등회원 우수회원 최우수회원 특별회원 | 조회 1 |추천 0 |2011.01.06. 22:06 http://cafe.daum.net/saranghs/L3Xg/9 

    //

    상주 동학군 편의장 황우원, 손자 국환·손부 박말임        



    인물설명

    ▶ 대상인물 : 황우원(黃佑元)

    ?~?. 상주 화북면 송내 출신으로 한때 서울 가서 살기도 했으나 다시 고향에 돌아와 상주의 동학 편의장을 맡으며 동학농민전쟁 때 활동. 

    ▶ 증언인물 : 황국환(黃局煥) 박말임(朴末任)

    1923~ . 황우원의 손자. 송내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천도교를 독실하게 믿고 있음. 1929~ . 황국환의 부인. 

    ▶ 가계도

    ▶ 정리자 : 신영우 

    ▶ 출전 : 다시피는 녹두꽃

    내용

     1986년 3월 30일 송내 집뜰의 온실에서 고추모를 내고 있던 황우원의 손자와 손부를 만나서 증언을 들었다.


     조부님 함자는 황우원 씨예요. 도울 우자 으뜸 원자요. 본래는 해월 선생을 모시고 여기 청계에 계시다가요, 내서면 서원리 골티에 가서 평생 사셨지요. 사십에 그 양반이 상주의 동학군 편의장을 하셨지요.

    상주의 동학에 참여해서 일했지요. 그때는 유교가 정교인데 이것은 사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동학에 들어갔다고 죽일려고 잡으러 다니니께 내빼야 하지 않겠습니까. 편의장이란 게 집강소와 관계 있었겠지요. 지금 말로 하면 집강소 소장이겠지요.

    저 위의 동네 이름을 청계동이라고 해요. 높은 터라고도 하지요. 여기는 송내라고 해요. 저 위에 살던 사람은 화전민 정리할 때 다 나왔어요. 거기하고 동관암에 해월신사가 계셨어요.


     청계동은 상주에서 은거하던 동학의 제2세 교주 최시형이 오랫동안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동학 도인들이 숨어지내던 청계동을 높은 터라고 불렀다. 뒤에는 견훤산성의 험한 봉우리가 둘러서 감싸있고 앞으로는 외길 깊숙한 골짜기가 뻗어내렸다. 화전해서 살던 사람들의 마을이니 얼마나 험한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있다. 동관암은 청계동에서 보면 속리산 쪽으로 바짝 붙어있는 산골 마을이다. 황우원은 적어도 1880년대에 동학에 입도하여 교주 최시형과 더불어 청계동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쫓기는 신세가 아니었겠습니까? 세 번이나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잡히지 않고 살아났닥 합디다. 한번은 관군에게 막 붙잡힐려고 할 때 이제 변소 똥통을 열고 단지 안에 들어가서 피신을 했고, 한 번은 물레 돌리는 남의 부인 치마 밑에 숨어서 피신했다고 해요. 그 부인도 대단한 사람이었지요. 또 한 번은 자기집에 와가지고 인제 나졸들이 잡으러 왔는데 조모님이 모진 고문을 당해도 끝끝내 굴하지 않고 숨겨줘서 자기가 연명을 했고 그래서 세 번을 그래 고생했닥 합디다.


     갑오년에 동학군으로 토색질 하는 양반들을 응징했단 말도 있어요. 우산 정씨들 하고요, 사래실 노씨들 하고요. 청계사로 불러다 응징했다는 거지요. 그런 말만 들었지 더이상은 몰라요.


     1894년에 편의장이 되어 활동하던 내용에 대해서는 집안에서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뒤에 쫓겨다니던 일화는 생생했다. 상주에서 관군과 일본군 그리고 민보군이 동학농민군을 추적하던 때는 한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매우 추웠다. 폭설도 자주 내렸다. 황우원은 산골 마을을 전전하며 피신했다. 급박한 상황이 잇따랐다.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아직도 동학농민군을 편들었다. 그래서 농민들이 감싸주는 까닭에 살아난 이들도 있었다. 치마 속에 외간남자를 숨겨준 어느 부인의 위험스런 도움. 그 간절한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황우원은 그렇게 해서 살아났다.


     제 말이 연결이 안돼요. 아버지한테 들어서 드문드문 아는 겁니다. 집에 아버지가 금년이면 여든아홉이 됩니다. 지금 만날 수는 없지요. 환원하신지는 벌써 십여 년 됩니다. 천도교에서는 돌아가신 걸 환원이라고 합니다.

    지금 상주에서 낙동가는 길로 가면 상주시 외답동 온실이 있는데 거기 가면 교회당이 있어요. 또 옥산 가면 도촌이 있어요. 왜 그런 이름이 있는가 하면 동학군이 많이 있다고 해서 도촌이라고 해요.

    여기 동학하던 분으로 신용구 선생이 있어요. 본래 그분은 경남 남해사람이예요. 자기 선생 따라 동학하러 올라왔겠지요. 해방되고 나서 돌아가셨지요. 이 지역에서 시천주 조화정하고 주문을 많이 했었다고 해요. 동학을 하던 사람이 이제는 죽고 하니 다 망했다고 해요. 이제 상세한 것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도인이 살다가 이제는 다 헤치고 하니 망했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함창하고 몇 군데에서 활약했다는 말이 있어요. 다 아버지한테 들은 구전이예요. 우리 황씨는 내서면 서원 골티에 살았지요. 천도교 사람들은 족보를 안합니다. 우린 예전 족보도 없어요. 가계도는 낙양 집에 있어요. 거기는 애들이 있지만 갸들은 못 찾아요. 내가 깊이 넣어놨어요.

    골티에 조부님 사시던 마을 사람들은 다 동학을 했지요. 갑오년 이후 일제 때지요. 그전엔 청계사에 있었구요. 이 골짜기에서 천도교를 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래요. 주문은 여러 사람이 알지요. 저는 죽을 때까지 천도교 할 겁니다. 지금도 염주 돌리고 있구 청수 떠놓고 있지요. 제사는 천도교식으로 하는데 처음엔 심고 올리고요, 묵송하고 다음에 또 심고 올리고요. 일하면서도 주문을 외워서 수도하는 마음을 갖지요.


     상주에서 동학하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또 천도교와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여러 마을에 가서 노인들에게 물으면 어렸을 때 천도교인이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얼마나 귀에 닳도록 들었는지 주문도 아직껏 외운다.

    그러나 정작 지금도 교인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없었다. 증언자 황국환은 필자가 만난 유일한 천도교인이었다. 농민군의 후손으로 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말임은 말을 보탰다.


     천도교에서 매년 한 번씩 오십니더. 처음에는 한 분이 오셔서 이 방에 주무시고 영감님한테 다 알아보시더니 다음에는 깃발을 들구요, 몇이 되는지 젊은 사람들하고 오지요. 한 여나믄 될 껄요.

    젊을 쩍 이야긴데요. 시집오니께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시대요. 성미를 모으라고요. 쌀을 내갈 적에 먹는 양대로 맨 정확하니 내어가지만 부엌에 가서 식구 수대로 한 숟가락씩 때마다 모아 두라고 하대요. 그것을 성미 바친다고요. 서울 천도교 본당으로 보낸 것 같아요. 그때는 시키는 대로 했지.

    우리 클 적에 보면 어른들이 천도교 주문을 외우대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오니께 삼촌도 외우고 그러니께 같은 주문을 외우대요. 그래 천도교 주문인지 알았어요. 친정이 있는 곳은 거동이지요. 남천교 건너는 데 있지요? 친정 엄마는 누가 와서 천도교 믿으라고 하는데 안 믿대요. 그러고 시집 왔으니 친정도 자주 안 가고 뒤에 믿었는지 잘 모르지요.

    상주에는 그때 시집이나 친정 있는 데나 천도교 많이 했지요. 우리 성씨는 반남 박씨입니다. 박씨는 거동 마을에 지금도 많이 살고 있지요. 내 이름은 박말임[朴末任]입니다. 바깥 어른은 돼지띠고, 나는 뱀띠예요.


     손부는 시집온 뒤에 천도교인의 생활방식을 배웠다. 성미를 모아 천도교 총부로 보낸 일이 새록새록 생각난다고 한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어려운 집에서 배를 주려 살면서 한마음으로 서울에 보낸 쌀은 무엇이 되었을까? 보낸 사람은 다만 정성만 있었을 뿐 의문은 없었다.

    황국환은 할아버지의 내력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 할아버지가요. 여섯 살 때 조실부모하고 열세 살에 서울 동대문 밖에서 미나리장사를 했다꼬 해요. 스물에 상주 함창에 노름꾼 패장을 하고 마흔에 동학꾼 편의장을 했다꼬 해요. 자기 평생에 여덟 번 파산하고 상처를 아홉 번 했다고 해요. 자꾸 부인이 죽으니까요. 자기 팔자였겠지요. 우쨌던간에.

    고조부님은 잘 모르겠어요. 증조부님의 산소가 여기 있어요. 우자 원자 우리 조부님이 땅을 여기 사놓으셨어요. 예순 쩍에 돈을 좀 모으셨다고 해요. 농사를 골티에서 지어서요. 여기 땅은 지금 논이 천삼백 평 임야가 여섯 정보. 밭이 삼백 평 돼요. 산은 많지 않은데 송내 근방에서는 좋다꼬 해요. 길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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