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민중항쟁인 동학농민혁명은 근현대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동학(천도교)의 사상과 교단을 중심으로 수많은 민중이 뜻을 함께하며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조선 말 당시 만연했던 불평등 의식을 깨뜨리고 인간 존엄성 회복과 자유민주화 사상 그리고 외세로부터의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은 이후 3.1운동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도교 박남수 교령을 만나 오늘날 이 시대가 이어받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사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
|
|
|
▲ 천도교 제55대 박남수 교령. ⓒ천지일보(뉴스천지) |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릴레이 인터뷰① - 천도교 박남수 교령
― 동학농민혁명은 왜 일어났습니까.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은 새로운 세상을 바꾸어야 하는 시대적 천명(天命), 낡은 것을 고쳐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역사였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받는 삶의 구현, 구체적인 원인은 동학(천도교)의 시천주(侍天主, 내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셨다)·사인여천(事人如天, 한울님을 공경하듯이 사람도 그와 똑같이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의 가르침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시작한 것이 일어나게 된 기본 동기가 됐습니다.
안으로는 오랜 세도정치의 극치로 이는 조선 봉건제도의 부정과 부패, 탐관오리들의 가렴(세금 따위를 가혹하게 거두어들임)추구, 더욱 구체적으로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탐욕이 많고 포학함)으로 발생한 것이죠. 이뿐 아니라 밖으로는 외세 상인들의 시장 장악으로 기존 농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화되고 일본 상인들의 득세의 탐학, 나아가 그들의 정치적 침략까지 막아야 하는 시대적 상황이 요인이 됐습니다.
―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현대사에 어떤 영향과 발자취를 남겼습니까.
한국 근대문물과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자각한 시민(국민)운동 개념의 등장, 다시 말해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 자각(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회구성)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혁명 이후 수많은 의병운동과 항일운동의 주역으로 민중들이 들고 일어섰습니다.
혁명의 정신은 훗날 3.1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8명이 동학혁명 접주(동학 지도자)라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던 주요 인사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땅 만주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했고 그 중심세력들 또한 동학 혁명군의 정신에 근거를 두고 활동했습니다.
― 역사적인 의미는 무엇이고, 오늘날에 그 정신은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최초의 전국적 차원의 민중 봉기입니다. 똑같은 구호와 이념을 제시함으로써 그 성격은 명확한 ‘혁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정신은 오늘날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120년 전에 시행한 집강소(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설치한 행정적 성격의 농민 자치 기구, 현행 지방자치제와 같음) 설치는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법을 100여 년 전에 실현한 것이였죠.
당시 폐정개혁 12개 조항을 살펴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청상과부의 재혼 허용, 노비문서 소각 등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생각해도 획기적인 조항입니다. 우리는 쉽게 말하지만 그 당시는 봉건 유교사상이 깊이 뿌리내린 조선시대입니다. 어떻게 이 같은 혁명적이고도 개혁적인 일들을 추진했는가. 이는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중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혁명정신은 지난 100여 년의 세월 동안 표면적으로, 대단히 미약합니다. 그러나 그 진면목은 한국 근현대사 전 부분에 걸쳐 동학혁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입니다. 가장 민중 지향적이고 역사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통일운동으로 승화되고 계승해야 합니다.
‘기독교사상’ 권두언(2014년 3월호)에서 동학혁명의 가르침을 받아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김일성이 즐겨 읽은 책 ‘개벽’)도 이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오늘날을 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세대 간, 계층 간의 대립 등으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국민통합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학혁명 정신에서 배울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해법은 무엇입니까.
화해와 양보의 정신이 동학혁명의 정신입니다. 그 정신의 근본은 천도교의 동귀일체(同歸一體, 한울님의 참뜻으로 돌아가 한 몸같이 되는 일) 정신이 가장 중심이었습니다. 남을 섬기는 정신도 필요합니다. 혁명 때 동학군이 30만 이상이 순국했습니다. 이 원인은 궁극적으로 일본군의 신무기이지만, 그보다 동학군은 혁명군 군율 제1호가 ‘함부로 사람들을 죽이지 마라’ 즉 사람을 죽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 한 사람의 생명을 중히 여기면서 투쟁한 결과입니다. 나와 이웃의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정신이 곧 상생의 정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더 큰 이념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희생정신이 필요합니다.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합니다. 천도교는 짧은 역사에서 천도교를 위한 순교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모진 고난과 핍박 속에서 고귀한 생명을 희생한 수십만의 천도교인은 모두가 순국자입니다.
― 동학혁명과 3.1독립운동을 이끈 천도교가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이 시대에, 국민과 사회를 향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역사의 전철을 다시 또 밟지 않기 위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반복되는 우리 근현대사를 보면서 당시 민중들의 외침인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제폭구민(除暴救民, 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원함)·광제창생(廣濟蒼生, 널리 백성을 구제함) 등의 구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현재의 역사는 동학혁명이 발생하던 그때와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동북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한 일에도 동학혁명의 정신이 계승돼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시대는 온 세상이 거듭나야 할 시기입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즉 세상의 인심(人心)을 내려놓고 자리를 비워야만 거듭날 수 있는 천심(天心) 자리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 역시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천명으로 알고 이를 피해 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동학농민혁명의 교훈에서 배워야 합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한 시대를 나라의 임금이 임금다운(國君君, 국군군), 신하가 신하다운(신신, 臣臣), 아버지가 아버지다운(부부, 父父), 자식이 자식다운(자자, 子子) 시대로 바꿔야 합니다. 이것이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