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동학입문요결28(종교의 역할은 변화)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동학입문요결28(종교의 역할은 변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금주연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473회   작성일Date 22-12-20 12:19

    본문

    종교의 역할은 변화

     

    1. 종교학의 시작

      종교학에 관한 간단한 공부를 위해 오강남 교수(세계 종교 둘러보기, 현암사)의 글을 요약해 본다. 인간의 종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종교는 체험의 영역이지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체험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체험의 영역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일까 하는 것을 학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일단의 과학자들이 종교도 어느 특정 종교나 종파와 관계없이 대학에서 과학적으로 연구해보자는 뜻에서 종교학을 시작했다. 그 대표자가 바로 막스 뮐러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종교학의 창시자라고 생각한다.

     

    2. 종교연구 방법들

      종교를 연구하는 접근방법으로 역사적, 인류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 문헌학적, 현상학적 접근 등이 있다. 현상학적 접근법 또는 종교 현상학은 다음과 같다. 모든 가능한 종교현상들을 관찰한다. 에포케epoche를 사용한다. 에포케란 그리스어로 판단중지를 의미한다. 판단을 보류하고 이런 현상 뒤에 있는 본질, 의도, 깊은 뜻의 그리스어인 에이도스eidos”가 무엇일까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 관찰한 것과 비슷한 것이 세계 여러 곳에 있으면 이들을 함께 관찰하고 그것들의 공통성이나 일관된 내적 구조 같은 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한편 비판적 사고를 기초로 하고 있다. 여기서 비판이란 어느 사물을 지금까지 보아오던 관점에서 떠나서 여러 가지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학도 여러 가지 종교현상을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종교의 여러 가지 새로운 면을 계속 발견해 나가려는 작업이다.

     

    3 종교학의 특성

      종교학은 신학이나 철학과 다르다. 종교학의 시작은 사실 신학이나 철학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신학은 주로 자기 종교에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하지만 종교학에서는 그런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비환원적이다. 환원주의란 복잡한 현상을 무엇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태도를 말한다. 종교를 경제적 또는 심리적 현상과 같은 종교외적 현상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은 금물이다. 종교란 복잡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교구적이다. 자기가 속한 교구의 종교 하나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종교학자는 어느 한 종교의 전문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종교에 대해 전문적으로 깊이 알고 이런 지식을 배경으로 자기의 전문분야나 기타 종교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체계적이다. 여러 종교전통에서 나온 자료와 지식을 역사적 맥락에서 정리하고 일정한 방법으로 체계화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현상과 이론적으로 연계시키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맥락적이다. 종교학은 그 자체로 연구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내려온 종교학의 일반적인 역사와 사정을 알고 그 연구선상 혹은 맥락에서 연구를 발전시켜야 한다(오강남 위의 책, 348-355).

     

    4. 왜 이웃 종교를 알아보려는가?

      “이 바쁜 세상에 남의 종교는 알아서 뭐 하자는 것인가? 종교가 뭐 그리 대단하며, 설혹 대단하다해도 내 종교도 다 알지 못하는 형편에 남의 종교까지 알 필요가 뭔가?” 이런 질문에 실존적 관심, 지구 윤리적 관심, 인문학적 관심때문이라고 오강남 교수는 대답한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내 종교를 더욱 깊이 알기 위해 : 실존적 관심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1823-1900)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고 말했다. 내 종교에 장점이 있다면 다른 종교의 비슷한 현상과 비교해 보고 비로소 아는 것이다. 단점이 있다 해도 그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남의 종교를 보았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의 종교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고마워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이것을 실존적 관심이라고 한다.

    내 이웃의 종교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 지구 윤리적 관심

    한국은 무속, 불교, 유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 전시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종교 사회. 가까운 이웃이 이런 종교를 믿고 있다면 어떻게 이들을 사인여천事人如天할 것인가? 스위스 천주교 사제이자 신학자인 한스 큉Hans Küng(1928-2021)이 말한 것처럼 종교간의 대화 없이 종교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다른 종교를 거짓된 것으로 배척하는 독선적 태도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종교의 진리도 편협하게 이해하는 것으로서 성숙한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없다.”고 금장태 종교학과 교수는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웃의 종교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은 종교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한 윤리적 명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 인문학적 관심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 곧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다른 또 하나는 인간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라는 것이다. 종교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느 특정 종교를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당면한 궁극적 물음을 물어보거나 삶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자세가 깊은 의미의 종교적 자세라고 한다면 인간은 종교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인간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종교적이므로 우리 자신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교현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종교를 알아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인문학적 관심이다.

     

    5. 종교의 정의

      그렇다면 종교를 무엇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까? 사실 종교를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몇 가지 정의를 요약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독일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1869-1937)는 지금 종교학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그의 책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종교를 엄청나고도 매혹적인 신비라는 간략한 라틴어로 정의했다. 종교란 근본적으로 성스러운 것에 대한 체험으로 이 체험이 바로 위의 세 가지 말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신비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 타자성을 의미한다. 엄청남은 그 앞에 서기만 하면 우리도 모르게 갖게 되는 두려움과 떨림, 압도적인 힘, 에너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매혹적임이라는 것은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됨을 의미한다.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1886-1965)는 종교를 궁극관심이라고 정의했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 존재를 사로잡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종교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궁극실재와의 관계를 통하여 변화를 체험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중심이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삶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6. 종교체험의 특징

      그리고 종교에서 체험이 이처럼 중요하다고 강조된다면, 그 체험은 대체 어떤 성격을 띠고 있을까? 독일 출신으로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가서 시카고 대학에서 종교사학을 가르친 요아힘 바흐Joachim Wach(1898-1955)비교 종교학에서 이 질문에 대해 잘 설명해 놓았다.

    종교체험은 궁극실재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순수 주관적인 허상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체험은 인간의 전 존재로 대응하는 전폭적인 반응이다. 온몸으로 하는 지정의知情意가 다 관여된 체험이다.

    종교체험은 그 강도로 보아 가장 강한 체험이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이고 전율적이고 심오한 체험이다.

    진정한 종교체험은 언제나 행동을 수반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긴다. 동기부여와 행동을 위한 가장 강력한 근원이 된다.

    이러한 종교체험은 매우 엄청나고 비상식적이므로 보통의 전달방법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상징적, 은유적, 유추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크게 세 가지 형태, 생각으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