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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문 반포와 손병희의 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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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성민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496회   작성일Date 22-12-15 12:53

    본문

    법문 반포와 손병희의 친명

     

    191412일 손병희는 박인호에게 곧은 절개를 뜻하는 <일지매> 한 폭의 그림을 주었다. 2월에는 각 지방


    에서 각 두목 105명을 선발하여 제5회 연성공부를 봉황각과 도선사에서 실시하였다. 그리고 42일 오후 5


    25분에 손병희는 우이동 봉황각에서 가회동 댁으로 돌아와 박인호를 불러 붓을 잡게 하고 다음과 같이 법


    문 초고를 쓰게 하였다.



    <法 文>


    汝必天爲天者 無靈性哉 靈必靈爲領者 天在何方


    汝在何方 求則此也 思則此也 常存不二乎


    너는 반듯이 한울이 한울 된 것이니 어찌 영이 없겠느냐? 영은 반듯이 영이 영된것이니 한울은 어디 있으며 너는 어디에 있는가? 구하는 것도 이


    것이며 생각하는것도 이것이니 항상 있어 둘이 아니니라.

     

    손병희는 천일 기념일을 기해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두목에게 이 법문을 전하여 일반 교인들에게 주도록 하


    였다. 이때 이종훈 이하 74명의 두목을 선정 하였는데 그 가운데 박인각이 환원하였기 때문에 실제 수령자


    는 73명이였다. 그 다음날 하오 7시 동대문 밖 상춘원에서 법문 봉수식을 행 하였다. 이 자리에서 손병희가 


    말하기를 이 법문은 비록 내가 생각한 것이나 실은 춘암이 주는 것이다하고 또 대신사게서는 육신으로 


    출세 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출세 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일체의 상벌에 내가 관여할바가 아니오 천사


    하노니 天則을 위반하면 천벌이 있고 人則즉을 위반하면 誅罰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법문 봉수식을 마친후 법문 73매를 두목들에게 수여 하였는데 이때 참석치 못 했던 박문화 이정점 이군오 이


    상우 등에게는 그 후 박인호집에서 법문을 주었다. 그런데 천도교가 신구파로 분열되자 신파교회에서 이것


    <공동 전수 심법식>이라고 하고 또 이 글을 손병희가 심법을 공동 전수한 법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여 


    분열의 구실로 삼기도 하였다. 현재는 천도교 경전의 상사법설에 법문으로 수록 되어있다. 191521일 


    박인호의 회갑을 맞아 중앙 대교당에서 교인과 각 학교 학생들 1천여명이 참석하여 성대한 경축식을 거행 하


    였다. 그리고 경축식 후에는 가회동 박인호의 집 정원에서 헌수 식이 있었다. 이때 전국 각 지방에서 참석한 


    교구장을 비롯한 교인 수백명이 참석하여 헌시를 하였는데 시문이 수백여편이 되었다. 1918118일 손병


    희가 참석한 가운데 제 10회 대도주 승통기념식(도일기념식)을 총부에서 거행 하였다. 이날 기념식에서 오영


    식은 식사를 통해 대도주의 는 곧 한울님의 영감으로서 의 최상위에 거하니 제 최제우와 제2세 해월신


    사와 제3세 의암성사와 지금 대도주께서 일반의 자리를 얻어 계심이다. 경신 45일에 한울님께서 도를 전


    하심과 오늘날 의암성사께서 대도주에게 도를 전하심이 모두 하나요 둘이 아니다. 왜냐하면 10년전 대신사


    의 마음이나 오늘 우리의 마음이나 서로 다르지 아님을 생각하여 아는 것이다.....라고 하여 대도주의 법통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한편 손병희는 이날 기념식후에 양한묵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친명서를 공포 하도록 


    하였다.

     

    <神師主親命>


    此大道主位統天窮地終천종지종 토록 幾億萬回기억만회 를 하더라도 神師에게 傳受전수 하시던 同一心法이오 且使차사


    하던지 西하던지 且使 木 하던지 하던지 神師에게 수 하신 同一正嫡정적이니 汝等여등은 基信기신하라. (


    도교회 월보 제91, 1918,2,15 대도주승통기념일)

     

    이때 손병희는 박인호의 대도주 승통에 대하여 人天眞道統眞天眞神에게로, 진신은 진신에게로


    진신은 眞聖에게로,진성은 진현에게로, 진진상전하고 진진상수 하여 천하 후세의 신중을 확립한 제4일로


    經地緯천경지위 의


    度數變更변갱하고 山南水東의 방위는 移易 할지언정 此道는 변이치 못할것이나 大道主


    三世基日하면 去天稍遠초원 이라 ....라고 언명하였다. 혹 사람들이 구실 유훈에도 불구하


    고 승통문제는 손병희가 환원한 후 1920년대부터 교회가 신파로 분열되는 과정에서 항상 구실이 되어왔다


    이 무렵 박인호의 가회동 집은 손병희 집 동북쪽 언덕위에 있었다. 가족으로는 남인화 부인을 비롯해서 아들 


    박내홍, 자부 구인황,손녀 박이화 손자 의섭,조카 내철 질부 김철화, 조카 내원 질부 조덕자등 20여명에 달하


    였다. 박인호는 성품이 강직하여 한번 마음으로 정한 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굽힐줄을 모르고 그대로 밀고 


    나가 완성을 보았다. 손병희가 한번 명을 내리면 그 즉시 총부에서 실행을 하였으며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


    박인호의 일상사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같이 질서 정연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과 소세를 하고 주문


    을 묵송한후 7시에 조반을 하고 곧바로 손병희 집으로 가서 문후하였다. 손병희는 8시에 조반을 하였는데 이


    시간에 두 사람이 중요한 교회운영에 대해 논의 하였다. 손병희의 조반이 끝나면 박인호는 총부 장실로 출근


    하여 교회사를 처리하고 정오에 퇴근하였다. 오후 1시에 점심을 한후에 사랑채에 나가 내방 교인들을 접견하


    였는데 손에는 언제나 염주를 들었고 어떤 경우에도 눕거나 다리를 뻗는 일이 없었으며 오직 수도에만 정진 


    하였다. 1920년 이후 교회가 분열 되어 있을때에도 누가 신파 구파에 대해 비방을 하면 자기주장과 다르고 


    남을 비방하면 되겠는가? 그런 시간이 있으면 주문을 더 생각하라고 하여 어떤경우에도 남을 비방하는 일


    이 없었다. 어느날 손병희가 취운정에서 활을 쏘고 귀갓길에 가회동 박인호집에 잠시 들렀다가 박인호에게 


    도주장도 가끔 활이나 쏘러 다닙시다.” 하였다. 그러자 박인호가 대답하기를 저는 그동안에 주문이나 더 읽


    겠습니다하였다. 이에 손병희는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나으나 실천궁행하고 대도를 지키는 것은 춘암 도주가


    나보다 나으니라고 말하였다. 축성이 아무리 잘 되어도 수성을 하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다, 동학혁명이후 


    쑥대밭으로 변한 폐허위에 삼백만의 대교단을 축성한 것이 손병희라면, 그것을 수성한 것은 바로 박인호 였


    던 것이다. 의암 손병희와 춘암 박인호는 그렇듯 동시대에 살면서도 그 역할이 뚜렷하여 그 둘의 묘함으로 인


    하여 천도교의 초창기 전성시대를 구가 할수 있었던 것이다....







    ******

     

    언제부터 였을까?


    잘못 배워 잘못 가르치는 사람.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는 사람


    잘못은 먼저분들에게 있었고


    잘못된 교육에 쇄뇌당하여


    잘못 하고 있지나 않는지.

     

    천도교 교육기관에서도 교리 교사뿐 아니라


    천도교 역사와 올바른 교육이 전달되도록


    하고는 있는지 교육자분들이 깨닳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잘못 된 편엽한 교육자가 교육을 한다면 그 또한 1세기는 또다시 천도교가 흔들려야 함을 절실하게 깨닳고 


    교육을 시켜야 하리라.


    내가 어느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천도교창건사를 보신적이 있으시냐고 물으니 그분이 말씀하시길 불태


    워 보지 말자고 했던 것을 꺼집어내어 보고 글을 쓴다면 정도를 갈수 없어서 보시지 않으셨다는말을 듣고. 아 

    이러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천도교가 이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과연 천도교 교육 기관이나 교


    리교사를 교육시키시는 분들께서는 그 선생님처럼 보지말라한 책을 안보고 따르는분이 몇분이나 되실까 생


    각해 보았다. 천도교창건사를 보고 교육을 시킨다면 천도교의 악의 축이 될수 있겠것니와 후대 천도교인들


    을 망가트리는 사람이 될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반성하시길 바랄뿐이다..


    해서 지금이라도 올바른 천도교역사관을 아시라 올려 드리며 하루빨리 천도교가 올바로 갈수 있다면 그또한 

    스승님들의 성령이 감응하시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추전해드리니 꼭 읽어보시고 잘못 알고 계신다면 올바른 천도교를 하시길 ...


    천도교 민족운동의 새로운 이해,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 천도교약사 천도교중앙총부 교육편찬위원회,


    그리고 춘암상사댁 일지를 권장 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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