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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후 광복군 추모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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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임순화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558회   작성일Date 14-09-03 11:53

    본문

    *무후 광복군 추모제전*

     

    2014년 8월 30일 추석을 한주 남겨둔 마지막 토요일, 관내 우이동 광복군 합동묘소에서 무후선열(無後先烈) 추모제전이 있었다. 광복군 무후선열(無後先烈) 묘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인 광복군으로 중원 대륙에서 전사 순국한 애국선열 18위의 합동묘소로 1967년 광복군 동지회에서 친일파가 섞여 있을 수 있는 동작동 국립묘지 보다 전원 순수하게 광복 운동을 하신 3.1 운동 손병희 선생 이하 계신 이 장소에 조성하였다. 

     

    해방 후 상해 임정 귀국 시 광복군 전사자 유골을 모두 가져 왔으나 이분들은 친지도 후손도 사라져 한 봉분에 모시게 되었고 보훈처와 광복군동지회에서 8.15 광복절과 3.1절 기념일 등에는 추모제를 거행해 왔다.

     

    그러나 정작 후손이 없는 지라 추석과 구정에는 안타까운 점이 있어 2004년 당시 통일교육원에 근무하던 박갑수 교수가 친구, 아들, 생질 등을 데리고 등산 겸 주변을 청소하고 구정과 추석 기간에 간략하게 무후제를 지내다 2008년부터 흥사단(북부지회, 의정부지회) 단원들이 참여하고 2011년부터는 ‘풍덩 예술학교’도 찬동해서 이제는 강북구청장님도 참석할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커지게 되었다.

     

    이 묘소에는 1942년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한 분이 다섯 분인데 당시 내외각으로 일본군 40만에게 포위된 4천 여 명의 팔로군 사령부가 전멸의 위기에 처하자 광복군 제3지대가 포위망을 뚫고 깎아지른 절벽위의 진지에 지게로 보급품을 조달하여 항복을 토론하는 시기에 포위망을 탈출할 수 있었다.

     

    1949년 자금성에 오성기가 올라 갈 때 모택동은 저 오성기 다섯 개의 별 중에는 조선인의 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 감회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시 동북 3성에 남아 있든 그 역전의 조선인 항일투사들이 남침의 선봉이 되어 소멸되었고 그 후 대륙회복은 커녕 조선인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했으니 이 가슴 아픈 역사를 어디에 하소할 것인가?

     

    일제가 김구 선생 보다 더 무서워했든 광복군 제3지대장 김원봉 장군은 광복 후 귀국하였으나 친일경찰 노덕술의 고문에 월북하여 북에서조차 버림받고 옥중에서 자결했다. 비교하건 데 독일, 일본처럼 “패전국”은 쉽게 일어났으나 조선은 “패망국”으로 새로 바로 세워야 할 게 적지 않다. 이제라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부정, 부패에 얼룩진 우리 사회의 정의와 기강을 바로 세워야 광복군 선열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 단군할아버님! 저희들의 간절한 호소를 굽어 살피시고 생명학대와 부정부패를 벗어나 영광스런 대한민국이 되도록 깊이 음우하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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