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무치(이자현 정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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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指鹿爲馬(지록위마)"
指鹿爲馬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얼토당토않은 것을 우겨서 남을 속이려 할 때 쓰는 말입니다. 또 윗사람을 속이고 권세를 휘두르는 자들을 비판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진시황(秦始皇) 사후, 환관 조고(趙高)는 진시황의 어리석은 아들 호해를 이용해 승상 이사를 비롯한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조정 중신들을 죽이고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이 때 조고는 아예 자신이 황제가 될 속셈을 품고 조정 신료들이 자신을 따를지 살피기 위해 어느 날 사슴을 가져와 호해황 앞에 바치고는 말을 바친다고 말했습니다.
영문을 몰랐던 황제 호해는 웃으면서 '승상이 잘못 아시는구려' 어찌 사슴을 보고 말이라 한단 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조고가 뒤를 돌아 조정 신료들의 반응을 살펴본 바, 말이라고 하는 쪽에 수긍하는 신료들도 있었고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생각하는 신료들도 있었으며, 아예 조용히 있었던 신하도 있었습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생각하는 쪽의 신료들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나중에 그들에게 오만 죄를 뒤집어 씌워 처형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록위마'사건이 진시황(BC 259~BC 210) 시대도 아니고 21세기 이 시대에 재현되어 현 정국이 혼란스러워 지고 있습니다. 몇일전, 9월 12일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판결'을 두고 같은 현직 판사인 김동진 부장판사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사망했다>며 지록위마의 판결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 全文을 양키타임스의 리차드가 보도한 기사를 보내와 요약해 보았습니다.
"판사와 검사의 책무는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은 정권은 때때로 힘에 의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추구한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국가의 핵심기능을 좌지우지하고,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마음 내키는 대로 통치를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아무리 다수결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헌법정신의 중심 축인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유린하는 것이다.
헌법이 판사와 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서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하라"고 하는 준엄한 책무를 양 어깨에 지워준 것은, 판사와 검사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지 아니한 채 묵묵히 '정의실현(正義實現)'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전제돼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판사와 검사에게 '신뢰(信賴)'를 부여한다면, 법조인들은 그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법관들의 심연(深淵)에 있는 출세욕, 재물욕, 공명심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심(私心)을 버려야 할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2013년 9월부터 올해의 이 순간까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정권은 '법치정치'가 아니라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한 소수의 양심적인 검사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관하여 의연하게 꿋꿋한 수사를 진행하였던 전임 검찰총장은 사생활의 스캔들이 꼬투리가 되어 박근헤정권에 의하여 축출되었다.
2013년 9월부터 10월까지 검사들을 비롯한 모든 법조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밝히려고 했던 검사들은 모두 쫓겨났고, 오히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덮으려는 입장의 공안부 소속 검사들이 국정원 댓글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이 한 편의 '쇼(show)'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언론은 이런 상황을 옹호하면서 나팔수 역할을 하였다. 세계가 바라본 2013년의 가을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기 시작한 암울한 시기였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다. 당연히 구조됐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어갔다. 인명구조를 담당한 해경의 대응에 직무유기적인 형사책임의 요소가 있었으므로, 마땅히 그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언론보도가 이루어져야 했고, 또한 검찰이 선장과 선원 등을 수사함에 있어서도 해경의 구조 담당자들을 아울러 수사 했어야 했다.
그런데 법치주의 정신에 입각해 보면 당연히 진행돼어야 할 이러한 과정들이 권력에 의하여 차단이 되었고, 국민들은 현 정권이 뭔가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을 품은 가운데 사태가 커지는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 보궐선거에서 현 정권이 승리하면서 이런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아직도 민간기구(특별조사위원회)에게 수사권과 공소권을 달라고 요구하고있으며, 유가족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9월11일 국정원 댓글 판결을 선고하였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개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개입'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공직선거에 관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위법적인 개입행위에 관하여 말로는 엄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동기참작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슬쩍 집행유예로 끝내 버렸다.
그 어이 없는 판결문은 204쪽에 걸친 장문(長文)인데, 주로 개별적인 증거들의 취사선택에 관하여 장황하게 적혀 있고, 행위책임을 강조한다는 원론적인 선언이 군데군데 눈에 띄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선거개입'의 목적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공직선거법위반죄를 무죄로 선고하였다."
이 판결문 내용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1) 2012년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인데, 원세훈 국정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데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이라는 것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가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궤변(詭辯)이다!
(2) 판결문의 표현을 떠나서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독백을 할 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까?『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니...
(3) 재판장은 판결의 결론을 왜 이렇게 내렸을까? 국정원법위반죄가 유죄임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으니, 실질적인 처벌은 없는 셈이였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에 국정원장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리고 국가적 범법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 것인가? 이 판결은 ‘정의(正意)’를 위한 판결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사심(私心)'이 내재한 판결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법부가 자행한 이러한 불의에 대해 국민은 주권재민의 정신으로 결코 좌시만을 하지않을 것이다.
2014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판결은『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선거에 대하여 불법적인 개입 행위는 객관적으로 낱낱이 밝혀졌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自明)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담당 재판부가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 담당 재판부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는 괘변으로 국민을 기만 한 것이다.
논어(論語)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신뢰가 없는 곳에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판사로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몰락을 방관 해서는 안되다고 생각한다.법치주의 수호는 판사에게 주어진 헌법상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김동진 부장판사의 행동하는 양심의 소리는, 사슴을 사슴이라고 외친 김판사의 의기(義氣)의 용기 있는 결단의 주장인바, 이러한 판사가 건재하고 있으므로 국시를 자유민주주의로 하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堡壘)임을 확인시켜준 쾌거라고 확신 합니다. 이제 국민이답 해야합니다.
김동진 판사의 용기 있는 결단에 경의를 표하며 건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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