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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소문공원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께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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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임순화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434회   작성일Date 15-01-24 15: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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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소문 역사공원 만들기에 대해서

    re: 황사영 백서 사건 황사영은 순교자인가? 반역자인가?

    *조회수 9,099 추천수 19 답변 5

    황사영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보고 있는데 한국 기독교 학자들의 저서나 논문은 대부분 신앙을 지키기 위한 거룩한 순교로 표현하고 있더군요.

    미국의 학국학 학자 브르스 커밍스의 저서를 보면 황사영의 행동은 "religous insanity"(종교적 광기)라고 표현 되어있고 많은 역사학자 논문에도 순교가 아닌 조국과 민족을 멸족하려한 반역행위라고 평하고 있습니다.유일하게 옹호하는 논문이나 책, 언론은 신학계 역사학자들과 기독교도입니다. 만약 황사영의 바람대로 교황이 5만의 병사를 보내 성경 교리대로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는 성노예로 삼았다면 현재 우리는 이와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인디언과 같이 백인들이 지정해 주는 구역에서 그들의 돈벌이 수단 즉 노예 문화재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기독교인들이 황사영 백서를 로마에서 구걸해와 순교박물관에서 전시하고 믿음을 자랑하면서 홍보하는데.... 국가가 먼저 입니까? 야훼가 먼저 입니까? 야훼의 법이 먼저입니까? 황사영은 국가를 반역하고 외세에 자신의 동족을 멸족시키거나 중국이 점령하기를 교황에게 엎드려 빌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어떤 이유가 계기가 돼서 기독교를 탄압한다고 가정합시다.그때 가톨릭 신자가 교황에게 한국의 병력 상황등 기밀과 유럽점령군이 한국 멸족에 필요한 병력 무기를 상세히 적어서 교황에게 보낸다면 이건 국가 반역죄 입니까? 아니면 종교적 신념을 위한 행위 입니까? 현대 사회에서도 반역죄 내란죄는 사형에 처합니다.만약 사형이 집행된다면 이는 순교입니까? 반역자에 대한 법의 응징입니까?그리고 가톨릭 교황은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명령에 따라(추축국 일본의 요청)우상숭배를 허락했는데... 무솔리니가 야훼보다 전지전능합니까?

    교황에 말에 순종하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만약 교황이 다시 제사 하지 마라 명하면 따를 의향이 있습니까?

    *저도 동감입니다.

    우리나라 많은 기독교인들은 종교를 역사와 별개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사실 종교란 것이 역사적 전개와 무관하지 않잖습니까. 물론 한면만 보면 이런 행동은 순수한 믿음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여러면(역사등)을 통해 보면 지극히 편협되고 근시안적인 시각을 통한 믿음입니다.황서영 뿐 아니라 김대건 신부도 무조건 좋은 쪽으로 바라보고 다른 한쪽(그당시 조선정부)은 무조건 박해했다는 나쁜 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대건신부가 프랑스 식민지인 마카오에서 신학교육을 받았고 중국으로 들어갈때 타고온 것이 프랑스 해군군함이었습니다.즉 김대건 신부의 순수한 믿음은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국가의 도우미가 되었다는 그 이면이 숨겨져 있었고 그 사실을 김대건신부는 역사적 인식이 부족해서 몰랐던 것이구요.이전부터 기독교는 종교와 정치를 함께 해왔기에 투쟁과 침략의 역사였습니다.이것은 프랑스의 제국주의 침략의 제일 앞에는 천주교와 천주교 신부가 있었고 멋진 식민지 첨병자로서의 역할(종교자로서 정치적 보호를 받고 약소국 나라의 정보를 빼내오는 역할을 했고 제국정부는 식민지 나라에 천주교가 퍼지게 할수 있도록 물적.인적지원을 해줌)을 했던 것이고 황서영사건도 그렇고 김대건신부의 행동도 그렇고 순수한 믿음을 근거로 하였지만 한편으로 식민지 첨병자인 서양 천주교신부들의 도우미가 되었다는 이면도 냉철히 바라봐야 할것입니다. 그당시 조선정부는 천주교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이 아니라 무자비한 식민지정책을 부르짖은 서양세력과 그 앞잡이였던 세력의 모습도 제대로 모르고 오히려 옹호하고 그 힘을 빌리고자 했던 우리나라 그당시 천주교인들의 행동들에 반감등으로 이것이 천주교박해로 이어졌던 것이죠. 제가 생각하고 있는 종교관은 종교와 역사는 분리될 수 없고 함께 투시해야 하며 그래야 애초 불교.기독교란 종교가 탄생하기전 붓다.예수의 진실된 가르침이 보인다 ..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황심에게 적용된 죄명은 모역동참죄(謀逆同參罪)였으며, 김한빈은 지정은장죄(知情隱藏罪)가 적용되었다. 그리고 115() 이사건의 중심인물인 황사영은 궁흉극악 대역부도죄(窮凶極惡大逆不道罪)로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되었다. 또한 김귀동 및 그 밖의 관계자와 가족들이 처벌됨으로써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한편, 조선 조정에서는 180110()파견된 동지사에게 천주교 탄압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진주사(陳奏使)의 임무도 부여해주었다. 이때 파견된 진주사 조윤대(曺允大)일행은 토사주문(討邪奏文)과 함께 <황사영 백서>의 내용을 16923자로 축소하여 청국의 예부(禮部)에 보고하였다. 이 축소본을 흔히 <가백서>(假帛書)라 부르고 있다. 가백서에는 청국의 조선 감호책(監護策)이나 종주권(宗主權) 발동 등에 관한 내용은 완전 삭제시켰으며, 서양선박의 요청사실과, 월경통신(越境通信) 등의 사실을 이조흉계(二條凶計)로 지적하였다. <황사영 백서>가 발각된 이후 청국인 주문모 신부의 처형 사실이 청국에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조정에서는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 조선정부는 진주사를 파견하여 신유박해 전반에 관한 청국의 이해를 촉구하고, 주문모 신부의 처형에 따를 수 있는 청국측의 반발을 예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진주사 조윤대의 파견<황사영 백서> 사건을 외교적 측면에서도 마무리짓는 것이었다.

    남연군 묘 도굴사건

    그당시는 미국이 조선과 통상 수교를 하려다 거절당하자. 중국 상하이를 근거로 활동하는 유태계 독일 상인인 오페르트를 시켜 1868, 남연군(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을 말합니다. '남연군 묘 도굴 사건' 혹은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라고한다.

     

     

    *위의 글 들은 인터넷상에 떠있는 대다수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의 공통된생각이다.

    구태어 이 글을 인용함은 지금부터 펼치고자 하는 본인의 의견이 편협된 본인만의 생각이 아니고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함이며 위 글을 쓰신 논자에게는 허락없이 님의 글을 인용함을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님역시 아래 본인의 글을 읽으시면 깊이 공감하시고 님의 글을 인용한점에 대해

    기꺼이 양해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인용 하였습을 고백합니다.

     

    *새남터 조선조 500년동안 극심한 신분차별 국정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려 백성을 가혹하게 핍박했던 정부에 항의하여 민중의 삶의질을 향상시키려 꽤하였던 반항운동 그러나 그  명분이 어디에 있었고 그 중심의 인물들이 누구였건 그들은 모두다 그 당시의 잣대로는 패역무도한 범죄자였기에 참형. 능지처사등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참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빼앗겼다.

     

    홍길동. 허균.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 임오군란 때 전사한 몰락 국가의 군인들 동학혁명의 영웅들(당시 괴수) 그분들의 애국애족의 혼이 서려있는 오늘의 서소문공원 그곳을 서울시25개 구가 서울시의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하여 역사공원으로 만들 계획으로 국고 518억을 투입하여 그곳을 관광특화지역으로 조성하여 장차 외국인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계획이라고한다.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사업을 위한 투자는 참으로 바람직한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울시와 중구청은 이 사업에 있어 장차 국가적으로 망신스럽기 짝이 없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조성 관광의 핵심 요소로 삼으려 하고있으니 생각있는 모든 애국 시민들의 반대 의견 또한 만만치않다.

     이 사업이 완성될 경우 나라의 망신이라는 그 첫째 이유를 제시하고져 한다.

    이 사업에 있어 천주교 관련 사업만 빼고 한다면 국가적 망신일 일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봉건잔재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참으로 백성이 주인이되는 인권이 존중받는 선진국가가 된 것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일이니 자랑스러운 사업이다.

    그러나 이곳이 천주교 성지에 많은 비중을 두고 조성됨으로서 우리스스로 아직도 일제의 식민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독립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일이며 특히나 일본의 극우파들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하는 행위이니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관광수입을 목적으로 가난했던 7--8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국책사업으로 벌렸던 매매춘 관광이 사업에는 최고권자를 필두로 정부의고위층 재계의 거물들 고급공무원들 그리고 일본의 싸구려 관광객들이 벼개동서가 되어 외화 획득이라는 이름으로 권장하던 사업이다.

     

    서소문 역사공원 조성사업 (내용은 천주교 순교지 성역화) 역시 이와 유사하다고 말할수있으니 그 이유는 다음과같다.

    천주교는 오늘날 세계를 그들의 손안에 쥐고 있다.

    사랑의 종교라는 천주교를 비롯한 중동 지방을비롯 서양에 근거지를 둔 모든 종교들은 선교라는 목적으로 많은 제3세계국가들에 침투하여 그들 조국의 침략정책의 첨병노릇을 하였고 약소민족 국가구성원들의 생명을 무자비 하게 학살 하였고 그들이 선교하는 나라의 모든 고유의 신앙과 풍속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말살하였고 그들이 침략한 나라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나라로 데려가 피침략국보다 나은 생활환경을 조성해 그들의 육신은 안락하나 그들의 고유의 민족성을 마비시켜 그들스스로 자신의 조국을 열등하다고 여기게하는 얼빠진 사람으로만들어 그들 국가의 지도자로 만들어 결국 피침략국가의 민족을 그들의 노예 민족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종교를 앞세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소국 침탈 행위였다.

    조선에서도 역시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신앙의 자유 그리고 죽으면 보장되는 천국이라는 댓가 그것이 있었기에 그들이 기꺼이 순교한것이지 나라와 백성 내가 죽드더라도 이잘못된 제도가 고쳐져 내 후손이라도 잘살게 되는 평등 세상을 위하여 순교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위의 논자가 말한 황사영 백서사건이며 그들의 생각이 오늘날도 한치의 변화가 없음이 인정되는 증거가 바로 황사영 백서를 성물이라 하며 배론성지에 정중히 보관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일제 36년동안 이 땅 삼천리 강산이 짖 밟히고 2000만 민중이 도륙될 때 천주교는 무엇을 하였는가?

    물어보자!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이 땅의 많은 지식인 독립운동가들이 기독교나 천주교에 귀의하였다. 피식민지 백성으로서 옴치고 뛸수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총독부가 인정한 것이 종교의 자유였다. 그 종교의 자유도 가스라--테프트 조약으로 맺어진 미국과의 필립핀과 조선 나누어 먹기 작전에 대한 동맹국으로서의 의리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서구열강의 선호종교인 기독교와 천주교의 선교활동을 묵인해 주기 위한 술책으로서의 종교의자유 그러나 피식민지 백성으로 독립운동이라는 사명을 완수키위하여 그들의 몸을 일시나마 숨겨주고 보장해줄 장막이 필요했다. 또한 물질적으로 앞선 그들의 선진 문명을 받아드려 조국광복에 보탬이 될가 해서 일찍이 동학의 사인여천사상 보국안민사상에 공감하여 동학운동에 참여하셨던 안중근. 김구 선생님 같은 분들이 천주교로 개종하셨다. 그래서 많은 우국지사들이 천주교에 귀의 하셨다.

    그런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 처단하시고 여순감옥에 같혀 이제 사형의 날만을 기다리실 때 마지막 임종의미사를 올려달라는 의사님의 요청을 뮈텔주교의 불허로 빌헤름 신부는 들어주지 못했다. 인간적으로 괴로웠던 빌헤름 신부는 드디어 안중근의사의 임종미사를 집전해주었다. 이에 로마교황청은 빌헤를 신부를 파직하고 신부의 지위를 박탈하고 본국 프랑스로 불러들여 4년간이나 직을 수여하지 않았다. 신부가 직위를 박탈당하고 실의에 차있을 때 뮈텔은 빌헤름 에게 조건부 직위 부여를 한다.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조사 보고 한다는 조건으로 안중근 의사의 동생. 변장의 명수 신출귀몰의 달인 안공근이 신의주역에서 체포된 것 그것은 안중근 의사의 순진한 아들을 빌헤를 신부가 꼬여 안공근의 변장과 일정을 미리 알아내고 일경에 제보해 잡힌 것이다.

     뿐만아니라 안중근의사께서 빌헤름 신부에게 조선에 대학을 세워달라고 하자 지식이 많아지면 신앙심이 약해진다고 거절하였다.

    이 말은 조선인의 복리나 자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로지 말 잘 듣는 순한 양 같은 종교식민지 신도만이 필요했다는 명백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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