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녹두장군 죽인 저들(서소문공원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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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 녹두장군 죽인 저들
기사입력 2015.04.22 오후 9:09최종수정 2015.04.22 오후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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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한 얼굴. 정채 있는 미목. 엄정한 기상.
평지돌출로 일어서서 민중운동을 대규모로 대창작한 사람.
컴컴한 시대 민중의 선구자 되어 세상을 진동시킨 사람.”
감옥에 갇힌 전봉준을 가까이 지켜본 조선왕조 관리가 남긴 증언이다.
체포될 때 살인적 몰매에 더해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는데도
눈빛은 형형했다. 바로 그이에게 썩어 문드러진 조선왕조는
옹근 120년 전 오늘 사형을 선고했다. 다음날인 4월24일 새벽 2시,
녹두는 처형당했다.
전봉준을 죽인 자, 누구인가. 밀고자부터 재판관까지 따따부따할 수 있겠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말할 나위 없다. 조선왕조 국왕 이재황과 왕비 민자영이다.
누가 죽였는가를 새삼 묻는 까닭은 그날의 썩은 구린내가 지금도 코를 찌르며
대한민국 가득 진동하고 있어서다. 보라, 1년 전만 하더라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던 성완종이 자살로
증언한 검은돈 수수자들의 면면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과
김기춘에게 준 돈은 구체적 액수까지 적혔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조직총괄본부장 홍문종도,
무상급식을 뒤엎고 저야말로 국가지도자인 듯 행세하던 경남도지사 홍준표도
억 단위 ‘명단’에 올랐다.
고인이 남긴 명단에는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고 곧장 대통령 비서실장에 앉은
이병기 이름도 들어 있다. 물론, 구질구질 버티다 총리에서 물러난 이완구처럼
‘성완종 명단’을 폄훼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황 증거가 곰비임비 드러나고 있잖은가.
120년 전 사월, 사형당한 녹두가 분연히 일어선 가장 큰 이유가 권력 부패였다.
‘제폭구민’은 당시 민중의 고통을 모르쇠하고 제 이익만 챙기던 부라퀴들을
정조준한 말이다. 예나 제나 부패 뿌리는 정경유착이다.
녹두가 나섰을 때 저들의 탐욕이 토지에 기초했다면, 오늘날은 자본에 터한다.
자본의 탐욕과 부정 또한 녹두시대처럼 폭력적이다.
골목상권에까지 문어발 뻗는 대기업, 헌법에 명문화된 노동3권을 유린하며
‘
무노조 경영’을 자랑하는 자본, 노동자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거나
제멋대로 여객기를 회항시키는 재벌 후손들,
정리해고를 대량으로 저지르는 저들의 작태는
제폭구민의 현재적 의미를 실감케 해준다.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는 썩은 나라 바로 세우자고 일어난 민중을 학살하려다가
실패하자 외세까지 끌어들였다.
굳이 미제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우금티에서 농민군을 대량 학살한 사실을 적시하는 이유는
부패를 저지른 자들 앞에 착각은 금물이어서다.
성완종이 죽음으로 증언한 ‘권력 부패’도 마찬가지다.
그 실체적 진실이 과연 온전히 드러나겠는가.그래서다,
우리가 오래 망각해온 녹두의 120주기 앞에
새삼 옷깃 여미는 까닭은. 기실 우리는 녹두가 어디 묻혔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뒤, 정읍에서 녹두 무덤으로 보이는 뫼가 발견되었어도
무심하다. 수풀에 파묻혔던 비석에 ‘장군 천안전공지묘’ 여덟 글자가 새겨 있다.
묘비에 ‘장군’ 외의 관직을 쓰지 않고, 후손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70대 마을 주민은 어렸을 때 녹두장군 묘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정읍에서 민중운동을 벌여온 유쾌한 작당인 정읍’의 김영진 운영위원장과
향토사학자들은 무덤이 혁명 중에 녹두가족이 살던 마을 옆이고,
장군의 부하가 시신을 수습해 묻었다는 마을과 같다는 점에서
녹두 뫼일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무덤이 발견된 지 2년이 넘도록 정읍시, 전라북도, 중앙정부
누구도 확인에 나서지 않고 있다.
물론, 녹두 무덤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뜻만 있다면 확인할 수 있다.
큰돈 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모르쇠 하는 까닭은
녹두 무덤이 부담스러워서일까.
오늘을 살아가는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인, 청년실업자,
세월호 유족을 대하듯, 저들이 처형한 녹두를 지금도 하찮게 여겨서는 혹 아닐까.
무덤을 확인하는 일
은 단순한 진위 파악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망각의 세계로 묻어버린 민중운동의 영혼을 되찾는 과정이다.
120년 전 처형당한 전봉준. 언제쯤일까,
녹두장군 영전에 권력 부패 청산을 고할 그날은..........
<손석춘 |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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