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들이통문 2022-010호가 발행되었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모시는사람들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397회 작성일Date 22-12-01 13:45 본문 2022·010호 / 2022년 11월 30일 발행 모들칼럼 12■'줍깅' 속의 작은 깨달음 / 궁희예 … 이러한 작은 ‘줍깅’을 통해 나 스스로의 마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매일 살면서 생기는 쓰레기들과 자꾸만 버려지는 길 위의 쓰레기들… 더 적극적으로 쓰레기를 줄여보거나, 길에 나가 주워보지 않고,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선입견에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행동을 실천하니 달라지는 것이 몇 가지 생겼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움트고 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는 별 관심 없이 다니던 길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생긴 것이 기특하다. … 지난 칼럼 모들칼럼 01 빛과 어둠, 삶과 휴식 / 라명재모들칼럼 02 문명개벽을 꿈꾼 한국의 스승, 의암 손병희 / 김용휘모들칼럼 03 별을 보러 갑시다 / 신채원모들칼럼 04 조선에서의 위자보드와 분신사바 / 박병훈모들칼럼 05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김세종모들칼럼 06 존중하며 어우러지다 / 궁희예모들칼럼 07 살림의 정치, 살림의 경제를 위하여 / 김용휘모들칼럼 08 지도에 없는 섬 / 신채원모들칼럼 09 하생(何生), 점 보러 가다 / 박병훈모들칼럼 10 『인류세의 철학』 / 소경희모들칼럼 11 좋은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 김세종 동경대전 강좌 10■우형又形 – 또 다른 세상의 시작 / 강주영 … 수운의 신은 생성의 사건에서 등장한다. 졸래졸래 만물의 배후에 숨어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거나 명령하는 신이 아니다.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것이 그럴까’ 하는 물음에 감응하여 나타나는 신이다. (豈其然之疑기기연지의 - 「포덕문」 5절) 만물이 자기 생명활동하면서 생성할 때에 감응하는 신이다. 「논학문」의 ‘無事不涉 無事不命무사불섭 무사불명’은 신의 간섭이나 명령이 아니라 만물의 생성에 함께 한다는 뜻일 터이다. 내유신령이란 수심정기하는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에 원초적으로 있다. 이것이 동학 신의 위대함이다. 「포덕문」의 6절 문장은 이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 지난 강좌 동경대전강좌 01 장엄한 서사의 시작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2 시간은 어디로 가나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3 사건을 내는 천주조화지적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4 우부우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5 동학주문과 김지하의 생명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6 동학의 21자 주문과 현대과학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7 무궁한 자기생성의 무위이화 함이 있어 그럴 만하니 그렇다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8 또 다른 문명이 있어야 한다 / 강주영동경대전강좌 09 근대에 대한 근원적 비판 / 강주영 목록 이전글대교당 역사문화해설사 자원봉사 모집안내 22.12.02 다음글한국으로 결혼이민 온 귀한 분들에게 자기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분인지.. 22.11.30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