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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와 친일을 덮기 위해, 국정화를 위해 이용 당하는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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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831회   작성일Date 15-10-28 21:09

    본문

     

    이 글은 유관순 열사를 폄훼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다는 이유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통속에서

    죽어간 유관순 열사를 불순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3.1운동 하면 떠오르는 인물, 3.1운동의 아이콘으로 유관순 열사가 있습니다.

    1902년 출생하여 1920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도관의 폭행으로 인해 옥사했습니다.

    팩트만을 놓고 본다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산화한 여느 독립운동가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3.1운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루다 순국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됐을 유관순 열사는

    어느 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부각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각 된 이유는 유관순 열사가 가진 뜻과 반대되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유관순 열사는 해방이 되기 전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1947년 갑작스럽게 그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개신교와 일제부역자들의 숨겨진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승만은 개신교 독립운동가를 내세워 한국 내 개신교 확장을 노렸고

    이에 일제부역자였던 신봉조와 박인덕은 이화학당의 친일행적을 가려줄만한

    이화학당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내세우기로 하면서 이에 적합한 인물로 낙첨된 것이 유관순 열사였습니다.

     

    이것에 임팩트를 가하기 위해 당시에는 천주교계열 신문사였던 경향신문 1947년 2월 28일자에

    '순국의 처녀'라는 소설에 가까운 기사가 실리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실과 다른 이 기사는 유관순 열사의 전기를 비롯한 관련 된 서적이나 글들에 인용 됐습니다.

    단적으로 유관순 열사의 사인은 구타로 인한 방광파열 후유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화학당의 친구가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수습하여 왔을 때

    온 몸에 구타의 흔적과 몸이 부어있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경에 의해 시신이 6조각으로 자르고 나뉘어 석유통에 담겨졌다며 왜곡 됐고

    그것이 기정사실처럼 전해졌었습니다.

     

    그 후 유관순 열사는 졸지에 신이 내린 조선의 잔다르크가 됐습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사실인양 부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가 어떤 고문을 당하고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록도 없고 증인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랬더라", "저랬더라"하는 말들이 나왔고

    그것은 그대로 사실처럼 후대로 전해졌습니다.

     

    그 허무맹랑함이 오죽하면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없었다거나 동명이인이라는 설까지 나왔겠습니까.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실존인물이라는 것은 이화학당 친구와 스코필드 박사의 면회기록에서 찾을 수 있어

     실존인물에 대한 의문이나 동명이인에 관련된 것들을 일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개신교 전파에 앞장선 이승만과 친일행적을 감추려는 이화학당쪽 인물에 의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부각된 유관순 열사는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건너며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붙어

     신화적인 인물이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3.1운동의 아이콘이 된 것입니다.

     

    과연 유관순 열사는 이렇게 왜곡된 자신의 모습을 알았다면 무척 절망했을 것입니다.

    특히 일제에 부역한 자들이 자신들의 반민족행위를 덮기 위해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안다면

    절망을 넘어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유관순 열사로 인해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유관순 열사가 누락 됐다는 이유입니다.

    2개 교과서에서 누락이 됐고 나머지 역사교과서에는 간단히 서술하고 넘어갔다며

    이것은 좌편향적인 교과서라 국정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제부역행위에 대한 부분과 독재에 대한 비판을 두고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논리가 딸리니

    3.1운동의 아이콘인 유관순 열사를 걸고 넘어간 것입니다. 이 역시나 유관순 열사의 뜻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일제로부터 나라의 해방을 원했던 유관순 열사를 일제부역행위를 미화하고 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유관순 열사에 대한 내용은 초, 중등 교과서에는 모두 실려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2종 만 서술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이미 초, 중등 교과서에서 다루었고 고등교과서에는 인물 보다는 역사적인 사건 중심으로 기술 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인물에 대해서 간략하게 서술하면서 2종의 교과서에는

    3.1운동에서는 단순히 참가자였고 이후 지역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대해서는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기에

    유관순 열사가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가 빠졌다고 잘못된 교과서라고 치부하는 것은 분명한 어불성설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애국열사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후대에 귀감이 되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종교적으로나 일제부역을 덮기위해,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면서

    그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논리로 유관순 열사를 들고 나온 것은

    상당히 치졸하고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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