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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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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136회   작성일Date 15-10-03 21:27

    본문

      그렇잖아 친정집도 아버님이 양아들을 들이고 복술(수운)이 태어난 그다음 해에 돌아가셨으므로 친정으로 되돌아갈 처지도 못된다. 그네는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양아들로 들인 낯선 동생(한상우)의 눈치가 보여 복받치는 슬픔을 토하며 통곡할 수도 없던 외로운 의식이 있었다. 형식상 출가외인이어서 돌아가신 아버님처럼 제상 위의 위패 꼴이 되었다는 출가인의식이 들어서였다. 이제 돌아갈 거처도 받아 줄 곳도 없다는 초조감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어린 자식을 데리고 홀로 삶을 새열어 나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데 의식이 미치면 두려움에 치를 떤다. 

      그네는 남을 배려하고 저를 억제하는 소심성이 심한 편이라 잔눈치로 자신을 살핀다. 거기다 독립형 인간이 아니라 신에 기대고 부모에 기대고 남편에 기대는 기대타입이다. 그래서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지면 다 팡개치고 신 쫓아 인연 없는 아득히 먼 곳의 신당에 가 신에 기대며 살고픈 맘이 인다. 그러면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자식들은 전 처의 자식이 되어 수모를 면치 않을까 하는 꼼수가 들어서다. 그래서 자식을 더 갖는 것은 죄를 더 보태는 거라 여겨져, 근암이 오는 날을 저어하면서도 기다리는 자신을 밉꺼리17)게 된다. 이 같은 자잘한 속다툼 속으로 빨려들어 속끓이다가 이도저도 귀찮아 숫제 덜컥 죽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언제나 머리는 반드르르하고 허리는 반듯하고 언행은 자차분해서 그림자처럼 고즈넉해 보인다. 그렇게 버티는 데도 한계는 있었다.

      마침내 그네는 재가녀란 자의식에 싸잡혀 ‘제꺼림·낮봄·부끄럼·죄의식·절망·근심·걱정·시름’의 수렁에 날로달로18) 더 빠져 든다. 버티는 의식도 지치고 까부라져 얼굴은 하얘지고 손발은 시리도록 차가워져가다가 가리사니19) 줄을 놓치고 만다. 끝내 맘껍질이 여린 그네는 수운이 6세가 되는 해에 절망의 허방에서 “왜 재가를 했노.”라는 흐리마리한 의식을 잃고, 넋은 칠성판을 타고 저승의 칠성계로 떠난 거다. 수운은 설핏 아침잠에서 깨어나 엄마 품에 손을 넣었는데 섬뜩하게 차서 엄마를 흔들어 보고 “엄마”라고 불러보았으나 반응이 없다. 수운은 슬며시 밖으로 나와 부엌일하는 형수에게 가서

      “엄마가 죽었나 봐.”라고 한다.


      그래서 세 살짜리 여동생은 세조와 함께 형수 품에서 자라고, 수운도 한발 뒤에서 형수를 따라다닌다. 수운은 차츰 딴 사람들 사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해서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다가 들어가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을어린이들을 따라 다니며, 집 앞을 흐르는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뒷산에도 따라가 큰 애들이 캔 칡뿌리를 씹으며 달착지근한 맛을 즐기곤 한다. 그런데 큰 애들이 걸핏하면 입을 비쭉 내밀고 “눈아 눈아 역적 눈아”라고 성가시게 지분거리며 들볶기도 하였는데 힘빼물고 대들어봤자 당해낼 수도 없고, 역성들어 줄 형도 없는지라 딴청부리며 그곳을 피하곤 했다. 그렇게 사촌형들이 자기를 업신여길 때도 그는 피하곤 했다. 그런데 빛을 받지 못한 가지가 시들어 옹이를 만들고 나무줄기를 단단하게 하듯이 그를 깔보고 없이봐서 이뤄진 마음 옹이들은 그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그러다가 7살, 10월 28일 생일 미역국을 먹자마자 어린이들이 모이는 동구나무께로 갔더니 심술궂은 큰애가 기다렸다는 듯이 “역적 눈아! 이리와.”라고 어굴한 불림을 또 당한다. ‘역적이라니!’ 마음옹이에서 불길이 솟아 이글거리는 눈빛이 되어 쏘아보며 바투 다가선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큰 애가 눈을 내리깔며 멋쩍게 주춤 물러서는 게 아닌가. 앙갚음을 했다싶은 그는 역시 자기 눈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인가보다 여기며 자신감을 얻은 그는 한 번 더 쏘아보고 봐준다는 듯이 돌아선다.

      그는 아버지가 계신 곳이 늘 궁금했는데 자신감을 얻어 마침내 찾아가볼 용기가 생겨 길을 떠난다. 벌써부터 아버님이 계신 곳이 어떤 골짜기인지, 거기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 궁금하였고, 뭘 공부하는지 궁금하였고, 그 산 너머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는 아버님이 산모퉁이를 에돌아가신 것까지는 틈틈이 봐와서 거기까지는 수월히 갔으나 막상 산모퉁이를 돌아가 보니 갈림길이 나타나고, 낯선 마을(용마마을)이 보이고 낯선 논길에다 낯선 산들이 나타나 더욱 호기심이 발한다. 그는 용마마을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냇둑을 따라 오르다가 마침내 계단논들이 사라지고 뙈기밭20)이 나타나고 나뭇길만이 눈에 들어오는 곳에 이른다. 그는 그 산길 따라 가면 아버님이 계신 곳이 나오리라 싶어 미끄러지며 넘어지며 내친걸음으로 험한 산길을 따라 타박타박 올라가다가 길이 가뭇없이 사라져, 길을 찾느라고 더 오르다가 길찬21) 산 가운데 갇히고 만다.

      그는 산등성 그늘에 가린 컴컴한 골짜기에 자기 혼자란 의식이 들자 섬뜩 두려운 마음이 스며들어 서둘러 내려온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 보니 무덤이 있어 거기에 기대어 피곤한 눈을 감았는데 몸이 서늘해져 눈을 뜬다. 열댓 발자국 거리의 소나무 밑에서 저를 쳐다보고 서있는 정떼기 엄마를 발견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다가가는데 엄마는 찔끔도 움찔거리지 않고 반기는 기색도 전혀 없는, 돌아가셨을 때의 흰 종이와 진배없는 낯선 얼굴, 싸늘한 그 얼굴이다. 파뜩 ‘엄마는 죽었다.’라는 두려운 마음이 번개처럼 스치면서 무섬증이 온 몸을 휘감아 엉겁결에 몸을 빙 돌려 산 밑으로 내려뛴다. 되게 넘어졌는데도 다시 일어나 내달려 땅거미에 덮인 들에 이르러보니 저를 부르는 형님 제환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 번도 저한테 불끈 화내어 본 적이 없는 형님이지만 백날 낯설게만 여겨지던 형님 목소리를 듣자 아버님보다도 더 아버지 같은 뜨끈한 감정이 울컥 솟더니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산을 오르내리고 미끄러지느라고 흰 바지저고리가 흙투성이가 된 수운을 본 제환은 왈칵 붙안고 한참 내려다보다가 들쳐 업고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이때의 형님 등골의 따끈한 정을 잊지 못해 형님을 어버이처럼 섬긴다. 수운이 혼자 용담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근암 귀에도 들어가서, 그는 그 뒤 아버님 근암과 함께 용담정에서 공부하다가 가끔 아버지를 따라 집에 온다. 

     

      17)밉꺼리다: 밉고 꺼리다.                                   18)날로달로: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19)가라사니: 사물을 가리어 헤아릴 실마리            20)뙈기밭: 조그마한 쪼가리밭

      21)길찬: 나무가 우거져 깊숙한.

         15, 10, 3  길로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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