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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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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235회   작성일Date 15-10-08 15:56

    본문

      불국사에 이르자 노인은 말을 거두고 마을로 내려갔다. 수운은 그 길로 불국사로 들어가 ‘산신각’ 속에 모셔진 산신과 그 앞에 쭈그려 앉은 호랑이를 유심히 본다. 웅장한 불교문화인 사찰 뒤편 그늘 진 곳에서 발견하는 조선의 내림문화인 산신각.

      수운은 그날 밤 풍류도의 원류인 산신각처럼 자기 삶의 뒤편에 잊혀져있던 외가를 되새겨본다. 그가 외가를 아는 것은 한실 앞에 있는 금척리이며, 외삼촌 성함이 한상우란 것 정도였다. 그는 내일은 외가에 가보기로 맘을 먹는다.

      외가인 금척리가 상구리나 한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들어 알아서 쉽게 금척리에 이르렀고, 외삼촌 집도 쉽게 찾았다. 양아들로 들어온 ‘한상우’란 외삼촌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엄마 등에 업혀 온 걸 봤다면서 눈자위를 붉히며 두 손을 부여잡는다. 외숙모도 ‘잘 컸구나’ 하면서 부러운 듯이 등판을 쓰다듬으며 이내 두 팔로 부둥켜안는다. 그들은 자식을 셋씩이나 낳았으나 홍역으로 모조리 잃는 애끊는 슬픔을 안고 쓸쓸히 사는 처지였다. 외삼촌은 수운에게 어머니에 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많이 둘려주셨는데 근암과 결혼하게 된 내력에 대한 것도 얘기해줬다. 그러면서 너는 신이 점지해 준 사람이라고 하였다. 수운은 어머니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를 듣자 어머니를 원망했던 마음이 사그라지는 걸 느낀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와 가깝게 지냈던 이웃 아주머니들도 한걸음에 달려와서 의젓한 수운 손을 잡아 주면서 금색 눈망울(홍채)과 오뚝한 코는 엄마의 본새34)이고, 됨됨이는 근암을 닮았다고 반가워한다. 수운은 외가에서 엄마의 정을 다시 느낀다. 이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온 어린이의 외로운 심정을 배려해서라고 여겨진다. 이 같이 남을 배려하는 게 참 도덕이다 싶다. 그는 그렇게 두남받던 외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길을 떠난다. 몸은 떠나지만 정은 떠날 수 없었는지 되돌아보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면서 간다. 그는 어머니가 자기를 업고 가고 왔을 길인 한실을 거쳐, 험한 산속의 께께고개를 넘어 상구리 하구리를 거쳐 가정리 집으로 하염없이 돌아온다.

      

      그는 아버님이나 선비들을 만나기가 거북스러워 공부하는 와룡암을 지나쳐 용담서사로 곧장 간다. 서가에서 책을 한권 꺼내들고 앉는다. 그가 펼친 책은 공자의 후학들이 ‘경서’와 공자의 말씀에서 ‘예’에 관한 것만 뽑아 만든 ‘예기(禮記)’이다. 그는 서두 ‘곡예(曲禮)’ 편을 펼쳤는데 소리 내 읽을 마음이 내키지 않아 눈 읽기를 시작한다. “곡예왈 무불경 엄약사 안정사 안민재(曲禮曰 母不敬 嚴若思 安定辭 安民哉, 곡예편에서 말했다.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사유하는 것처럼 엄숙히 하며, 말을 안정되게 하면 백성을 편안케 한다.)”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다(毋不敬)’는 말은 그렇게 꾸며내게 할 뿐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약자를 공경하기는커녕 배려도 하지 않는 거라 여긴다. 이런 글을 더 읽어야 하는가? 하다가 그는 속장을 여러 번 넘겨 이내 찾아낸다. 그건 ‘왕제(王制)’ 편의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상례는 죽은 자의 신분을 따르고, 제례는 산사람의 신분을 따른다. 지자(支者)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支者不祭).”란 구절이다. 지난해 이 구절을 배울 참에 복장이 뜨끔하여 못 본 척하고 넘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支者’란 글자를 다시 보자 ‘서자․재가녀 자식’이란 의미라고 선명히 떠오른다. 그는 너무 황당하여 얼굴이 달아올라서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책장을 덮어버린다. 제사 때 사촌형들한테 자존심을 할퀸 생채기의 딱지가 다시 덧난 듯 아파온다. 서자 같은 사람은 ‘제례’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요, 이는 ‘예’를 갖춰야할 인간도 못 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유학의 예(禮)가 2천 년이나 지나 조선의 ‘경국대전’에까지 그대로 전해진 걸 헤아려보니 ‘예’에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자’는 제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예’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권리가진자들이다. 그들은 서얼들을 남새밭 풀 속아내듯 뽑아내는 ‘예’를 만들어 내고 업신여기어왔다. 그렇게 백성들도 업신여겨왔다. 기존 도덕은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의(義)가 없는, 권리가진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의식이 든다. 의로운 도덕이란 환인의 가르침처럼 홍익인간(弘益人間)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는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계급화한 유학세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그는 소의 뒷덜미에 씌워진 멍에처럼 자신의 뒷덜미에도 씌워진 재가녀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인연 없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34)본새: 생김새

     

      15. 10. 8.  길로. 정경흥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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