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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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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274회   작성일Date 15-10-07 14:48

    본문

     2. 풍류도. 금강산. 무극대도.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


      딴 마음이 들기 시작한 수운은 남몰래 한숨지으며 헤아려본 끝에 14세 초여름에 이르러서는 근암에게 ‘경주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경국대전 예전(經國大典 禮典)’을 본 뒤 제도상 저는 근암 자식이 아닌 재가녀의 자식이란 의식이 깊어진 거다. 이제 재가녀 자식의 운명의 길을 찾아가야한다는 자각이 든 거다. 근암도 수운이 재가녀 자식임을 의식하면서 그 의식에 부대껴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싶어 안타까웠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밖으로 나돌 나이가 아니란 마음은 들었지만 일찌감치 다른 세상도 밟아보고 곧잡혀 학문의 길로 접어들기를 바라며 허락한다.

      그래서 수운은 답답한 용담골짜기를 벗어나 넓은 경주 황오리에 가서 산더미 같은 고분군들을 보고 이상하게 생긴 첨성대를 보고 반월성도 구경한다. 그리고 고목나무처럼 늙고 퇴색한 불국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아침나절엔 토함산에 올라가 석굴암을 보고 오기로 한다.

      그는 이튿날 일찍 출발하여 우람한 석굴암 속에서 미소 짓는 석불을 보고 ‘무엇이 즐거워 저리 미소 짓는담’ 하며 돌아서 내려오다가 떡갈나무의 넓적한 잎에 가린 왼쪽으로 난 샛길을 본다. 궁금해서 따라가 봤더니 소반만한 오돌토돌한 바위위에 풍채가 번듯하고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곧추앉아있다. 마치 허울 좋은 신선이 앉아 도 닦는 것 같아서 맘이 이끌려 발자국소리를 죽여 다가가서 눈 뜨시기를 지그시 기다린다. 허울 좋은 노인은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아 가만히 살펴보니 배가 서서히 불룩해지다가 서서히 홀쭉해지는 것이 보인다. 수운은 그 호흡에 따라 들숨에 배를 불룩해보고 날숨에 배를 홀쭉해보는데 숨이 막힐 것 같다. 노인의 호흡이 워낙 깊고 길어서 따라 하기가 벅차 숨이 끊기곤 한 거다. 그런데 노인 손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팔이 들리기 시작하고, 두 팔이 공중을 서서히 휘젓더니 엉덩이가 들리고 몸이 신명에 이끌린 듯 춤을 춘다. 수운의 두 팔도 들리어 학의 날개 짓처럼 공중을 휘저으며 너울거리기 시작한다. 한참 뒤에 춤을 그친 노인은 별스러운 눈빛을 가진 수운을 본다. 그리고 아버님이 누구이신가를 묻더니 근암 최옥의 아들이란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느냐? 신명에서 나오니라. 신명은 무위에서 나오고 무위는 고른 숨에서 나오고 고른 숨은 배호흡에서 나오니라. 배호흡의 시조는 단군이시니, ‘단군(檀君)30)’은 밝고 환한 임금이란 뜻이니라. 단군께서는 말년에 산에 들어가 배호흡을 하시어 신선이 되셨느니라. 배호흡은 생기를 마시고 탁기를 내어보내는 것이니라. 이 땅의 토박이 선조들은 생명의 신인 해님이 모든 식물과 동물의 첫 생명의 씨알을 빚어낸 거로 봤느니라. 그 첫 씨알에서 풀이 자라며 뿜되고 나무가 되고 동물이 되었다고 본 거니라. 그리고 뫼의 나무들의 이파리들이 빛을 받아 어내는 것이 맑은 생기임을 알았느니라. 그래서 산에 들어가 맑은 생기로써 배호흡을 하면 맑은 생기가 흐린 기운을 밀어내서 오래오래 사는 신선(神仙)이 된다고 본거니라. 이 같은 선도를 신라 십대임금 해왕 때의 ‘물계자’란 분이 도의(道義)와 수도(修道) 위주로 크게 일으키셨는데 이를 ‘풍류도’31)라 하셨느니라. 이 같은 선도인 풍류도가 신라에 자리매김하고 있어서 23대인 법흥왕 대에 이르러서야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수용되게 된 거니라. 이제 한 배호흡이 풍류도의 근본이니라.” 

      노인은 함지박만한 바위에 걸터앉으며 묻기를

      “‘삼국사기 진흥왕’ 편에 ‘풍류도’를 언급한 최치원 선생의 글이 실렸는데 아느냐 ?”라고 물어서 수운은 최치원이 먼 조상이 되어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어 “예”라고 하자 말을 잇는다.

      “거기에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풍류도>라 한다.’라는 글이 나오는데 그 글에서 중요한 용어가 ‘풍류․접화군생․무위․착함․충효’니라. 여기서 수행과 관계되는 말이 ‘풍류(風流)․접화군생(接化群生)․무위(無爲)’니라. <풍류>란 ‘신명나고 멋난 노래와 춤’을 이르는 말이요, <접화군생>은 초목이 빚은 맑은 생기에 접하여 화합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요, <무위>는 ‘심신이 고요의 경지에 이른 것’을 이르는 말이니, 이 같은 의미를 제대로 알고 수행해야 풍류도에 이르느니라. <풍류도>란 <배호흡>으로써 <접화군생>해서 <무위>에 이르러 멋의 노래와 춤으로 표현되는 도이니라. 이 풍류도의 기본이 배호흡이니 바위 위에 반듯하게 앉아 해 보거라.” 

      그래서 수운이 바위 위에 앉아 배호흡을 시작하니 노인은 곧추앉은 됨됨이를 보고 짐짓 놀란다. 아직 어려 보이는 녀석의 자세가 너무 버젓해서다. 그건 수운이 남에게 낮보이기 싫어서 아버지를 본뜨다보니 그리 된 거다. 노인은 ‘이제처럼 그렇게 허리를 곧게 펴고, 손끝을 살짝 포개고, 숨을 고르고 깊게 마시고 고르고 가늘게 내쉬라.’며 한낮이 지나 뒤낮까지 습하게 한다. 그러고 숨을 길고 느리게 쉬면 그만치 오래 살아 신선이 되는 거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노인은 자기도 불국사 밑 마을에 사니 같이 내려가자며 말을 잇는다.

      “물계자는 선가의 전통을 이어온 사람 중 한 분이었어. 선가의 사람들은 산에 가서 수련을 하거나 아예 산에 가서 숨어살거나 했어. 물계자는 육 척 장신에다 힘이 장사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세운 ‘산신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초가삼간을 짓고, 산속 분지를 까뭉개서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짓고, 매일 어슴푸레한 새벽에 가들막한 정안수를 떠서 산신에 올리고, 거문고와 칼춤을 추며 살았어. 밑에 마을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려 왔다가 아내가 되었어. 하루는 그 부인이 친정집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7척 거인이 종지만한 눈을 부라리며 밥 달라, 술 달라, 여자 달라고 위협을 하는데 죄다 무서워서 달라는 대로 준다는 거야. 물계자는 마을에 내려가 거인이 자는 방 앞에 가서 ‘이놈 나오너라’ 하고 버럭 소리쳤지. 곧 이어 방문이 나뭇가지 부러지듯이 내젖혀지더니, 거인이 거쿨진 몸을 굽히고 나와서는 종지만한 눈을 치뜨고 긴 팔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거야. 물계자는 춤추듯이 왼쪽 오른쪽으로 피하는 듯싶었는데, 거인이 ‘아이쿠’ 하고 뼈아픈 외마디 소리를 질렀는데 그의 오른쪽 팔이 축 늘어진 거야. 그래도 거인은 자기보다 외소해서 깔보고 다시 성한 왼 팔을 내두르며 내닫다가 또다시 ‘아이쿠’하고 무릎을 꿇으며 팍삭 주저앉는 거야. 그의 왼쪽 다리가 물계자의 번개 같은 발차기에 내질려 또 다시 치명상을 입은 거지. 그 자리에 꿇어앉은 거인은 고개를 떨어뜨리었지. 물계자는 타이르듯이 말했어 ‘다리는 꺾어지지 않았으니 걸을 수 있을 게다. 가서 착하게 살 거라.’ 거인은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하고 일어나 마을을 떠났지. 동리사람들은 몰려와서 물계자에게 고맙다고 절하는 사람, 원수를 갚아줘서 고맙다는 사람, 쌀과 닭을 지게에 지고와 놓고 가는 사람··· 모두 고마워했지. 그런데 물계자는 물자를 일체 받지 않고 되돌려 보냈어. 이런 소문이 이웃마을에 퍼지자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올곧은 젊은이들이 사뭇 많았어. 그래서 그는 배호흡을 해서 접화군생하고 무위에 이르는 법을 가르쳤지. 그리고 그는 말 했어 ‘무위에서 거문고도, 칼춤도, 태껸도 비롯되고 멈추는 거야.’라고.”

      노인은 잠시 뒤 다시 말을 잇는다.

       “내해왕 14년에 이르러 포상팔국(浦上8國)32)이 도모하여 가락국(김해)과 신라를 정벌하기 시작했어. 이에 물계자도 제자들과 함께 내해왕 태자의 부대에서 선봉이 되어 적을 물리쳤으나 논공행상에서 빠졌지. 그래서 제자들이 분개하므로 물계자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부모에 효도하는 것처럼 뭘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니라. 적을 물리친 것으로 족해야지 뭘 더 바라면 멋이 스러지느니라. 우리 도는 멋의 도이며 접화군생하는 도이며 무위에 이르는 도이니 오직 그건 ‘배호흡’에서 비롯한 것이니라. 자 모두 배호흡으로써 숨을 고르도록 하자.’ 하고 배호흡으로 무위에 이르러 무위의 춤과 노래를 부름으로써 터질 것 같은 울분과 맺힌 한을 삭히어 멋진 도인들이 되었지. 이 같은 물계자의 제자들이 키운 것이 ‘풍류도’로서 화랑도 얼과 김유신 장군 얼의 근간이 된 거야.”

      노인은 불국사가 가까워 오자 이야기의 소재를 ‘산신당’으로 돌린다.

      “불국사에 가거든 절 맨 뒤 산신각도 가 보거라. 원래 우리는 단군조선 이전부터 하날님을 믿어오다가, 단군이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시자 산에 산신각을 지어 모시면서 산신 신앙이 비롯되어 산골 마을마다 산치성을 드리게 된 거야. 물계자가 살던 곳 마을사람들도 산신각을 세우고 가을 추수가 마무리되면 산치성을 드렸지.  불교를 받아들인 스님들도 산신을 모셔왔으므로 절 뒤편에 산신각을 지은 거지. 그래서 절 뒤 그늘에 천더기33) 산신각으로 살아남은 거야.”

     

     30) 단군; 檀: 박달나무 단. 檀은 이두 음으로 ‘밝음’을 의미함.   /삼국사기 東川王편에 “平壤者 本 仙人王儉之宅也”라고, 단군을 仙人이라  칭했음. 선도는 동이족의 산악신앙에서 비롯된 것. ‘神仙’이란 말은 후한 때부터 쓰인다고 함. 길로 지음 ‘侍天人間’ 42쪽, 157쪽 참고

     31)풍류도: 범부 김정설(1897~1966)지음. 정음사 ‘풍류정신’ 참고. 작가 김동리 맏형

     32)포상팔국: 창령· 진해 등의 바닷가 제국.                33)천더기: 천데 받는 사람이나 물건

       

      15‧ 10‧ 7  길로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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