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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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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241회   작성일Date 15-11-08 21:56

    본문

     

     마음속에서 금강산 유점사는 수평선처럼 점점 더 아득히 멀어져만 갔는데 마침내 해지는 산그늘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눈물이 핑 돌며 앞을 가린다. 다리 마디가 저리다 못해 쑥쑥 쑤시고 아파서 주저앉고만 싶어 둘레를 돌라보니 몇 발자국 앞에 주춧돌만한 돌이 있어 절뚝거리며 다가가서 탈싹 주저앉는다. 어제는 산속에서 집을 못 찾고 지쳐서 그냥 한둔44)했는데 오늘부터는 한뎃잠을 면하게 됐으니 다행이다 싶다. 길옆 돌 위에 앉으니 이리도 한갓진데 길바닥은 찔레가시를 짓밟을 때처럼 그리도 아픔이었나를 헤아려본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몸이라 몸을 학대하며 걸은 길이어서 아픔의 길이 되었구나 싶다. 죽기로써 떼어놓은 셀 수 없이 많은 걸음걸음이 소름끼쳐 온다. 그는 궁금한 푸른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흙물·풀물·땀으로 흠씬 젖은 얼룩진 옷을 걸친 채 일어나 삭신이 쑤시는 몸을 이끌고 절 안으로 들어선다. 고즈넉한 절 안에 들어서니 일찍이 불국사에 머물며 겪어서인지 마치 낯익은 고향에 돌아온 듯 낯설지 않다.

      젊은 스님은 절뚝거리며 절 마당으로 들어서는 햇볕에 검게 그은 얼굴을 하고, 땀에 젖어 볼꼴사나운 옷을 걸친 수운을 보자, 멈칫타가 됨됨이를 보고 웅숭깊게 합장배례하고 나서

      “먼 데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라고 맞는다. 수운도 정중히 허릿절을 하고 언제나처럼 몸에 익어버린 어른스러운 말투로

      “경주 용담서사 최제선이라 합니다. 불도를 공부하고자 하오니 도와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대접을 한다. 수운의 말투는 어른스러우나 아직 어린 티의 상이라 스님은 깜짝 놀라며

      “그렇게 멀고 먼 아랫녘에서 여기까지 찾아주시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하고 다시 합장을 한다. 그러고 앞장서 고즈넉한 방으로 길잡이하고 여장을 풀라한다. 그래서 수운은 괴나리봇짐을 방에 내려놓고 절름거리며 샘물에 가서 멱감고 돌아와 진솔옷으로 사뜻하게 갈아입고 벌렁 누워 죽고 싶은 마음을 일게 했던 가래톳의 뭉우리를 만져보며 ‘왜 생겼을까’ 되새겨본다. 발가락이 거듭 부르트고 나서이므로 발덧과 연관 있을 거라 여겨진다. 모름지기 가래톳이 생긴 연유는 발가락의 물집이 터져도 무리해서 걸어서라 여겨진다. 그렇게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재가녀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작은 문제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큰 문제라 여겨진다.

      이 짬에 젊은 스님이 벼루와 책을 들고 들어온다. 일어나 앉은 수운 앞에 ‘반야심경찬(般若心經贊)’을 내밀며

      “이 책은 인도 불교경전들의 요점을 간추린 경입니다. 이를 당나라(618∼907) 현장이 새긴 것을 신라(BC57∼935) 원측스님이 법본(梵本)과 비교하며 주석을 단 것이 이 ‘반야심경찬’입니다. ‘반야심경’을 이처럼 낱낱이 해설한 책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책을 내밀며 “이 책은 ‘원각경(圓覺經)’이니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수운 앞에 내려놓는다. 그러고 저녁마다 들릴 것이니 그 짬에 의심나는 건 서로 공부하자며 합장하고 나간다. 수운은 ‘반야심경찬’을 펼쳐보는데 동자승이 저녁밥상을 들고 들어온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산보를 하려고 일어나는데 발가락 상처가 쐐기에 쏘일 때처럼 된통 아파서 털썩 주저앉는다. 이제야 여느 맘으로 돌아와 발 상처를 아픔으로 느낀다싶다. 그는 베개를 베고 자리에 누워 하늘을 본다. 어느새 밤하늘에 별들이 빤짝이기 시작해서 신비로워 혼이 이끌려간다 싶었는데 잠이 든 모양이다.

      그는 그 이튿날 깨어나자마자 ‘반야심경찬’을 다시 본다. 원측스님이 주석을 자세히 달아서 별도의 선생이 없이도 낯선 언어들도 혼자서 익혀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정리해갈 수 있었으니 ‘반야(般若)’는 ‘깨달음’을 의미하는 말이요, ‘파라밀다(波羅蜜多)’는 ‘열반인 피안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요, ‘오온(五蘊:色·受·想·行·識)’은 ‘물질(色)과 정신(受·想·行·識) 5가지를 의미하는 것이요, ‘개공(皆空)’은 물질과 정신이 ‘모두 다 공’이란 뜻이요, 따라서 물질과 정신도 공에서 비롯한 공허한 것이요, 허상에 불과한 것임을 강조하고 설명한 글이 ‘반야심경’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오온(五蘊)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식의 굴레에서 헤어나야한다는 거다. 그럼으로써 두려움에서 벗어나고[無有恐怖], 마음에 걸림이 없어서[心無駕碍], 현세의 고뇌에서 헤어나 깨달음의 피안 세계로 건너간다는 거다. 일상인 ‘오온’을 몰아서 공으로 돌려야[皆空] 일체의 고뇌를 제압한다[度一切苦厄]는 말씀은 그의 마음에 와 닿았다. 일상세계인 가정리, 용담서사를 벗어나 멀리 와보니 일체의 고뇌를 헤치고 나온 듯싶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공(空)을 익히는 것은 극심한 속세의 고뇌를 끊기 위한 방편이었구나 하는 속내가 의식으로 떠오른다. 아버지 자식이면 양반이 되고, 어머니 자식이면 제사도 못 지내고 수모를 겪어야하는 자신에게 출가는 마침맞은 방편이라 여겨진다. 그는 저녁끼니를 먹은 뒤에 듬직이 앉아 ‘오온개공(五蘊皆空)’이란 말을 염두에 두며 스님들이 불공들일 때 외우는 것처럼 소리 내여 ‘반야심경’을 외운다. ‘모두 공(皆空)이라 여기며 소리 내 외우니 잡념이 스러지고 탈속되는 것 같다. 마침 그 짬에 노스님이 들어오시므로 수운은 일어나 허릿절을 한다. 뒤에 따라온 젊은 스님이 주지스님이라고 소개한다. 수운이 다시 허릿절하니 노스님도 합장하고 허릿절한 뒤 가삼을 간종이어 앉고서 입을 뗀다.

      “깨달음 소리라 반가워 들어왔습니다. 뭘 깨달으셨는지요?” 노스님은 수운의 금색 눈망울(홍채) 속 동자를 의식하며 물었다. 수운은 남을 대할 때면 점잖은 품위와 목소리로 늘 하듯이 그렇게    

      “일체고액(一切苦厄)에서 헤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공(空)으로 떠남임을 알았지요. 그래서 흥에 겨워 반야심경을 외우는 중이었지요.”라고 마치 해탈한 도인처럼 말한다. 

      “고해에서 헤나 열반 언덕에 이르셨군요. 성불하십시오.”

      노스님이 맞장구를 치며 합장하고 일어나 나가니 젊은 스님도 합장하고 뒤따라 나간다. 공을 터득했다는 뿌듯함이 가슴에 벅차오른다. 흐뭇해진 수운은 벼루에 먹을 갈아 붓끝을 적셔 반야심경을 적어간다. 그리고 ‘반야·파라밀다’와 같은 중요한 용어들은 별도로 뽑아 원측 주석을 옮겨 적는다. 그리고 익히기 위해 이틀 간 반야심경을 외웠다.

      그 다음에 ‘원각경’을 읽었다. ‘반야심경’에서 공부한 용어들이 나와서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종이에 적어놓으며 읽었다. 그래서 저녁에 찾아온 젊은 스님에게 물어서 익히고는 다시 정리해보곤 했다. 스님은 강조하기를 불경은 외우고 익히는 데 있지 않고 깨우치는 데 있다한다. 수운은 ‘원각경’ 뜻을 ‘둥글게 깨달으라는 가르침’이라고 정리한다. 만유의 원소인 사대(四大=흙․물․불․바람)는 ‘공(空)’에서 비롯했으므로 허상이요, 이 같은 몸의 ‘눈·귀·코·혀·몸·뜻’ 역시 허상이란다. 이 같은 허상인 마음으로 인식한 만상도 역시 허상일 수밖에 없단다. 오직 참된 것은 심신의 근본이 되며 깨끗한 마음자리인 ‘청정각상(淸淨覺相)’ 뿐이라 한다. 미움과 사랑, 기쁨과 슬픔의 일원 자리인 ‘청정심’으로 깨닫는 것을 <둥글게 깨달음>이란다. 

      며칠 뒤 밤중에 스님이 대승불교 경전이라고 하면서 ‘화엄경’을 가져왔다. 그 이튿날 수운은 새벽에 배호흡을 마치고 ‘화엄경’을 읽는데 홀연히 ‘皆空’이란 글자가 떠오른다. 모두가 空이라는 것은 모두가 헛것이며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사는 것도 헛된 ‘공’이란 말 아닌가. 그렇게 보면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도 없다는 거다. 이처럼 모두 공으로 돌리는 건 모두 가치 없으니 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왜 절은 용궁처럼 짓는가. 헛소리라 여겨진다.

      풍류노인의 말씀처럼 생명의 신인 날님(해)이 자신의 빛으로 비춰서 풀과 꽃과 나무와 곡식의 씨알들을 낳았고 그 씨알에서 싹이 터 초목이 우거지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뒤 날님이 빛으로 모든 동물들의 알과 사람의 알을 빚어내 동물과 사람으로 태어나서 열매와 곡식을 먹고 살고 있다. 그리고 날님은 빛으로 신라의 첫 임금을 알로 빚어내어 알에서 태어나 신라를 세우고 다스리게 했다. 그렇다면 사람으로 태어나 살게 한 까닭도 있을 거라 여겨진다. 그는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을 알아서 그 까닭에 합하는 삶이 사람으로 태어난 도리라 여긴다. 그는 사람으로 태어난 도리로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먼저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을 알아야한다는 맘이 든다. 모든 걸 공(空)으로 돌려버리는 불도보다는, 질서지향인 무극태극이 만물로 화생한 걸로 보는 유학에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이 숨겨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 같은 무극태극을 격물치지(格物致知)45)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을 알게 되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그는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로 돌아가 유학의 도학공부를 해야겠다로 마음의 가닥을 잡는다. 도학은 만물의 근원을 무극태극으로 보는데 그 무극태극에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이 숨겨 있으리라 여겨져서이다. 

      그는 온 김에 불서들을 더 보고 갈 요량으로 방에 꾹 눌러 앉아 몇 권의 불서들을 더 살펴보는데 각다분해46)지더니 서리가 내린 음력 8월 말경이 되자 용담의 풍경과 아버님의 얼굴과 형님의 모습이 차츰 더 자주 떠올라 마침내 방 귀퉁이의 봇짐을 갈무리한다. 그는 봇짐을 들고나와 젊은 스님에게 그동안 도와주셔서 고마웠다한다. 젊은스님의 인도로 주지스님을 찾아뵙고 무릎절로 작별 인사를 드린다. 수운을 그 간 유심히 눈여겨 봐오던 주지스님은 “공을 아셨습니까?”라고 말문을 연다. 수운은 일어나려던 몸을 주저앉히고 주지스님을 쳐다보니 주지스님은 말을 잇는다. 

      “아무것도 없는 공에서 만유의 원소인 ‘흙․물․불․바람’이 생겼다고 보면 사대(四大)는 허상이지만, 그 ‘공(空)’에 무엇이 있어서 사대가 생겼다고 보면 사대는 허상이 아니지요. 공은 빈 곳인지, 무엇이 있는 곳인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비었다고 보시게 되면 출가 하시게 될 것이고, 무엇이 있다고 보시게 되면 재가(在家)하시게 될겝니다.” 수운은

      “명심하겠습니다.” 하고 음전히47)물러난다.

      처음 만난 젊은 스님은 산문까지 바래주며 “공은 청정한 곳이 아닐까요?” 한다. 수운은 “저도 그런 맘이 드네요.”라고 한다. “청정에서 만물은 생겨 수많은 종으로  갈린 것이므로 근본 자리인 청정을 깨닫고 닦아야 한다고 보지요.” 수운은 또 “저도 그런 마음이 드네요.” 한다. 젊은 스님은 종이로 가든그린 미수가루를 내어주고 합장배례로써 기원해준다. 수운은 받아들고 허릿절을 하며 좋은 분과 헤어지는 서운한 얼굴을 보이기 싫어 얼굴을 숙인 채 돌아 선다


      일일이 금강산 명소들을 구경하고 싶은 한가한 마음은 없지만 산정에 올라가 한눈에 금강산을 담아보고 싶은 마음은 든다. 조선 팔도의 제일가는 명산인 금강산을 봤다는 말거리도 있어야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좌우를 설핏 살피고 전망하기 좋은 야트막한 산의 등성이를 골라 오르기 시작한다. 두 달 가까이 쉬어 몸이 가벼워져서 땀은 좀 내뱄지만 기어오를 때마다 물고기가 냇물을 거슬러 오를 때의 생기를   느낀다. 그렇게 산마루에 오른 그는 기암괴석의 금강산을 보고 또다시 보며 1만 2천봉이나 된다는 봉우리 중에 몇이나 볼 수 있는가 세어본다. 또 봄은 ‘금강산(金剛山)’ 여름은 ‘봉래산(蓬萊山)’ 가을은 ‘풍악산(楓嶽山)’ 겨울은 ‘개골산(皆骨山)’으로 변한다는 금강산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 헤아려본다. ‘봉래산(蓬萊山)’은 중국 진나라(BC222∼BC206)사람들이 불로초가 난다고 본 신령한 산 이름이다. 그럴싸한 녹음 속에 우뚝우뚝 솟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들을 보니 불로초도 품었을 성싶다.

      그는 평평한 바위에 꽈앉아 풍류 도인들이 산의 생기를 코와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금강산의 맑은 생기를 받아들이고 탁한 기운을 내 보내는 배호흡을 시작한다. 깜빡깜빡 졸음이 온다. 순간, 자신의 몸속 깊숙한 곳 낭떠러지로 의식이 떨어진 듯했다. 의식은 맑은 호수 속의 하늘을 보듯이 그렇게 맑은울을 보고 있었다. 또 선뜻하더니 신선스러운 선인(仙人)이 눈앞에 띈다. 놀란 수운의 눈은 사유 깊은 얼굴과 하얀 수염, 그리고 하얀 황새 깃으로 엮은 옷자락과 하얀 가죽신코끝을 본다. ‘깃옷 입은 신선이다!’ 여기는데 신비한 음정의 ‘가사’ 소리가 들린다.

        

     “산봉우리 겹겹하고 인적이 적적한데

      수신제가 아니하고 강산구경 하단말가

      이재궁궁 찾는말을 웃을것이 무엇인고

      때탓하며 한탄말고 세상구경 하였으라

      만고없는 무극대도48) 이세상에 날것일세‘


      가사 소리가 더 들리지 않는다싶어 올려다보니 신선이 보이지 않는다. 눈을 까막까막 비집고 봐도 신선도 맑은울도 보이지 않고, 다만 다시 새 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는데, 거기 바위위에 황홀한 기운에 휩싸여 앉은 자신의 모습뿐이다. 그는 황홀한 기운의 여운을 느끼며 신선이 읊은 가사를 되뇌다가 ‘무극대도’란 어떤 도일까 헤아려본다. ‘무극(無極)’은 ‘극이 없다’는 것이므로 곧 ‘무한’을 의미하는 말이다. 천지는 시작이 있었으니 유한하다. 모름지기 천지만물은 그런 무극대도에서 시작됐다고 봄으로 그런 무극대도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이 숨겨 있으리라 여긴다.

      44)한둔: 한데서 밤을 보냄.

      45)격물치지:1.주자학에서, 사물의 근본이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여 앎에 이름을 말함.        2.양명학에서, 마음을 닦아 양지에 이름을 말함. /준말=格致

      46)각다분해: 지루하다.  몹시 힘들고 고되다.

      47)음전히: 의젓하고 점잖다.

      48)무극대도: 무극의 큰 도란 뜻으로 동학은 지기라 함. 이 같은 만유의 근본을 다루는 학을 유학은 형이상학이라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론이라 했다. /가사는 수운의 `꿈속노소문답가`의 일부임.

       15. 11. 8  길로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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