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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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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464회   작성일Date 15-10-09 15:02

    본문

     그는 끝내 며칠을 못 버티고 또다시 아버님한테 강원도 금강산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근암은 수운의 마음이 시달리는 까닭이 자신한테도 책임이 있음을 잘 알아서 수운 앞에서 약하다. 그래서 수운의 말이라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될 속사정이 숨겨졌으리라 여기며 하릴없이35) 들어준다. 근암은 ‘여기서 금강산이 얼마나 먼데.’라는 황당한 마음도 들고, ‘아들을 잃고 마는구나’ 하는 우려도 들어서 노자(路資)도 넉넉히 마련해준다. 그러고 손바닥만한 종이에다 금강산에 가는 길목을 적어준다. 근암이 수운한테 준 쪽지는 동해안에 쭉 잇댄 고을을 통과하는 것으로 ‘영일군의 흥해, 영덕군의 영덕, 울진군의 평해, 정선군의 강릉, 양양군의 속초, 고성군의 간성, 금강산의 유점사’이다.

      수운은 아버님이 적어준 쪽지를 보니 금강산 유점사까지 가는 길목이 일일이 적혀서 아버님 마음이 가슴에 절어든다. 또 형수가 마련해준 여벌의 난벌36)과 미수가루가 든 괴나리봇짐, 그 봇짐에 달린 미투리 두 켤레, 제환 형님이 햇빛을 오래 쏘이면 더위 먹는다고 손수 엮은 밀짚모자도 봇짐 옆에서 감동을 준다. 아버님이 여름에 짐이 무거우면 걷기 힘들다고 해서 양을 팍 줄인 괴나리봇짐이다. 또한 여름엔 먼동이 트는 새벽과 해 기우는 뒤낮에 많이 걷고 열기가 무르녹아 내리는 한낮엔 쉬어야 다음날도 걷는다 하였다. 그래서 수운은 동틀 녘에 괴나리봇짐을 돌라매고 논길을 지나 한길에서 형산강 쪽으로 꺽어간다. 형산강을 끼고 포항을 거쳐 흥해로 가기로 한 거다. 그는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를, 이래저래 정 든 가정리라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모저모 살펴본다. 정 떼고 가야하는 자신의 신세가 서러움 되어 복받쳐 올라서 더는 돌라보지 못하고 눈길을 형산강 쪽 한길에 붙박고 간다.

      여름 불볕이 메마른 길바닥을 달군다. 그는 홑바지속의 열기를 견딜 수 없어 대님을 풀고 흰 무명 바짓부리를 접어올리고 걷는다. 경주군(경주시)과 영일군(포항시)의 경계인 형산(兄山)을 막 넘어오는데 어린티를 벗지 못한, 그러나 결결한37) 선비가 성큼성큼 지나쳐간다. 수운이 흥해를 가는 길을 물으니 선비는 걸음을 늦잡으며 나도 그 쪽으로 가니 따라오란다. 그리고 어디서 오는 누구이며 왜 흥해를 가느냐 묻는다. 수운은 본바닥 사람을 만나 다행이다 싶어 예를 갖춰 용담서사의 근암 아들 최제선임을 어른스럽게 밝히고 금강산을 간다고 한다. 선비는 어른티를 내는 수운을 한 번 흘깃 보니 어려 보여 꼴답잖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의 가다듬은 말솜씨로 보아 식자께나 들었을 것 같고, 자로 잰 것처럼 또렷한 인사치례의 꾸밈새로 보아 제대로 예를 익힌 것 같고, 무엇보다도 아뜩할 정도로 먼 길을 혼자 떠난 걸 보면 대담한 녀석이라 여겨져서 어른 취급해 주기로 한다. 그는 근암공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자기는 ‘동강서원’에서 공부타가 아버님 환갑이라 집에 가는 ‘신총기’란다. 자기 집이 흥해·영덕으로 넘어가는 소티고개38) 밑 ‘소티골 마을(포항시 우현동)이니 쉬어가란다. 소티고개는 소가 누운 꼴 같아서 사람들이 부르게 된 이름이란다. 그러면서

      “자네, 삼국사기를 읽어봤는가? 거기에 ‘지명’ 편을 보면 ‘영일군(迎日郡)의 현의 이름이 ‘아혜현(阿兮縣)’임을 알 수 있지. 먼 옛날 영일군 사람들은 생명의 신인 날님(태양)신앙을 해서 새벽에 붉게 타오르는 해를 보고 ‘아! 해, 아! 해’ 하고 기도했지. 그래서 한자음을 빌려 ‘아혜현(阿兮縣)’이라 표기한 걸세. 이를 신라가 삼국통일 뒤에 당나라 식을 따른다고 지명도 ‘아혜현’을 해맞이한다는 의미의 한자인 ‘영일군(迎日郡)’으로 바꾼 거지. 선조들이 써온 지명을 바꾸는 건 성을 바꾸는 것처럼 큰 무례지.” 그는 지명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새는 소티고개를 소티재라는 설똑똑이들이 많아졌어. 우리말을 피 뽑듯이 뽑아내고 한자를 끼워 넣어야 품위가 선다고 보니 한심해.”

      “한자를 쓰면 유식해 보이잖아요.”

      수운이 자기의 말속을 알아차리는 기색이 보여서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다고 쌀 한 톨, 감자 한 알도 안 나와. 예나 이제나 풍월이나 읊고 ‘리발기발(理發氣發)’ 공론이나 벌리고,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정지했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고(天動地靜 天圓地方)’ 같은 돌팔이 설이나 가르치고 배우는 제잡이39 유생들이 사라져야 해. 그러다보니 소득이 없어서 알겨먹을 속셈으로 서민들을 서원에 불러다 부모에 불효했다고 더미씌워 볼기나 치는 몹쓸 짓이나 하니, 이게 양반들이 서원에서 모여 할 짓거리냔 말일세. 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예의지국이 아닌 부패지국으로 만드는 집단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유생들이야.”

      “유학이 상제 중심에서 벗어나, 불안정한 인간 중심으로, 양반 중심으로 바뀌면서 부패하고 혼란에 빠진 게 아니겠어요?”

      “그렇지, 그렇다고 허상인 상제 중심으로 돌아갈 수도 없지 않은가? 도학도 정답이 없어 ‘리발(理發)·기발(氣發)’로 다투지 않는가. 그래서 이젠 신(神)에도 형이상학에도 정답이 없다는 걸 알고 ‘실사구시(實事求是40))’로 넘어들 와야 해. ‘홍대용(洪大容1731∼1783)’ 선생이 이미 70여 년 전에 ‘담헌설(湛軒說)의 의산문답’에서 밝힌 대로 관찰하고 실험한 사실에서 구해야 해. 선생은 ‘학문은 쓸모 있어야한다.’라고 하셨지. 이제는 선비도 쓸모없는 학문을 떨쳐버리고 농사짓는 법을, 농기구를, 기계를, 무기를 연구해야 한다고. 그리고 실제로 농사를 지으며 땅을 개간해서 자기 식구가 평생 먹고 살 터를 마련해야 해. 그렇게 기계도 만들고 무기도 연구하고 장사도 해서 독립해 살 궁리를 해야 해. 서양은 그렇게 실사구시 해서 좋은 배를 만들고 무기를 만들어 세계 바다를 누비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런 연구를 하고 물건을 만들어서 스스로 입고 먹고 살집을 구하는 게 순서야.”

      “실사구시에만 빠지면 더욱 도덕을 잃어서, 먹이를 놓고 싸우는 짐승 누리가 되지 않겠어요?”

      “사람답지 못한 짓은 법을 만들어 다스리면 돼. 주관적인 돌팔이 도덕보다 객관적인 명문화한 법이 더 공정하지. 유생들을 보라고, 유학만이 도덕이라고 다른 도의 도덕은 혹세무민으로 밀어붙이지 않는가. 도성 안의 무속인이나 승려를 성 밖으로 내쫓은 짓은 무지한 독선이야. 가뜩이나 서학인들을 몰밀어41) 참형에 처하는 짓은 독선을 넘은 만행이지. 저와 남다른 도덕을 가졌다고 참형에 처하는 짓은 살인이므로 돌팔이 도덕이야.”

      그들은 넓은 길이어서 나란히 가며, 선비는 말씨에 열을 올리고, 수운은 귀담아 듣는데 주관적인 도덕을 ‘돌팔이 도덕’이라고 한 것은 적절한 표현이라고 맞장구친다. 선비는 수운이 잔걸음으로 따라오느라 애쓰는 걸 보고 걸음을 늦잡곤 하더니     “좀 가면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자명천이 있는데 더위도 피할 겸 멱감고 가자.” 한다. 선비가 먼저 옷을 훌훌 벗고 알몸으로 개울에 들어가 두 손으로 물을 떠서 한 목음 마시고 나서 물에 앉으니 가슴이 잠긴다. 수운도 선비처럼 옷을 벗고 손으로 물을 떠 마시고 물에 앉으니 목까지 잠긴다. 그는 머리를 숙여 냇물 속 돌 사이로 송사리 떼가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데 얼핏 아버님과 자주 멱감던 용옹당[龍湫]이 떠올랐으나 어지러워 고개를 돌려 유유히 흐르는 넓은 형산강을 바라본다.

      “자네 ‘서학’ ‘천주실의’를 봤는가? 임진왜란이 일어날 무렵이야. 서양인 신부 마테오리치가 명나라에 와서 서학을 전하기 위해 고유학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쓴 책이지. 그런데 전지전능한 천주가 창조한 우주이므로 완전무결한 거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되나. 여름엔 비가 너무 와서 농사를 망치기 일 수요, 겨울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집이 무너지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유학은 슬며시 물러서서 태극·음양오행·만물 화생으로 대치하지 않았나. 이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은 신유학보다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돌려대는 서학에 더 문제가 많다고 여겨져. 그래서 ‘서기동도(西器東道)’란 말이 적절한 말 같아. 집에 가면 내가 보여주지.”

     수운은 저울눈처럼 또렷이 분별해내는 선비의 논리에 매료되어 듣는 재미에 빠진다. 해질녘 산그늘이 초록들판을 덮어 갈 무렵에 그들은 일어나 옷을 입고 그늘 속에서 걷기 시작한다. 수운은 저로 해서 늦어지는 것이 마음에 걸려 발걸음을 재촉해 놀렸지만 해 떨어져 저물어서야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선비는 수운을 부모님에게 데리고 가 인사시킨다. 그러고 제방으로 데리고 가 ‘천주실의’를 서가에서 꺼내주며 하루 묵어가면서 보라고 한다.

      그 이튿날 소가 누운 모양의 뒷동산 나무 그늘 밑에서 살펴본다. 제1편에서 <시작은 있되 끝이 없는 것은 ‘천지·귀신·사람의 넋’이다. 천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면서 만물의 시작이요, 만물의 뿌리이다. 천주가 없으면 물질도 없으니 물질은 천주로 말미암아 생겨났지만, 천주는 말미암아 생겨난 바가 없다.(有始無終者 天地鬼神及 人之靈魂是也 天主則 無始無終而 爲萬物始焉 爲萬物根柢焉 無天主則 無物矣 物由天主生 天主無所由生也)> 천주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한 존재라는 데에서 마음이 끄덕인다. 이처럼 서학은 신을 무시무종한 존재로 돌려댐으로써 합리적 신앙과 도덕이 지속되어 발전하게 된 거라 여겨진다. 그런데 동양의 상제나 하날님은 여전히 신화적 신에 머물러 있고, 신유학은 아예 신을 없이 보고 무극태극의 물질우주관으로 흘러서 신이 없는 도덕이 되어 혼돈에 빠진 거라 여겨진다.

      다음날 수운은 아침놀을 바라보며 선비와 소티고개의 꼬불꼬불한 굽이를 같이 돌다가 헤어진다. 수운은 굽이진 길 저만치서 손을 흔드는 신총기의 모습을 자주 돌아보곤 하다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홀로 정처 없는 길을 가는 자신의 딱한 처지가 서러움이 되어 울컥 복장에서 치미는 걸 억누른다. 그는 이를 앙다물고 잰 걸음으로 소티고개를 짓밟는다. 하지만 서러운 감정이 달아올라 복장을 치오르는 걸 끝내 감당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줄줄이 흘린다. 그는 사치스런 서러운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소티고개를 줄달음쳐 넘어간다. 몸도 심장 따라 헐떡거리고 옷은 비지땀으로 펑하게 젖고 목구멍은 타오르고 단내가 나서야 할 수 없이 물말이42) 된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다. 나른한 걸음으로 흥해를 지나 영덕을 향해 가는데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는지 아리어 오기 시작한다. 햇빛 내리쬐이는 길바닥, 더위와 목마름과 발가락의 아픔이 번갈아가며 고통이 된다. 그는 개울가에서 쪽박에 물을 떠서 미수가루를 타마시고 쉰다. 다시 홀로된 외롭고 서러운 감정이 일어 벌떡 일어나 빨리 걷다가 늘쩡거리며43) 걷다가 죽기살기로 걷다가를 반복하면서 밤이 되어 주막집을 찾아 거칫거리던 괴나리봇짐을 벗어놓는다. 그렇게 이튿날도 평해에서 일박하고, 울진에서 일박하고, 하는 식으로 물어물어 그는 강릉에 이르고, 양양에 이르고, 간성에 이른다. 발은 부르터터지기를 몇 번이었고, 가래톳의 뭉우리가 걸음마다 명치끝에 통증을 안겼는데, 그 통증을 짓누르며 한 걸음씩 내디디었다.

     

    35)하릴없다(형):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 하릴없이(부):먼 산만 하릴없이 바라본다.

    36)난벌: 나들이할 때 입는 옷이나 신발

    37)결결한: 얼굴 생김새나 마음씨가 지나칠 정도로 빈틈없고 곧다.

    38)소티고개: 현재의 4차선의 ‘소티재’ 왼쪽 20∼30m에 예전의 굽이진 ‘소티고개’가 있음

    39)제잡이: 제 버릇이나 관념에 잡힌 이. 

    40)실사구시: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진상을 탐구하는 일. 

    41)몰밀어: 모두 밀어

    42)물말이: 1)물만밥.  2)물에 몹시 젖은 옷이나 물건.

    43)늘쩡거리며: 느른한(느릿느릿한) 태도로 움직이며. 

     10‧ 9 길로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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