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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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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039회   작성일Date 15-10-05 12:02

    본문

     

      그는 아버지 밑에서 애저녁22)께면 천자문을 용담정에서 배운다. 근암도 용담정에 돌아와 수운을 가르치고 데리고 자는 게 낙이다. 수운도 아버지 품에서 잃어버린 부모의 정을 가슴 뿌듯하게 느끼며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는다. 낮엔 크고 넓은 와룡암에서 근암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밥도 거기서 먹었으므로 끼니때만 수운은 와룡암에 간다. 그러고 혼자 용담정에 돌아와 밤에 아버님께서 가르쳐 준 천자문을 익히는 데 재미를 붙인다. 그는 한 달 만에 한글을 익혔고 두 달째는 한자의 음과 뜻인 음훈(音訓)에 이골이 트이기 시작하여 3개월째인 8살엔 천자문을 뗀다. 그리고 오륜23)으로써 덕행을 키우는 동몽선습(童蒙先習) 개몽편(啓蒙編)과, 상례(喪禮) 제례(祭禮) 처세(處世) 역사를 기록한 격몽요결(擊蒙要訣)24)의교재를 익히고, 9살이 되어서는 도덕서인 명심보감(明心寶鑑)·소학(小學)을 익히고, 10살이 되어서는 역사서인 십팔사략(十八史略)25)통감(通鑑)26)들을 익힌다. 

      무더운 7월 애저녁이면 근암은 한더위를 식히려고 수운을 데리고 용담정 위 용옹당에 가서 물에서 건져낸 미역처럼 멱감는다. 용옹당은 어른이 앉으면 물이 배에 찰락말락한 맷방석 크기에 불과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오돌토돌한 바위가 파인 자연 욕조라 멋스럽다. 수운이 용옹당 물이 너무 시리어 기어 나오려할 때 아버님이 오른쪽 벼랑의 용마발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뭣처럼 보이냐?’고 묻는다. 수운은 꾹 참고, 잠깐 본대로 ‘소발자국처럼요.’라고 한다.

      “2천1백여 년 전에 신라 사람들의 선조는 백두산 밑에서 말 타고 말 키우는 고조선 사람들이었지. 그들이 경주에 와서 나라를 세운 것이 신라야. 그 뒷손들은 이곳에 와서 저 벼랑의 발자국을 보고, 아득히 먼 옛 조상들이 나는 듯이 달리던 말 타던 걸 연상하고, 머리는 용이고 몸은 말인 ‘용마(龍馬)발자국’이라고 한 거지.”  

      “그럼 고조선 사람들의 선조는 누구인가요?”

      “예전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보기도 하고, 해님이 빛으로 빚어낸 알에서 태어났다고도 봤지. 이제는 태극음양이 오행으로 화생하고, 오행 중에서 무거운 기운은 땅이 되고, 가벼운 기운은 하늘이 되고, 빼어난 기운은 사람이 되었다고 보지.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라.”

      수운은 용마발자국들을 살펴보며 선조들 얘기에 빠져서 몸이 시린지도 모른 자신에 놀란다. 그렇게 그는 근본에 호기심이 유난히 많고 외우기를 잘해서 근암도 가르치는 보람을 즐긴다. 마침내 11세에 이르러서는 와룡암에 나가 어른들과 함께 사서오경27) 따위를 공부한다. 그의 학문은 빠르고 깊이 진척되어 13세에 이르러서는 이들 고전유학이 ‘서경’의 ‘요전’ 첫 장에 나오는 <하늘을 공경하고, ‘춘하추동’인 천도를 따르는 학>임을 깨닫는다. 즉 유학이 상제님을 공경하고 천지자연의 천도를 따르는 도덕임을 깨달은 거다.

      그렇게 곰파는28)성미인 그는 끝끝내 아버지로부터 외가가 금척리요, 어머니가 재가녀였던 비밀을 또렷이 알아낸다. 근암은 운명이란 제할 나름이어서 제 자신에 달렸으니 수운에게 맡기기로 하고 사실을 이야기해준 거다. 그는 재가녀 자식은 과시에도 나갈 수 없다는 말을 들어서 윗목에 설치한 서가에서 ‘경국대전’ ‘예전(禮典)’을 찾아본다. 거기에서 ‘재가녀의 아들이나 손자는 문과·생원·진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글을 보자, 모닥불에 씌운 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덮어버리고 만다. 유학서적들이 ‘돌아들29)인너는 읽을 자격도 없다.’며 업신여기며 깔보는 것 같아 공부에 회의를 품고 깊은 한숨을 쉰다.

      한숨짓다가 저를 헤아려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아심이 든다. 아버지를 따르면 양반이 되고 어머니를 따르면 재가녀 자식이 되어서다. 성과 이름이 아버지를 따랐으면 재가녀 자식이 아니지 않는가. 아버지처럼 곧바르게 자란 그는 불합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엉터리 누리에 왜 재가녀 자식으로 태어나게 했나. 그는 어머니를 원망하다가 아버지를 원망하다가 삼신할머니를 원망한다. 아기가 태나는 건 삼신할머니에게 달려서다. 그는 재가녀 자식으로 태나게 한 삼신할멈한테 분노하고, 제사 때 저를 맨 뒤로 밀어낸 사촌형들한테 분노하고, 이 같은 제도에 분노한다. 제도의 성벽이 하도 높아 분노는 체념이 되고 원망이 되어 화로의 불씨처럼 묻혀간다. 이처럼 저를 안여기다보니 사는 게 속절없는 짓 같아진다. 풀죽은 그는  ‘왜 태어났노!’ 깊은 한 숨을 내쉰다. 

     

     22)애(접두사);어린`앳된`처음`이른등의뜻애나무`애송이`애벌래`애갈이`애저녁(초저녁)                                                             

    23)삼강오륜:‘君臣有義·父子有親·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五常./‘동몽선습’등 그때 학동교재 

      24)격몽요결:율곡 이이 지음. 간략한 조선·중국사와 喪禮 祭禮 處世들로 이뤄진 학동교재.

      25)십팔사략:중국의 태고 때부터 송말까지의 역사서. 부정확한 역사서로 평가함.

      26)통감:資治通監의 약자. 북송 사마광이 지은 편년체의 중국 역사서.

      27)사서: 논어·맹자·중용·대학./ 오경=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좌전(동양최고 고전).

      28)곰파는: 일의 내용을 꼼꼼하게 따지는.   29)돌:`품질이 낮다`는 뜻의 접두사 

     

       15, 10. 5; 길로, 정경흥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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