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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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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280회   작성일Date 15-12-26 15:04

    본문

     4.명리학. 근암돌아감. 허령이 마음으로 화생한 까닭. 결혼. 무과시험.

     

      봄이 되어 용담서사가 열리자 세조도 용담서사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할아버지께 조르며 따라나선다. 근암이 수운에게 네가 맡아서 가르치라하자, 세조는 대뜸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리고, 수운을 쫓아가며 싱글벙글이다. 수운이 집에 있을 무렵이면 샘쟁이 여동생을 가르쳤는데 그러면 능청스러운 세조도 슬며시 책을 들고 와 얼찐거리다가 묻곤 하였다. 그럴 짬마다 여동생보다 세조를 두남52)하였다. 그것은 가까운 여동생보다 한 치 건너인 조카를 먼저 챙겨야 속맘이 드러나지 않아서다. 어째든 세조는 자기를 먼저 챙겨주는 삼촌이 좋았다. 

       

      근암의 ‘명리학(命理學)’ 공부가 시작되었다. 명리학은 약혼 등에 쓰이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시험 잡과가 명리학이며, 합격하면 등용된단다. 그래서 임금 가족이나 그 친족들 사주를 봐주고 합궁일시를 결정해주곤 하는 일을 맡는단다. 명리학도 성리학과 비슷한 연대에서 비롯했는데, 도교의 수련가 서자평(徐子平)의 저서 ‘연해자평(淵海子平)’에서부터라 한다. 조선 초기 ‘경국대전’에 시험과목으로 등재된 걸 보면, 그 이전 고려 무렵에 들어온 것으로 봐야할 거라 한다. 근암의 말은 이어진다.

      “일반에서는 명리학을 ‘사주팔자’라 한다. 사주는 태어난 ‘년·월·일·시’를 네 기둥에 비유해서 ‘사주(四柱)’라 한 거다. 이 같은 사주를 ‘천세력(千世曆)’을 보고 간지(干支;十干 十二支)53)로 바꾸면 <병술·정유·정해·계묘>식이 된다. <십간(十干)에, 오행 음양 부속 도표>를 보면, ‘병술년·정유월·정해일’은 오행으로 모두 화(火)에 해당하므로 결혼은 여름을 피하는 게 좋다 식으로 점을 친다. 모두 여덟 자이므로 ‘팔자’라 한다. 그래서 명리학을 ‘사주팔자(四柱八字)’라 한 것이며, 여덟 자에 운명이 담겨 있어 ‘팔자소관’이란 말이 생겨난 거다. 이 같은 명리학은 결혼할 때 신랑이 사주단자를 보내면 신부측은 이를 보고 가부를 결정하고 약혼 날 자를 정하여 신랑 집에 통고하므로 반드시 알아야한다.”

      그러고 근암은 ‘연해자평(淵海子平)’이란 책과 ‘천세력(千歲曆)’을 들어 보이면서, 베껴야 할 부분을 일러준다. 그래서 책이 없는 사람은 베끼고, 책이 있는 사람은 혼자 공부한다. 수운은 태어난 ‘사주(년·월·일·시)가 운명이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주역처럼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여겨졌지만 일상에서 쓰이는 바라 배울 수밖에 없다고 여기며 더구나 글씨 쓰길 좋아해서 베꼈다.

     세조는 애저녁에 수운이 와서 ‘중용(中庸)’을 가르쳐 주면 그 이튿날 용담서사에 남아 외우는 공부를 하였다. 수운이 의미를 서로 연결 지어 외우라고 해서 그리해 그 이튿날 저녁에 할아버지 앞에서 강(講:외기)할 때 지적 받는 일이 줄어서 좋아했다. 또한 삼촌하고 용옹당에 가서 발가숭이가 되어 첨벙거리는 것도 재미있어 했다.

      가을이 깊어지자 한 낮에도 용옹당 물이 너무 차서 멱감기가 버거웠다. 그래서 수운과 세조는 산속을 걸으며 ‘용옹당· 용마발자국’처럼 기묘한 바위에 이름들을 붙여준다. 용담정 부엌 옆의 샘물에서 비롯되는 암벽은 병풍 같아서 ‘병풍바위’라하고, 서사 앞의 너부렁넓적한 바위는 안마당만하다 해서 ‘안마당바위’라하고, 안마당바위의 벼랑은 기이하고 웅장해서 ‘기장바위’라 하고, 기장바위 끝머리 위에 불쑥 튀어나온 황소만한 바위덩이는 거북머리 같다 해서 ‘거북머리바위’라고 하고, 그 옆 골짜기는 찬바람이 나와서 ‘찬바람골’이라 한다. 세조는 밤에 잘 때도 그런 삼촌하고 한 이불 속에서 살을 비비며 자는 것이 좋았다.

      근력이 떨어져 가는 늙은이에겐 초겨울 골짜기에서 치밀어 오르는 찬 기운을 이겨내기가 버겁다. 명리학도 이제 스스로 깨우치는 일만 남았다고 여기며 한시름 놓으니 맥이 풀린다. 저녁 먹은 게 체해 밤새도록 복께서 아침에 일어났다 다시 눕는다. 제자들이 올해는 추위가 일찍 왔으니 앞당겨 휴강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다.


      새해 경자 년(1840) 설을 쇠자 근암은 제환에게 이르기를

      “이제 약을 더 사오지 말아. 팔십이면 한뉘 족히 살아 이울 나이인데 더 살려고 약을 드니 죄짓는 기분이 드는구나. 그리고 제선(수운)이 나이 열일곱이 아니냐. 우리 집안은 17세가 되면 결혼을 시켜왔으니 혼처를 알아보도록 해라.” 한다.

      이제는 바깥바람만 쏘이어도 감기에 걸리곤 해서 이도 삼가고 주로 방안에서 몸조리를 한다. 요새는 아랫목 벽에 기대 앉아 수운이 여동생과 조카(세조와 그의 누이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쳐다보는 걸 낙으로 삼는다. 추운 정월도 지나고 이월 이십이일을 맞은 점심 뒤였다. 노상 하듯이 아랫목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던 근암은 시름없는 목소리로 수운을 부르더니 손등을 어루만지며

      “눈이 침침해지는구나, 졸립구나.”라고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리더니 수운을 보고 “눕고 싶구나.”라고 열없이 말한다.

      수운은 책 속에 빠졌던 중이라 거의 무의식으로 아랫목에 요를 깔아 뉘어드리고 이불을 덮어드리고는 보던 ‘주자어류’를 다시 훑어본다. 주자가 ‘선리후기(先理後氣)’의 논리를 편 이유를 헤아려보는 거다. 주자도 ‘기 없는 리는 없다.’고 하면서도 리를 태극으로 보고 기보다 앞세운 것은 ‘리’를 더 가치 있다고 보아서 왜곡하게 된 거라 여겨진다. 앞뒤가 있을 수 없는 무극태극의 ‘리·기’를 앞과 뒤로 정한 것은 잘못이라 여겨진다.

      이처럼 헷갈리던 문제를 제 나름대로 정리하고 나니 불쑥 맘이 떨리어서 얼굴을 돌려 아버지 얼굴을 살펴본다. 그런데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잠잠해서 기어가 머리맡에 바투 앉아 이마를 만져보니 따스한 온기를 느꼈지만 그래도 맘 놓이지 않아 코에 손을 대어보니 숨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에 손을 대보아도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다시 코에 손을 대보고 복장에 손을 대보고 하다가 ‘영영 잠이 드셨구나.’ 하는 의식이 맘속으로 스며들면서 손이 코에서 멈춰버린다. 불현듯 의식도 멈춘 듯했는데, 보이던 누리는 가뭇없어지고 맑은 허공만 보였는데 거기에 캄캄한 밤하늘이 나타나고 북두칠성이 보인다. 홀연 칠성판에 누인 아버님이 캄캄한 허공 속 북두칠성을 향해 날아가는 신비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이곳이 저승길이며, 우리가 죽으면 돌아가야 하는 저승의 칠성계라는 의식이 든다. 칠성계는 머리 위의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무한소무한에 있는 저승이라 여겨진다. 그러자 속의식54)은 차츰 겉의식으로 바뀌어가서 몸을 의식하고, 제 손가락이 여전히 아버님 코밑에 놓인 걸 본다. 세조가 다가온다.

      “삼촌 왜 그래?”

      수운은 남 말하듯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나 보다.”55)라고 한다.

      세조는 할아버지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얼른 밖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다. 아버지 제환은 요새 근암 묏자리와 수운 혼처자리를 알아보려고 밖으로 나돌았다. 요새 제환이 자주 들린 곳은 20여 리 거리의 서면 도리이다. 거기엔 세모로 접어 머리에 쓰는 고깔처럼 생긴 고깔산[冠山393m]이 있는데 조상 묘가 모셔져있다. 그 산 아래에 엣골 마을이 있고 깊숙한 곳에 사랑채가 딸린 큰 집에 황소 왕눈을 한 박대여(만재1817~1885)가 사는데 그가 선산을 봐주고 있다. 박대여는 원래 월성 박씨로 고향이 울산 유곡동이었는데 그의 아버님이 마름56) 노릇을 하며 사래쌀57)을 모아, 서면 도리의 논을 사서 이사 온 거다. 부지런한 박대여는 물려받은 땅을 기름지게 잘 가꿔서 제환은 선산을 그에게 맡긴 거다. 그래서 묏자리를 보러 와서 이말 저말 하다가 제선 혼처 이야기를 했다. 왕눈 박대여는 제선(수운)이 성묘 왔을 때 신성한 외모를 보자 고향에 저보다 9살 아래인 똑똑한 사촌누이가 떠오른 적이 있어서 제환 어른에게 소개하였더니 같이 가보자 하였다.

      어제 제환은 박대여와 함께 울산 유곡동에 가서 신부 아버님과 말쑥한 송아지상의 신부도 보고 맘에 들어 신부 오라버니와 3일 뒤 가정리서 만나기로 하고 오늘 돌아와 보니 아버님이 돌아가신 거였다. 그런 줄 모르는 유곡동에서는 신부 오라버니가 약속대로 3일 뒤에 가정리 집을 예방하였으나 이미 근암께서 돌아가셔서 대상이 끝난 뒤 결혼하기로 다시 정하고 돌아갔다. 상중에 상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법이라 대상이 마무리되는 2년 뒤에 하기로 한 거다.

      52)두남: 두둔하거나 편듦

      53)十干(육십갑자의 윗부분을 이루는 글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十二支(육십갑       자의 아랫부분을 이루는 글자;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54)속의식: 의식속의 의식. 꿈꿀때의 뇌파인 세타파와 같으나 깨어 있는 의식.

      55)음력 2월 20일.

      56)마름: 지주의 땅을 관리 하던 사람.

      57)사래쌀: 마름에게 보수로 주는쌀.

       15. 12 .26 길로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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