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상’ 연구모임을 알리며: 교령선거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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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상’ 연구모임을 알리며: 교령선거와 더불어
김상일 교수는 ‘한사모(한뿌리사랑 세계모임)’ 송년회에서 한사상 연구를 하면서 애환을 이렇게 말했다.
한사상, 한철학을 연구하다가 단군 상을 연구실에 걸어두고 그리고 홍익사상을 강의하였다고 하여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재임명에 탈락되었다고 하였다. 또 예비군 교육에서는 강의교재로 김교수의 저서인『한사상』이 교재로 사용되었다고 하여 70년대 종속이론과 맑스주의 사상 등이 풍미할 때는 ‘한사상’은 오히려 우파이론으로 치부되어 수난을 당하였다고 했다.
이렇게 냉전 상황에서는 한사상을 공부를 해가면 갈수록 그 연구에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인간적으로는 비애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사이 백세시대를 맞아 ‘백세시대’ 노래가 있듯이 염라대왕이 부르더라도 한사상으로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루어내야 하는 그날까지 이승에서 할 일이 남아있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는 말로 송년사를 했다.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축사였다.
이제 평화공존의 시대를 맞아 한반도에도 봄이 왔다. 그리하여 심지어 「격암유록」을 연구하는 예언가들은 1845년 8월 15일의 해방을 맞추었듯이 2016년 4월에는 통일이 도래한다고 했다. 그러나 비록 독일의 통일처럼 예기치 않았던 통일이 바위의 얼굴처럼 다가온다고 해도 통일의 파종을 할 지도사상과 지도자는 준비되어야 한다. 천도교의 교령선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민족종교, 민족사상이 그간에는 백안시되고 수모를 당하고 심지어 박해까지 받아야 했다면 지금은 ‘한류’가 형성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조류가 되었다.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천도교도 그간 좌우의 냉전논리의 대결구도에서 민족종단으로 간판유지가 어려웠던 것이 실정이었다. 그리하여 반세기 전에는 많은 청년들이 정치를 하기 위해 기독교와 천주교로 귀의하였다. 그런데 동학혁명사를 공부하다보니 이런 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천도교가 함께한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필자는 이들 천도교인들과 민족사적 고뇌를 함께 하기 위해 천도교로 입교하기를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당시의 현실주의 청년들에 비해서 본인은 이상주의자라고 할까? 돌이켜보면 계대신앙도 모태신앙인도 아닌 필자의 경우, 오늘 70의 나이가 되기까지 반평생이 지나도록 천도교인의 교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때 이제 우리 천도교인들은 평화통일의 비전을 가진 교령을 제대로 선출하여야 한다. 교인들을 만나보면 이 시대의 역사의식이 ‘통일’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말하는 교인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일제시대는 ‘독립’이 민족의식이라고 한다면). 이제 사사로운 이해관계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구각을 탈피하여 스승님의 천심과 감응의 진정한 참뜻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민족이 절망과 실의의 늪에서 망국노의 신세가 되었을 때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났듯이 다시 제2의 해몽 전봉준장군과 의암 손병희성사와 같은 인물이 나와 마당포덕을 하고 민족의 운명을 주도해가야 한다.
이제는 남북의 대치정국을 두고 인내천주의로 평화통일을 견인해갈 새 교령이 나와 천도교가 제2의 종교혁명을 일으키며 민족의 운명을 이끌어 세계사에 우뚝 솟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음 교령선거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15. 12.26(토) 5시 30분에 수운회관 2012호실에서 ‘한사상’연구모임이 시작되니 천도교인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담암 노 태 구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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