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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속 한울님의 신관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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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718회   작성일Date 16-01-3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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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범재신관과 한울님 비교

     

      아버지가 목사였던 영국의 수학자이며 수리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화이트헤드(1861∼1947)는 1924년 정년퇴임합니다. 이때 미국 하버드대에서 초청을 받아 건너가서 과정철학 등을 강의하게 됩니다. 하버드대에서 1923년 박사학위 받은 철학자‧신학자인 하트숀(1897~2000)은 화이트헤드의 조수가 되어 그의 과정철학에 근거해 ‘범재신론’을 제기한 거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범재신론이 제대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1974년의 ‘한국사상연구회 ’12권에 한국신학대학 조교수 김경재가 ‘崔水雲의 神槪念’에서 부터라고 봅니다.

      “세계고등종교들이 갖고 있는 여러형태의 신론중에서 그 대표적인 것은 有神論, 汎神論, 법재신론으로 집약된다. 하트숀은 신성의 다섯 가지 요소를 차출하여내고 그 함수관계로서 뒤에 언급한 대표적 신관의 특징을 설명하였다. (1)신은 自意識적이다(C). (2)신은 세계를 알고 있다(K).  (3)신은 세계속에 내재해 있다(W). (4)신은 영원하다(E). (5)신은 시간적이다(T)./ 有神論이란 C‧K‧E‧‧‧ 汎神論이란  C‧K‧W‧E‧‧‧汎在神論은  C‧K‧W‧E‧T‧‧‧ 다섯가지 요소를 모두 내포한 생존 자체이다. 신은 자의식(C)적인 생존으로서 세계를 알고(K), 그러면서도 세계 속에 내재하며(W),영원무궁한(E) 존재자체이면서 신적상대성을 갖고 있는 시간적(T) 생존이다.”

      위에서 열거한 범재신의 5가지 특징과 동학의 한울님과 비교하면 ‘(4)신은 영원하다’ 외에 같은 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학의 한울님은 자의식이 없고, 세계를 알지도 못하고, 세계 속에 있지도 않으며(물질속무한소에 있으므로), 신은 시간적이지도 않습니다(무한소에만 있어 시간을 초월해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경재는 동학의 한울님이 범재신론에 속한다고 본 겁니다. “氣는 신령한 능력으로서 만물과 인간 속에 내재할 뿐만 아니라 밖으로 충만하게 기화하므로 인간은 이 기의 現存的 臨在에서 도피할 수가 없다‧‧‧수운에게 있어서 신은 기화의신으로서 생성자체이다. 생성자체는‧‧‧그것들을 개체 개체로 살려내는 무궁한 생명자체이다54쪽” 김경재는 신=지기=기화로 보는데 이는 야뢰가 ‘지기=기화신’으로 착각해 본 것을 인용한 겁니다. 최동희교수가 ‘기화’를 ‘지기에 심신이 화합하는 것’이라고 그의 저서마다 언급하고 있는 걸 외면한 겁니다. 이처럼 착각한 것을 이용한 것은 이것이 범재신관에 합하는 개념이어섭니다.

      “개체생명이 입도하여 전체생명 자체인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 지기금지이다(今至者 於斯入道 知其氣接者也). 수운에게 있어서 神 인식이란 부적당한 말이고 오직 侍天主가 있을 뿐이다.54쪽” ‘그 기에 접해 있는 것을 알았다(知其氣接者也)’를 ‘지기에 접함’이라고 진행형 문장으로 즉 과정을 중시하는 문장으로 바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神인식이란 없고 다만 ‘한울님을 모시는(侍天主)’ 행위과정이 있을 뿐이라고 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범재신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은 존재보다 존재의 작용과정에 관점을 두고 기술해야 하므로 존재론적 글을 과정의 글로 오역하고 있는 겁니다.


      다음은 김상일이 2004년 출판한 ‘수운과 화이트헤드(천도교 자료실에 있음 )’의 글을 보도록 합니다. “‘지기와 천주’ 두 개념은 말을 바꾸어 비인격과 인격이라 할 수 있으며 16쪽”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기를 유심(허령)과 유물(일기)을 겸한 즉 인격과 비인격을 겸한 것으로 보지만 김상일은 이를 간과하고 비인격체로만 보고 있습니다. 개념의 오류가 첫단추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수운은 존재자를 천주라 하고 존재자체를 지기라고 했다.246” <존재자체>는 <작용과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김상일은 ‘천주’는 존재자요 ‘지기’는 작용과정자로 분리합니다. 또 그는 “신과 세계가 주와 객이라면 주객사이의 상생상극하는 작용자체가 바로 지기인 것이다.497쪽”라고 합니다. 신과 세계는 존재로 보고 지기는 그 사이에 작용으로 봅니다. 이처럼 그는 과정신학에 맞추기 위해 ‘지기’를 작용과정으로만 봅니다. 그런데 이미 본 바와 같이 ‘지기성품’은 체와 용이 있으며 용은 체에 종속되는 것으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였습니다.

      좀더 보면 “신의 이상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그러한 이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321쪽.”라고 합니다. 그러나 수운이 몸속한울님을 모셨을 때 동학의 한울님은 “나도성공 너도득의(용담가)”라고 하셨습니다. 지기한울님이 사람으로 화생한 건 사람의 의식을 통해 한울님으로 현현하고 만사지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를 수운이 이룩했기 때문에 ‘너를만나 성공하니’라고 하신 겁니다.

    김상일은 이영노원장의 주문풀이를 인용해서 과정신학을 논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영노원장의 주문풀이가 과정신학으로 인용하기에 합당해서일 것입니다. 그럼 이영노가 ‘虛靈’을 ‘빈 영’이라고 오역한 걸 인용한 글을 보기로 합니다. “기란 허령창창하다고 했다. 그 속에 아무런 내용물이 없는 텅 비어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273”....그런데 수운과 동양의 사상가들은 모두 존재가 치러야 할 몫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투어 무와 허와 공을 말하려고 한다.276” 불교와 기독교는 空에서 만물이 이뤄진 거로 보나 유학은 ‘무극태극‧리기허령’이 만물로 화생한 걸로 보고 동학은 지기의 체인 ‘無極‧虛靈‧一氣‧至聖’이 만물로 화생한 걸로 봅니다. 김상일은 과정신학을 말하기 위해 동양의 형이상학과 동학의 형이상학인 ‘지기성품’을 무의미한 거로 치부하기 위해 그런 글을 인용해 마음의 본질인 ‘허령’‘내용물이 없는 텅 비어’있는 것’으로 본 거입니다.   

      이처럼 그는 과정신학인 범재신관에 맞추기 위해 천주와 지기를 분리하고 지기를 작용과정으로 만 보고 ‘지기성품’은 없는 空으로 본 겁니다.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실제로는 ‘지기성품’은 만사만물의 본질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또한 ‘지기성품’은 ‘기화’로 한울님을 모셔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섭명’으로 만사지 해서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는 신성이었습니다. 김상일이 편견한 건 과정신학자요 북한학학자여서 동학적으로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래서 천도교가 유불선합일이라든지 천주교의 모방이라든지 범신론이나 범재신론의 하나라든지와 같이 오인되는 신세를 면하려면 ‘지기성품’으로써 사유하고 알아가고 이해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찬수의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2014년출판)’란 책을 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유일신론의 종말’이란 ‘전지전능’한 의식을 갖춘 신은 없는 것이니 이제는 범재신론으로 넘어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트숀의 범재신론의 특징에서 ‘신은 自意識적이다. 신은 세계를 알고 있다’에서 본 것처럼 여전히 신의식(神意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의 ‘생리심리학’ ‘의식’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말초신경에서 감각이, 뇌간에서 본능이, 편도체에서 감정이, 신피질에서 의식이, 생긴 것>이라고 실증한 겁니다. 그래서 ‘감각‧본능‧감정’은 의식화하여 의식으로 분별하여 결정하는 구조로 이뤄진 걸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꼭두쇠가 의식입니다. 의식은 깨어 있을 때만 발현됩니다. 이처럼 ‘생리심리학’에서 마음을 입증해서 미국에서는 ‘뇌에 수반하는 것이 마음이다’라는 ‘수반철학’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꼭두쇠인 의식은 과학인 생리심리학을 통해 입증되고 철학인 ‘수반철학’을 통해 연구된 것으로 신의식이 있다는 건 허구입니다. 그런데 범재신론은 여전히 허구인 신의식(神意識)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초기의 신의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범재신론은 내재신관을 중히 여겨서 ‘마음속에 신이 있다’는 말도 씁니다. 그럼 생리심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없던 때 즉 마음이 없던 때에는 신이 없었다는 모순이 됩니다.

      이찬수는 범재신론에 대해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합니다. “마커스 보그의 간명한 해설을 인용해 보자.   ‘汎在神論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하느님의 내재성을 동시에 긍정한다. 범재신론에 있어서 하느님은 저 밖에 계신 어떤 존재가 아니다. 즉 Pan은 모든 것을 의미하고 en은 안을 의미하며 theos는 하느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범재신론은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을, 하느님은 모든 것 이상이지만 (그래서 초월적이지만)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다(그래서 하느님은 내재적이다).’ 285....”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있다’는 말은 범재신론의 일반적인 개념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라면 ‘모두범(凡)자를 써야지 뜰범(汎)자를 쓰는 건 오역이라 여깁니다. 또 <안(內)>의 의미가 보편적 의미가 아니라 범재신론에서만 쓰이는 특별 의미입니다. 이찬수는 ’틸리히의 3가지 ‘안’의 의미가 하도 복잡해서 요약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약하자면 모든 것은 신에 존재론적 기원을 두고 있고, 소외와 절망조차 신에 의존하며, 영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존재자들의 희망과 성취도 전부 신 안에서 이뤄진다는 뜻이다.” 더 요약하면 ‘신의 권위 안’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안(in)’이 관념적 의미로 쓰인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운께서 ‘네 몸에 모셨으니’의  ‘안’이나 ‘內有神靈’의 ‘內’와 같은 실제(實際)하는 존재론적 ‘안(內)’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처럼 범재신론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보편적 개념의 용어가 아닌 것이 많아서 혼란스럽고 동학 용어와 같아도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이찬수가 인용한 글에서 수운과 같은 겪음을 한 글이 있어 옮깁니다.

    “에레미아(기원전 627~580)는...유다(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된 유다:길로가보충한말임)는 곧 망하리라며 눈물로 충고했다. 에레미아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도록 요청하는 이는 신이었으며, 신께서 자신 안에서 말하신다고 믿었다.44쪽.” 이처럼 ‘신께서 자신의 몸안에서 말하신다고 믿었다.’는 말이 신을 겪어본 참된 말입니다. 신은 사람의 몸속 빈곳 무한소에서 사람뇌의 청각령 언어령을 통해 말소리로 들려나온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없으면 신도 현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수운께서는 터득하시고, 신이 사람으로 화생하시고 사람몸속에 계심은 사람을 통해 현현하고, 모심을 받고 만사지 하기위해서임을 깨알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난 도리 도덕은 한울님 위하고 모시는 것임을 깨알고, 선생주문을 외워 기화해 한울님을 모신상태가 되자, 한울님은 ‘나도성공 너도 득의’라고 하신 겁니다. 이처럼 시원자인 신의 뜻을 올바로 터득하고 사람의 도리 도덕을 깨알은 분은 인류사에서 오직 수운밖에 없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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