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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자체와 존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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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하경숙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080회   작성일Date 16-02-04 09:36

    본문

            힌두이즘과 불교의 인격과 비인격

             !존재자체를 '지기'에 존재자를 '천주'에
              일치시켜 보면 대신사님께서 왜 주문 21자에
               지기와 천주를 동시에 말하게 되었는지
              이해됨과 동시에 끊임없는 주문수련에서 형성되는
                지기와 천주와의 '만남'자체가 '감응'으로 이루어짐을
               알게 되는군요.그 감응이란
               감각->이성->감성이 다시 감성->이성->감각이라는
               소용돌이 현상을 일으키면서 형성됨을 알게 되네요.
              이런 식으로 마음공부에 도움이 될 내용이 될것이라
              사료되어 올려봅니다.

    동양의 易에서는 陰 가운데 음양이 있고,陽 가운데 음양이 있는 것을
    '양단(兩端)'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양단 현상을 현대과학은 '프랙탈'이라고 한다.
    최근 브리기스와 피트는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사고 속에서도
    이런 프랙탈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신관에서 인격과 비인격의 문제를 거론할 때도 이런 양단 현상을
    고려하지 않고는 올바르게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인격(천주)과 비인격(지기)을 엄격하게 나누는 兩斷(두 양자에 끊을 단)의 기준이란 없기 때문이다.
    포함(포含)이란 바로 일종의 프랙탈 현상이다.

    좌우뇌의 균열은 교육에 의한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뇌의 교량을 통한 좌우뇌의 균형 있는 교육은 앞으로 우리의
    신관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즉 좌우뇌가 어우러진 인격과 비인격적 신관이 兩端(!한문 단'자에 주목바람)的이 되는 神이 도래할 것이다.
    뇌 연구학자들에 따르면 좌우뇌가 남성의 경우는 兩斷적이고 여성은 兩端적이라고 한다.
    이때 동학의 신관이 갖는 의미가 재조명될 것이다.
    앞으로 미래의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운이 동학과 서학은 운이 같다고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바로 인격 신관적인 요소를
    양자가 같이 지니고 있다는 말과 같다.(중략)
    모세가 하늘에 신을 올려 놓은 것이 유대교이고,다시 땅으로 내리면
    기독교의 신이 된다.
    여기서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만 천지왕복 '하는님'(Lod Doing)이 있을 뿐이다.
    프랙탈 현상이 '하는님'을 만들어 간다.

    수운이 주문 21자 속에 만권시서 다 들어 있다고 할 때 이 말은 바로 동학이
    지니고 있는 인격 및 비인격성을 동시에 구비하고 있는 특징 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동학의 신관이 그러한 이유는 신의 천지왕복 맴돌이의 '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고등 종교의 기준은 다름 아닌 맴돌이의 빈도와 왕복 횟수에 달려 있다.
    작용 자체만 있고 아무런 속성도 제한도 없는 존재를 존재자체라고 표현하는
    길밖에 그 순수성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없다.(틸리히)

    순수한 동사 '하'의 작용뿐이다.
    수운은 이러한 순수한 존재를 "무형이 유적"이라고 했다.
    흔적은 있으나 아무 형태가 없다는 뜻이다.
    상카리의 경우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후대 불교에 와서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무'나 '공'같은 개념으로 변한다.
    그러나 샹카라는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아무런 속성이 없다 하고는 그것을
    순수의식,지식,축복 또는 기쁨이라고 했다.
    그만큼 아무런 속성이 없는 존재자체는 어떤 속성을 부여받으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수운의 '지기'도 '금지'로 구체화 하려 한다.
    노자의 존재자체가 존재를 소유하려는 '욕망'이다.
    수운은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원위대강)다시 지금 막 지기가 이른다고 했다.
    '전체가 부분이 되고 다시 부분이 전체가 되는' 홀론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모든 종교는 깨달음의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슈라이엘마허는 이를 '영성'이라는 감성에 의존해 실현하려고 했다.
    이를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했으며 수운은 이와 비슷하게
    "간절히 원하는 바"(원위)라고 했다.
    나중에는 誠敬이 된다.

    동학사상사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향벽'과 '향아'의 문제이다.
    예배적 대상이 초월의 대상이냐,아니면 자기 자신이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주제가 모든 종교 일반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토론의 주제가 된다.
    향벽의 문제와 향아의 문제는 결국 존재와 존재자체의 문제로 귀착된다.
    왜냐하면 향벽은 객관적 실체로서 속성 있는 존재를 벽을 향해 모셔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자체는 주객의 구별이 없어진 상태인 '인내천'이기 때문에 결국 향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향벽과 향아의 문제는 존재와 존재자체의 문제와 같아진다.
    존재자체를 '영성'과 '황홀한 이성'등에 연관시키는 이유도 모두 주객의 구별이 없어진
    신비의 상태이며,그것은 논리적으로 역설적이기 때문에 합리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동학의 종교적 문제성을 인도의 전통을 통해 견주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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