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한울님의 신관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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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학의 형이상학
수운은 8세가 되는 생일 무렵부터 용담서사에 가서 아버님이신 근암공으로부터 한글과 한자를 익히고 유학을 배웁니다. 14세에 재가녀 자식으로 태어난 걸 한탄하다가 아예 출가할 속셈으로 금강산의 유점사를 향해 갑니다. 도중에 ‘天主實義’을 보게 되고 천주를 ‘無始無終’이라고 하는 데 마음이 갑니다. 유점사에서 ‘반야심경찬’ 등의 불서를 보다가 불교는 ‘공(空)을 지향하는 도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을 알아서 그에 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사람으로 태어난 까닭’을 알아야 하므로, 무극태극이 질서지향성을 갖고 있는 거로 보는 유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금강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얕은 산정에 올라가 쉴 때 홀연히 그는 깃옷 입은 신선으로부터 ‘무극대도 날 것’이란 말씀을 듣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무극대도’를 알기 위해 신유학 책들을 보고 아버님으로부터 배웁니다. 그래서 그는 신유학의 형이상학은 ‘무극태극’을 ‘심‧기‧리’로 보는 걸 압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글인 “내 몸 빈곳 속에는 리기허령이 있네(在吾腔子裏 理氣虛靈)”란 글을 통해 ‘몸속 무한소에 영기(靈氣=理氣虛靈줄인말)’를 갖추고 있음을 깨알습니다. 그래서 그는 울산 여시바윗골에서 ‘기도어천(祈禱於天)’하라는 천서를 받은 뒤부터 몸속 영기한울님께 기도합니다.
이 같은 과정의 조건을 갖추게 되어서 그는 마침내 37세인 ‘1860‧ 4‧ 5’ 한울님으로부터 주문(선생주문‧장생주원본)인 ‘至氣今至四月來 侍天主令我長生 無窮無窮萬事知’란 글을 받습니다. 그리고 무극에 이르러 言不得難狀(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형상해 내기도 어려운 것)인 무한소무한의 ‘지기성품’을 보고 득도하게 된 겁니다. 득도의 과정을 ‘구도소설 수운 최제우’에서 재현해 본 것이 있는데 ‘지기성품’에 관한 것에 한해서 주요부분만 간추려 봅니다.
[한울님을 모시니 마음이 맑아지며 의식은 다시 잠파(4~7Hz)인 속의식1)으로 서서히 바뀌어 갑니다. 몸마음이 또 선뜩(기화)했는데, 지극히 고적한 곳, 자기 안속 더 깊은 곳 바닥이 없는 허방에 빠진 듯한데, 아득한 것이 보일 뿐 더 속으로 들어 갈 곳이 없는 무극에 다다른 거란 의식이 듭니다. 오직 무한하고 순수한 무극의 한울이라 여겨집니다. 한울 속에 혼자 남겨진 듯한 적멸감이, 두렵고 거룩한 무한을 보고 있다는 의식이 듭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하고 공공적적(空空寂寂)한 곳, 너무나 장엄해서 ‘말로 터득할 수 없고 형상하기 어려운 것(言不得難狀)에 동공이 붙박인 듯싶습니다. 눈여겨보니 <무한하고, 맑고, 밝고, 거룩하고, 간섭하는 기운>이란 어림이 들어, 속의식은 찬찬히 살피어갑니다. 아득하고 무한한 지평이 보이자 ‘이것이 무극(無極)이다’라는 의식이 들고, ‘맑음’이 보이자 ‘이것이 허령(虛靈)이다.’라는 의식이 들고, ‘밝음’이 보이자 ‘이것이 일기(一氣)다’라는 의식이 들고, 거룩함이 보이자 ‘이것이 지성(至聖)이다’라는 의식이 들고, ‘간섭(干涉)’을 느끼자 ‘이것이 무사불섭 무사불명(無事不涉無事不命)인 섭명(涉命)이다’라는 의식이 들고, 무극에 이를 때 ‘선뜩’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기에 화한 기화(氣化)이다.’라는 의식이 듭니다. 그의 순수한 속의식은 무극에 이르러 보고 겪은 ‘무한‧맑음‧밝음‧거룩‧간섭‧기화’를 기존에 알던 언어인 ‘無極‧虛靈‧一氣‧至聖‧涉命‧氣化’로 이해한 겁니다. 이것이 앞서 받은 주문의 첫 자인 <지기(至氣) 성품(性品)이다!>라는 의식이 듭니다. 무극대도의 진상(眞相)’을 보고 겪었다는, 견천(見天)했다는, 만사지(萬事知)했다는, 득도했다는 성취감이 듭니다. 그건 ‘절대지(絶對知)’로서 ‘옮기지 않는 것[不移者]’이란 의식이 들며 속의식은 둔중한 심연에서 떠올라 겉의식으로 서서히 바뀌어갑니다.
수운은 이때의 상황을 ‘용담가’에서 “경신사월 초오일에 글로어찌 기록하며 말로어찌 성언할까 만고없는 무극대도* 여몽여각 득도로다”라고 했습니다. 무극에 이르러 한울님의 도(天道)인 ‘지기성품’을 보고 깨달은 걸 ‘득도’라고 한 겁니다.]
이처럼 ‘지기성품’을 득도했기 때문에 3개월 뒤 짓고 받은 21자주문(장생주)도 至氣가 주어(主語)의 자리를 차지해서, ‘지기로써 시천주하고 만사지’하는 장생주(21자주문)가 된 겁니다. 그래서 은적암에서 지은 ‘동학론’에서 “지기 하나로써 주문을 지으니, 지기 하나로써 강령의법을 짓고, 지기하나로써 불망지사를 지었습니다(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忘之詞)라고 하신 겁니다. 주문이 오직 ‘지기성품’ 하나로써 이뤄진 글임을 밝힌 겁니다. 그리고 ‘지기성품’에 대해서 열거하신 것이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요, 끝맺는 말에 나오는 ”至化至氣 至於至聖’입니다. 여기서 추려내고 줄인 말이 ‘ 極焉之爲至=무극(무한) ‧ 虛靈蒼蒼=허령(맑음) ‧ 無事不涉 無事不命=섭명 ‧ 渾元之一氣=일기(밝음) ‧ 至化至氣=기화 ‧ 至於至聖=지성’입니다. 이를 체(體)와 용(用)으로 나누면 체(體)는 <무극(무한)‧허령(맑음)‧일기(밝음)‧지성(거룩)>이 되고, 용(用)은 <섭명‧기화>가 됩니다. 이처럼 정리할 수 있도록 수운께서는 지기의 특징에 대해 고루 언급하신 겁니다. 이 같이 至氣性品처럼 제대로 구색을 갖춰 자세하게 언급한 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를 봐도 ‘지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탁 말씀 드리고 싶은 건, <동학은 ‘지기성품’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 ‘지기성품’의 체와 용을 꼭 숙지하시길 바랍니다.>입니다. 그래야 ‘지기성품’으로 경전과 만사만물을 알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이 ‘동학적 사유’입니다. 그럼 ‘지기성품’으로 사유하는 동학적 사유를 좀 해보도록 합니다.
‘지기성품’에서 체와 용이란 말이 나온 것이므로 둘은 하나입니다. 즉 체가 작용하는 걸 섭명이라 한 것이므로 체에 종속된 것이 용입니다. 예를 들면 일기가 섭명해서 물질이 되고, 허령이 섭명해서 마음이 되는 것이지, 체를 떠나 섭명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범재신론처럼 체와 용을 분리하고 용(과정) 위주로 보지 않습니다.
다음은 ‘지기성품’에서 ‘한울님성품’과 ‘한울님’이란 말이 나온 걸 봅니다. ‘지기성품’엔 신의 속성인 ‘無極‧虛靈‧至聖’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울님성품’으로 보고 ‘한울님’으로 보는 겁니다.
다음은 ‘지기성품’에서 ‘안쪽원인자’란 말이 나온 걸 봅니다. ‘지기성품’은 화생(화출)자여서 언제나 물질을 이루고 물질의 안쪽에 있습니다. DNA가 세포를 이루고 세포속에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처럼 안쪽원인이어서 언제나 결과 속에 있지 밖에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수운은 이미 아버님으로부터 ‘몸 빈속에 리기허령이 있다’라는 걸 배워서 ‘리기허령’에 해당하는 ‘지기성품’이 한울님이요 안쪽원인자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교훈가’에서 “나는도시 믿지말고 한울님을 믿어셔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말가 내역시 바라기는 한울님만 전혀믿고”라고 하신 겁니다. 여기서 ‘네몸에’는 ‘네몸속무한소 무한에는’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전혀 믿어’야 한다고 한 한울님은 자기 몸속무한소무한에 갖추고 있는 ‘지기성품’인 한울님입니다. 그리고 ‘모셨으니’는 다음 글인 ‘사근취원’을 보면 ‘갖추고 있었으니’란 존재론적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의미는 ‘가까운 몸속무한소에 갖추고 있는 한울님을 버리고 먼데서 취한단 말이냐’입니다. 동학에서의 ‘모시다(侍)’의 의미를 정리해 보니 보편개념으로 쓰이는 ‘존칭’ 이외에, 단독개념으로 쓰이는 ‘몸속에 갖추고 있다‧사유하다‧기화하다’라는 3가지였습니다. 여기서는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 말입니다. 이처럼 ‘지기성품’인 지기한울님은 안쪽원인자여서 만물로 화생하고 만물속에 사람으로 화생하고 사람 몸속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몸속한울님’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몸속 한울님’이 동학의 신관의 제일의 특징입니다.
다음은 ‘몸속무한소 지기성품’에서 ‘한울님’이란 말이 비롯된 걸 보도록 합니다. 몸속무한소는 무한한 곳이요, 무한한 곳은 ‘무한하고 맑고 밝고 거룩한 곳’이요, 이런 곳은 ‘무한하고 환한 울’이어서 ‘한울’이라고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머리 위의 하늘이나 우주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무한소무한의 한울이므로 지기한울님은 늘 몸속 무한소무한에 있지 몸밖에는 없으며 있을 수도 없는 겁니다. 이 같이 몸속한울에 있는 신성한 존재가 지기성품이어서 존칭해서 ‘한울님’이 된 겁니다. 이처럼 ‘한울님’이란 말도 몸속무한소무한인 ‘지기성품’에서 비롯한 겁니다. ‘지기성품’에서 ‘한울님’이란 신칭이 나온 걸 아는 것이 동학적 사유입니다.
다음은 ‘지기성품’에서 ‘시천주 인내천’도 비롯한 걸 봅니다. ‘지기성품’이 화생해서 물질이 생명이 사람이 되고 사람몸속 무한소한울에 있어서 ‘侍天主’ 즉 ‘몸속한울님을 모시고(갖추고) 있다.’라고 한 겁니다. 나아가 ‘人乃天’이라고 한 겁니다. 엄밀히 미시적으로 보면, 본질인 ‘지기성품’이 사람이 되고 사람몸속에 있으면서 사람을 통해서 한울님으로 발현(內有降話之敎등으로)할 수 있었으므로 侍天主라 하고 人乃天이라고 한 겁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물질속의 지기성품은 그 개체성을 이루는 것에서 그치지 결코 그것을 통해 한울님으로 현현할 수 없는 겁니다. 오직 ‘지기성품’은 사람을 통해서만이 한울님으로 현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시적으로 보면 사람만이 시천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侍天主와 人乃天의 뿌리가 되는 것이 ‘지기성품’입니다. 이같은 ‘한울님성품’이 없으면 시천주 인내천도 없습니다.
다음은 ‘지기성품’에서 지기일원론이 나온 걸 보도록 합니다. 야뢰는 ‘수운심법강의’ 34쪽에서 ‘천지만물은 다 같이 至氣로 生하며 至氣로 歸하고’라고 했습니다. 이말은 ‘천지만물은 다 지기성품으로써 化生한 것이며 지기성품으로 환원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지기성품 하나로서 만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지기일원론(동65)’입니다. 야뢰는 이 같은 지기일원론을 초기에서부터 말년 작인 ‘동학지인생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기성품’을 야뢰는 ‘지기속성(신인철학29쪽)’이라 하면서 중시했으며 ‘한울님과 지기를 2위 1체(동69)’라고 하였습니다. ‘한울님’과 1체가 되므로 지기를 신적존재로 여긴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학지인생관’에서 ‘인내천신(동56)’도 거론합니다. 그래서 야뢰의 신관은 시원자인 ‘지기’와 결과인 ‘인내천신’이 됩니다. 범재신관에서는 이를 ‘양극성신’이라고 하면서 ‘과정신’을 더 중시합니다. 그래서 김상일은 야뢰 글을 인용해 동학의 신은 과정신이라 한 겁니다. 그러나 야뢰의 ‘지기일원론’에서 보는 것처럼 그가 중시한 건 ‘존재론적 지기’이지 과정적 지기가 아닙니다. 이 같은 지기일원론은 ‘천지만물이 지기성품으로 화생하고 지기성품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해서입니다. 그래서 존재자 ’지기성품‘에서 지기일원론은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지기성품’에서 ‘성심신(性 心 身)’이 나온 걸 보도록 합니다. 性은 만유의 본질을 의미하는 말이므로 동학적으로 보면 ‘지기성품’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만유의 본질을 ‘지기성품’처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제신한 글은 이 세상에 없기도 하므로 ‘지기성품’으로 ‘性’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럼 ‘지기성품’의 허령의 섭명에 의해 心이 나온 걸 알 수 있고, 일기의 섭명에 의해 身이 화출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기성품’으로서 이해해 가는 것이 동학적 사유입니다. 동학적 사유는 현대과학과 상통이 되어 보완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동학적으로 사유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현대화입니다.
다음 지기성품에서 형이상학이 나온 걸 보도록 합니다. ‘지기’는 만사만물의 근원적 존재였습니다. 이같이 만물의 근원적 존재를 다루는 학을 형이상학(존재론)이라 합니다. 그래서 동학의 형이상학은 ‘지기성품’입니다. 동학은 지기성품을 존칭해서 지기한울님‧한울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동학의 형이상학은 지기성품이요 한울님입니다. 신이 형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 자체가 지기한울님인 것이 동학의 형이상학입니다.
그럼 다음에는 이 같은 동학의 형이상학인 ‘지기성품’이 과학과 형이상학을 통해 입증되어가는 걸 보도록 합니다.
[주석]; 이 주석을 꼭 익히셔야 ‘마음과 견천’을 현대적으로 알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1)속의식; 속의식은 무엇이며 무극의 진상(眞相)을 어떻게 볼 수 있었는가를 알아봅니다.
1924년에 독일 정신과 의사 한스 벨거는 최초로 뇌파 검증으로써 뇌파가 마음과 관계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요새 뇌파와 마음의 관계를 밝힌 것이 있어 옮깁니다.
델타파(δ) 0.5~3Hz 긴 파도형 깊은 잠. 런렘 수면
세타파(θ) 4~7Hz 잔 파도형 얕은 잠. 렘 수면
알파파(α) 8~15Hz 불규칙형 이완상태. 눈을 감았을 때
베타파(β) 16~29Hz 속 파 눈을 떴을 때
감마파(γ) 30Hz이상 톱니형 긴장했을 때
*참고; Hz; 파동이 1초 동안에 같은 위상이 돌아오는 횟수./ 빛의 보라색은 1015Hz 파동.
*설명: 뇌파에 수반해 나타나는 것이 마음입니다. 뇌파의 헬즈가 적을수록 마음은 고요에 이르고 잠이 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련할 때의 각성의식은 잠 파인 세타파나 델타파에 이르러도 잠이 들지 않는데 이를 속의식이라 합니다. 허령이 뇌파에 섭명해서 마음이 된 것이고, 마음은 ‘감각·본능·감정·의식’으로 이뤄진 것이고, 이 같은 의식의 속에 있는 의식을 속의식이라 한 겁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속의식은 무극허령과 가까이 있고 닮은 데가 있어서 무극에 이르러 무극의 진상(眞相)을 보고 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므로 ‘지기성품’은 진리입니다.
2)言不得難狀;‘포덕문’에 나오는 글로, 무극에 이르러 본 한울님도인 ‘지기성품’을 의미하는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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