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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소설 수운 최제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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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경흥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961회   작성일Date 16-01-17 13:54

    본문

      며칠 뒤 수운은 대구 감영에 가서 군관을 만나 무과시험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그 중에, 매년 봄과 가을에 치르는 ‘도시’가 적합하였다. ‘도시’ 시험에 합격하면, 서울의 훈련원에서 보는 복시(覆試)를 볼 수 있으며, 또 합격하면 임금 앞에서 치르는 ‘전시’를 봐서 합격하면 무관이 되는 길이다. <도시> 시험과목은 강서(講書)와 무예(武藝) 두 가지다. <강서>는 ‘병정(兵政)·진법(陳法)·무경칠서병요(武經七書兵要)’ 중 1책을 자의로 가려잡아 강론하는데 ‘약(5점)’ 이상을 받으면 합격이란다. <무예>는 ‘나무화살, 철화살, 편전, 말 타고 활쏘기. 말 타고 창쓰기 격구’ 등이란다. 수운은 특별히 보살펴 주는 그 군관 도움으로 말 타고 활 쏘는 방법을 배웠고 그의 도움으로 군사와 병법에 관한 책인 ‘무경칠서’도 한권 샀다.

      봄이 되어 대구 감영에 가서 ‘도시’에 응시해 ‘강서’에는 ‘약 5점’을 받아 통과가 되었지만 활쏘기는 엇나갔고, 말 타고 활쏘기에서는 더 엇나가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가을 응시까지는 되익히기 알맞은 계절이요 남은 날도 넉넉하므로 제대로 익히면 붙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실상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말 타고 활쏘기를 익혀봤지만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체질이 ‘말 타고 활쏘기’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성정도 무격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져 간 거다. 그럴 짬마다 의식 속 자문(自問)의 소리를 듣는다. ‘무극대도가 활로써 사람 가슴이나 쏘려고 사람으로 화생하고, 나로 화생한 건가?’


      그는 흥해․영덕으로 넘어가는 ‘소티골 마을’을 향해 말을 달린다. 금강산 길에서 인연을 맺은 신총기 선비에게 속내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그는 세상을 내다볼 들창문을 열어준 존재여서다. 집 앞에 와보니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어서, 선비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선비가 호주가 되었구나 하는 의식이 맘속으로 스며든다.

      수운은 안마당에서 선비를 닮은 댓살 된 아들을 보고 아버님 계시냐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뒷산을 가르쳐서 그를 데리고 올라가 보니 새로 개간한 땅 너머에서 일꾼들과 갈잎을 꺾고 있었다. 수운이 다가서자 놀란 눈으로 “제선이 아닌가?”라며 손을 잡는다. 수운은 “소가 여러 마리네요?”라며 둘러본다.

      “소는 나보다 더 큰 일꾼이지. 뿐만 아니라 쓸모 있는 거름도 생산하지. 거름 중에도 쇠두엄이 제일이야. 그래도 아직 모낼 논에 거름이 턱없이 부족해서 떡갈잎을 꺾는 중이지. 벼 수확을 늘리려면 손쉬운 것이 갈잎을 밑거름으로 논에 넣는 거야.”

      수운은 먼발치로 일꾼들이 소 세 바리에 갈잎 단을 싣는 걸 본다.

      “일이 돈이야. 일하면 돈이 생겨. 요령껏 일하면 더 생기고. 그 돈이 돈을 벌어와. 봄에 장리를 놓으면 가을에 반을 더 받거든. 십 년만 하면 큰 부자가 된다고.” 그는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놈이 눈치코치 정도 알정도 되면 북경에 가 보려고 해. 가능하면 서양에도 가서 그들 학문도 기술도 배워보려고 해.”

      그러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집안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고 노자도 충분히 마련해 떠나려는 심산인 듯싶다. 수운은 선비를 보며

      “선배 꿈이 멋있네요. 나는 생계유지나 하려고 무과시험을 보다가 그나마 미역국 먹고 말았어요. 그런데 왜 가늠보아 화살을 알과녁에 맞히려는 것이 점점 싫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숨 쉬는 내 앙가슴에 대고 화살을 쏘는 것 같아 섬뜩해지기도 해요. 마음을 다잡아봤지만 잘 안 돼서 말 머리를 선배네 집으로 돌렸어요.”

      “감각의식은 알과녁을 판때기로 보지만, 관념의식은 추리·상상을 해서 사람 가슴으로 보기도 하지. 그러자 양지(良知)가 발동하여 <안 돼 !>라고 해서 활 잡은 손을 멈칫거리게 하지. 그렇게 부대끼는 마음으로 먼장질60)만 해댔으니 빗맞을 밖에 없지” 그는 말을 잇는다.

      “자네의 미묘한 마음은 퇴계의 리발기수(理發氣隨)나 기발리승(氣發理乘)으로도 설명할 수 없어. ‘리발기수’를 보면, 사유61)할 때의 현상으로 나의 근본을 살피고 만물의 근본을 살필 때의 현상이지. 이처럼 살필 짬엔 ‘리는 발하고 기는 따른다.’라는 말이 맞지. 다음 ‘기발리승(氣發理乘)’을 보면, 감각·감정인 기가 먼저 발할 때로서 짖어대는 개를 만나면 두려운 감정이 생기고 뒤따라 의식이 발하여 모면할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이처럼 ‘기가 발하면 리가 탄다’와 같은 때도 있지. 그런데 자네의 경우는 어느 상항에도 해당되지 않는 거야. 이처럼 우리 마음현상은 종전의 통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숨어 도사리며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어.”

      “나는 ‘기발리승(氣發理乘)’이 옳다고 여겨왔는데 선배 말을 듣다보니 마음의 일부 현상일 뿐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이제는 ‘사단칠정(四端七情)’에 의존하지 말고, 마음 그 자체를 대상으로 놓고 연구해야 한다고 봐.”

      그는 “내려가면서 얘기하지.”라고 말하고 자식의 손을 잡고 내려가며

      “되새겨볼 일은 마음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이미 고려 때 최무선이 화약을 만들어냈는데 조선은 임진왜란 때 활로 대적하다가 일본의 화승총에 쫒겨 함흥까지 밀려갔지 않았나. 그런데 아직도 활 쏘는 걸 중요한 시험과목으로 삼고 있다니 그런 얼빠진 짓이 어디있나. 우리도 서양과 같은 기계로 가는 배나 총포를 만들어낼 궁리를 해야 한다고. 그런 인재를 뽑는 게 먼저라고.”

      “그렇다면 무관이 되면 죽을 일밖에 없겠네요.”

      “미안하지만 그런 심증이 드네.”

      그들은 집에 내려와 멱감고 저녁 먹고 집 주위를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총기는 수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기도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왔지만, 먼저 서양의 배가 기계로 움직이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수운은 허령이 마음으로 화생한 까닭을 알아서 그에 합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게 사람으로 태어난 도리여서라고 했다. 이런 담론을 계속 하다가 밤이슬의 한기를 느껴서야 방에 들어갔다.

      

      수운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말을 타고 각다분한62)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여동생의 사주단자(납채)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환은 수운을 보자마자 올 여름이 오기 전에 동생을 결혼시키기로 했으니 좋은 일진을 날받이해보란다.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니 신랑 이름은 김진구(金振九)요 생년월일은 병술년 8월 6일 묘시였다. 오행으로 태어난 ‘년·월·일·시’를 보니 ‘화(火)’가 셋이고 수(水)가 하나여서 겨울에 결혼할 운수이다. 다시 동생의 ‘년·월·일·시’의 간지를 오행으로 대치해보니깐 수(水·물)에 해당하는 것이 2개나 나오고 또한 김진구의 시가 수(물)이었으므로 여름에 결혼해도 괜찮은 운수이다. 그리고 좋은 일진이란 좋은 날이 겹치는 날이므로 오월 초오일로 잡았다. 이를 형님에게 설명하니 좋다고 하면서 네가 ‘택일서’를 써서 내일 사둔 집에 전하라한다.

      이번 결혼의 성사는 근암 무덤 옆에 묻은 묘지명(墓誌銘)의 글을 쓴 여강 이종상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종상(李種祥)은 경주의 신라고분을 관리하는 관직인 참봉 벼슬을 할 때, 현감이 부임하여 이 고장 제일가는 유학자를 만나고 싶다니까, 근암 집에 모시고 가 근암을 뵙도록 한 사람이다. 이처럼 이종상은 근암을 존경하고 제환하고도 친하고 또한 경주 감영에 오래도록 근무해서 경주관아 철 제련의 감독을 맡은 감야관(監冶官)과도 잘 아는 사이이다. 그 감야관의 셋째 아들이 혼기에 이른 것을 보고 수운 여동생과 짝을 지어 주려한 거다. 그래서 감야관과 제환이 만나고, 서로 신랑 신부될 사람을 선보고 결혼하기로 결정한 바였다.

      그래서 수운은 ‘택일서’를 봉투에 넣어 봉해가지고 그 이튿날 말을 타고 경주 사돈될 집에 갔는데 집은 경주 관아 뒤쪽에 있었다. 신랑 될 김진구는 들은 대로 왜소한 몸매에 흰 피부의 소년인데 동생처럼 돌봐야 할 상이다. 진구는 결혼하면 울산 달천으로 분가할 거라 한다. 거기 채광장에서 출납관계의 보조 일을 맡게 돼서 그 쪽으로 살림내기로 정했단다. 진구 아버지가 감야관이므로 경주 일원의 채광·제련을 관리하고 있어서 진구도 채광장이 있는 달천에서 일하게 된 거라 여겨진다. 수운도 가을 도시에 붙어 무모한 무관이란 직업이라도 가져서 우선 독립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수운은 가을 도시 시험에서도 또 떨어진다. 역시 활쏘기 창 쓰기의 점수가 좋지 않아 불합격 처리되었다. 여전히 실전처럼 몰입해 연습하지 못한 벌이라고 여겨졌다. 그는 형이나 식구들 볼 낯이 없어서 도시에 떨어졌다는 말도 못하고 어디로 피할 궁리만 하였다. 다행이 수운은 멀리 떨어진 친척에게 세조 결혼을 알리는 일을 맡아서 그나마 겉돌 수 있어 숨통이 트이었다. 마지막으로 울산에 사는 여동생에게 알리러 간다고 내자에게 말하고는 말에 올라 울산으로 간다.

      우선 달천(달내) 채광장에 가서 김진구를 만나 채광현장을 구경한다. 김진구 말에 의하면 이의립(李義立)이란 분이 180여 년 전(1657년)에 토철을 발견하고 관 허가를 받은 뒤 여태까지 그의 뒷손이 채광권을 갖고 토철을 캔단다. 그는 같이 집에 가자며 앞장을 선다. 현장 윗녘의 사택(社宅)이 김진구가 사는 집이다. 여동생은 수운을 보자 반색하며 눈물부터 머금는다. 세조 결혼 일을 알려주니 동생 말인즉 남편은 며칠씩 자리 비우기가 어려우니 제가 가겠단다. 동생 얼굴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지만 참고 견디는 꼴이 아니라 제 고집대로 밀어제치고 마는 관철 형이다. 동생이 사주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도 졸라대서 대충 가르쳐줬는데 그 뒤 혼자 공부하고 묻더니 달내에 와서는 동리사람들 사주를 봐 주기 시작해 그 감정지(鑑定紙)가 수십 장이 넘으면서 인기 있는 경주댁이 되어있었다.    

      수운은 그 이튿날 경주 불국사 아랫마을에 들려 ‘풍류노인’을 찾았다.

      수운은 그간 결혼하고 무과시험에 낙방한 것을 남 얘기하듯이 아뢰었다. 노인은

      “두 번이나 떨어진 건 그만두라는 거 아니냐” 한다. 그러면서 “흘러가는 물은 흘러가는 물에 맡기듯이 그렇게 맡기는 것이 풍류야. 날이 밝아지면 일하고 저물면 자는 것이 풍류야.”라고 말하시고는 그만 자자고 한다. 수운은 이부자리를 펴면서 노인의 말뜻을 되새겨 본다. 그러면서 무극허령이 마음으로 화생한 까닭의 이야기를 꺼내봤자 판이 달라서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입을 다문다.

     

      60)먼장질:  먼발치에서 총이나 활을 쏘아대는 일

      61)사유:  논리적으로 헤아림

      62)각다분한: 일을 해나가기가 고되고 지루하다.

      16. 1. 17. 길로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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