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3회;신의 감박감박거림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3회;신의 감박감박거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하경숙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546회   작성일Date 16-02-11 09:45

    본문

               3회;신의 감박감박거림

    이런 하나님이 더 인격화하여 수운에게는 서교의 야훼같이
    직접 대화하는 존재가 된다.
    즉 수운은 "하날님의 힘을 빌려서 개 같은 왜놈들을 하룻밤
    사이에 물리쳐 달라"고 주문을 외운 것과 그 맥이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단주;<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제석에게 비는 기도문에도 제석의 마력을
       빌려서 왜적과 몽고군을 물리쳐 달라고 비는 내용이 있다.고려시대에는 외부의
        병란이 가장 많았다.제석신앙은 국난타개라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었으며,이는 수운에게 와서 보국안민 사상으로 발전하는 연원이 된다.))

    여기서 '하나님'과 '하느님'의 비교를 논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One'을,'하느'는 'heaven'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늘'은 '땅'에 대칭되는 남성원리를 상징한다.
    남성과 여성원리의 통일이란 관점에서 볼 때 '하나'가 '하느'보다
    더 발달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예수의 신관이고 후자는 모세의 신관인데,
    하느님과 하나님은 모두 그 어원이 '한'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때 '한님'으로 신의 이름을 바꾸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인도-유럽적 신관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남성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버지 하느(나)님'이 이제 우리의 고정 관념이 되어 버렸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적 신학의 수립은 유럽적 균열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의 고유한 신 개념을 회복시켜야 한다.
    유럽적 균열은 몸과 마음,자연과 인간,여자와 남자의 균열을
    심각하게 초래하여 마약,생태학의 위기,성 차별화를 일으켰다.
    한국적 신학의 과제는 유럽적 균열을 치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서구의 병든 신학을 수입하여 오염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하느님'에서 '하나님'으로 변하는 것은 먼 위치에 있던 신이
    인간과 하나될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천도교측은 '하느님'이나 '하나님'모두 잘못된 명칭으로 본다고 했다.
    천도교측에서 주장하는 '한울님' 또는 '인내천'은 동학측에서 주장하는'하날님'또는 '시천주'보다 한결 발전된 신관,
    즉 보신에서 '법신'으로 발전된 신관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도교측에서는 "모든 종교를 통일할 수 있는 최후종교가 바로 인내천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세권은 천도교측이 일본 '최후종교론'을 내세워 인내천주의야말로 최후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한다.

    여기서 과연 '최후종교론' 자체가 가능한지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의 태양 '밝'신도 아니고 땅의 '감'신도 아닌 이 두 원리가 하나된
    '하나님'이 최후종교의 신이란 뜻이다.
    사실 기독교가 신을 하늘에 매어두고,원시종교는 땅에 메어두고 있는
    마당에 한국의 '하나님'은 거의 최후종교의 신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맴돌이의 횟수가 문제이다.
    과연 어느 단계의 횟수에서 하나가 되었느냐가 문제이다.

    사실 많은 범신론 가운데는 이러한 하늘과 땅이 하나라는 신관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천지왕복의 횟수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왕복의 맴돌이는 무시무종의(처음과 끝이 없는)과정이기 때문에 최후종교란 있을 수 없다.
    신은 하늘과 땅 사이를 왕래하면서 자기창조를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모두 자기의 몸 그 자체이다.
    자기 집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마치 한 몸의 氣가 순환해야 건강이 유지되듯이 신이 하늘 땅 사이를 오르내려야 한다.
    이렇게 기를 순환시키는 것이 귀신의 '굴신'작용이다.
    그래서 수운의 신은 귀신이고 至氣이다.
    지기를 여기에 '今至'시키는 것,그리고 천주를 몸에 모시는 것 모두가 이런
    귀신의 굴신작용이며 이를 '행동'하는 '하는님'이라 하는 것이다.

    신의 맴돌이 현상에 관하여 1910년 야뢰 이돈화는 '천계와 인계와 통하지 못하고
    인계와 천계가 통하지 못하니 하늘이 조화를 감추고 그 사람을 기다린다.<천도교회월보>
    고 하여 天人이 불통하는 원인을 물질에 얽매이는 '물자관념(물질관념)'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이세권은 비판하기를 인내천주의로 가기 위한 길닦기 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나 야뢰는 천인이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최후종교를 완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후종교란 없으며 천인이 서로 왕래하는 '하는님'이 궁극적일 수밖에 없다.
    화가의 궁극성이 자기에게도 그리려는 대상에게도 있지 않은 '그리는 것(brawing)'자체에 있듯이 말이다.

    신은 귀신으로 굴신작용을 하며 자기창조와 자기조직을 한다.
    우주는 자기 몸이다.
    그래서 어디 가고 올 것이 없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가 하늘에 있다 또는 땅에 있다,남자다 또는 여자다고 말하고 있다.
    하는님은 맴돌이하는 과정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다.
    '하는님' 신관만이 그래서 페미니즘의 비판에 대응할 수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