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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서울역사박물관 세미나에서 노태구 교수의 평화통일의 정치이념 발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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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순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685회   작성일Date 16-02-10 13:13

    본문

       


            평화통일의 정치이념과 실천, 三均主義




                                                 盧 泰 久(민족사상연구소 소장)








                                목      차




    Ⅰ. 서언: 평화통일을 위하여


    Ⅱ. 素昻의 六聖敎를 통해보는 神觀(世界觀)


     1. 소앙의 정치사상적 배경: 「神誌秘詞」, 「발해경」으로


     2. 소앙, 수운, 화이트헤드의 神觀(세계관)에 대해




    Ⅲ.  三均主義의 정치이념


    Ⅳ. 民族唯一黨운동ㆍ民族革命黨ㆍ全國聯合陣線協會ㆍ한국독립당


     1. 民族唯一黨운동


    2. 民族革命黨ㆍ全國聯合陣線協會


    1) 民族革命黨


      2) 全國聯合陣線協會


     3. 한국독립당




    Ⅴ.單政反對ㆍ단정참여와 삼균주의


     1. 單政反對


     2. 단정참여와 삼균주의




    Ⅵ. 사회당결성과 삼균주의


    Ⅵ. 결론: 행동하는 지성으로














    Ⅰ. 서언: 평화통일을 위하여


      세계 일류국가 건설의 꿈을 나누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확산되어있는 정치ㆍ사회적 혼란상을 극복하여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루어내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는 복잡해지고 국민의 기대는 커졌는데 정치제도와 리더십이 못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 리더십에 대한 전례없는 신뢰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과제다. 망국적인 헬조선병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정치ㆍ경제ㆍ교육 제도 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는 소앙선생의 삼균주의에 주목하게 된다.


      인간이 원시사회,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많은 지식과 기술을 발견하여 누적시켜왔다. 그 덕에 경제발전으로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삶의 질을 높여온 것은 사실이다. 특히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학예 부흥, 14-16세기)이후 발전해온 학문이 세분화를 거듭하면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풍요롭게 축적되어 인간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식이 축적되면 될수록 아이로니컬하게도 어려운 문제들은 더 많아지고 해결방법은 알지 못한 채 위험성은 더 커져서 세상을 불안하게 만드는 모순과 역설, 이것이 바로 문명의 역설(Paradox)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원자력을 연구하여 핵무기를 만들었지만 핵전쟁이 몰고 올 가공할 위헙성과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떠밀려가고 있다. 경영경제학은 발전하여 기업들은 천문학적 돈을 벌고 있지만 날로 성해지는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문명의 Paradox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결국 리더십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이런 역설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리더로서 문제 해결에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융ㆍ복합시켜낼 수 있는 능력과 열정,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해낼 수 있는 소통과 끝장토론의 달관, 그리고 과감한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으면 문명사적인 Paradox를 해결하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1) 따라서 우리는 그런 리더십을 육성하는 데 있어서 삼균주의이념의 실천에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삼균주의 평화통일의 정치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가란 민족의 총체, 즉 그 집합체를 말하며 또는 국제라고도 한다. 국가의 문화는 그 국민의 정신 영혼이다. 무릇 한민족의 역사‧문화는 그 민족의 영혼 정신이다. 고어에 애막대어심사(哀莫大於心死: 슬픈 것이 마음 죽은 것보다 큰 것이 없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을 공(攻)하는 것이 사람의 성(性)을 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정치란 국가를 통치하는 것으로 국민의 이익을 기초로 하여 정권을 민주적으로 균등화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민주, 민권, 民有, 民享 등을 미국에서는 인민으로 된, 인민이 소유한, 인민을 위한(by the people,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등의 정치적 주장에 기인한 원리를 말한다. 그리하여 이는 민중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동서고금의 민주주의의 원리로 불변의 원칙이 된 것이다.


      또 무릇 정치란 경제의 독립과 교육의 독립을 동시에 해결하여야 한다. 또 정치단체는 ‘주의’로써 생명을 삼으며 ‘정강’으로 골간을 삼고 정책으로 혈액을 삼는다. 그중 주의가 가장 중요하다. 일정한 주의가 없는 것은 정당으로서 가치가 없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독립당은 ‘對日독립’으로서의 주의를 삼는다고 말한다.


      주의, 정강 면에서 대소의 차이를 가진 두 개 이상의 단체가 혁명공작의 과정적 시간적인 횡적 합작이 연합이다. 그러므로 종래의 모든 당파적, 대립적 관계를 초월하고 일정한 과정적 연합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연합조직문제의 적극적 의의는 운동의 전체적 발전을 유력하게 함에 있고 그 소극적 의의는 과거 운동의 모든 모순과 악폐를 구제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독립당이 내거는 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한 생활을 주의로 삼는다. 어떻게 하여야 사람과 사람이 균등할 수 있는가? 정치균등화, 경제균등화, 교육균등화다. 보통선거제를 실시하여 정권을 안정시키고, 국유제를 실행하여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비의무교육제를 실행하여 교육을 안정시킨다. 이것으로 국내의 균등생활을 실현한다. 민족과 민족의 균등은 어떻게 하여야 이룰 수 있는가? ‘민족자결’이다.2)


      우리가 조국을 광복한 후에 어떤 체제의 국가를 건립할 것인가. 옛날의 귀족과 양반을 그대로 모셔다 놓겠는가. 아니다. 과거 어떤 시대에는 군주전제정치를 필요로 한 일도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20세기 50년대에 와서는 그러한 구제도는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17,8세기부터 구미에서는 인권운동이 대두되어 혁명의 피를 흘린 일이 많다. 그리고 그들이 성공한 때에는 민주공화국 즉 데모크라시의 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러면 현재 우리의 이상 중에 있는 민주국가가 17,8세기에 구미에서 건립된 그 데모크라시 국가인가. 그것도 아니다. 당시 그들의 성공으로 인하여 건립되었던 데모크라시는 상승기 자본주의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노사 간의 극도의 갈등과 모순을 내포한 제도를 산출하여 놓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제도를 건설할까.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신 민주국, 즉 뉴 데모크라시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신 민주라 함은 민중을 우롱하는 ‘자본주의 데모크라시’도 아니며 무산자 독재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데모크라시도 아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범한민족(汎韓民族)을 지반으로 하고 범한국국민을 단위로 한 삼균주의의 全民的 데모크라시다.




    Ⅱ. 素昻의 六聖敎를 통해보는 神觀(世界觀)


     1. 소앙의 정치사상적 배경: 「神誌秘詞」, 「발해경」으로


      소앙의 정치사상적 배경을 밝힘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동서양의 기성종교에 대한 종교관(세계관)이다.3) 한말의 역사에 너무도 절망한 나머지 구국종교를 통해서만 독립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앙은 육성교(六聖敎)라는 독자의 국교를 구상한 것 같다. 一神이외 十相이 있어 그때그때에 현현하니 단군(독립자강), 부처(자비재중), 공자(충서일관), 소크라테스(지덕합치), 예수그리스도(愛人如己), 마호메트(信行必勇)등의 6대 성인이 모두 神子요 신의 聖名일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가 육성일체, 만법귀일, 금식명상의 종교를 구상한 것은 1914년 1월 15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기성종교, 기성사상의 개조나 근본진리를 하나의 구심점에 연결시켜 포괄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것은 이미 중국의 강유위, 양계초 등에서부터 유행하였다. 더구나 동학이 유ㆍ불ㆍ선 3교합일에서 출발하여 대종교ㆍ대세력으로 나타나자, 한말의 몇몇 사람들도 이를 본따, 동양3교나 동ㆍ서양 모든 것을 종합하여 모든 싸움을 종결짓고 전 민족을 단합시킬 수 있는 새 종교를 구상하였던 것이다. 한 가지 흥미를 끄는 것은 그가 특히 단군을 육성 중 제1위에 놓았다는 것과, 대부분은 잘 생각지 못한 마호메트를 여기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단군을 먼저 둔 것은 1909년 1월에 나철이 단군교를 개창하고, 그 이듬해 7월에 대종교로 개칭하면서부터 재만(在滿) 독립운동가와 국내외의 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단군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진 정신적 상황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구나 대종교 결정으로 「삼일신고」(1912년간), 「신단실기」(1913년 저술), 「회삼경」(1911-1915년 집필) 등이 나오고, 만주에 대종교 중심의 독립운동단체로 중광단(重光團, 1911)이 조직되고, 1916년에 나철의 구월산 순교가 있은 후로 단군신앙은 망국민족의 정신적 지주로 굳어져 갔다. 따라서 소앙도 이에 공명하여 “건국절 단군소사 연고(演稿”를 통해 『신지비사(神誌秘詞)』를 다루었다. 1922년 봄에는 대종교가 주장하는 발해 고왕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大野勃)에 가탁한 「발해경」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종교와 많이 접촉하고 큰 감명을 받은 것은 1918년에 그 자신 만주로 가 대종교도인 이시영, 김좌진 등과 「대한독립선언」을 기초하였을 때이다. 서명자 39인 중 대종교도는 과반수였다. 뒤에 삼균주의의 이념적 근거를 단군의 ‘홍익인간’과 신지비사의 ‘수미균평위 흥방보태평(首尾均平位 興邦保泰平)’에 둔 것은 이러한 사정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호메트에 대한 관심은 육성교구상에 있어 마호메트에게 <위이지수비례물취(爲爾之手非禮勿取)>와 <신행필용(信行必勇)>을 대응시켜 그의 행동성과 용기를 산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20대의 청년으로 나라가 망하는데도 모두가 말씨름만 할 뿐 행동하지는 못하는 것을 보았고, 나라가 망한 뒤에는 대부분이 체념, 절망할 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슨 일에든지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민족성의 약점을 절실히 체험한 그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가 행동의 용기를 얼마나 갈망하였는가 하는 것은 「발해경」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대야발의 계시에 가탁한 경문 속에서 용(勇)을 도지종시(道之終始)라 하고, 용에는 순인불이(純而不二)의 천지지용(天地之勇)과 용지의대의(勇之義大矣)의 성인지용(聖人之勇)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기성 종교ㆍ기성 사상이 내세우는 제가치, 즉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자(慈) 등을 모두 용에서 연역하고 용으로 귀결시켜 일종의 용기의 형이상학 같은 것을 서술하고 있다.


      절망한 민족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행동성이 박양한 민족성의 약점을 지양하기 위하여, 그는 무엇보다도 용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용기의 종교로 이슬람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소앙의 <육성일체>의 발상법은 철학ㆍ사상ㆍ과학과 더불어 종교의 신관에도 적용되어 유ㆍ불ㆍ선ㆍ기의 동양철학뿐만 아니라 서학의 세계관까지 원용하려고 하였다.




    2. 소앙, 수운, 화이트헤드의 神觀(세계관)에 대해


      소앙(삼균주의)의 신관(세계관)에 대해 수운(최제우)과 화이트헤드를 비교하면서 평화통일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자.4) 화이트헤드는 전통적 형이상학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러나 그는 창조적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을 통해 관념이 모험을 해나가는 것이 형이상학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형이상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생성되어 존재로서의 신을 새롭게 도입했다. 그는 형이상학이 불완전하고 검증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러나 형이상학이 없으면 문명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그의 철학체계 속에 신을 도입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소앙과 화이트헤드는 그 형이상학에 대한 입장과 신에 대한 입장이 유사하다. 수운이 찾은 인격신이 바로 단군대황조가 명을 내리는 상제, 즉 천주이다.5)


      주자의 성리학은 ‘天卽理’라 하여 천을 형이상학적 ‘이’와 일치시켜 놓았다. 주자에게 형이상학은 ‘천’을 이(理)법적으로 비인격화해 버렸으며, 이러한 천을 천주로 바꿈으로써 수운은 도리어 인간의 구체적 삶에 가까운 인격적인 것으로 신을 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반대한 것은 ‘天’이었지 ‘天主’가 아니었다. 그가 천을 천주로 바꾼 원인도 천이 바로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동양사상사에서 볼 때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는 수운의 말 그대로 하ㆍ은ㆍ주 삼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천주도 개벽이후 할 일없이 공도 세우지 못하고 지내다가 수운을 만나서 이 일을 해냈다고 했다.


      신인합작적인 신(상제)에 대한 이런 표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드문 일이다. 이는 동학을 창도한 수운은 그가 지은 주문에서 ‘至氣’를 첨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수운은 양 방향적 작업을 한다. 동양 전통의 ‘기’에는 ‘지’를 첨가하여 더 철저하게 추상적이며 궁극적이도록 했고, ‘천’에는 ‘주’를 첨가하여 더 구체적이며 인격적이게 했다. 천을 모신다고 하여 ‘시천주’로 했다.


      이 양 방향적 작업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21자 주문 속에 넣어두었다. 앞으로 인류의 정신사는 수운이 해놓은 이 양 방향적 작업을 더 풍부하게 확장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권시서(萬卷詩書)의 모든 내용이 이 21자 속에 다 들어있다는 수운의 강조는 다름아닌 그의 양 방향적 작업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화이트헤드도 적극적으로 형이상학을 도입하여 창조적 상상력으로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20C 사상가로서는 예외적으로 ‘행’을 언급한 철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신은 전통 기독교의 신처럼 완전히 인격적인 신은 물론 아니다.


      그는 God을 도입할 때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으며, 그래서 신을 ‘창조성의 피조물(creature of creativity)’이라고까지 했다. 이는 수운이 천주에 지기를 결부시킨 것과 그 의도가 다를 바 없다. 화이트헤드에게는 신(god)은 반드시 창조성(creativity)과 결부되어 말해져야 한다. 여기에 수운과 화이트헤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두 주문 속에 있는 ‘천주’와 ‘지기’라는 말은 바로 화이트헤드의 god과 creativity 개념과는 잘 맞는다는 것이다.


      전통신학의 초월신관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교회 측과 1960년대 일어난 일련의 신학운동과는 숙명적으로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신학으로 발전시킨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 신을 창조성의 피조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신관을 두고 초월과 내재의 논쟁과 다를 바 없다. 초월이냐 내재냐 유일론적이냐 범신론적이냐의 논쟁은 신관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있어 온 논쟁이다.


      화이트헤드는 수운과 같이 철학을 종교적으로 의식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수운은 화이트헤드와 같이 자기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상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같아서 만남을 통해 서고 상보할 수 있으며, 그 만남은 앞으로 동서양을 포괄하는 ‘세계철학(world philosophy)’의 구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신서학’이란 1960년대의 反형이상학적 신학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화이트헤드를 중심으로 한 과정철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좁혀진 의미 안에서 신서학과 동학의 대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니체의 신 죽음 이후 서양신학은 전통신학의 대체 신학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1960년의 신학은 ‘운동’차원에 머물고 말아 체계적인 신관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정신학은 과정철학의 형이상학을 배경으로 지금 현재 더 이상 대안이 없을 정도의 신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동학은 구한말에 대종교는 일제시대에 민중과 민족의 한을 품고, 또한 동양적인 모든 아픔을 한 몸에 안고 태어난다. 동학ㆍ대종교의 신관 또한 변해가는 시대상황과 거기에 대처하는 수운을 비롯한 동학당의 생명을 담보로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태동한다. 조용한 대학의 강의실에서 태어난 과정철학과는 태생 과정부터 다르다. 그래서 동학의 이론은 구체적인 상황과 실천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한민족과 인류정신사에 불후의 사상적 진수를 남겨 21세기 민족의 대안적 사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수운의 동학사상이야 말로 민족의 전통사상을 이어받은 살아 있는 사상체계로 보며, 21세기 마래와 세계 앞에 나아갈 유일무이한 우리의 사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학의 초학 두문에는 ‘고아정(顧我情)’과 ‘시천주(侍天主)’를 병행하여 말하고 있다. 극객관의 통일 및 불교의 보신과 업신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후대에 와서 학자들이 어느 하나 만을 강화하는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신관의 초월과 내재의 논쟁은 하나의 민족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고 있다.


      동학사상의 전개과정은 어느 하나라도 피와 눈물이 스며 있지 않은 것은 없다. 비운에 먼저 간 두 교주들의 모습을 본 의암의 심경이 어떠했을지 짐작은 가지만, 일제에 타협해가면서 종단을 지켜야 했을 심경은 참담했을 것이다. 신관논쟁은 교권과 정치를 떠나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학문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신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던 도성에 김상헌의 척화자와 최명길의 수호자로 나뉜다. 원칙을 지키자는 척화자와 상황에 변통해야 살아남는다는 주화파로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한다. 척화파는 주자학이, 주화파는 양명학이 그 사상적 배경이 된다. 의암은 최명길 다음으로 양명학적 입장에서 그 사상적 배경이 된다. 그의 인내천사상도 양명학의 심학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그의 행동과 사상은 일관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상황윤리가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인내천이란 말은 포덕 52년(1911년) 일본에서 출판 간행된 ≪대종정의≫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인격신관은 절박한 역사 환경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생겨나기 마련이다.


      중동지역의 척박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하는 ‘사막형 종교(desert religion)'인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초월적 유일인격신관이 발달하여 자연이 아닌 ’역사‘와 ’인간‘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일대의 숲과 산이 많은 지역에 등장하는 ’수림형 종교(forest religion)'에서는 범신론적인 신관이 발달하여 역사가 아닌 ‘자연’이 중심이 된다. 한국은 사막형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고난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민족은 유대인들과 같이 그 가슴 속에 역사 속에 살아있는 인격신을 간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역사적 이유와 함께 원시종교로부터 유래한 하날님 숭배사상이 그대로 지켜져 왔으며 중국이나 일본과도 달리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유교와 불교에 의하여 수천년 동안 잊혀져 온 ‘하날님’ 인격신을 수운이 다시 발견하였으며 역사의 현장에 살아있는 신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서양은 니체 이후 초월인격신관에 대한 거부현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구한말 조선에서는 그 반대현상으로 우선 실학자들은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에 담긴 천주교의 초월신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수운의 인격신관 수용방법은 실학자들과도 달랐다. 초월인격신관과는 전혀 다른 범신론적 요소가 가미된 범재신론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범신론(pantheism)은 범재신론(pan­en­theism)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즉 범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다(all is god)"는 것이고, 범재신론은 ”모든 것이 신 안에 있다(all is in god)"는 경우이다. 과정신학의 신관은 범재신론적 신관이다. 그리고 핫츠혼의 초월적 신관의 ‘유신론(theism)'과 범신론을 결합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의 김경재는 동학의 신관을 범재신론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김상일은 천도교의 인내천신관은 “All is in God and God is in All"이라며,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한국의 신관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김상일 교수는 개같은 왜놈을 하룻밤에 물리치기 위해 하날님 조화를 받아야 한다고 <안심가>에서 말한 수운의 신앙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훼신과 같이 강력한 기적을 발휘해 추적하는 이집트 군인들을 수장시키고 홍해바다를 무사히 건너게 해달라는 기도와 다를 바 없는 신앙형태인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수운이 기독교의 초월 인격신관을 그대로 수용해 말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운은 서학의 신관에 대하여 “천주당 높이 세워 거소위(擧所謂)하는 도(道)를 천하에 편만(遍滿)하니 가소절창(可笑絶唱) 아닐런가” 하면서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고 했다. 저절로 화하는 것이 있는 신관이다. 즉 범신론적 요소가 빠진 단일구성적인 초월적 기독교 유신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수운의 입장이다. 유대교-기독교의 서학의 인격신관은 가는 곳마다 공략하고 쳐부수고 빼앗고 갈등을 조장해왔다고 수운은 보았다. 인간의 역사를 파괴하다 못해 이제는 자연까지 파괴하고 있다. 인격신관과 초월신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의 극만을 신관에 적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틀린 것(wrong)’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partial)’이라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侍天主(일신관)와 人乃天(범신관)은 신의 양극성을 조화롭게 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래서 동학사상의 체계는 대종교와 더불어 21세기 미래의 신관으로 그 우수성을 과시하게 된다.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소앙의 신관은 주자의 성리학과도 구별되는 서화담계의 주기론에 주목하여 유기설(惟氣說)이라는 것이다. 소앙은 자신의 입장을 ‘소앙유기설’로 하여 유기론을 전개했다.6) 그는 유리, 유물, 유심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의 종교관의 목적은 종교ㆍ철학 상의 모든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3의 개념으로 모든 것을 지양하고 포괄하려는 데 있다. <육성교>의 발상법이 연결되어 충분히 종합적이면서 남달리 용기의 덕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앙의 기설은 서화담의 입장을 따르되 그것을 근대과학의 원자론으로 보충하여 설명하였고 유물론의 입장을 취한 듯하되 정신적인 것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였으며 사리ㆍ편견을 떠나 호연지기와 미ㆍ의ㆍ지ㆍ용등의 덕목으로 매듭짓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앙의 신관은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범재신관으로 자본주의의 세계관인 유심론과 공산주의의 세계관인 유물론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표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소앙의 신관은 천도교나 대종교의 범재신관적 체계로 인간중심의 새로운 ‘인간론’적 세계관(신관)의 육성교를 만들어 이를 정치ㆍ종교적 신념으로하여 식민지 독립운동과 남북통일을 주도해가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물론과 유심론의 세계관에 기초한 남북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대 이데올로기를 대립물의 통일로 지양(止揚)한 민족의 전통사상에 기초한 삼균주의의 육성교의 인간론적 세계관으로 평화 통일을 견인해가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다음에 소앙의 정치이념과 삼균주의에 기초한 각종정당의 전개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Ⅲ. 三均主義의 정치이념7)


     1. 복국(復國)의 人ㆍ族ㆍ國의 3권


      임시정부는 혁명적 삼균제도로서 복국과 건국을 통하여 일관한 최고복리인 정치‧경제‧교육의 균등과 독립‧민주‧균치의 3종방식을 동시에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삼균제도로서 민족의 혁명의식을 환기하여 국내의 민족의 혁명역량을 집중하여 광복운동을 실시하며 장교와 무장대오를 통일 훈련하여 상당한 병력의 광복군을 곳곳에 편성하여 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일반적 독립국과 같이 민주정부 자유사회의 형식만을 건립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상적 생활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정‧경‧교 삼대제도의 철저한 혁신제도의 건립을 갈구한다. 권(權)‧부(富)‧지(智) 삼권은 인류의 중심문제이니 초보로 상당한 수준에 재고하기에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최고수준으로 최균 최평한 수준에까지 제고할 것을 유일한 임무로 한다. 그러므로 정‧경‧교 본신의 수립‧발전을 통하여 균권‧균부‧균지의 궁극적 목표로 나아간다. 개인‧민족‧국제의 삼권은 당의 집행자의 주체이며 동시에 당의 적용의 대상이다.  인‧족‧국의 기본요구가 개인 대 개인의 균생문제 즉, 정신상ㆍ물질상ㆍ생활수준의 균등을 요구한다. 이것이 적용상 초보이며 종점이 될 것이다.


     민족 대 민족의 자결권 실행문제가 다음으로 인류과정 중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① 한 개 민족이 불합리한 소속국가로부터 자유로 이탈하는 권리. ② 새로 이탈한 일개 민족이 자유로 건국하는 권리. ③ 이미 이탈한 1개 민족이 자체의 정치, 군사, 경제, 외교 등 건국강령을 자유로 결정하고 다시 타국에 복속치 않을 권리 등의 삼종 내용을 포괄하여 민족자결로 나아간다. 소위 민족 대 민족의 평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함에 각종 문제가 있지만 피압박, 피정복의 민족 본신문제로는 이상의 삼종 내용을 최저한도의 요구조건으로 본다.


      국가 대 국가의 평등권은 이미 국제법상 결정한 소위 독립권, 대내 주권행사자유권, 생존권, 자기보존권, 자위권, 평등권, 존엄권, 국제교통권, 공사권, 대외국민보호권 등이 그것이다. 이들 권력은 국가의 대소와 강약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매 일개 국가가 실제로 향유하여 침탈에서 해방하자는 것이 최저한도의 국가 대 국가 즉 국제적 요구로 본다.


      다시 말하면 개인관계의 균생, 민족관계의 자결, 국제관계의 완전한 평등적 주권행사는 아직까지도 인류사회의 필수과정으로 잔존하기 때문에 이것을 실시함에 투철한 태도와 결정적 정책을 단행하자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국토와 주권은 완전히 광복되지 않았다.8) 우리 배달겨레는 민주주의에 의한 혁명적 수단으로 국토와 주권을 완전히 광복하고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신 민주국을 건설하여서 안으로는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을 확보하며, 밖으로는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실현하고, 나아가 세계일가의 진로로 향하여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독립국‧민주정부‧자유사회의 제도만을 건립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경제‧교육의 삼균제도를 철저한 혁명방식으로 건립할 것을 주장한다. 권, 부, 지 3종은 인류의 중심문제이니 정‧경‧교 본신(本身)의 수립발전을 통하여 균권(均權)‧균부(均富)‧균지(均智)의 궁극적 목표로 돌진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 민족, 국가에 관하여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즉 개인, 민족, 국가의 기본요구는 무엇인가? 개인대 개인의 균생문제, 즉 정신상, 물질상 생활수준의 균등을 요구한다. 다음 민족 대 민족의 자결권 실행문제가 인류과정 중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다. 자결의 내용은 민족 간의 평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9) 국가 대 국가의 평등권은 국가의 대소와 강약을 불문하고 일률평등으로 매 일개 국가가 실지로 향유하여 침탈에서 해방하게 하자는 것이 최저한도의 국가 대 국가 혹은 국제적 요구로 본다.


      그리고 복국(復國) 단계에서는 정치, 경제, 교육의 3대 문제를 일보 또 일보씩 균권‧균부‧균지의 방향으로 추진, 예비하여 계획함에 용감한 혁명적 수단을 발휘하여야 한다.




    2. 건국(建國)시기의 三均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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