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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중노소문답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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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윤석산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280회   작성일Date 16-02-06 17:47

    본문

    오래 전의 일입니다. 어느 교역자가 말하기를, 대신사께서 금강산에서 태어나신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그 연유를 물으니, '몽중노소문답가'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경전에 거짓이 있을 수 있느냐. 그러니 대신사께서는 분명 금강산에서 태어났다는 말씀입니다. '몽중노소문답'를 읽어보면 혹 그렇 수도 있습니다.


    대신사께서 쓰신 용담유사 여덟 편은 歌辭作品입니다. 가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 형식에 제한이 없이 길며, 또 悠長하기 때문에 어떤 가르침의 말씀이나 敎義를 담기에 적합한 문학 양식입니다. 가사의 첫작품은 학계에서 교려말의 나옹화상의 '西往歌'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가사는 스님들이 불교의 가르침을 담아 불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처음 쓴 문학양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후 조선에 들어와서 가사는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儒學的  敎義를 담는 문학양식으로 채택이 되었고, 또 중간에 스님들이 자신들의 교의를 담는 양식으로, 나아가 庶民들이 서민의식을 담는양식으로 채택이 되어 서민가서로, 또 여성들이 규방가사, 또는 내방가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서학이 들어오면서 천주가사가 나오는가 하면, 개화기에 이르러서는 개화가사가 나옵니다.


    이렇듯 가사라는 문학양식은 유학, 불교, 서민, 서학, 여성, 개화 등 다양한 사유와 이념을 담아 세상에 알리기에 아주 좋은 형식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이러함을 잘 간파하신 대신사께서도 그 가르침을 세상의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또 쉽게 펴기 위하여, 가사라는 문학 양식을 택하시고, 용담유사를 쓴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용담유사가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가사라는 문학작품임에 유념을 해야 할 줄로 압니다.


    이런 문제와 함께 생각할 것은 '몽중노소문답가'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어떤 假想의 세계를 비유하여 문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꿈', 곧 "夢"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우리나라 고전의 '夢遊錄'에 해당되는 모든 글들이 그렇습니다. 또 '夢'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소설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가 하면, '夢中' 하는 제목을 붙인 가사작품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때의 일들은 실제가 아니라 假想의 일이며, 또 비유된 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문학계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따라서 '夢中老少問答歌'는 꿈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제시하므로, 대신사께서 말씀하고 싶은 것을 비유로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학적 전통이나 흐름을 알지 못하고,  '夢中老少問答歌'에 나오는 일들을 모두 현실에서, 그러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신사께서 금강산에서 태어났다거나, 14살에 금강산에를 가셨다거나 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정경홍 선생님께서는 대신사께서 금강산에서 태어났다는  '夢中老少問答歌'의 기록은 믿지 않으면서, 14살에 금강산에를 간 것은 믿으려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내 나이 십사 세라.'한 부분에 관해서 이론이 매우 많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의 나이를 15세를 成童이라고 해서 이제 어른의 모습을 갖춘 아이로 취급을 합니다. 그러니 14살은 아직 成童이 되지를 못한 어린아이에 해당이 되는 나이입니다.  '夢中老少問答歌'에서 話者가 스스로 십사 세라고 한 것은 아직 成童에 이르지 못한 어린아이임을 강조한 것이며, 그러므로 앞 길이 만리와 같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암시한 표현입니다.


    또한 이 가사의 제목인  '夢中老少問答歌', 즉 '꿈속에서 나이가 높은 노인과 어린 소년이 서로 문답을 주고받는 노래'라는 것으로 보아도, 이 가사 속의 話者가 아직 큰 아이, 곧 成童이 되지 못한 십사 세의 어린아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대신사께서 사시던 시대에는 이와 같은 관념이 지배하던 때이기 때문에, 대신사께서 꿈 속에서 어느 노인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아직 어린아이라는 의미에서 십사 세라고 말씀한 겁니다. 즉 제목에서 말하는 老少의 少를 나타낸 표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용담유사는 천도교의 경전입니다. 그러나 그 경전의 말씀을 歌辭라는 문학의 형식을 빌려 담아놓으셨습니다. 특히 다른 많은 가사작품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종교적 敎義를 담기에 가사라는 문학양식이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대신사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歌辭에 담으신 겁니다. 그러므로 동학도인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쉽게, 또 설복적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셨던 겁니다. 이와 같은 여러 특성을 고려하고 경전에 임해야 할 줄로 생각이 되어 이렇듯 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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