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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세상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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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하경숙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117회   작성일Date 16-03-08 09:34

    본문

               "너희는 세상의 빛?"

             다음 글은 '동학정신'의 기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새삼 다시 깨우쳐주는 내용이 있어 우리 모두가 함께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소개해봅니다.
              또한 우리 고유의 신비적 얼을 되새겨주는 역할도
              하리라 믿는 구석도 있기에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매체 가운데 구리는 전류의 흐름을
    가장 적게 방해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류의 매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구리도 이상적인 매체일 수 없다.
    그러면 매체 없이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수면파는 물을 매체로 전달되고 음파는 공기를 매체로 전달된다.
    여기서 우리는 소유권에 해당하는 매체가 전달되는 주체인 자체권을
    훼방하기 때문에 매체 없이도 전달되는 것을 생각해보니 않을 수 없다.


    그런 것이 있다.

    수면파와 음파는 매체 없이는 전달될 수 없지만 '빛'은 가능하다.
    자기자신이 자신에 대하여 매체이기 때문이다.
    매체가 도리어 전달되는 데 방해자 노릇도 하기 때문에 매체 없이
    전달되는 빛만큼 아직 빠른 것은 없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빛의 제국'이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빛은 자기가 스스로 매체가 되어 전달된다.
    빛은 자기언급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빛은 '입자'와 '파동'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천주'의 두 본성이라는
             '내유신령'은 입자에,'외유기화'는 파동에
              일치시키면서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주객과 같은 모든 양극성의 극복은 자기언급적이 될 때 빛과 같이 될 수 있다.
    전달하는 주체로 볼 때는 입자같이 보일 것이고 전달하게 하는 매체 또는
    수단으로 볼 때는 파동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빛은 입자이고 파동이다.
    이는 순전히 논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빛이 입자와 파동이라는 이중성을 보이는 이유는 빛이 자기자신에 대하여
    주체이면서 객체라는 자기언급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을 은유적인 표현을 떠나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빛과 같이 되어 매체 없는 자기 자신이 되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리고 동학의 주문이 의도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만사의' 또는 '만사지'란 자기충족적이 되는 단계이다.
        ("만사의'는 <초학주문>에,'만사지'는 <본주문.에 있는 말임)


    어둠에 대칭되는 것으로,빛과 같이 된다는 말 속의 광채를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는 깊다.
    예수의 이 말은 지금까지 빛으로 어둠을 이기라는 말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는 외양적 이해이고 그 내밀적 이해는 자기언급적인 데 있었다.
    이렇게 생갹해볼 때 붓다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한 것이라든지 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이다.'라고 한 것은 자기교만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자기언급적 표현이며 빛과 같이 어떤 매체없이
    스스로 진리가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인물들이 진리자체를 체득하여 자기와 진리가 일치되는
    한에서 자기언급은 과부하 현상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빛과 달리 물과 바람 같은 경우는 반드시 매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세계에서도 소유권이 자체권을 훼손하는 과부하 현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진리를 찾는다고 할 때 그 진리가 전달될 때는 반드시 인간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빛과 같이 매체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진리자체를 훼손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빛과 같이 진리나 진리자체 그대로 자기가 매체가 되어 전달될 수 없는 것인가?

    종교의 교주나 교회 그리고 교리 같은 외양적인 것이 사실상 이런 매체 역할을 한다.
    그러면 이런 외양적인 것 없이 빛과 같이 자기자신을 유일한 매체로 생각하면
    될 것이고,이를 '외양적'인데 대하여 '내밀적'이라 한다.


    존재는 매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존재자체는 이러한 매체가 필요없다.
    불교의 경우는 '법신'이 바로 매체 없는 존재자체이고,
    동학의 경우는 이를 '지기'라고 한다.
    그리고 매체인 자기 소유권을 제거시키는 기법이 바로 고등종교의 공통된 현상이다.
    예수는 그것을 '십자가'의 길이라 했고 붓다는 '무아'라 했으며 공자는 '극기'라고 했다.

    이러한 자기부정은 곧 자기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수운은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날님만 믿으라'고 했다.
    이와 같이 '빛과 같이 되라'는 어둠을 이기라는 은유적인 교훈을 넘어서
    자기자신에 대하여 유아독존적이 되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누구나 '나는 길이요 진리'라는 선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동학정신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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