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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친절도 잊지않는 마음이 따듯한 분 박성수교수님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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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그만 친절도 잊지않는 마음이 따듯한 분 박성수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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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임순화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499회   작성일Date 16-03-04 12:24

    본문

    본인은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타인의 경조사에 별로 참석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해가며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나지는 많은 사람들 일일이 경조사를 챙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데면데면 지내다가도 경사를 앞두면 반색을 하며 청첩장을 내미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참 얼굴도 두껍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모든 경조사는 가족끼리 조용히 치르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이나 평소에 존경했던 어르신들이 별세하시면 그분들의 자손과의 유대관계와 상관없이 영전에 조의를 표하려 빈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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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떠나 보내드린 어르신들 이제 존경했던 어르신들 한분 두 분 모두 떠나시고 이경희 총장님 영전에 조문을 못 드렸어도 환우중 몇 번 찾아뵈어 평소에 아껴주신 호의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은 하였으나 영전에 조문 못 드린 것은 끝내 죄스러운 일이다.

     

    평소 천도교에 관하여 많은 글을 써주시고 강연도 해주시던 박성수교수님께서 모스크바 환단 고기 북 콘서트에 가셨다 과로로 급서 하시니 참으로 아까운 분이 세상을 떠나셔서 민족사학계 여러분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셨지만 어느 92세 지리학자님과 함께 시베리아 블라디 보스톡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1500k의 답사여행을 만류하는 자손들의 만류에 89세 지리학자님이 지리학자는 길 위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말씀에 자손들이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여행을 도와드려서 92세 학자님과89세 학자님이 무사히 1500k 대장정을 15일에 걸쳐 무사히 마치셨다는 말씀처럼 박성수 교수님은 한국학 학자로서 우리겨레의 시원의 역사를 밝혀주는 북 콘서트에서 성공리에 학술발표를 하시고 앓지 않고 급서하셨으니 안타까운 가운데 오히려 행복한 생을 마감하셨다 고도 볼수 있어 참 복 많은 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박교수님과는 20여 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천도교관련 무슨 학술대회가 있었을 때 본인은 합창단원으로 참가해 행사가 끝나고 로비에서 쉬고 있는데 박교수님이 나오시다 발목을 삐끗 하셔서 꼼작도 못하시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광경을 목격한 김영숙과 본인이 마침 그때 배우러 다니던 고려수지침의 어설픈 실력을 발휘해 속치마 앞을 여몄던 옷핀으로 삔 곳을 몇 군데 찌르고 요구르트 병으로 피를 빼드렸는데 그래도 효과가 있어 휴 ..큰 숨을 내쉬시며 살 것 같다고 하셨다.

     

    다음날 일본에 학술강연 차 가시는 데 못 갈 번 하였다고 그 시절교무 관장인 백호진에게 아래층 경비실까지 업어 모셔다드리고

    아드님께 전화하여 모셔가라 하였었다.

     

    그리고 몇 년 잘 안 나다녀 만날 기회가 없이 10여 년이 흘렀는데

    또 다시 여기저기 나다니며 만나지게 되었다.

    교수님은 만날 적마다 임 순화 씨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우리 마누라 다음으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라고 치하하셨다. 몇 년 전 경주 동학축제에 가서 만났을 때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또 그 말씀을 하시니 어떤 교수님이 ! 그분이 바로 이분이냐고 하셨다.

     

    이제 그만하세요. 하고 부탁드려 요즘은 그 말씀을 안하셨지만

    또 제주대의 안창범 교수님과 연결도 시켜드리고 이런  사이니 조문을 간것이다.  

     

    박교수님은 아주 조그만 친절도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시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된다.

     

    조문을 끝내고 앉은자리로 인사 온 자제분께 옛이야기를 하니 이번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면 아버님이 그렇게 가시지 않았을 거라며 아버님께 말씀 들었었다고 고맙다 하였다.

     

    평소에 한국학을 깊이연구하시고 좋은 말씀을 원하는 이들이 있을때 마다 마다하지 않으시고 좁은 식당에서도 먼 여행길에서도 무료로 강의 해주신 덕망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민족단체 사회장으로 333일 오후 6시 민족단체대표 및 회원들이 참석하여 엄숙하고도 애통한 영결식을 가졌다.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학술발표 동영상을 보면서 학자로서 행복한 삶을 사셨고 행복한 생을 마감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내게 벌어졌다.

     

    오십견이라 말하는 어깨 통증이 3번째 찾아와서 요즘 열심히 통증부위를 문지르고 주물러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시긴 했었지만 완치 된 것은 아니었는데 오늘아침 일어나 보니 통증이 다 사라져 버렸다.

     

    어제 빈소에 조문을 드리고 영정을 바라보며 옛날에 어머니께 들은 말이 생각은 났었지만 그렇게 해주십사 빌지는 않았는데 뭔고 하니

     

    세상을 떠나는 분의 손을 살아있는 아픈 사람의 아픈 부위에 대고 내 병 다가져가세요. 하고 빌면 병이 낫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잠시생각 났지만 조금도 그렇게 청하여 빌지는 않았는데 오늘아침 통증이 사라진 것을 느끼며 박성수 교수님이 나 아픈 것 다 가져 가셨나 ?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인생은 반드시 죽는 것인데 아프지 않고 급서로 가셨으니 좀 서운하고 아쉽지만 참으로 멋지게 학자답게 가셨으니 복 많은 어른이시다. 평소에 마음이 따뜻하셨으니 죽음복도 타셨나보다.

     

    나도 한 10여년 지나면 죽음을 맞겠지. 우리 모두가 원하는 아름답고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려 오늘도 부지런히 덕을 닦아야 되리라. 영결식을 끝내고 다시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보낸 화환이 화환들의 제일말미에 서있다.

     

    형식적이긴 한 것이지만 그래도 천도교와 인연이 깊은 분인데 마지막 가시는 길에 늦게나마 화환이라도 보냈으니 다행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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