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역사왜곡의 현장에서 (4.19 민주 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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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봄을 시새워 차가운 비바람 변덕스러운 날씨로 아름다운 꽃들을 지게 하는 4월, 그래서 그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봄날 치고는 제법 쌀쌀했던 지난 4월 18일 아침 6시 30분, 아는 젊은이의 초대로 4.19 혁명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처음 참석권유를 받았을 때, 기도회라는 말에 기독교의 냄새가 물씬 풍겨 기분이 묘했다.
언제 4.19혁명이 기독교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던가? 하는 의문에 그런 기분 때문에 별로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본인역시 그 당시 목숨을 걸고 참여하였던 4.19 이기에
반세기도 훨씬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4.19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보기위해 시간에 맞춰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기도 회장에 도착하였다.
아마 실히 1000명은 되어 보이는 기름이 줄줄 흐르게 보이는 장년의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홀을 가득 메우고 내가 초대된 자리는 시민단체모임 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눈에 들어온 몇 분 지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어서 찬양과 경배로 시작되는 음악이 끝나고 기도식이 진행된다.
그 모든 식순과 내용이 예배형식에 의하여 장로와 목사의 직함을 가진 사회지도층인 교수들 에 의하여 ‘혁명의 노래를 부르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소망교회 목사의 설교로서 기도회의 본 행사가 진행 되고 있다. 4349년 4월 19일로 4.19 혁명 56주년이다. 내 나이 20세에 마주한 4.19 의거, 18-19 일까지 경찰의 방망이에 안면 부상까지 입으며 데모 대열에서 독재정권의 퇴진과 부정부패 척결을 외칠 때, 그곳엔 기독교도 불교도 천도교도 유교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불의에 항거하는 순수한 대한민국 젊은이, 단군의 후손들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순수한 젊은이들의 맞은편에는 탐욕으로 가득찬 독재자(장로)와 그 독재자를 ‘人’
의 장막에 가두어놓고 반공이라는 무소불위의 철 방망이를 만들어 상대방을 빨갱이로 몰아 숙청하고 핍박하며 대한민국을 정체성 없는 나라, 불의의 공화국으로 만들어가던 기독교를 신봉하는 친일파 출신의 친미파 민족반역자들이 있었다.
꽃 같은 청춘을 바쳐 이 민족반역자들을 몰아내려는 학생들의 애국충정에 감동한 교수들의 참여, 형과누나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죽음 앞에 뛰어든 어린학생들 과 그 부모들, 물론 그들 중에는 갖가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에 항거하던 그들의 가슴에는 그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판단은 없었다. 오로지 대한민국 배달겨레의 나라가 부정과부패 독재로 망해가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 아무런 사전 계획도 없이 누구의 지령이나 조직도 없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3.1운동에 버금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혁명이었다. 그런 배달겨레의 위대한 혁명에 저 바다 건너온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덧칠하여진다면 그것이 배달겨레의 위대한 혁명에 영광이 될 것이라 누가 말하였던가?
오늘날 기독교 세력이 이토록 대한민국을 주름 잡는 것 이것이 진정 정의 인가?
꽃 보다 더 고운 이제 막 돋아난 연두 빛 새순 같았던 그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서 물리친 악의 세력, 그들 대부분 구성원들의 종교였던 기독교는 오늘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받들어 지구촌 민중들의 뇌리 속 깊이깊이 침투되어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정신은 십계명을 지켜야할 그들의 심성 속에 오늘도 10계명은 살아있는 지? 지구촌은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보장되지 않고 곳곳에 전쟁과 기아와 불의와 가진 자의 횡포가 서민들의 목줄을 조이는 지옥을 향해 가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저 평화의 대륙 아프리카가 오늘날 지옥 같은 가난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아프리카를 침략하여 그들의 자원을 착취하고 사람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노예해방으로 풀려난 아프리카인들이 본토 아프리카로 돌아와 본토에 남아있던 원주민과 문명과 기독교의영향으로 오염된 귀국인과의 정서적 갈등 즉, 우리나라로 말하면 친일파와 친미파 등에 의한 민족의 정서갈등과 강대국의 자원탈취를 위한 술수에 놀아난 권력집단간의 내전 등이 아프리카를 정치적 불안과 가난으로 몰아간다. 대한민국에도 만약 아프리카처럼 많은 지하자원과 수림자원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결코 잘 살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약탈하기위해 강대국은 더 많은 갈등의 요인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고 거기에 휘둘려 우리국민성을 갈 갈이 찢겨졌을 것이다. 다행히 물적 자원보다 인적 자원이 우수한 대한민국.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애국세력이 그래도 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기에 요만큼이라도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해가고 있는 대한민국, 그러나 4.18 일 마주한 역사왜곡의 현장에서 아! 역사왜곡이 강자에 의하여 이렇게 조작되어 가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오늘날 3.1광복투쟁이 17세 소녀 유관순에 의하여 일어난 것처럼 알고 있는 대다수 대한민국국민들, 언제인가 4.19 민주화 혁명, 70-80 주년이 되면 4.19 그 혁명은 기독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어. 하는 국민들이 대부분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참으로 착잡한 심정으로 4.19혁명 56주년 맞았다. 용기가 없어 단상으로 뛰어나가 역사왜곡 하지 말라고 소리는 못 질렀지만 내가 앉았던 식탁의 손님들에게 사월의 넋 이라는 한편의 '시' 로서 작은 몸짓의 저항을 표시했다.
아! 밖의 사람들은 동학정신을 목마르게 갈구하는데 본인이 천도교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3년마다 중앙대교당 출입구 하늘 높이 내걸리는 <대동중흥은 > 언제 진정으로 이루어지려는가? 날로 쇄잔해져가는 천도교의 모습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민족단체라는 그들의 모습역시 '실' 보다 '허' 가 많은 모습을 보며 누가 이 난국을 헤쳐나갈것이지? 올해 내걸리는 <대도중흥 > 에 다시한번 기대를 해보면 가슴뿌듯한 결실을 볼것인지? 나 또한 대도중흥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그렇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진인사를 다하고 대천명을 기다렸는지 나에게 물으니 염치없는 인간이라 야단치는 하늘의 응답이다.
* 사월의 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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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욱 구-욱 구-욱
산비둘기가 슬픈 울음을 토해냅니다.
경자 년 4월 19일
성난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던 그 거리에서
울부짖던 그 소리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꽃잎 같던 그대는
이 고요의 언덕에 말이 없고
어느새 귀밑에 서리 찬 살아남은 우리는
시린 가슴안고 살아갑니다.
그날 그 거리에서 우리들이 찾으려던 정의는
어디쯤 와서 잠들어 있나요.
꽃잎 같던 목숨을 바쳐 찾으려던 정의는
어디쯤 와서 쉬고 있나요.
그날 임들이 흘리고 간 그 선홍빛 물방울
우리들 가슴속 아직도 선연한데
얼마나 더 많은 꽃잎들이 떨어진 뒤에라야
당신은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렵니까?
이봄도 진달래꽃잎은 임들의 넋이 되어 강산을 물들이는데
당신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여
우리들 가슴 피 빛으로 물들어
애타고 목마르게 당신을 기다립니다.
정의여 이 땅으로 하루속이 오소서.
팔천만 가슴마다 다시 깨어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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