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수도원 봉황각에서의 주문수련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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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수도원 봉황각에서의 주문수련 소감문
1. 의창수도원
천도교 홈페이지 의창수도원 안내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봉황각鳳凰閣은 의암성사께서 천도교 간부들을 연성 수련시키기 위한 교육도장으로서 1912년 3월 7일 기공하여 6월 19일 준공하였다. 물론 교육 내용은 보국안민에 입각,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의암성사는 이곳에서 포덕51(1910)년부터 55년까지 49일씩 7차례에 걸쳐 천도교 지도간부 483명을 연성수련(煉性修煉)시켜 조국의 독립운동에 대비하였다. 이들이 기미독립운동의 핵심 역량이 되어 전국 규모의 대규모 만세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의암성사는 봉황각 건축을 시작하면서 완공도 되기 전에 각 지방 간부들을 소집하여 특별 연성을 실시했다. 연성 시간은 오전8~12시, 오후2~5, 오후 8~11시로 하루 10시간이었다. 참으로 치열한 수련이었다. 의암성사는 특별수련을 통해서 특히 「이신환성(以身換性)」설법을 강조하였다. 중앙총부는 포덕97년에 봉황각을 '의창수도원(義彰修道院)'이라 이름 붙여 수도원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의창」이란 이곳에서 교역자의 연성수련과 독립정신을 함양했던 의암성사의 정신을 현창(顯券)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2. ᄒᆞᄂᆞᆯ님의 부르심으로 다시 문을 열다
이러한 의창수도원이 3년간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통암 서종환 원장님이 2 달전 새로 오시면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천도교 종학대학원의 조민숙 길벗님(곧 입도할 예정?)의 용감하고 지혜로운 요청과 혜원당 김춘성님의 결단으로 비로소 문을 열면서 수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은 의암 성사님의 구국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제2의 독립운동·마음 살림·지구 살림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지금은 지구적 위기의 시대입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인간성 상실에서 행복한 인생을, 공동체 붕괴에서 평화로운 사회를, 대자연 파괴에서 아름다운 대자연을 일구고 가꾸어 지상천국을 이땅위에 건설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변화의 체험들
종교의 역할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그 종교는 도리어 문제를 야기합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모두 이것 때문에 일어납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은 저마다 많은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자신을 학대하던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어머니를 원망하다가 어머님과 화해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소위 경전에서는 소인에서 대인으로, 죄인에서 성인으로, 중생에서 부처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만, 이것을 조금 거창한 말인 동학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대강령大降靈을 받았다고 하지요. 정신적으로만이 아니고 육체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뒤로 자빠지는 분,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분, 주문을 노래로 크게 또는 작게 부르는 분, 주문을 엄청나게 빠르게 또는 느리게 부르는 분, 주문을 귀가 찢어지게 우렁차게 부르는 분, 팔을 벌벌 떨거나 몸을 흔드는 등등의 신체적 변화도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전부 소중한 ᄒᆞᄂᆞᆯ님 지기의 대강령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영부와 동등한 그리고 영부에 못지않은 대강령이라 생각됩니다.
4. 자신의 변화의 체험
저 자신도 몇 가지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① 저는 다들바위에서 입도식을 행하면서 저 자신의 호를 수월암水月菴으로 정했습니다. 수水는 수운水雲에서, 월月은 해월海月에서, 암菴은 의암義菴에서 따왔습니다. 즉 세분 스승님이신 수운 해월 의암을 본받자는 뜻이었지요. 그냥 멋있게 남들에게 통 큰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거창하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천도교를 많이 원망했습니다. 천도교인 숫자가 300만에서 30만도 아닌 3만(?)으로 줄었고, 풍기교구 건물은 비와 잡초덩굴로 내려 앉아 쓰레기 장소로 변하면서 천도교 윗어른들은 뭐를 했냐고 도대체?
그러나 혜원당 김춘성님의 해월 신사님의 법설인 “성경신” 말씀을 해설하시는 대목에서 저는 큰 각성을 하였습니다. 인인경인즉人人敬人則 만민래회萬民來會하고 인인경물즉人人敬物則 만상래의萬相來儀하니라. 사람 사람이 사람을 공경하면 만민이 와서 모이고, 사람 사람이 물을 공경하면 만물이 와서 거동한다. 의암 성사님은 얼마나 경인敬人을 했는지 신도가 300만이 되었고, 얼마나 경물敬物을 했는지 당시 기독교 대표들에게, 수 많은 교육사업에, 상해 임시정부에, 3.1 독립운동에 수 많은 자금의 금액을 지원하셨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아차! 큰 일 났구나! 잘못 선택했구나! 이 호를 지키려면 세 분 스승님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이를 어쩌냐! 재야의 이름도 없는 한 농부가 어찌 이런 큰 일을! 도로 물릴까? 변화가 어쩌고 저쩌고 떠들던 놈이 호를 물리게 되면 꼬라지가 말이 되지 않을 것같기도 하고, 그러나 ᄒᆞᄂᆞᆯ님의 지기와 혜원당 김춘성님과 통암 서정환님과 그리고 함께 한 많은 동덕님들의 대강령을 받아서 호를 물리지 않고 호를 더욱 확고하게 지키면서 정면 돌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대장부 한번 뽑은 칼, 무우라도 베어야지 하는 각오로 말입니다.
저의 고장 영주시 풍기에 옛 풍기교구 60평 터에 6평짜리 조립식 이동주택이 부암 정덕재님·성강현님의 노력과 천도교의 도움으로 2023년 1월 초에 서게 됩니다.
6평짜리가 60평이 되고 6만평이 되는 것은 인인경물에 있구나!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열 명이 되고 만 명이 되는 것은 인인경인에 있구나!
② 그리고 또 한가지 “동서를 아우르고 고금을 회통하라, 동학을 역사와 실천을 통하여 접근하는 방법, 철학과 이성을 통하여 접근하는 방법, 수련과 영성을 통하여 접근하는 방법 이 세가지를 통합하라.”는 혜원당 김춘성님의 말씀도 가슴 깊이 들어왔습니다.
③ 또 한가지 보너스로 얻은 것은 그곳에 마침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하는 정현경 교수님과 함께 수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세계적 대학자이시면서 한국의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교수가 된 분이십니다. 더욱 놀란 것은 숭산崇山 스님의 제자로서 그 문중의 법사였습니다. 저는 평소에 숭산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분의 지혜에 감탄하면서 존경하였는데 그분의 제자를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앞으로 많은 도담을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앎들과 행운을 얻으면서 내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습니다.
5.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지구상의 모든 분들과 함께 한 동덕과 도반님들에게,
그리고 저와 인연을 맺으신 모든 분들께,
길잡이를 해주신 혜원당 김춘성 사부님께,
문을 흔쾌히 열어주신 통암 서종환님께,
새해에도 여전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그리고 우주의 천지만물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월암 금주연 아우스딩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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