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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의 참례식에서 동학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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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순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111회   작성일Date 16-06-0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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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신사 묘소참례식에서 동학을 묻다!

    고순계 주주통신원l승인2016.06.04l수정2016.06.05 20:09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2일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천덕산의 향토유적지 제8호 해월묘소에서 해월신사 묘소참례식이 열렸다. 지역주민과 천도교도 등 70여명이 참석해 정정숙 천도교 교화관장의 집례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정정숙 교화관장은 “해월은 1893년 보은과 전라 원평에서 3만명의 동학군이 모인가운데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을 부르짖었다. 1894년에는 백산에서 김덕명, 김개남, 손화중 대접주가 전봉준을 대장으로 추대하여 동학혁명의 깃발을 올려 황토현에서 대승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청일양군이 상륙하여 주권을 침해하자 옥천에서 총기포령을 내려 항쟁에 나섰으나, 12월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의 신식무기에 밀려 혁명운동은 잠정상태로 들어갔다. 피체되기 1년 전에 '향아설위' 의식을 선포하다가 잡혀 1898년 한성감옥에서 72세의 일기로 교수형으로 사형을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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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도교 박물관에 소장된 해월 최시형의 사형 직전의 모습

    사형이 결정된 재판은 겨우 3일만에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더구나 이 재판은 동학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조병직 군수가 주관했다. 교수형이 집행된 뒤 시신을 광주의 한 야산에 매장했으나 산주인이 해를 받는다며 항의해 깊은 산을 헤메다 천덕산까지 오게됐다.

    임형진 경희대 교수는 "동학은 조선조의 전통질서와 동양을 침범하던 서양의 근대적 질서를 비판하며 이를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신념체계로서 '자생적 근대화'였다"고 말했다.

    더불어사는세상을위한시민회의 김원열(전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씨는 “서학에 일그러진 한국은 평등세상으로 개벽해야 한다”면서 “동학사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서 민족의 자주 독립적 방법으로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절실한 실천과제다”라고 말했다.

    이자현 정신개혁시민협의회 대표는 “122년 전 조선말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일본과 미국에 맞서 당시 농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면 지금 상인들은 어설픈 남의 것을 선호하는 망국의 외제선호 의식 변화를 이끄는 등 정신혁명을 위해 상단을 만들고 조직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 최재신(해월최시형기념사업회 이사장, 해월의 2대손)씨는 "해월은 32년간을 숨어서 동학의 도를 이어갔는데 이를 숨어서 도를 펴던 은둔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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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례식을 마치고 묘소를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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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형 한 해전에 향아설위((向我設位)을 선포한 자리의 기념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 일본과 서양세력을 배척하여 의병을 일으킨 다는 뜻으로 동학교도들이 보은집회에서 처음으로 부르짖었다(문화콘텐츠 용어사전).

    * 향아설위((向我設位) : “나를 향하여 신위(神位)를 베푼다.”는 동학 특유의 새로운 제법(祭法)으로 사람은 누구나 다 저마다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바 시존(侍存)인 것이요, 따라서 사람은 그러한 시존자성(侍存自性)으로서의 그의 시천영기(侍天靈氣)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한국 민족문화 대 백과사전).

    편집 : 최홍욱 편집위원

    고순계 주주통신원  sangdo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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