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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을 유학으로 오해하는 대표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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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윤철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825회   작성일Date 23-07-20 13:33

    본문

    동학을 유학으로 오해하는 대표적 사례



    지난 운수에서는 사람이 ‘신(神)에게 종속’되어 살아야 했던 운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운수에는 사람이 ‘신(神)으로부터 해방’되어 사는 운수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이 신(神)이 되어 살아가는 운수라고 합니다.

    천도교는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유불선은 사람의 도덕 심성(心性)에 중점을 두는 도학(道學)이라면,

    동학은 한울님의 생명 심성(心性)에 중점을 두는 도학(道學)​입니다.

    동학은 ‘한울님이 성공한 도(道)’이며, “수명을랑 내게 비네”라고 하신 도(道)입니다.

     

    그러므로 동학을 기존 도덕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학을 유학으로 해석하는 대표적 예를 들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①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② 조화정(造化定)의 정(定)

     

     

    ①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내유신령: 처음 세상에 나온 적자의 마음(落地初赤子之心)

    외유기화: 포태 시 이기가 바탕에 응하여 체를 이룬 것(胞胎時 理氣應質而成體)

     

    <영부주문>에서

    "내유신령이란 낙지초 적자심"이라고 하니 '낙지초적자지심'을

     

    > 유학(儒學)의 시각으로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라 해석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외유기화란 이기가 바탕에 응하여 체(體)를 이룬다"는 대목에서

    ‘내유신령’에서 ‘‘이미 ‘체를 이루어’ 갓난아이로 세상에 나왔는데

    ‘외유기화’에서 다시 '체를 이룬다'는 말이 순서적 논리적으로 맞지 않게 됩니다.

     

    > 동학(東學)의 시각으로는

    <성령출세설>에서 말씀하시는 "여기에 문득 영성의 활동이 시작되었나니"

     

    라고 생각해 보면,

     

    ‘내유신령’은 '문득 영성의 활동이 시작된 것'이고

    ‘외유기화’는 '그 영성의 활동으로 사람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 됩니다.

     

    결국, '내유신령 외유기화'는 '천지 포태'에 대한 설명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성령출세설>에서는 “내유신령 외유기화”에 대해서

    “여기에 한 물건이 있어 문득 영성의 활동이 시작되었나니,

    이것은 영의 결정으로써 만물의 조직을 낳은 것이요,

    만물의 조직으로써 다시 영의 표현이 생긴 것이니라.”

     

    라고 설명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내유신령 외유기화'의 조화 작용으로 살아갑니다.

    내 몸 밖에 있는 공기나 밥도 내가 마시거나 먹어서

    내 몸 안으로 들어와야 비로소 기화(氣化)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외유기화'라는 것도 내 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조화정(造化定)의 정(定)

     

    정(定): 그 덕에 합하고 그 마음을 정한다는 것(合其德 定其心)

     

    > 유학의 시각으로

    ‘내 마음(汝心)을 한울님 마음(吾心)으로 정(定)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말씀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게 됩니다.



    > 동학의 시각으로는

    <논학문>의 "천위오행지강 지위오행지질 인위오행지기"의 가르침에 따라

     

    ‘한울님의 무궁한 조화로 오행의 덕과 마음(吾心)을 합덕(合德)하고 정(定)하여

    사람의 형체를 만들 정(定)’이라고 보아야 <영부주문>의 말씀처럼

     

    "시천주조화정은 만물화생의 근본"이라는 말씀과 일관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다음 문장인 “우리 사람이 태어난 것은 시천 영기가 태어난 것”

    이라는 말씀과도 일관성을 가집니다.

     

    즉, ‘조화정’(造化定)은

    한울님의 무궁한 ‘조화’로 사람의 형체를 ‘정’하고 있음을 밝힌 글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 봅니다.

    유불선은 사람의 도덕 심성(心性)에 중점을 두는 도학(道學)이라면,

    동학은 한울님의 생명 심성(心性)에 중점을 두는 도학(道學)​입니다.

    동학은 ‘한울님이 성공한 도(道)’이며, “수명을랑 내게 비네”라고 하신 도(道)입니다.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유불선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보면

    [해월신사 법설] [의암성사 법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쉬워야할 [의암성사 법설]을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학은 동학의 시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동학은 유불선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동학을 유불선의 시각으로 보면 동학은 보기 어렵고 유불선만 보일 것입니다.



    동학은 동학의 시각으로 보아야

    동학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유불선도 보이고 그 차이도 보일 것입니다.



    전주교구 광암 윤철현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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