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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러시아 신한촌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의미가 있는가?---3.1운동기념사업회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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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삼일운동100주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544회   작성일Date 16-09-07 14:46

    본문

     

    러시아 신한촌과 3.1운동 그리고 재건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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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은 구한말 우리 민족이 개척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 최대 한인촌 마을이었다. 특히 신한촌에서는 1919317일 국내의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연해주 일대의 한인들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역사적인 장소로 현재는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고 곧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지역으로 들어온 우리 민족은 처음에는 두만강 근처인 핫산지역을 중심으로 모여 살다가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 연해주 전체에 걸쳐서 한인촌을 형성하였다. 특히 연해주의 중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한인촌의 집결지였다. 배를 타고 이주한 한인들이 최초로 정착한 지역이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근처의 개척리 마을이었다. 이 개척리를 중심으로 유인석, 이상설, 안중근, 이동휘, 최재형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모여 들었고 항일의 의지를 불태웠다.

     해안가에 형성된 개척리 마을은 1911년 콜레라가 창궐하자 러시아 정부는 이 지역을 모두 소개시키고 한인들에게는 시 외곽의 산등성이 땅을 주어 이주시켰다. 보금자리를 잃게 된 한인들이 실망하였지만 곧 이 지역에는 한인들만 모여 살게 되자 그동안 개척리에서 중국인, 러시아인 등 수많은 민족이 석여 살면서 겪는 문제가 해소되어 오히려 기뻐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신한촌이라고 지었다. 새로운 한국을 건설하자는 뜻이었다.

     신한촌에 모여 살기 시작한 한인들은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신문을 발행하는 등 문화활동을 함으로써 비로소 한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1931일 국내의 3.1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와 한인들의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고 드디어 317일 만세 시위가 터졌다. 신한촌의 중심지에 모인 수천명의 한인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제히 가두시위를 전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의 일본 영사관 앞에 이르렀을 때는 수만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일본 경찰은 그저 숨기 바빴고 선두에는 문창범을 비롯한 지도부가 승용차를 타고 확성기를 이용해 우리의 독립을 알렸으며 시위대는 길거리의 러시안 인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며 행진했다.

     신한촌의 가두시위는 이후 연해주 일대에 크게 영향을 미쳐 한인들의 독립의지를 불태웠으며 최초의 임시정부 수립과 항일무장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조선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해 모든 한인들이 일시에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주 당함으로써 신한촌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후 러시아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한인들의 흔적은 겨우 기념비석 하나에 머무르고 있다.

     1979년부터 신한촌 복원 운동을 전개 중인 이 베체슬라브 씨와 한국의 법륜스님 등이 참여하는 신한촌 재건위원회가 현재 그 터에 기념관 건립을 준비 중이고 이 사업에는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도 참여하고 있다.

     

    (취재/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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