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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後經의 資料分析 比較硏究(10-10)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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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341회   작성일Date 16-10-21 23:02

    본문

    後經의 資料分析 比較硏究(10-10)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림 ; 방문자 여러분의 연구소 방문은, 필자의 카페주소인,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http://cafe.daum.net/oamdonghak)를 클릭하여 ‘김 용천 자료실’을 찾으시면, 회원이 아니시더라도, 방문객은 누구나 각 종 분야에서 선정(選定)한, 일만여 건(一萬餘 件)의 자료들을 검색하여 읽고,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포덕 157(2016)년 10월 21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

    留意事項 ; 이 글은 초고본(草稿本)으로 오류(誤謬)가 다수 있을 수 있음으로 참고로 읽어주시고 인용을 하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필자 ; 오암 김용천 심고.


    下篇

    後經 二/印刷本과 後經 二/謄寫本은 一章 念呪觀感化觀과 같이 章의 區分과 內容文을 행갈이를 하고 있다. 例示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後經 二/十三章까지 同一한 體裁로 되어 있다. 그리고 下篇 / 創建本 以後에서는 後經 二의 下篇의 제목을 「十三觀法」이라고 새로이 題目을 만들어 붙이고 있다. 그리고 章 표시 없이 붙여 기술하고 있다. 後經二/叢書本/十三觀法이 省略되고, 다른 글인 「性心身辨論」이 이어져 수록되어 있다.

    例示文 / 後經 二/印刷本

    一章

    念呪觀感化觀

    後經 二/謄寫本

    一章

    念呪觀感化觀

    後經 二/印刷本/一章 念呪觀感化觀,

    後經 二/謄寫本/一章 念呪觀感化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주문을 마음속으로 늘 생각하면, 어떻게 감화가 되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二章 我無觀天有觀

    後經 二/謄寫本/二章 我無觀天有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가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이 존재하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三章 我有觀天無觀

    後經 二/謄寫本/三章 我有觀天無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이 없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四章 性無觀心有觀

    後經 二/謄寫本/四章 性無觀心有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五章 心無觀性有觀

    後經 二/謄寫本/五章 心無觀性有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성품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六章 性無觀心無觀

    後經 二/謄寫本/六章 性無觀心無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도 없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七章 性有觀心有觀

    後經 二/謄寫本/七章 性有觀心有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마음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八章 我先觀天後觀

    後經 二/謄寫本/八章 我先觀天後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먼저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뒤에 하늘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九章 我有觀天有觀

    後經 二/謄寫本/九章 我有觀天有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늘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十章 我有觀物有觀

    後經 二/謄寫本/十章 我有觀物有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만물도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十一章 自由觀自用觀

    後經 二/謄寫本/十一章 自由觀自用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 마음이 자유로우면, 어떻게 마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十二章 衆生觀福祿觀

    後經 二/謄寫本/十二章 衆生觀福祿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복록이 내려지는가를 잘 살펴보라.

    後經 二/印刷本/十三章 世界觀極樂觀

    後經 二/謄寫本/十三章 世界觀極樂觀

    後經 二/創建本/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서, 어떻게 극락이 있겠는가를 잘 살펴보라.

    下篇 / 創建本 以後에서는 後經 二의 下篇을 「十三觀法」이라고 제목을 새로이 만들어 붙이고 있다. 그리고 章 표시 없이 다음과 붙여 기술하고 있다.

    例示文/第三篇 附 後經 P.118.

    十三觀法

    念呪觀感化觀, 我無觀天有觀, 我有觀天無觀, 性無觀心有觀, 心無觀性有觀, 性無觀心無觀, 性有觀心有觀, 我先觀天後觀, 我有觀天有觀, 我有觀物有觀, 自由觀自用觀. 衆生觀福祿觀, 世界觀極樂觀

    下篇/三部本/과 下篇/經典本/은 下篇을 「十三觀法」이라 題目을 붙이고 행갈이를 하여 각각 1행으로 아래와 같이 게재하고 있다. / 例示文/三部本은 PP.285-286. 經典本은 PP.508-509.

    十三觀法

    念呪觀感化觀,

    我無觀天有觀,

    我有觀天無觀,

    性無觀心有觀,

    心無觀性有觀,

    性無觀心無觀,

    性有觀心有觀,

    我先觀天後觀,

    我有觀天有觀,

    我有觀物有觀,

    自由觀自用觀.

    衆生觀福祿觀,

    世界觀極樂觀

    後經 二/筆寫本/十三觀法

    念呪觀感化觀,我無觀天有觀,我有觀天無觀,性無觀心有觀,心無觀性有觀,性無觀心無觀,性有觀心有觀,我先觀天後觀,我有觀天有觀,我有觀物有觀,自由觀自用觀.衆生觀福祿觀,世界觀極樂觀

    註 ; 下篇 / 創建本과 같이 이어 쓰고 있으나 띄어쓰기가 없다.

    後經 二/筆耕本/ 上同

    後經 二/抄稿本/ 上同

    後經 二/叢書本/十三觀法이 省略되고, 다른 글인 「性心身辨論」이 이어져 수록되어 있다.

    =====================================

    5. 나가는 말.

    위에서 살펴본 「후경」뿐만 아니라 필자가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당수의 자료들의 오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오류들을 교단의 전문기관에서 확인하여 정리를 해주지 않는다면, 동학과 천도교를 공부하는 교도들(일반 교인들과 지방과 중앙의 교역자 전부를 포함)이나 전문 연구자들이 잘못된 원문들을 사용하여 발생하는 오류는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필자가 10년여 동안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는 과정에서, 원본과 원문을 밝혀두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 한 것들 중에서 이미 상당수의 비교분석 연구논문들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연구자 혼자서 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교리와 교사의 상당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하고 자료들의 수집이 광범위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경제적 여력과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교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단이 공식 기구를 만들어 수집과 정리, 관리가 매우 시급한 동학과 천도교에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들의 수집과 분류를 통한 정리가 이루어져야 하고, 상당수준의 역량이 있는 연구자들과 광범위한 논의를 통하여 교단이 필요한 상당수의 연구자들을 속성으로 육성해야 한다. 필자와 같은 연령 대의 원로 교역자들이 환원하면 교단사의 상당부분이 단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에 가서는 자료로 말하지 않고,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교단에서 그 시기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누구누구의 말에 의하면 하는 황당한 이야기가 정설처럼 떠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필자가 수집한 자료들 중에는 출처불명의 기록들이 많이 눈에 띄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도교 중앙 총부나 신인간의 명의로 출판된 교서들 중에는 교단의 공식기구의 논의나 결의도 없이 간행된 간행물에 대한 교단의 공식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무런 해명이 없다면, 위의 기구명의로 간행된 모든 간행물들은 교단의 관련기구 즉 교서 편찬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관련기구의 충분한 토의와 결의에 따른 교단의 공식입장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다.

    지금의 교단이 현실에 당면한 문제들에 매달려 근시안적인 운영에 매달린다면, 지금보다 더 교단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저력을 급속도로 상실하게 될 것이고, 많은 교인들이 재가교인이나 냉담자로 돌아설 것이다. 교단의 지도자는 교단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모아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할 수 있는 것과 이 시기에 꼭 해야 될 일들을 선정하여 거시적 안목으로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중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교단 운영이란, 지금이 후천 5만 년을 가야할 시발점에 불과하다는 것에서 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무렵부터 몇 차례 의욕 있는 교령과 집행부가 만들어 등장시켰던 거창한 사업계획서는 이미 휴지로 되어버려 대부분 완수되지 못하였지만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아무도 그 사업계획안을 기억하지 않고 있다는 슬픈 현실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매번 새로운 집행부는 과거에도 완성하지 못했고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골 사업에다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넣어 새로운 것처럼 보이면서 임기 내에 완성할 것처럼 하지만, 한 임기가 끝나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것이 교단의 현실인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실패가 반복되는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교단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어떤 집행부도 교단의 퇴행에 자유로울 수 없는 데도, 교단의 운영을 잘못하여 세워진 사업계획안을 완수지 못했다는 뼈를 깎는 반성과 책임을 진 집행부는 아직까지는 없다.

    6. 義菴聖師 法說과 敎理 敎史의 硏究를 위한 其他 關聯 參考資料 들.

    1. 天道敎書; 프린트(등사)본. 천도교 청년 교리 강연부. 서울. 1920. 布德 61(1920)년 4월 1일에 筆耕이 완료되어 謄寫되어 講材로 사용됨. /天道敎創建史』布德 74(1933/昭和 8年)의 底本이 됨.

    2. 天道敎書; 印刷本. 천도교중앙총부. 서울. 大正 十(1921)年 四月 五日. 著作 兼 發行人 朴寅浩. 印刷人 李駿錫. 印刷所 新文館. 發賣所. 普文館. / 필자는 원본인 단행본을 아직도 직접 보지를 못했다. 다만 기록으로 남은 자료를 모았다.

    제3대 대도주 손병희에 이르기까지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를 그들의 설법과 더불어 기록하였다. 본서는 모두 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최제우(崔濟愚)와 최시형(崔時亨), 그리고 손병희(孫秉熙)를 중심으로 하여 서술되어 있다.

    먼저 제1편은 최제우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연대기의 순서로 최제우의 활동과 행적, 그리고 주요 사건과 설법 내용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제2편에서는 다시 최시형의 출생에서 동학 입교, 도통전수, 활동, 처형에 이르는 이야기들을 최시형의 가르침과 더불어 서술하였다. 그래서 당시 교조신원운동의 전모와 갑오농민혁명의 시말에 관해서 상세한 정보들이 실려있다. 그런데 마지막 제3편에서는 손병희가 출생과 입교, 도통전수에 대해서만 기록한 다음, 손병희가 설법한 주요 내용들을 천도태원설(天道太元說), 대종정의설(大宗正義說), 무체법설(無體法說),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로 나누어 해설하였다.

    그러나, 손병희에 대한 전기적 기록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박인호가 천도교서를 짓고 등사본으로 출판할 당시는 아직 손병희가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생존한 스승의 일대기를 짓는다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겼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동학이 천도교로 개신한 이후의 교단 역사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박인호는 자신이 스승으로 모신 손병희보다 6살 연상으로 손병희와 거의 같은 시기(1883년)에 동학에 입도하였던 만큼 당시 동학교단의 내부 사정을 상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는 1911년 『천도교월보(天道敎月報)』에 실린 오상준의 「본교역사(本敎歷史)」, 1933년 이돈화가 쓴 『천도교창건사(天道敎創建史)』와 더불어 동학의 초기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의 하나로 평가할 만하다.

    프린트(등사)본 天道敎書의 要約 印刷本으로, 구파에서 1930에 편술된 天道敎史 附 叢書의 底本이 된 것으로 推定된다. 天道敎史 附 叢書는 1930년경에 구파에서, 崔俊模, 鄭廣朝, 李鍾麟, 三長老와 李敦化, 李仁淑의 자료 제공으로 소량 출판되어 광복과 6,25동란을 거치면서 稀貴本이 되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포덕 71(1930)년부터 포덕 102(1961)년 말까지 30여 년간의 구파의 입장을 반영한 교단사를 추가하여 프린트(등사)본으로 간행되었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과 관련자료 종합.

    3. 天道敎會史 抄稿; 포덕 66(1925)년 경에 구파에서 독자적으로 기술한 구파계열의 입장을 밝힌 최초의 교사의 필사본 초고로, 미 간행됨.

    4. 『天道敎創建史』布德 74(1933/昭和 8)년에 간행.

    5. 侍天敎宗繹史; 1900년대 초에 嶠南 敎育會를 설립하고 회장직을 역임했다가 초기 시천교의 교리서 간행을 책임지고 있었던 朴晶東이 시천교가 분립하자 시천교 본부 측의 교인이 되어 포덕 56(1915)년에 시천교 본부에서 간행한 시천교 본부측의 입장을 밝힌 교단사로 대신사의 탄생부터 포덕 42(1901)년 3월까지 기술되어 있다. 체제는 3편으로 구성하고, 1편은 교조 수운, 2편은 2대 교조 해월, 3편은 해월로부터 이 용구가 종통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 용구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간행경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侍天敎歷史’ 해제부분을 참조바람.)

    6. 侍天敎歷史; 시천교 총부에서 侍天敎宗繹史를 底本으로 하여 간행한 또 다른 시천교의 교단사. 1906년에 일진회사건으로 천도교에서 출교를 당한 일진회간부 60여명이 중심이 되어, 이 용구를 영입하여 천도교와 대립하는 독자적인 교단으로 시천교를 설립했다. 1908년에 김연국을 영입하여 교세를 강화하였으나, 1911년에 이 용구가 사망하자 교단의 실권이 송병준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천교 내의 보수적인 경향을 가졌던 김연국의 계열과 충돌하게 되었다. 1913년에 송병준을 주축으로 한 시천교 본부를 이탈하여 시천교 총부를 따로 설립하여 각 자 종교적 정통성을 주장하고 정립하기 위하여 교회사를 간행에 총력을 다 했다. 시천교 본부가 먼저 포덕 56(1915)년에 ‘侍天敎宗繹史’를 간행했고, 시천교 총부는 ‘侍天敎歷史’의 원고를 1917년에 완료하여 포덕 61(1920)년에 간행했다. 체제는 상, 하 두 편으로 구분하여 1, 2편은 ‘侍天敎宗繹史’의 수운과 해월의 기록과는 대동소이 하나, 3편에 기록되었던 이 용구의 행적은 완전 삭제되고, 대신 해월로부터 김 연국이 종통을 이어받은 정통성을 강조하고, 김연국의 행적을 부각시켜 기술하여 시천교 총부의 정통성을 분명히 했다. 그 후 교단내의 갈등이 재연되어 1925년에 김 현국 계열이 분리되어 상제교로 개명했다.

    7. 東學과 東學亂; 이 글은 동아일보에 1931년 8월 21일부터 10월 9일까지 36회에 걸쳐 게재되었던 것을 1947년에 대성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집필자 東濱 金 庠基는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양과 한국 고대사에 학술적 업적을 많이 남겼다.

    8. 東學亂; 黃 玹/ 著李 民樹 譯 ; 乙酉文化社. 서울. 1985. /저자 梅泉 황 현(1855-1910.)은 광양에서 태어나 34세에 成均試에 壯元으로 급제하였으나 官路에 뜻이 없어 36세부터 鄕里에서후학을 가르치며 저술에 몰두했다. 한일합방이 되자 國恥를 痛憤하여 絶命詩 4首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節士였다. 이 글은 매천의 ‘東匪紀略 草藁’를 “東學亂”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간행했다. 매천의 저서로는 梅泉集, 梅泉野錄 東匪紀略, 등이 있다.

    9. 東學史; 吳 知泳. 永昌書館. 서울. 1939. 저자 오 지영( ? -1950.)은 全北 益山 출신으로 한학에 밝으며 동학혁명 당시에 兩湖都察란 직책을 가진 지도자로 참가한 인물이며 해월신사를 모시고 북접의 종교적 성향을 고수하여 납접의 동학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조국의 구국운동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설득하여 북접이 참여하는데 기여했다. 동학이 천도교로 대고천하 한 이후 종교적 기초를 닦는데 최고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노력했다. 20년대 이후 교단 분립으로 인하여 혼란한 시기에 천도교 의사원의 의장으로 피선되자 천도교 혁신운동을 통하여 진로를 개척하려 혼신을 다하였다. 천도교의 민주적인운영에 앞장섰고 미신적 종교의식타파, 계급적 조직의 타파를 주장하며 교단을 혁신하려했던 지도자였다. 의암성사의 환원이후 혁신파의 한줄기인 聯合敎會派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교단의 중심인물에서 밀려났다. “동학사”는 동학과 천도교는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하는 신앙이 올바른 것인가를 밝히고 싶어, 자신이 걸어 온 동학인으로서의 생생한 삶의 체험과 견문을 바탕으로 기술한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서이다.

    10. 改革, 反亂 그리고 天道; 벤쟈민 B 윔스. / 洪 晶植 譯. 新明文化社. 서울. 1966. / 이 글은 벤쟈민 B 윔스.(Benjamin B. Weems.)가 1955년에 문학사 학위 수여에 필요한 전공논문의 일부이다. 원명은 ‘REFORM, REBELLION, AND THE HEAVENLY WAY’이고 아리조나 대학 출판부에서 1964년에 간행됐다. 이 책 말미에 수록된 약 120여 종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광범위한 자료를 통하여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동학과 천도교의 피 흘린 역사의 기록으로 외국인이 기술한 최초의 저시이다. 이후 저자는 천도교가 북한 정권 아래서 항거하여 많은 희생을 치른 3.1재현운동과 영우회 사건을 알게 되어, 1967년에 로열 아세아 협회(Loyal Asiatic Society.)가 간행한 43卷 “韓國의 新宗敎”에 ‘天道敎는 第二世紀에 접어들다’란 논문을 게재했다.

    11.東學 天道敎f略史 附 叢書 ; 1930년경에 구파에서, 崔俊模, 鄭廣朝, 李鍾麟, 三長老와 李敦化, 李仁淑의 자료 제공으로 소량 출판되어 광복과 6,25동란을 거치면서 稀貴本이 되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포덕 71(1930)년부터 포덕 102(1961)년 말까지 30여 년간의 구파의 입장을 반영한 敎團史를 추가하여 프린트(등사)본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1970년대 접어들면서 舊派의 一群이 천도교와 訣別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포덕 131(1990)년 4월에, 위 등사본의 내용 일부를 修訂補完하여 龍潭淵源의 名義로 인쇄본으로 간행했다. P. 1에 天道敎會史 草稿 라 하고

    “天道敎(東學)는 距今 百有餘年前 庚申 四月 五日 朝鮮 慶州 龍潭亭에서 第一敎祖 崔水雲 大神師 天命을 受하여 无極大道를 刱明하옵신 後 第二世敎祖 崔海月神師 第三世敎祖 孫義菴聖師 第四世敎祖 朴春菴上師 ㅣ 이 法統을 傳受하여 今日에至하였나니 四世神聖師의 歷史를 天統, 地統, 人統, 道統編으로 區分하여 大略 추려보면 下記와 如하다.”

    라고 설명하고 一 天統編을 기술하기 시작하였다. 이 簡略한 기술로 보면 天道敎會史 草稿는 포덕 66(1925)년 까지인 P.124. 이거나 포덕 71(1930)년 까지인 P.129. 까지로 보면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포덕 71(1930)년부터 포덕 102(1961)년 말까지 30여 년간의 기록은 서문의 설명에 따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12. 天道敎會史 抄稿; 포덕 71(1930)년에 구파에서 독자적으로 기술한 구파계열의 입장을 밝힌 최초의 교사의 초고로 미 간행됨. 책의 체제는 본문 5편과 부록 천도교 총서로 되어 있고 서술의 중심내용은 기존 교사와 별 차이는 없으나 4, 5편은 박인호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편향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간행된 天道敎史 附 叢書가 바로 天道敎會史 抄稿를 底本으로 삼았다.

    13. 天道敎百年略史; 布德122(1981)年 天道敎 中央 總部에서 刊行.

    14. 東學 天道敎史; 金 琓洙. 良才印刷社. 서울. 1993. 編著者인 碩菴 金 琓洙는, 1970년대에, 구파계열의 일부가 천도교 중앙 총부와 결별하고 독자적 운동을 할 때, 깊이 관여하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구파계열의 경기, 충청, 전라도의 상당수의 지도자와 교인들을 모아 東學 儒道會를 결성하여 이끌었던 인물로 교단사의 해박한 지식과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원로. 구파계열의 편파적인 교단사에 기울지 않고 구파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정당한 교단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엮은, 독자적인 교회사 기술로 높이 평가 받음.

    15. 東學 天道敎略史; 金 琓洙. 弘文堂. 서울. 2003.

    16. 천도교약사; 布德147(2006)年 天道敎 中央 總部에서 刊行.

    追加 參考資料 들.

    1. 水雲行錄; 原題는 水雲文集 / 丹谷本(假稱);1898년에 榮州郡丹山面丹谷里에 居住한 金玉熙가 필사한 것. 이 필사본의 底本은 榮海接主 夏朴善과 水雲의 조카인 崔世祚등이 중심이 되어, 수운이 출생한 1824년부터 1864년 수운이 처형될 때까지 기술된 敎團史 중 최초의 것으로 1865년에 간행되었다.

    2. 水雲(齋)文集; 1900년에 平男 龍岡 사람인 林仲七이 필사한 것이며, 이 필사본의 저본으로 崔先生文集道源記書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수운의 일대기만 필사한 것을 학계에서 평가하고 있다.

    3. 崔先生文集道源記書; 1879년에 해월시대의 次道主 姜時元이 水雲(齋)文集을 저본으로 하여 1824년부터 1879년 까지 수운과 해월의 은도시대를 소상히 기술한 동학의 초기 교단사이다.

    4. 海月文集; 전라북도 부안군에 소재한 호암수도원의 所藏本으로, 표제는 海月文集으로 되어 있으나 해월의 문집이 아니라, 초기동학 교단의 주요의식을 규정한 내용의 필사로 하여 1885년부터 東學革命의 勃發 直前인 1892년까지의 布德式, 入道式등의 儀式節次와, 해월이 동학지도자들에게 내린 法軒降訣, 各種 通文 등이 年度別로 記述되어 있다. 이 文集을 통하여 1880년대 초부터 組織的인 基盤을 바탕으로 운영되었고, 便長制(또는 便義長制)로 接의 巡廻와 講道를 强化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간 동안의 東學의 成長過程을 상세히 살펴볼 수가 있다.

    5. 本校歷史; 平南 平原 출신인 秋菴 吳尙俊이 敎團 最初의 敎化用 月刊 雜誌인 『天道敎會月報』에 創刊號부터 53회(1910-1914.)에 걸쳐 國漢文混用體로 揭載한 敎團史로 1824년부터 1880년까지 기술한 것으로 이교단사의 저번 역시 崔先生文集道源記書와 여러 자료들을 정리한 것. 이 글의 국문 번역본으로 李鍾一의 ‘본교력’ 는 1911년 6월 (11호)부터 1915년 4월(54)까지 모두 38회가 天道敎會月報에 연재되었다.

    6. 大先生 史蹟" 附 海月先生文集; 박맹수 교수가 부안의 호암수도원 朴奇重 宗法師가 所藏하고 계셨던 것을 발굴한 것으로, 전반부는 수운의 일대기를, 후반부는 해월의 일대기를 요약한 것이다. 1900년 초반에 시천교의 김연국 계열의 사람이, 純 漢文體로 編纂한 것을 1906년에 筆寫한 것으로 1824부터 1894년까지의 교단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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