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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 일대 3.1운동 유적지 답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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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삼일운동100주년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931회   작성일Date 16-11-07 10:02

    본문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중심이 주관한

    북촌 일대 3.1운동 유적지 답사가 지난 20161030()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북촌 일대 3.1운동 유적지 답사는 대학원생 및 역사 유적에 관심 있는

    청년들 20여 명이 참석,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하에 진행되었습니다.

     

    답사는 오후 2시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답사지에 대한 사전 프레젠테이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답사 장소인 보성사 터(현 조계사), 태화관(현 태화빌딩),

    승동교회, 탑골공원, 천도교중앙대교당, 인촌 김성숙 숙소 터와 인촌 고택,

    만해 한용운의 유심사,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과

    관련 동영상 상영 등의 프로그램으로 약 1시간가량 계속되었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본격적인 3.1운동 유적지 답사가 시작되었는데요,

    첫 답사지는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한 보성사 터(현 조계사)였습니다.


    현재의 조계사 극락전 앞마당(혹은 대웅전 자리)은 천도교가 운영하는 인쇄소

    보성사가 있던 터입니다. 보성사는 1919227<독립선언서> 21,000매를

    인쇄하고, 31<조선독립신문> 115,000부를 비밀리에 인쇄한

    곳으로 3.1운동의 시작과 확산, 고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지요.



     


     

    당시 보성사는 30평의 2층짜리 근대식 벽돌 건물로서 골조에 기와를 얹은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628, 일제의 방화로 불에 타버렸지요.

    다행히 보성사 건물 옆에 있던 회화나무는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조계사 뒤편 수송공원 안에는 보성사 표지석, 보성사 사장 이종일 동상,

    독립선언서 기념조형물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태화관 터(현 태화빌딩)입니다. 191931,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3창을 한 곳이지요.

    현재는 태화빌딩(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 들어서 있고, 건물 앞에는

    3.1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이, 1층 로비에는 민족대표 33인의 기록화가 걸려 있습니다.




       종로구 인사동 137번지에 자리 잡은 승동교회는 19193.1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단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인데요, 연희전문학교 출신인

    3.1운동 학생단 대표 김원벽이 다녔던 교회이기도 합니다. 학생단은 이곳에서

    3.1운동 학생조직 체계 정비, 31일 학생동원 최종 점검, 독립선언서 배포 등과

    관련된 역할을 분담했지요. 승동교회는 1912년 벽돌 양옥으로 1차 준공된 이후

    1558년 수리 및 증축된 상태로 현재까지 남아 있답니다.




       승동교회에 이어 북촌 일대 3.1운동 유적지 답사단이 찾아간 곳은 탑골공원입니다.

    191931, 이곳을 독립선언식 집결지로 알고 속속 모여든 학생들과 시민들이

    별도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던 역사적 현장이지요.




      

    독립선언식을 마친 학생들과 시민들은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가행진을 펼쳤습니다. 이때 종로를 거쳐 덕수궁 대한문에 이르는 길가에 나와 있던

    수많은 군중들이 시위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만세시위는 대대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지요.

     

    탑골공원에는 현재 3.1운동 부조물, 3.1독립선언기념탑, 한용운 기념비, 의암 손병희

    동상 등이 서 있습니다. 원래 의암 손병희 동상 자리에는 이승만 동상이 있었지요.

    하지만 4.19 혁명 당시 학생과 시민들이 철거한 후 빈 좌대만 남아 있다가

    1966년에 이르러 손병희 동상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은 3.1운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입니다.

    천도교의 총본산으로, 19451224, 김구 선생은 이곳에서 열린

    천도교 인일기념식에 참석하여 이 대교당이 없었다면 3.1운동도 없었고,

    3.1운동이 없었다면 상해 임시정부가 없었고, 상해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없었다. 천도교 정신으로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

    증언한 바 있습니다. 3.1운동을 앞두고 진행된 각종 비밀회합과 자금은

    사실 모두 천도교중앙대교당 건축 성금의 일부로 충당된 것이었지요.



     

     

    일제강점기 서울시내 3대 건물 중 하나였던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중앙종리원,

    수운기념관 등 웅장한 양옥들과 함께 천도교타운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안국역을 지나 본격적으로 북촌한옥마을로 접어듭니다.

    현대 본사 옆길로 주욱 올라갑니다. 아기자기 예쁜 샵들과 커피향이 흘러나오는

    카페들을 지나면 인촌 김성수 숙소 터(김사용의 집)가 나옵니다.

    인촌 김성수는 동아일보 사장,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교장,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 전신) 교장 등을 역임하고 3.1운동에도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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