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님 "유시문"을 공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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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諭示文(유시문)
요점 과 대의(大意) <종학 대학원 6강 강재에서>
1919년 3월 1일의 거사를 위해 만반의 준비가 극비리에 진행되는 가운데, 2월 28일 의암성사는 마지막으로 춘암상사에게 다음과 같은 유시문을 내려
교단의 중책을 맡아 모든 일을 교회간부와 함께 힘써 발전시켜 나가도록 당부하였다.
이처럼 교단 안팎의 일을 정리한 의암성사는
다음날 3월1일 거사를 앞둔 2월 28일 밤 가회동 자택에 민족대표 일동을 초치하여 마지막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천도교 대표로 최린을 비롯한 12명, 기독교 대표로 이승훈을 비롯한 10명, 불교 대표로 한용운 1명 등 23명이 참석했다.
의암성사는 간단한 인사를 통하여
“금번 우리의 의거는 위로는 조선(祖先)의 신성유업(神聖遺業)을 계승하고 아래로 자손만대의 복리를 작흥(作興)하는 민족적 위업입니다.
이 성스러운 과업은 제현(諸賢)의 충의(忠義)에 의지하여 반드시 성취될 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내일의 거사에 대해 논의한 끝에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①첫째로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하기로 했던 원래의 계획을 바꾸어 태화관(泰和館)에서 오후 2시에 독립선언을 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군중심리에 의해서 폭력사태나 불상사가 일어나 일경에게 흉폭한 강압수단의 빌미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②둘째로 조선총독부에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문을 보내는 것은 이갑성이 책임지기로 하였다.
③셋째로 민족대표 전원이 모여 독립선언을 한 후 일제 경찰에 체포당하더라도 피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행동을 통일하기로 하였다.
●諭示文(유시문) {원문}
不佞이 吾 敎의 敎務를 座下에게 專委함은 已爲十年이라,
更 說할 必要가 없거니와 今日 世界 種族 平等의 大 機運 下에서
我 東洋種族의 共同幸福과 平和를 爲하여 終始一言을 黙히 不能하므로
玆에 政治方面에 一時 進 參케 되었기 如是一言을 伸 托하노니
惟 座下는 幹部 諸人과 共히 敎務에 對하여 益益 勉勵하여 小 勿 妄動하고 我 五萬年 大 宗敎의 重責을 善護 進行할지어다.
●유시문(諭示文) {해의} 깨닫게 타일러 보이어 가르침
불영(不佞)이 <성사 자신을 겸손히 이르는 말.>
우리 교(吾敎)의 교무(敎務)를 좌하(座下)에게 임의로 모두 위임한지(專委) 이미 벌써(已) 십년이 되었노라(爲十年).
하여 다시 더 설명할(更說) 필요(必要)가 없거니와
금일(今日) 세계(世界)종족(種族) 평등(平等)의 중대한 계기를 맞아(大機) 천하의 큰 기회와 큰 운수아래서(機運-下)
우리(我) 동양종족의 공동행복과 평화(平和)를 위(爲)하여 지금껏 준비해온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 말도 없이(終始一言)
묵묵(黙黙)히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가 불가능(不能)하므로,
이에(玆) 정치방면(政治方面)에 한때(一時) 나아가 참여(進參)하게 되었기에 지금(玆자) 이와 같이(如是) 이 한마디 말로(一言)
세상을 향해 떳떳이 허리를 쫙 펴게 됨을 설명하며(伸) 모든 뒷일을 맡기며 부탁하노니(托)
사려 깊은(惟) 좌하(座下=이 자리에 함께 하신 분)들께서는
모든 간부들(幹部諸人간부제인)과 함께(共) 교무(敎務)에 대(對)하여
더 더욱(益益익익) 스스로들 힘써 노력(勉勵면려)하되
일을 행함에 삼가 주의하며(小) 분수없이 망령된 행동일랑 하지 말고(勿-妄動물-망동)
우리들의(我)
오만년(五萬年) 대 종교(大 宗敎)의 중요한 책임(重責중책)을
독선(獨善)에 빠지지 말고 훌륭하게 선도(善導)하여,
잘 통솔하며 보살피고 지키어(護=保護) 일을 잘 처리해 나갈(進行)지어다.
<송탄교구 圓菴 이승민 심고/ 이 글 유시문은 3부 경전에 실려 있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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