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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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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566회   작성일Date 17-02-20 21:43

    본문

    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9)


        白重彬은 「天道敎와 人間」의 二. 天道敎의 中心問題에서 천도교의 중심문제란 천도교 신앙의 목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앙의 목적과 핵심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天道敎의 中心問題는 人間魂把持라하야도 過言이아니다. 水雲大神師께서 至今으로부터 七十餘年前에 當時의 朝鮮社會릉 굽어보셧다. 그때의 政治를 돌아보니 李朝時代의 絶對專制政治이다. 當時의特權階級그者는 많은 生民을 弄絡又는 自己네들의 私腹을 채우는 한道具로 삼앗다. -중략- 사람과 사람의關係 사람과 社會와의關係 사람과 自然과의關係 사람과물건과의關係에있었어 卽關係와 關係와의 調和를 잃었다. -중략- 政治나道德이나 倫理는 비록 볼것이없이亡하엿다. 할지라도 아름다운 風俗이나 있나보자하시고 遍踏江山하섯다. 風俗이 또한冷情과 刻薄에流하야 美風良俗은 찾을곳이 없게되엿다. -중략- 그리하야 사람 그者를 全的으로 打診하니 얼이없는卽魂이빠진人間이다. 다시말하면 生命이없는 土偶木人이다. 政治問題보다 倫理問題보다 風俗問題보다 人間그者의 魂빠진그것이 무엇보다 至切한問題이다. 다시말하면 人間魂把持가 第一의根幹問題이오 政治이니 道德이니 倫理이니 風俗이니하는 모든問題는 第二第三의 枝葉問題이다. 이렇게 魂이없게된그것이 人間으로서의 一大疾病이다. 魂이없다함은 그무엇을意味함아냐 卽誠敬信이 없다는말이다. 大神師의 座箴에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는 人間魂(誠敬信)把持가 무엇보다도 第一의中心問題라는 意味이시다. 그러므로써 ‘天道敎의 中心問題는 人間魂把持라하야도 過言이아니다. 天師問答에 受我此符하야 濟人疾病은 人間魂把持가 後天開闢의 一大中心問題라는 意味의 法詔이시다./ 『新人間』 통권 93호.「天道敎와 人間」 P.8.

    崔秉瑞는「목차에는 天道敎는웨-믿는가?/본문에서는 天道敎는웨-는가?로 착오가 있음.」란 연재 설교물에서 천도교인이 천도교를 왜 믿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崔秉瑞 자신은 천도교를 왜 믿는가에 대한 답으로 아래와 같이 標語式으로 대답하고자 한다고 했다.

    一. 한울을 바로믿기爲하야

    二. 사람이 한울되기爲하야

    三. 地上에 天國을 建設키爲하야

    믿노라하겠다. 이세가지는 卽 天道敎의 宇宙觀, 人生觀, 社會觀이되는 것이며 또는우리敎의 呪文三七字를解釋한것이된다. 卽 一.은降靈呪文(至氣今至願爲大降) 二.는本呪文第一節(侍天主造化定) 三.은本呪文第二節(永世不忘萬事知)의解釋이된다는 것이다. / 『新人間』 통권 88호.「天道敎는웨-믿는가?」 P.8.

    P.24.

    註 00 ; 필자가 執筆의 辯으로 제목 다음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주로서 설명한 것이다. ‘筆者로부터- 이講義는 筆者가 多年間敎外人에게 入敎를勸할時이든가 惑敎理를알고자하는非敎人이 뭇는데對하야 標語式으로答辯하든것을 演義하야쓴것임니다. 敎理는勿論 夜雷先生의解說을 基礎로하야附演하였고 그他의것은 若干의參考로써한것인데 敎理解說에 錯誤또는曲解가많겟고, 學說等紹介에不完全 또는誤傳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以下略-’

    註 00 ; 「天道敎는웨-믿는가?」의 연재물 목록.

    「天道敎는웨-믿는가?」其一. /『新人間』 통권 88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其二. 「在來思想의神의觀念」/ 『新人間』 통권 89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其三. 「天道敎의神의觀念」/ 『新人間』 통권 90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其四. 「天道敎의神의觀念」/ 『新人間』 통권 91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其五. 「至氣一元論」/ 『新人間』 통권 92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其六. 「認識論/목차에선 認識問題」/ 『新人間』 통권 93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續 「認識論(二)/목차에선 認識問題」/『新人間』통권 94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續 「認識論(三)/목차에선 認識論問題」/『新人間』통권 95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續 「사람이한울되기爲하야」/『新人間』통권 96-97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續 「天道敎의人生觀」/『新人間』통권 98호. 1935.

    「天道敎는웨-믿는가?」續 「天道敎의人生觀」/『新人間』통권 100-103호. 1936.

    「天道敎는웨-믿는가?」續 「天道敎의人生觀」/『新人間』통권 106호. 1936.

    ====================================================

    崔秉瑞는 「天道敎는웨-믿는가?」其四. 「天道敎의神의觀念」에서 한울님을 올바르게 믿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울님을 믿는 方法은 첫재 正信을하여야된다. 옛날사람들의 한울님을 믿는것은 恐怖나 慰安이나 祈願等으로 믿어왓다. 禍災에對한 恐怖라든가 死後來世를爲한 慰安이든가 그他 自己의 하고저하는바를 達成키爲한 것으로 믿엇다. 그러므로 믿기만하면 神의力으로 온갖못된것은 다없어지고 좋은것만 도라오리라 믿엇다. 이것이 이론 迷信인바 天道敎信仰과는 그根本이 틀린것이다. 天道敎의 信仰은 어떤 恐怖로부터 나온것이아니고 사람으로서의 本分을 다하기爲한点에서 나온것이다. 卽自己本位인 在來信仰에서 버서나서 사람本分인 天道敎信仰으로 올마온것이다. 極端으로말하면(그럴理는萬無하지만) 한울을 믿음으로해서 災殃이온다고하다라도 사람된本分으로 믿어야 된다는것이다. 그리고 또 自己本位를爲하야 臨死呼天格 으로 急한일이 있을때뿐 神에게 請을대이는것이아니고 언제나 一分一秒 寤寐間 永世不忘格으로 믿는것이며 또는無理한要求 不正한事爲에도 神에게 祈願하는것이아니다. 섭을지고 불로들어가면서 살려주기를 願한다든가 十字軍의 싸홈과같이 同敎同胞間에 서로滅亡식혀주기를 願하는것이아니고 오즉 바른일에뿐 卽正義와眞理에뿐 確乎不拔의 信念을 븥이는 것이다. 다음 修我-라야되는것이다. 한울님은 가까이나에게있는 것이요 멀리虛空에 있는것이아닌것을알아야한다. -중략- 그럼으로 한울님을 믿는 方法은 오직나를닥는데있는것이다. 我에게天이있거니 修煉할必要조차없겟다할수있으나 修煉이없는人間에게는 隔墻이千里格으로 도모지 그端倪(단예;단아한 모습/오암)를엿볼수가없고 오직修煉으로서야 明鏡에 塵埃를쓸은듯이 天의 眞面目이 내타나진다. 그럼으로 한울을믿는다는것은 나의自我修煉으로 自我의良知良能을 發揮하야 完全히 天人合一의境에일으러 人으로볼때 天이卽人 天으로볼때 人이卽天이되닌것이니 卽한울의無窮이 곳사람性無窮이되는것이다.’ /「天道敎는웨-믿는가?」其四. 「天道敎의神의觀念」/ 『新人間』 통권 91호. PP.19-20.

    라고 하여 1935년을 전후한 천도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이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天道敎를 왜 믿는가 ? 라는 무름에 위와같이 선명하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그런 천도교 신앙을 하고 있는지를 자문자답해볼 때가 왔다는 것이다. 300여 만의 대교단이 활발한 운동과 독실하고 신념에 찬 신앙을 하던 때와 退行으로 인하여 수많은 교도들이 필요한 이시기에 우리는 어떤 신앙의 신념을 갖고 포덕을 하고 있는지 뼈를 깎는 자기성찰을 해야 할것이다. 천도교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있고 그 궁극적인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설명되어 있는지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午星이란 필명을 가징 金亨俊은 「信仰과直觀 (二)」에서 천도교의 신앙은 어떤 것이며 基督敎와 佛敎의 신앙과를 비교하면서 천도교의 신앙이 올바른 신앙임과 궁극적인 목적인 지상천국 건설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信仰은 現實的信念이 그들의 生活實踐에있어 維持될수 없을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러므로 宗敎的信仰은 그 原始的起源에서 보면 社會現實의 轉換期에있어 多大數의 人間이 現實世界에 對하야 信念을 갖지몯게될때에 나타난것이다. 基督敎의 信仰은 猶太人의 現實的苦痛에서 생겻으며 佛敎는 婆羅門敎等의 思想的混亂에서 생긴것이며 우리天道敎는 李朝末葉의 社會現實의混亂에서 생긴것이다. 그러므로 信仰은 우리의 生活體驗에서 얻어진바 現實世界가 그들의 새로운生活實踐과 背異될때에 그보담 一層 高尙한 世界를 憧憬하며 仰慕하는 새로운生活實踐을 基礎로하야 일너지는것이다. 그러므로 信仰의 對象으로서의 信仰世界는 彼岸的인것이 아니라 此岸的이며 架空的 理想的인것이 아니라 理想的이면서도 現實的 實踐的인 世界인것이다. 즉우리天道敎人의 信仰의對象인 地上天國이 그것이다. 地上天國은 現實世界에 屬한것이 아니면서도 現實世界를 떠난 彼岸世界가 아니다. 우리의實踐에 依하야 반듯이 現實化될 可能世界이다. 우리는 이러한 信仰世界즉 地上天國의 實在性을 確信하고 그것을 仰慕 憧憬하며 希求하며 그實現을위하야 實踐的으로 努力하는것이다. 우리의 信仰生活의 內容인 布德, 敎化, 修道는 이러한 信仰世界즉 地上天國의 實現을 爲한것이다. 地上天國은 우리의 生活實踐을 通하야 完美하게 나타날 世界의 本像이다.

    그런데 이러한 信仰은 信念이 直觀과 짝하야 있는것과같이 또한 直觀에 依해서 成立되는 것이다. 近代의 觀念論者들은 이러한 信仰의 世界까지 思惟 槪念에 依하야 說明하려고하나

    信仰世界는 思惟나 槪念에 依하야 나타날것이아니라 그들의 生活實踐에서만 나타나는 까닭에 오히려 感情과 意志에 基礎를둔 直觀에依해서만 把握될것이다. 그런데 信仰世界에 對한 直觀은 現實的 直觀의 否定에서 生기는까닭에 그것과混同할수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宗敎的直觀이라 命名한다. 思惟나 槪念은 信仰世界를破壞할지언정 그것을 成立시키지몯한다.(그렇다고 나는 思惟 槪念을 全혀 否定하는바바아니다. 여긔에對해서 他日에)오직 情意에 立脚한 直觀만이 信仰世界를確保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의健全한 世界觀은 有限的이요 때로는 桎梏的인 現實的 日常的世界觀을 버서나서 無限無窮的 이면서 한층 높고 새롭은 世界의 仰慕 憧憬 希求 實踐을 內容으로하는 宗敎的直觀 즉 信仰的世界觀에 依해서만 確立될것이다.’/「信仰과直觀 (二)」/ 『新人間』 통권 91호. PP.24-25.

    정혜정은 「이돈화의 인내천주의와 서구근대철학의 수용」에서 『신인철학』과 『인내천요의』에서 이돈화가 인내천 신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주장을 바탕으로 이돈화의 신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돈화는 다신론, 일신론, 범신론을 언급하면서 인내천은 범신관(汎神觀)상에 입각한 유신주의(有神主義)라 정의내리고 인간 이외의 인격적 신은 없다고 선언했다. 흔히 이돈화가 동학의 인격적 신을 무신론으로 격하시켰다. 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돈화는 우주의 정신적 대 주재인 신의 관념을 무신론이 파괴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경계한다. 인내천 신론은 정신적 대 주재인 신의 관념을 갖고 있다. 수운은 유신론을 주창하여 일체 우주만물이 신의 정신하에서 생성한 것으로 논하였고 우주를 지배하며 통활하는 천주가 존재함을 말하였다고 이돈화는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천주(天主)는 개체적, 인격적 상제를 말함이 아니라 범신적 즉 정신적 의미임을 분명히 했다. 대우주의 대정신을 칭하여 천주라 하고 대우주의 정신과 사람의 정신은 근본에서 유일의 실재가 되기에 인내천 주의는 신을 대우주에서 봄과 함께 개체아 즉 사람에게서 돈일한 신을 본다. 하였다. -중략- 또한 이돈화는 인내천 신을 인격신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인격적 신은 기독교의 ‘일신교적 인격신’이 아니라 인간성 안에 있는 ‘무궁성의 인격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중략- 그리고 이돈화는 이러한 인내천 신을 논증함에 있어 먼저 포이엘 바하를 적용했다. 포이엘 바하가 “인류의 본질이 인류의 지상실재로서 지상실재를 신”이라 한 것을 인용하여 수운의 신론이 정당한 것임을 피려과고자 했다. 포이엘 바하는 “금일 이후의 세계의 역사는 신이 신으로서 인류에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신으로서 인류에게 대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바로 이 말이 수운이 말한 “사람이 귀신이며 사람이 조화(造化)”라 한 것과 동일한 점이 있다고 이돈화는 말한다. 사람성이 무궁자의 신을 창조하게 된 것은 사람성의 본질이 본래 무궁한 까닭이다. 인류의 본질이 신적 대상으로 나타났으므로 신의 관념이 곧 인류의 본질이 된다는 입장에 동조했다.’ PP. 168-170.

    고 설명함으로서 서구사상을 이돈화가 어떻게 수용하여 동학사상과 천교도사상화에 변전(變轉)하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정혜정은 이돈화의 인내천주의의 정립을 위한 서구근대철학의 수용을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이돈화는 인내천주의가 근대철학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고 이를 통해 인내천주의 이해를 심화시키고자 했지만 근대철학과 일정 부분 거리가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인내천 사상이 신본위나 영본위 사상이 아니기에 유심론이나 유물론 어느 한쪽에 편향하는 것이 아니었고, 니체적 개인주의나 톨스토이식 사회주의, 그리고 감각적 자연주의나 이성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는 과학적 진화론과 차별성을 두었으며 범신론마저도 넘어서는 최후종교로서 인내천주의를 해명해 나갔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서구 근대철학을 수용, 융합하는 작업이요 인내천주의의 근대용어적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이돈화가 적극 수용한 서구 근대철학의 핵심은 맹종을 비판하는〈능동적 주체〉에 있었고 이를 인내천의 인간관에 적극 수용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서구 근대가 강조하는 이상주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로부터 독립된 개별주체가 아닌 한울아적 전일성을 구현한 개인으로서의 능동성을 강조한 주체개념이었다. 그 주체를 근대적 용어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가 “한울 아(我)’, ‘인격적’, ‘사람성-자연주의’, ‘무위이화적 진화론’이라 할 것이다./P . 184.

    황선희는 이돈화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천도교 교단이 교리를 현대사상화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천도교의 교리를 현대사상화하는 과정에서 인내천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에서 천도교의 현실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인내천을 추천개벽의 사회사상으로 공론화함으로써 청년 지식층을 천도교로 유인, 흡수하려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1920년대 천도교 청년당이 신문화운동의 형태로 독립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돈화의 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학 창도 이후 천도교의 현실 참여정도와 양상이 이와같이 발전, 변모하게 된 연유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인내천의 근대사상적 측면을 신관, 인간관의 항목으로 나누어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이돈화의 인내천사상 논증」 P.102.

    고 했다. 그리고 한울님의 본체에 대해서는

    ‘이돈화는 우주의 근원을 규명하는 방법으로 한울의 자존적 본체本體를 정의했다. 근대에 이르러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유물론唯物論이나 유심론唯心論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던 것에 반하여 유물도 유심도 아닌 정신과 물질의 모든 현상을 일관하는 실재론에 근거하여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적 관점에서 한울의 본체를 인식하였다. 그는 로크의 유물론과 칸트의 유심론을 비교 설명하는 방법으로 이들의 학설이 각기 안고 있는 한계성을 지적하였다.’「이돈화의 인내천사상 논증」 P.104.고 하였다.

    註 00 ; 위와 같은 이론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1968년도 판『新人哲學』 第一章 宇宙觀 PP.9-47. 까지 필독하시기 바람.

    이돈화는 『新人哲學』 第一章 宇宙觀에서 한울과 인내천의 관계에 대해서 한울의 本體屬性으로 量的 한울로서의 우주의 본체와 質的 한울로서의 至氣一元實在論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無窮한 이 울」이라 함은「한울」은 無限 無窮하다는 뜻으로 「한울」은 그 自身으로서 無窮的 自存이며 無限的 自律이라는 말이다. 「한울」은 卽 無窮하다. 無窮한 故로 唯一일뿐이다. 一元的 自存일 뿐이다. 多數中에 一이라는 말이 아니오, 모든 多數를 全部 包含 하고 있는 一인 것이다. 卽 唯一이다. 他에 依據치 아니한, 卽 存在의 根據가 自己밖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한울」은 自體本性에 存在의 根據가 있다. 卽 自身이 自己自身의 存在根據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卽 必然的 存在인 것이다./P.10.

    라고 하여 必然的 存在로서 一元的 自存으로서 唯一한 존재가 「한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水雲이 布德文 序頭에서 설법한

    盖自上古以來 春秋迭代四時盛衰 不遷不易 是亦天主造化之迹 昭然于天下也 愚夫愚民 未知雨露之澤 知其無爲而化矣 自五帝之後 聖人以生 日月星辰 天地度數 成出文卷而以定天道之常然 一動一靜一盛 一敗 付之於天命 是敬天命而順天理者也.

    라고 하신 그 법설의 핵심인, 우주의 생성과 순환에 대하여 설명한 것을 들어「한울」의 造化는 動的狀態이며 自律的 狀態이며 創造的 狀態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돈화는 이 수운의 말씀을 한울님의 조화로 무위이화의 진화력으로 자기의 자율적 창조로서 지구의 창조에까지 진화한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한울」自體의 無爲而化의 創造力이 現象界를 創造하였으므로 「한울」은 本體와 現象의 關係에서 一卽多, 多卽一로 形容할 수 있다. 本體 卽 現象, 現象 卽 本體로 表示할 수 있다. 그러므로 水雲은 「物物天事事天」이라 하였다. 本體의 原理가 現象界에 나타난 그대로를 가르쳐 「物이 다 한울이며 事가 다 한울이라.」한 것이다. 그리하여 本體 卽 한울은 오직 人間의 自覺的 認識에 依해서만 認識할 수 있는 것이므로 水雲은 「人乃天」이라 하였다.’/P.12.

    라고 하여 인내천이 천도교 시대에 새로 생긴 인식과 사상이 아니라, 수운의 「侍天主」가 바로 인내천의 發源이라 본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의 시각과 관점에 따라 동학시대는 「侍天主」이고, 천도교시대에는 「人乃天」이라 하여 「侍天主」가 「人乃天」과는 다른 것이므로 절대로 「侍天主」가 「人乃天」이 될 수 없다는 결과도 있었고,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단내외에 아직도 常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돈화는 일찍이 1920년대에 水雲의 「侍天主」가 「人乃天」이라고 說破하고 있었다.

    이돈화는 수운의 사상을 수운의 법설에서 우주의 생성과 순환에 대하여 설명한 것을 들어「한울」의 造化는 動的狀態이며 自律的 狀態이며 創造的 狀態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돈화는 이 수운의 말씀을 한울님의 조화로 無爲而化의 進化力으로 自己의 自律的 創造로서 지구의 창조에까지 진화한 것이라고 본 것은 원형이정이라는 자연의 이치 즉 生生之理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布德文 序頭에서 설법한

    盖自上古以來 春秋迭代四時盛衰 不遷不易 是亦天主造化之迹 昭然于天下也 愚夫愚民 未知雨露之澤 知其無爲而化矣 自五帝之後 聖人以生 日月星辰 天地度數 成出文卷而以定天道之常然 一動一靜一盛 一敗 付之於天命 是敬天命而順天理者也.

    論學文 序頭에서

    夫天道者 如無形而有迹 地理者如廣大而有方者也 故 天有九星 以應九州 地有八方 以應八卦而 有盈虛迭代之數 無動靜變易之理 陰陽相均 雖百千萬物 化出於其中 獨惟人最靈者 故定三才之理 出五行之數 五行者何也 天爲五行之綱 地爲五行之質 人爲五行之氣 天地人三才之數 於斯可見矣 四時盛衰 風露霜雪 不失其時 不變其序 如露蒼生 莫知其端 或云天主之恩 或云化工之迹 然而以恩言之 惟爲不見之事 以工言之 亦爲難狀之言 何者 於古及今 其中未必者也

    修德文 序頭에서

    元亨利貞 天道之常 惟一執中 人事之察 故 生而知之 夫子之聖質 學而知之 先儒之相傳 雖有困而得之 淺見薄識 皆由於吾師之盛德 不失於先王之古禮

    不然其然 序頭에서

    歌曰 而千古之萬物兮 各有成各有形 所見以論之則 其然而似然 所自以度之則 其遠而甚遠 是亦杳然之事 難測之言 我思我則 父母在玆 後思後則 子孫存彼 來世而比之則 理無異於我思我 去世而尋之則惑難分於人爲人.

    이라고 전제한 것은, 모두가 다 자연의 이치를 바탕으로 한, 수운 설법의 시작이었다. 수운이 자연의 이치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 설법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자연의 이치가 우주 만물과 인간사를 관통하는 生生之理 즉 元亨利貞 天道之常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돈화는 이를 한울님의 造化인 無爲而化의 進化力으로 自己의 自律的 創造라 했다. 이 자연의 이치는 明理學에서 말하는 秩序 중에 숨은 질서(hidden order)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의 숨은 질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明理學에서 말하는 질서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해야 한다. 명리학/命理學에서 대 우주의 질서(秩序/order)에는 숨은 질서(hidden order)가 있고 겉에 들어난 질서(displayed order)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한 알의 씨앗에서 조그마한 싹 곧 생명이 탄생하여 여린 줄기를 지나 커다란 나무로 자라는 모습과 과정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정말 기적과 같은 현상이라고 감탄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작은 씨앗이 때가 되면 움이 트고 싹이 돋고 줄기가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가. 이러한 현상들을 씨앗과 주위에 숨어있는 질서 때문이다. 라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生生之理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커다란 나무는 그 작은 씨앗에 숨어있는 질서의 나타남(표현)이라는 뜻이다. 그 숨어있는 질서란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되고 저런 상황 하에서는 저렇게 변해야 된다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生滅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註 00 ; 生生之理 - 모든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고 무성해졌다가 사라지는, 또는 모든 것이 탄생, 존속, 파괴, 사멸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자연의 이치. 이러한 자연을 일원론의 세계로 보고, 옛 선인들은 이를 ‘생생화화’(生生化化)라 해서 ‘낳고 낳아 변화하고 변화한다.’로 이해하여 이런 자연의 이치를 ‘생의’(生意)라고 했다. 생의란 ‘만물이 태어나게 하는 이치’를 말한다. 이러한 生生化化의 이치가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생생지리’(生生之理)라 했다. 즉, 만물이 서로 낳고 번식하는 것이 곧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본다. 모든 것이 탄생, 존속, 파괴, 사멸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인데, 이를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원리라고 한다. 성(成), 주(住), 괴(壞), 공(空)은 우주가 생성해 소멸하는 네 가지 단계이자 시간적 단위이기도 하다. 각 단위의 길이는 무한한 시간 개념인 겁(劫)이다. 類義語로는 元亨利貞. 自然之理, 成住壞空 , 生住離滅. 生老病死 等이 있다./관련 자료들에서 재정리함.

    이와 같은 숨어 있는 질서의 정체를 본체라고 하며, 우리가 감지할 수 있도록 겉으로 사물(事物)이 나타나는 질서를 작용(作用)이라고 한다. 이 본체(本體)와 작용(作用)의 상관관계가 바로 체·용(體·用)의 개념이다. 체(體)로서의 ‘나’는, 진짜 ‘나’이고, 완전한 ‘나’이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온 나(全體)’이다. 용(用)으로서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나’이고, 그때그때 변화하는 곁으로 나타나는 부분적인 ‘나’일 뿐이다.

    註 00 ; 明理學 - 明理學은 종교도, 점술도, 미신도 아니다, 명리학은 자연의 원리와 만물의 生과 死의 근본을 바탕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自然의 氣가 우리에게 어떠한 변화 와 힘의 영향을 주는가를 통해서 미리 吉, 凶, 禍, 福 을 예견하는 즉 기상관측과도 같은 자연과학의 학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관련 자료들에서 재정리함.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는 이러한 동양사상의 바탕이 되어 있는 우주의 생생지리를 서양의 사고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있다.

    “모든 만족스런 우주론은 반드시 동력적 인과(efficient causation)와 목적적 인과(final causation)를 한 천에 섞어 짜아 넣어야 한다. 만약 이 인과의 두 양태에 관한 우리의 이론이 한 양태의 개입으로 다른 한 양태의 범위가 제한되어버리면 그런 우주론은 엉터리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관련 자료들에서 재정리함.

    필자가 수운의 사상을 설명할 때마다. 동경대전 4편 서두에서 설법하신 자연의 이치는 均衡과 調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왔다. 만약에 자연에 이치 즉 천도가 균형과 조화를 잃어버린다면, 順理가 아니고 逆理이기 때문에 변고와 질병이 만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동학사상을 연구하는 연구자인 이찬구는 「東學 相均論」에서 水雲이 論學文 序頭에서 설법하신

    夫天道者 如無形而有迹 地理者如廣大而有方者也 故 天有九星 以應九州 地有八方 以應八卦而 有盈虛迭代之數 無動靜變易之理 陰陽相均 雖百千萬物 化出於其中 獨惟人最靈者 중에서

    陰陽相均 雖百千萬物 化出於其中 獨惟人最靈者’ 를 들어, 동학사상의 根底에는 相均論(idea of mutual coordination)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이해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음양상균이란 만물의 化出과 存在의 근거가 균형과 조화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相互內在性이란 숨은 질서를 의미한다.

    ‘물리학의 相對性이론은 모든 것을 關係로 환원시켜 놓았다고 한다. 그만큼 관계성이 중요해졌다. 동학의 “존재의 상대성”은 결국 만물의 生成문제에서도 입증된다. 동학 천도관의 중추는 음양에 의한 만물 생성론이다. 그것의 경전상 근거는 “陰陽相均”(論學文1)이다. 만물은 ‘陰陽이 均衡 中和’를 이룬 상태에서 生成된다. 필자는 陰陽이 萬物化出을 위해 中和에 이르는 相互關係性을 “生成의 相對性”으로 파악하였다. 이것이 바로 “相對的 天道觀”의 기초가 된다. 이처럼 동학의 천도관이 존재와 생성에 있어서 상대성을 이룬다는 것은 화이트헤드(A.N.Whitehead)의 유기체 철학(Philosophy of organism)과 깊은 연관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유기체 철학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이 제시한 대로 세계 또는 세계와 인간, 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살아있는 생명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일이다. 생명적 관점이란 바로 相對性과 相互內在性이며, 이 둘이 또한 유기체 철학의 기본골격을 이루게 된다. “모든 현실적 존재는 다른 모든 현실적 존재에 內在한다”(P.R, p. 50)는 상호내재성은 “있는 것의 본성에는 모든 생성을 위한 가능성에 속해 있다”(P.R, p. 22)는 상대성 원리(principle of relativity)에 기초한 것이다./「東學 相均論」의 국문초록/동학연구 19호. 2005./ 참조; 이찬구 東學 相均論과 均衡理論/ Theory of Parity and Equilibrium in Donghak 동학학보. 11호 PP. 145-182' 2006.’

    ■ 음양{陰陽/ the principles of Ŭm and Yang / the positive and negative) - 모든 사물은 서로 대립되는 속성을 가진 두 개의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한 측면은 陰, 다른 한 측면은 陽이라 하고 그것을 사물현상의 발생, 변화, 발전의 원인을 설명하는데 이용한, 동양 고대 및 중세 철학의 개념으로서 주역(周易)의 중심 사상이다, 상대성 이원론(相對性二元論). 만물이 음과 양으로 생성된다는 원리를 한의학(韓醫學)에서는 병리론(病理論)에 원용했다. 陰陽相均/ 음양이 두루 잘 어울리는 것을 의미함./ 동양의학용어집과 관련자료 종합.

    균형(均衡/balance)과 조화(調和/harmony)

    균형(均衡/balance) ;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름. 균형은 디자인의 원리 중 2차원이나 3차원의 공간에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무게감과 이미지상의 무게감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 잡아당기거나 밀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서로 같은 힘으로 존재하는 상태이다. 균형의 원리에는 모든 디자인에 있어서 대칭, 비대칭, 주도, 종속의 개념을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원리이다. 균제와 균형은 온화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광고 효과로,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형식이다. 균형에는 대칭(symmetry), 비대칭(asymmetry), 비례(proportion), 대비(contrast) 네 가지가 있다./ 아동미술 용어사전

    조화(調和/harmony) ; 어긋나거나 부딪침이 없이 서로 고르게 잘 어울림 또는 모순되거나 어긋남이 없이 서로 잘 어울리는 상태에 있다. 유의어 앙상블 (ensemble/ 주로 실내악을 연주하는 소인원의 합주단이나 합창단을 말하나 전체적인 분위기나 짜임에 맞는 어울림이나 통일을 의미함), 조균(調均/어긋나거나 부딪침이 없이 서로 고르게 잘 어울림), 해화(諧和/여럿이 서로 잘 어울림) / 관련 어학사전을 바탕으로 한 필자의 해설.

    협동(協同/cooperation/collaboration)과 공존(共存/coexistence)

    협동(協同) ;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함. 양보와 타협은 협동 생활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유의어 합심(合心), 협력(協力), 협심(協心/여러 사람의 마음을 한군데로 모음), 협조(協調)

    공존(共存) ;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 또는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있음

    공존의식(共存意識) ; 서로 도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의식. 또는 그래야 한다는 의식. / 관련 어학사전을 바탕으로 한 필자의 해설.

    공존공영(共存共榮/prosperous coexistence /coexistence and co-prosperity /mutual prosperity in coexistence )

    공존공영(共存共榮) ; 함께 살며 함께 번영함.

    공존공영의식(共存共榮意識) ; 서로 도와 함께 번영을 해야 다 같이 생존할 수 있다는 의식. 또는 그래야 한다는 의식./ 관련 어학사전을 바탕으로 한 필자의 해설.

    ---------------------------------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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