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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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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602회   작성일Date 17-02-25 17:31

    본문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4)


    그리고 李世權의「東學經典/菊版」의 序文에서 천도교의 신앙대상인 한울님에 대한 하날님을 주장한 근거와 설명을 김경창의 서문에 내용을 상당부분그대로 쓰고 있다./ 고딕체로 된 부분이 같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하날님」은 우리민족(民族)의 고유언어(固有言語)이니 상고 이래로「하날님에 대한 신앙은 연면(連綿)히 이어내려왔다.」고구려(高句麗)에서는 동맹(同盟), 부여(扶餘)에서는 영고(迎鼓), 마한(馬韓)과 예(濊)에서는 무천(舞天)이라 하여 시월 또는 십이월에 국민 전체가 제천(祭天) 즉 「하날님」께 제사(祭祀)하였으며 형집행을 중지하고 죄수들를 풀어 주었다는 사실이 엄연히 전해온다.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팔절에 「太子 날히 ㅣ샤---唯固太子 唯天擇兮」라고 하였으며, 「세조」(世祖)가 지은 「월인석보」(月印釋譜)에는 「天子 하 아리니 東土에서 皇帝 天子 l 시다. 니라」하였다.

    「동경대전」(東經大全)의 「포덕문」(布德文)에는 「世人이 謂我 上帝라 하니 汝不知上帝耶아 問其所然한대曰余亦無功故로 生汝世間하야 敎人此法하니 勿疑勿疑하라.---受我呪文하야 敎人爲我면 則汝亦長生하야 布德天下矣리라」하였으며「용담유사」(龍潭遺辭)에 「용담가」(龍潭歌)에「하날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 나도 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나도 성공 너도 득의 너희 집안 운수로다」하시었다. 「최제우」선생님은「하날님」께서 세상에 내시어「하날님」을 위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세상에 펴게 하신 것이니 「최제우」(崔濟愚)선생님은 인류 최후의 성인(聖人)이시다.- 중략-

    1981년 9월에 우리나라 「전적문화재」(典籍文化財)로 「동경대전」(東經大全)은 나-1-20098호 「용담유사」는 나-1-20099호로 등록되었다 .- 아하 생략

    檀紀 4335年 壬午年 初春

    編者 鏡庵 李世權 謹識

    註 00 ; 윗글의 표기가 잘못된 부분을 예를 들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로, 「월인석보」(月印釋譜)는「월인석보(月印釋譜)」로 「동경대전」(東經大全)은「동경대전(東經大全)」으로, 「용담유사」(龍潭遺辭)는「용담유사(龍潭遺辭)」로, 「무극대도」(無極大道)는「무극대도(無極大道)」로, 「최제우」(崔濟愚)는 「최제우(崔濟愚)」로 해야 바른 표기가 된다.

    註 00 ; 李世權은 「東經經典/菊版洋裝」을 간행한 같은 날에(2002年 4월 7일)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영인본 부분을 뺀 4x6판형으로 된 총 300 페이지의「東經經典」을 간행하여 동시에 판매 배포하였다.

    김경창의『하날님 말씀』과註釋 典籍東學文化財』, 李世權의 『「東經經典/菊版洋裝」』金眞赫. 『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 등 이 네 권의 공통점은, 그들의 사상의 근원을 말해주는 것으로 水雲과 海月의 影幀을, 侍天敎의 龜菴 金演局 門中이 所藏하고 있던 以堂 金殷鎬 畵伯이 그린 것을 몬 책에 맨 앞에 게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도교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동학을 사상적 기조로 하기 때문에 모든 갈등의 문제가 이로부터 출발한다. 천도교의 공식영정은 春谷 高羲東 畵伯이 그린 영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일제의 식민지의 종교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하여 동학사상이 왜곡되었다고 하여 천도교 시대를 친일 종단으로 매도하여 자신들이 주장하는 민족의 고유한 하날님에 대한 신앙과 수운의 동학사상을 높이 평가했던 그들이, 친일파 쓰루야마 마사시노기(鶴山殷鎬 / 金殷鎬의 창씨개명)이 그린 수운과 해월의 영정을 모신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하게 하는 것은 金殷鎬가 그린 수운과 해월의 영정은 시천교의 공식 영정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왜 항일 사상을 지닌 春谷 高羲東 화백이 그린 천도교의 공식적인 영정을 버리고 그들의 출간물에 친일파 쓰루야마 마사시노기가 그린 영정을 넣었을까 에 대한 의문은 간단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천도교인으로서 올바른 천도교 신앙을 하는 도인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의 정신은 천도교인이 아니고 더욱이나 현실에 몸을 담고 살면서 1세기 전 수운과 해월의 동학시대를 사는 近世期人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중 김경창은 자신의 주장이 교단으로부터 묵살되고 이단으로 몰리자 남미로 이주를 하였고(교단에 알려지지 않은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겠지만) 그곳에서 환원을 하였다. 그가 태어나서 이민을 가기 전까지 우리가 위에서 살펴 본 서문과 후기에서 절절히 주장했던 조국은 어디 갔으며 『하날님 말씀』을 통한 동학사상은 어디로 간 것일까. 1980년대를 전후로 하여 1900년대 말까지 하날님과 한울님에 대한 신관 논쟁이 교단 내외에서 치열했는데, 「동학 복원운동 전국 연합회」에 주동적인 인물이었던 이세권, 김경창, 한길호 등은 교단으로부터 출교 등의 중징계를 받아 교단을 떠난 셈이 되었다.

    당시의 ,1998년 초에 「月刊 말」誌에 神觀 論爭이 소개되면서 알려졌는데 구체적인 논쟁에 대해서는 이세권이 자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김상일의 관심을 갖게 하여 교단 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신관 논쟁의 구체적인 내용이 2001년에 출간된 김상일이 지은 『수운과 화이트헤드』의 제2장 경운동 주변의 신관논쟁. PP. 59-88./1. 동학의 신과 천도교의 신. PP. 59-78. 2. 하날님이냐 한울님이냐. PP. 78-88. 에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신관 논쟁은 2000년에 출간된 김진혁의 『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지선당에서 1997.10.31에 554P.의 초간본 발행에는 이세권이 관여했다./오암』의 내용에 영향을 주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도〈二〉侍天主 思想. PP. 81-83./ 1. 죽었다 살아나는 하느님. PP. 83-85. 2. 侍天主 思想의 意義. PP. 85-110. 3. 人乃天.의 오류와 하느님의 죽음. PP. 110-121. 4 .至氣一元論과 理氣二元論의 오류. PP. 121-127.에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 몇 개의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상일은 『수운과 화이트헤드』의 제2장 경운동 주변의 신관논쟁.에서

    그런대 최근 경운동 수운회관 주변에는 동학측 이세권 등이 천도교의 ‘인내천’교리는 손병희가 날조 조작해 낸 것으로 동학과 상관이 없으며, 천도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울님’이란 단어도 ‘하날님(또는 하느님)’을 변조한 것이라면서 ‘천도교’라는 교단 자체도 일제와 친일파의 앞잡이들이 날조하여 급조된 종교이기 때문에 ‘동학’으로 복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동학복원운동전국연합회’(‘동학측’이라 함) 회장 이세권의 주장이 여론화하여 《말》지는 드디어 이를 문제삼아 다루었다.

    천도교측에서도 종로교구 선도사 김 철을 비롯한 천도교 교령 김재중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주장과 반론에 대한 토론을 통해서 한국종교철학의 신관에 관한 자생적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보기로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철학이나 종교학을 하는 학도의 진정한 사명은 마을과 거리에서 이렇게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상적 문제들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토론의 주제로 삼고 이론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여기서는 동학측 이세권의 주장과 천도교측의 반론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적 신관을 정립하고 20세기 신서학과의 비교를 통해 앞으로 요청되는 신관을 정립해 보려고 한다.

    그러면 먼저 이세권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는 철저하게 천도교는 일제에 의해 동학의 근본교리를 훼손했다고 보며 이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족종교인 ‘동학’이 왜곡된 결과 지금과 같이 사분오열되었으며 동학이 복원되면 민족정신이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또한 ‘인내천’이 동학의 교리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경전 그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내천이 왜 문제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내천은 일본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 도입된 것이며 살아 있는 천황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이기도 하다. 인내천에서 자심자배(自心自拜) 사상이 나오고 향아설위(向我說位)가 나온다. 자신의 몸속에 조상의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보고 제사 지낼 때도 조상신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제사상을 차리는 예법은 반민족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말》지. 1998년 1월. 164)’

    천도교의 기초를 흔드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세권의 이러한 주장은 동학측의 천도교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종교철학의 근본 문제를 제기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세권의 주장에 대하여 천도교측의 반론 역시 높은 수준의 것이다. 다시 ‘천도교의 한울님과 동학의 하느님은 어떻게 다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이세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천도교의 한울님은 천주가 아니라 큰 울타리이다. ’한울님‘은 우리말에 없는 조어로서 큰 우주를 뜻하며 절대자, 신을 기리키는 말이 아니다. 동학의 교주 최제우가 직접 쓴 한글 경전 《용담유사》에는 분명히 ’하느님‘(그 당시 표기에는 ’하날님‘ 또는 ’천주‘)으로부터 인격적인 성격을 제거하고 ’하늘(천)‘이라고 표현했다. 일제는 하느님이란 표현을 조화를 부리는 미신이라 해서 못 쓰게 했는데, 손병희 선생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하여 나라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고유한 하느님까지 빼앗긴 것이다. 해방이후 창씨개명했던 국민들은 모두 이름을 다시 바꾸었다. 민족종교도 의당 본래의 모습으로 동라가야 할 것이다.(같은 책)’

    註 00 ; 필자 김상일은 주 5)에서/P.66. '수운은 자기가 경험한 신의 명칭을 ‘천주’, ‘상제’, ‘천’, ‘귀신’, ‘하날님’등 특별한 구분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천도교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신의 명칭 ‘한울님’은 192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9년 까지는 ‘하느님’으로도 사용했는데 그뒤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으로 통일, 지금까지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1983, 11-12.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세권과 같은 동학측 사람인 김진혁도 《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에서 ‘천도교’란 말도 수운을 ‘대신사(大神師)’라고 부르는 것도 모두 친일파가 동학을 신비화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것으로 본다. “인내천은 천도교의 종지이루는 있어도 동학의 종지는 아니다. 만약 동학의 종지가 있다면 그것은 의당 ‘시천주’일 것이다.”(김진혁 1997. 112.)했다. 그래서 천도교는 일본의 신도를 본따온 것이며 그리고 인내천은 일본 신도가 살아있는 천황을 신이라고 보는 사상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천’은 친일파들이 조작해 낸 교리라는 것이며, 수운에게는 오직 ‘천주’ 또는 ‘하날님’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도교가 사용하고 있는 《천도교경전》마져 일제가 왜곡시킨 것이며, 결국 최근 강원도 인제에서 발견된 《동학경전》이 원래 수운이 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도교 사상의 존립 근간을 흔들만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학측은 민족정신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동학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강변한다.

    필자는 수운의 동학사상이야말로 민족의 정통사상을 이어받은 살아있는 사상체계로 보며, 21세기 미래 앞에 그리고 세계 앞에 들고 나갈 유일무이한 우리의 사상이라고 보아 현재 경운동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신관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을 바라는 마음에서 양측의 주장을 모두 소개하면서 시비를 가려보려고 한다.’/ PP. 66-68.

    라고 김상일은 말하고 있다.

    註 00 ; 《동학경전》- 윗글에서 말하는 동학경전이란 존재하지 않는 책 이름이다. 江原道 束草에 사는 文龍翼이 총부에 기증한 것은 癸未 仲夏판 『동경대전』이고, 全北 扶安에 사는 金英黙이 기증한 책은 癸巳版 『용담유사』이다 그러므로 강원도 인제에서 발견된 《동학경전》이란 존재하지 않는 책인 것이다.

    註 00 ; 동학 측이 좀 더 종교학과 천도교에 관련된 서적들 그리고 수많은 연구논문들을 광범위하게 읽고 언어학사 및 문법적인 연구를 깊이 하였더라면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註 00 ; 이와 관련된 천도교측과 동학측의 여러 가지 논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김상일의 『수운과 화이트헤드』의 제2장 경운동 주변의 신관논쟁. PP. 59-88.를 정독하여 참고하시기 바람.

    그러나 일방적인 동학측의 주장은 있지만, 천도교측의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내용이 없으므로 필자가 말한 ‘현재 경운동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신관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을 바라는 마음에서 양측의 주장을 모두 소개하면서 시비를 가려보려고 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천도교측과 동학측이 주장하고 있는 다양한 내용들은 남쪽 교인들에게는 논의될 수 있는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280여 만이 넘는 천도교인의 신앙생활과 청우당 운동을 했던 북한에서는 논의의 가치가 없는 논쟁인 것이다. 동학시대와 천도교 시대를 분리해서 보려고 하는 태도는, 마치 동학에서 쪼개져 나간 30여 개에 가까운 교파 또는 지파로 분리된 교파들 중에 상당수의 교도를 가졌던 교파가 주장했던 정통성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천도교가 동학의 정통성을 가진 적자가 아니라는 주장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변에서 가끔 들어온 주장인 것이다. 심하게는 동학은 수운이 창교한 것이고, 천도교는 손병희가 만든 종교이므로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극단적인 사람도 있었다.

    이런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사석에서 주고받는 노변한담(爐邊閑談) 같은 것들이었다. 학계에서는 학문적으로 동학사상과 신관을 연구하여 수많은 결과물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교단이나 교단의 입장에서 연구되어 발표된 글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이렇게 된 원인은 교단의 학계나 종교사회에 내놓을 만한 훌륭한 연구자가 없기 때문이다. 의암성사 시절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있었고 교단 지도부에는 교의에 해박한 원로들이 많이 있어 각종 교단지에 기고를 했고 감동적인 설교와 천도교의 사회화와 철학화를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왔다. 일제의 식민지라는 어려운 시기에 교단내외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던 다수의 원로들이 1960년대를 전후하여 환원을 함으로써 존경받는 원로들이 없게 되어 논쟁이 심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전환기에 필자가 교단에 중앙 교역자로 있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많이 겪다가 교단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2000년대를 전후하여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의도에서 비록 교단의 한 교도의 입장이었지만, 이제라도 교단의 공식적인 입장이 확실하게 발표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책으로 간행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천도교는 물론 관련분야에 발표해왔다. 이글들을 읽으면 동학측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東學思想 展開의 諸問題』「人乃天의 참뜻과 유래에 관한 연구/PP. 71-138」2004.7.20.

    「崔水雲의 神觀은 汎神論이 아니다.」 포덕 152(2011).7.29.

    「天道敎 神觀定立에 對하여」 포덕 152(2011).5.7.

    「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 포덕 155(2014)..2.19.

    천도교측과 동학측에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하여 김진혁의『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 중〈二〉侍天主 思想. PP. 81-83.의 3. 人乃天.의 오류와 하느님의 죽음. PP. 110-121.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수운과 해월은, 〈人乃天〉이란 말을 사용하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음은 이돈화의 「人乃天 要義」를 살펴보기로 하자. 「인내천 요의」의 汎神節에,

    「人乃天主義는 汎神主義이면서 一神主義이다.」라고 하였고, 또 汎神敎는 다만 萬有를 靈的 實在로 보는 점에서 힘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宗敎的 信仰力을 生하게 하는 점에서는 약점이 있으므로 一神主義의 장점을 가미해야 한다.」했다.

    《人乃天》은, 汎神的 一神觀이라는 것이다. 〈汎神觀〉은, 위의 글에서 보는바와 같이 萬有 즉 우주만물을 하나의 영적실재로 보는 신관이라고 한다. 영적실재란 곧 神을 뜻한다. 그러나 그 神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非人格神이다. 겉으로 보면 〈人是天〉이나〈人乃天〉은 같은 뜻으로 보인다.〈人是天〉은 해월이 한 말이고 〈人乃天〉은 의암이 일본에 체류할 때 만들어 낸 저자미상의 「大宗正義」에서 처음으로 쓴 말이다.

    전자의 뜻은 “사람은 하늘이다.” 이고 후자의 뜻도 “사람은 곧 하늘이다.”이다. 그러므로 양자가 같은 뜻이라고 이해가 쉽다. 그러나 그 뜻은 전혀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人是天〉을 해월이 말했을 때는《天》을 수운의 人格的 하느님으로 보고 사용하였으나 〈人乃天〉의 《天》은 汎神論的 天으로 보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汎神》이란 萬有 즉 우주만물을 하나의 自然으로 보고 이 自然은 靈的 實在라는 것이다. 靈的實在란 心的 精神的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人格은 없는 存在라는 것이다.

    心的 精神的 능력이란 〈本能的 意志的 情的 感性的 認識能力 思惟 상상 추상 기억 예지능력〉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능력의 총체성을 우리는 人格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汎神》은 人格性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것은 다음의 「東經演義」의 내용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사람은 곧 心分天이고 사람의 性은 곧 天의 理이다. 天의 命이나 理를 알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自性을 보아야 한다./人乃小分天而人之性卽天之理也欲知天之命與理者也必先見自性二拂乎 - 원문은「東經演義」P. 4.에서 필자가 찾아 삽입함-오암.

    여기 보면 〈天道敎〉의 《天》은, 朱子의 〈天〉으로 다시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주자의 《天》이〈理〉이듯 여기서도 〈天〉은〈理〉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의암이 일본에 있을 때(1903년) 지었다고 하는 「覺世眞經」에 보면 《사람과 하늘과의 관계》에 대해 〈人以侍天〉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뜻은 “사람은 하늘을 모시고 있다.”이다. 그런데 이 뜻을 그들이 풀이한 것을 보면 “사람의 性과 心이 하늘에서 나왔다. ”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人是天人〉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사람은 하늘의 뜻을 맡아가지고 태어났다.”라는 뜻이라 한다.

    수운의 사상대로라면《侍天主》이지,〈侍天〉이 될 수 없다. 이것은《天主》에서 〈主〉를 제거하고 朱子의 《理氣天》으로 사용한 것인데, 이는〈수운의 하느님〉에게서 의도적으로 人格性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므로 〈人是天人〉의 뜻도 人格없는 〈하늘天〉에서 사람이 하늘의 뜻(理)을 맡아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현실속의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사람의 性과 心〉(理)를 떠나 따로 하느님같은 존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굳이 〈天主〉라는 용어를 쓸 필요가 없고〈人格없는理氣天〉으로서 《天》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二〉侍天主 思想. 3. 人乃天.의 오류와 하느님의 죽음. / PP. 112-114

    김진혁의 이런 논리적 주장은 고의가 아니라면 학문적 미숙에서 오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동양사상에서 《天》이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해석에 있어 다양한 것이 상례이고 그 중 종교적인 해석을 할 때에는 그 종교의 교의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것은 일반적 상식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동학과 천도교의 교사와 교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논문들을 두루 살펴보면 김진혁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김진혁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실 분들은〈二〉侍天主 思想. PP. 81-83./ 1. 죽었다 살아나는 하느님. PP. 83-85. 2. 侍天主 思想의 意義. PP. 85-110. 3. 人乃天.의 오류와 하느님의 죽음. PP. 110-121. 4 .至氣一元論과 理氣二元論의 오류. PP. 121-127.를 정독하시기 바란다.

    註 00 ; 김진혁은 2000년도 판 《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 머리말에서 ‘필자는 본시 동학도나 천도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고정관념이나 편견 또는 아전인수격으로 보지 않고, 어디까지나 객관성을 생명으로하여 쓰려고 노력하였다.’고 하고 있지만 윗글 인용문에서 보듯이 필자인 김상일이 ‘이세권과 같은 동학측 사람인 김진혁도’라고 판단하여 기술했듯이 김진혁이 말한 ‘필자는 본시 동학도나 천도교도가 아니기 때문에’는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이 책의 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에는 동학의 한 계파인 증산교의 사상이 엿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초판인 1997년도판 《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은 이세권의 도움으로 출간된 것이다. 그렇다면 동학측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제의 종교적 탄압을 받은 동학의 입장에 대하여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註 00 ; 필자는 미발표 원고「한울님과 하느님의 어원적 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김상일의 위의 글에서 P. 66의 주 5의 설명은 일부의 주장이고, 이세권의 주장에 대한 참고로 성봉덕의 1983 11-12가 제시되어 있는데, 成鳳德은 중요 교리연구가로 되어 있지만 실존인물이 아니고, 三菴 表映三의 筆名이다. 자료로 제시된 1983 11-12는 사실이 아닐 수 있고, 글의 제목도 밝혀져 있지 않고, 저자의 참고문헌 목록에도 빠져 있어 출처불명의 자료이다. 여기에서 인용된 성봉덕이란 인물은

    1977년 11월 『신인간』통권 351호에 ‘동학의 후천개벽관’이란 글을 게재한 것을 시작으로

    1978년 4월 통권 356호에 한울님의 말씀이란?

    1978년 6월과 12월에 해월신사의 노동관 상,하 (『신인간』358호와 363호 1978년 6월과 12월.)를

    1979년 5월 통권 367호에 천도교 소년운동의 이념.

    1979년 6월 통권 368호에 소춘선생의 수도요령. 이 시기엔 표삼암 이란 필명도 같이 사용하였다.

    1980년 4월 통권 376호에 대신사의 득도과정 등의 글을 계속 게재해오다가

    1983년 10월 통권 412호에 ‘경전에 나타난 한울님’에서 ‘최제우의 신은 유일신이며 인격신이다. 초월적이면서 인간에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신이다. 영(靈)과 기(氣)로 자연의 질서와 생성변화를 부여하는 존재이고 심판의 신은 아니며 인간을 구제하는 신. 뜻을 이루고자 항상 노력하는 신이다.’(15쪽) 라고 했지만. 삼암은 한울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울님에 대한 보다 더 적확한 표현의 글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위에서 김상일이 제시한 자료는 이 글인 듯하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말’이라는 잡지가 기획기사로 다루었다며 이 글에 인용된 ‘말’지의 인용문의 내용은 너무나 일방적인 것으로 사실이 아니며 누구의 생각이며 해석이고 주장인지 확인할 수 없다. 이후 표영삼은 성봉덕의 필명으로 글을 써서 게재를 계속했다.

    1985년 5월 통권 428호에 천도교 소년운동과 소춘선생

    1989년 4월 통권 469호에 천도교와 노동문제.

    1989년 5월 통권 470호에 산업평화와 노동문제

    1990년 6월 통권 483호에 해월신사의 순도경위

    1991년 8월 통권 497호에 해월신사의 통유 10조.

    등등을 게재하였다. 자료의 분량이 많아, 신인간 통권 500호(1991.11.10.) 이후 환원하실 때까지의 약 20년간에 발표된 자료는 생략하고, 1996년부터 ‘韓國思想’ 23집(1996)-24輯(1998에 휴간됨.)에도 논문을 게재한 인물로, 교단내외에서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필명으로서 집필은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원고를 게재할 당시 필자는 몰랐다 하더라도 30여 년이 지나서도 당사자인 삼암이 스스로 정리를 하지 못하였다면 당사자의 무지에 있는 것이고 적어도 교단이나 성봉덕의 원고를 게재하는 데 관여했던 사람들과 그를 추종했던 후학들에 의해 정리되었어야 했다. 야뢰는 천도교단에서 가장 많은 10여개의 필명이 정리되어 야뢰의 글들은 이돈화로 정리되었다는 점(다만 창씨 개명한 일본 이름은 야뢰(白山一熊)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상당수의 중견이상의 교역자들의 문제이므로 창씨개명으로 게재된 글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것으로 필자의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가능한 그대로 두기로 했다.)을 생각하면, 삼암은 교단과 학계의 유령인물 하나를 살려 놓은 것이 된다. 그리고 필명은 실명 같은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이는 실재인물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리되어 발표되고 있는 많은 동학, 천도교 관련 문헌자료 목록에는 성봉덕이 표영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유령인간인 성봉덕의 글로 정리되는 폐단을 자초하고 있다. 지금도 인용되고 있고 향후 연구논문에서 더 많이 인용되고 있는 것이 성봉덕의 글이라면, 교단과 학계에 생존한 실체가 없는 동학, 천도교의 연구자로 유령인물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 될 것이다. 천도교 교인의 한 사람인 필자가 이런 내밀한 사실을 밝히는 것은, 다시는 이런 망칙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교단과 교역자들에게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필자가 신인간의 주간으로서 신인간 의 총목차를, 교단 최초로 통권 호수를 정리 통일 확정하여 지령 300호 까지를 誌齡 300號紀念 “新人間 總目次”를 1972년10월28일에 간행하고 1973년 봄에 교단을 떠났기 때문에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필자가 창피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 것은 동학, 천도교를 연구하는 어느 연구자로부터의 성봉덕에 대한 문의에 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단내외의 알려진 연구자들은 필자가 상당수를 알고 있었지만 성봉덕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성봉덕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문의했지만 알고 있는 분이 없어서 계속 문의 중에 신인간에 관여했던 한 분이 표영삼의 필명으로 알고 있다고 하여 확인되었다. 교단의 유일한 포교 교양지인 신인간에 성봉덕이란 이름으로 된 글을 게재한다는 것은, 사회통념과 상식에 벗어난 무지와 창피스러운 일이었다. 일반 교인도 아닌 당시엔 최고의 교역자라 할 수 있었던 중앙 교역자가 이런 일을 자초한 것은. 그가 진정 천도교 교인인가 하는 그의 신앙적 태도와 양심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더욱 한심스러운 일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통권 400호기념 신인간 목차집(1982년 8월 5일 발행)과 지령 500호기념 신인간 목차본(1991년 11월 30일.발행)에 이어 2007년9 월 20일에 간행된 신인간 목차집 1.에 성봉덕을 표영삼으로 수정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없이 계속 간행했다. 이것은 학계와 천도교 교인은 물론 세상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로, 4계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를 신인간의 발행자와 편집자들과 중견 교역자인 당사자와 교단이 사려(思慮)없이 지질렀다는 것이다.

    註 00 ; 위의 글에서 용담유사에 기술된 ‘하과 ’ 또는 ‘하님과 님’의 문법적 변화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나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는 사람의 설명들은 기초 표준문법의 이해와 표준문법적 설명이 매우 무지하다. 하의 변화는 두 번째 음절의 ‘ㆍ’ 는 ‘ㅡ’ 로 변한다는 원칙에 따라, 하의 두 번째 ‘ㆍ’는 ‘ㅡ’로 변하여 ‘하늘’로 변하고, 존칭접미사인 ‘님’의 표준문법적인 사용방법을 따르고, 유성음 앞에서 ‘ㄹ’의 탈락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느님’으로 표준어가 되었다. ‘하’을 ‘하날’의 표기로 많이 사용하고는 있지만, 비문법적인 표기이다. 아마도 20세게 초에 ‘ㆍ’ 의 음가를 ‘ㅏ’ 로 옮기고 ‘ㆍ’ 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규정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사용하기 위한 만들어진 표기인 것 같다.

    註 00; ‘도올심득 東經大全 1’중 한울님 천주(天主)에 관하여. PP.147-159.필독바람. 도올의 주장에 대한 찬 반 의견은 각자에게 맡긴다. 그리고 P.150. 하단에 기록된 님과 하님의 통계는 잘못된 것임. ‘날님’의 기술은 없다.

    교단 내에서 일부 즉, 도올이 자신의 스승이라 하는 삼암 표영삼은 교단내의 글에서는 한울님이라 하지만, 밖에서의 강연에서는 하느님이라 하였기 때문에 도올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고 보아지고, 수운의 천서(天書)를 천주실의(天主實義; 천주교의 교리서이며 입문서로. 서양에 소개된 책이름은 “De Deo Verax Disputatio”로 ‘신에 대한 참된 토론’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도올의 입장에선 기독교가 안고 있는 신의 호칭을 염두에 두고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최동희 교수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많을 글에서 ‘하느님’이라 기술하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한 동안 총부와 교인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거나 소원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천도교의 신앙대상으로 ‘한울님’으로 확정하고 이에 따른 교단의 징계를 하는 것이라면,동학 복원운동 전국 연합회에 중심인물들은 출교(黜敎) 등 重懲戒를 받은 반면에 최동희 교수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많을 글에서 ‘하느님’이라 기술하고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비난과 소원한 관계로 되어버린 반면에, 삼암 표영삼은 교단 중요 교역자로 20여년을 봉직한 교역자가 교단내의 글에서는 한울님이라 하지만, 밖에서의 강연에서는 하느님이라 하여, 삼암 표영삼의 한울님에 대한 태도를, 김용옥은 ‘도올심득 東經大全 1’중 P.159의 註 49.에서 ‘한울님’이 잘못된 표현이며, 야뢰 이돈화의 개념 규정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은 비단 나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평생을 동학을 실천해 오신 표영삼 선생의 고견이다. 표영삼 지은 “동학”(서울 통나무 2004)pp 111-112.(표영삼의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선 PP. 108-121까지 광범위하게 숙독하여야 함. / 오암.) 단지 표영삼 선생이 ‘한울님’이라는 표현을 계속 쓰는 것은, 천도교내의 관행에 파문을 던지지 않기 위함일 뿐이며, 표선생 자신은 ‘님’의 본래적 맥락대로 사용할 뿐이라고 천명한다.’ 라고 하여 표영삼은 본의는 ‘님’의 본래적 맥락대로 사용’ 하려고 하는데 단지 ‘천도교내의 관행에 파문을 던지지 않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한울님’의 기술의도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님’의 본래적 맥락대로 사용’ 한다는 의미는 ‘한울님’이 잘못된 표현이며, 야뢰 이돈화의 개념 규정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과 하느님으로 쓰고 말해야 된다는 표영삼의 천도교신앙의 대상에 대한 의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로 보아 표영삼은 이중성을 가진, 보기 드문 부끄러운 중앙 교역자였음을 알 수 있다.

    註 00 ;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도올의 속내를 깊이 알아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P.160.의 ‘Ⅲ. 수운 그 사람에 관하여’ 부터 P. 225.까지 숙독하여 도올의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도올은 수운을 ‘그 사람’이라고 편한 친구를 대하듯이, 부를 정도로 무엇이 그를 膽大하게 했을까?

    이러한 이중적인 행적은 보인 표영삼은 징계대상인데도 징계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훌륭한 원로 교역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는 교단의 公正性을 크게 毁損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하는 말(이윤영/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장과 직접 통화하여 확인도 함.)에 의하면 교역자로 근무하는 동안에 公的이나 私的으로 취득한 상당량의 교사교서 자료들을 교단에 기증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기증했다는 말에 교단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사람에 따라 징계가 다르게 적용된다면 교단의 존립에 큰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는 출교라는 중징계를, 누구는 모욕적인 비난과 소원한 관계로 되어버리는가 하면 누구는 중앙 교역자로서 품위를 잃은 처신 자체도 무거운데도 징계는커녕 추앙받는 교단 원로가 된다면 무엇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고 싶다.

    註 00 ; 필자는 미발표 원고 「한울님과 하느님의 어원적 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최동희는, 신인간 통권 제 211호(1957년 9월 1일)에 ‘海月神師의 人生觀(PP.19-22)’이란 글을 게재한 것이 동학, 천도교 관련된 연구논문으로 최초의 글이었다. 필자가 수집 정리한 문헌 자료에 의하면, 최동희가 동학과 천도교의 신앙대상을 ‘한울님’이라 표기한 것은, 1957년 9월에 간행된 신인간 통권 제 211호에 게재한 ‘海月神師의 人生觀’으로부터 1966년 8월에 간행된 韓國思想 8호에 게재한 ‘東學의 呪文에 대하여’ 까지 약 10년간이다. 1965년 6월에 亞細亞硏究 8;2.(18호) 에 게재한 ‘東學의 信仰對象’에서 ‘한울님’을 ‘하느님’으로 표기를 바꿀 것이라는 징후가 엿보였는데, 이 논문에서 한울님(하느님)이라고 괄호 안에 병서표기(竝書表記)를 하고 있었다. 이후 병서표기를 하는 과도기를 거쳐 1968년 7월에 간행된 韓國思想 9호에 게재한 ‘宗敎와 民族主義’란 논문을 시작으로 하여, 이후에 모든 글에서 ‘한울님’을 ‘하느님’이라고 표기를 하였다. 이 시기는 용담유사 목판본이 발견되기 10년 전이었다. 최동희는 해방이후 동학, 천도교에 관련된 저서와 연구논문을 가장 많이 남긴 인물로, 단행본 저서(공저 편저포함) 10여 권과 연구논문 60 여 편을 남기고 있다.

    다른 한편, 최동희는 신인간 창간 70주년 특집호(통권 549호./ 포덕 137년 4월호)에 게재된 ‘천도교리, 교사연구의 방향과 제언’ 중의 3. 교리, 교사연구에 대한 제언. 에서 ‘한울님’ 의 표기의 동기(動機)와 의의(意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으면서 왜 ‘하느님’이란 표기를 사용하고 있는지 의아(疑訝)한 면이 있다. 단순히 한글 맞춤법을 따랐을 뿐, ‘유일신적 절대자’ 라는 신관에 대한 개념의 변화는 없다는 것일까? 가 궁금하다. 최동희가 이러한 설명을 한 1996년은 ‘하느님으로 표기’ 해온 지가 거의 30년이 가까운 시기였고 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하느님 표기’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천도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이 ‘하늘’을 유일신교의 ‘한울’로 발전시킨 19세기 후반의 우리 민족문화 단계의 우리 민족적인 종교다. 이러한 점에서 수운이전에는 없었던 아주 새로운 종교가 바로 동학, 천도교다. 그러므로 수운은 ‘한울’에 굳이 ‘님’ 을 붙여 유일신적 절대자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註 00; ‘한울님’과 ‘하느님’의 표기를 비교하려면 아래 자료들을 참고하면 알 수 있다.

    ■ ‘한울님’으로 표기한 연구논문

    海月神師의 人生觀; 신인간 통권 제 211호. 1957. 9.

    새로운 人間觀; 신인간 통권 제 215호. 1958. 7.

    水雲의 人間觀; 韓國思想 1호 1958. 7. 韓國思想 1, 2호 合本 1959. 8.

    海月神師의 養天思想; 신인간 통권 제 219호. 1959. 9.

    無窮한 나; 신인간 통권 제 220호. 1959. 12.

    니이체와 崔水雲; 韓國思想 3호 1960. 3.

    崔水雲의 根本思想; 신인간 통권 제 221호. 1960. 5.

    天道敎思想의 硏究方向; 신인간 통권 제 224호. 1961. 6.

    東學의 基本思想; 韓國思想 4호 1962. 8.

    東學의 思想的 特性; 高大新聞 378호. 1964. 5. 9.

    事人如天의 意義; 신인간 통권 제 235호. 1964. 7.

    東學의 神觀; 高大 哲學硏究. 4. 1964. 10.

    人物韓國史-崔濟愚; 博友社. 1965.

    官權에 抵抗한 흙의 얼; 世代 3;3. 1965. 4.

    東學의 信仰對象; 亞細亞硏究 8;2.(18호) 1965. 6.

    東學에서 본 人間觀; 새로운 인간 1;1 1966. 4.

    東學의 呪文에 대하여; 韓國思想 8호 1966. 6.

    生存權을 위한 革命 民權運動 全琫準論; 思想界 14. 1966.11.


    ■ ‘하느님’으로 표기한 연구논문

    韓國近代化過程이 있어서의 天道敎의 役割; 東國大 60周年 學術論文集. 1967.

    宗敎와 民族主義; 韓國思想 9호 1968. 7.

    韓國民族主義와 東學思想; 1968. 7.

    東學思想硏究; 亞細亞 1;1. 1969. 2.

    天道敎 指導精神의 발전과정;3.1運動 50 周年紀念論文集. 1969. 3.

    민족의식의 새로운 기틀을; 서울신문 1969. 4. 5.

    동학과 民族意識; 成大新聞 500호. 1969. 6.11.

    東學과 民族意識; 신인간 통권 제 266호. 1969. 7.

    東學思想 調査硏究; 亞細亞硏究 12;3.(35호) 1969. 9.

    水雲의 修道에 관한 思想; 신인간 통권 제 269호. 1969. 10. -이하 생략함.-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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