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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도교여성회원 일동 - 성명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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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신주민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749회   작성일Date 17-03-28 10:29

    본문

    성 명 서

     

    - 설민석의 주옥경 사모님에 대한 진실왜곡을 강력히 규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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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설민석이라는 강사가 3·1운동의 민족대표들을 폄훼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3·1운동을 영도하신 손병희 선생의 부인 주옥경 사모님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진실을 왜곡하였다.

     

    주옥경 사모님은 3·1운동 후 오늘의 천도교여성회 모체인 천도교내수단을 창립하여 장기간에 걸쳐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그 어려운 시기에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오는 등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이다.

    따라서 주옥경 사모님의 지도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천도교 여성회원 일동은 치미는 격분을 금치 못한 나머지 설민석의 망발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설민석은 한국사 강의에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우리나라 1호 룸살롱 태화관에 모여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 태화관으로 간 이유는 손병희와 사귀는 마담 주옥경이 태화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마담이 안주를 더 준다거나 할인해준다고 했을지 모른다. 술에 취한 손병희는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는 등 극단적으로 진실을 왜곡하였다.

     

    주옥경 사모님은 이미 3·1운동 3년 전에 손병희 선생과 결혼했기 때문에 3·1운동 당시 태화관에 갈 수도 없었는데 태화관이라는 룸살롱 마담으로 있었다면서 모욕적인 허위사실을 나열한 설민석의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태화관은 공적인 모임장소로 33인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을 보더라도 설민석의 주장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 민족대표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으로 헌법전문에 명시된 3·1정신마저 먹칠하는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헌병경찰제도를 앞세운 혹독한 무단통치 아래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민족대표가 된다는 것은 살신성인하는 순국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목숨을 담보로 3·1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민족대표들의 피끓는 심정을 설민석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옥경 사모님은 3·1운동 후 의암 손병희 선생이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자 그 근처에 감옥에서 숨진 시신을 보관하던 방 하나를 얻어 홀로 기거하면서 옥바라지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신불수의 중병으로 출옥한 의암 선생의 병간호에 헌신적으로 정성을 다하셨다.

    의암 선생이 감옥에서의 중병 후유증으로 1922년 5월에 순국하신 후 주옥경 사모님은 천도교내수단을 창단하여 여성운동에 앞장서는 등 미망인이 된 28세부터 87세로 환원하실 때까지 수의당(守義堂)이라는 도호 그대로 일생을 오로지 의암 선생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신념으로 일관하셨다.

     

    주옥경 사모님이 한때 기생이었던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신보」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사모님은 당시 무부기조합(無夫妓組合)의 조합장을 역임했던 일패기녀(一牌妓女)로 오늘날의 일급연예인과 다름없는 가무(歌舞)와 서화(書畫)에 천재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의암 선생을 평소 스승과 같이 존경했던 주옥경 사모님은 의암 선생이 비밀리에 3·1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비서역할을 수행하는 등 독립운동의 숨어있는 내조자였다. 그래서 해방 후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탑골공원에 의암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는 등 기념사업을 추진할 때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또한 주옥경 사모님은 해방 후 민족대표33인유족회 회장직과 광복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1971년 52주년 삼일절을 맞아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된 정부 주최의 3·1절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시기도 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이러한 주옥경 사모님의 공로를 기려 교단 최고예우직인 종법사로 추대하였으며, 사모님이 87세로 환원하자 정부요인과 사회 각계의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도교장(天道敎葬)으로 영결식을 봉행하여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일각에서 ‘한국사회에서 자격없는 사람들이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듯이 소위 스타강사라는 설민석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정확히 알지도 못한채 민족대표는 물론 주옥경 사모님에 대한 허위사실을 날조 폄훼한데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

     

    이에 대해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에 따른 책임이 전적으로 설민석에게 있음을 밝혀둔다.

     

    2017년 3월 25일

     

    천도교여성회원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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