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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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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 용 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625회   작성일Date 17-06-17 06:34

    본문

    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8)



    다음은 解脫的 慧이다. 解脫的 慧라는「慧」는 지식과 반대되는 隱隱한 聰明을 이름이다. 慧의 참다운 聰明은 空觀이다. 現象界의 모든 변화를 無相(사물이나 현상의 일정한 형태가 없음을 말하거나 형상에 구애되지 않는 초연한 경지를 말함-오암) 으로 보는 空觀이다. 佛設(佛說의 잘못-오암)에「凡所有相皆虛妄 若見諸相無相則見如來」라는 無相觀을 이름이다. 이 無相觀을 가진 사람은 一切의 애착이 끊어지고 만다. 萬乘의 位(萬乘天子의 자리/帝王의 자리-오암)도 헌신짝 같이 봉 뿐 아니라 일체 우주를 無相으로 본다. 그러므로 그의 胸中에는 一物의 相도 없다. 「險夷原不滯胸中 何異浮雲過太空」이란 王守仁의 詩와 같이 大空(太空이 올바름-오암)을 통한 廓然圓의 心境을 이름이다. 그러한 心境을 가지고 萬事에 임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만약 그러한 심경을 가지고 있을 뿐 현실 문제의 접촉이 없다면 그는 落空이다. 落空 역시 無能無爲의 痴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慧는 一邊으로 우주를 一擲하는 空觀을 가지는 동시에 一邊으로 우주 전체를 담당하는 氣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人格을 代數式으로 말하면 「1/0」이라는 것이다. (1/0=∞) 零分之一은 無限大가 된다. 分母가 零이 되고 分子가 一이 되면 無限大다. 自我의 마음을 分母의 零으로 하고 客觀的 對象을 分子의 一로 하고 보면 自我의 마음은 곧 無限大가 된다. 自我의 마음을 零인 分母로 하고 보면 일체 萬有의 無限大는 곧 自我의 것이 된다. 즉 우주는 자기의 소유물이 되고 만다.

    註 00 ; 空觀 - 천태종(天台宗)의 일심삼관(一心三觀/假觀 空觀 眞觀)의 하나.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이므로, 그 자체에 본성이 없고 실체가 없음을 분별하여 관찰하는 것을 이른다. 초기 불교부터 대승 불교까지 불교 내의 고유한 수행법이다. 보살의 안목에는 중생이 본래 없다. 중생은 본래 空이라고 보는 것을 空觀이라 한다. ‘아니야, 아직 중생은 새카만 중생이야, 탐 진 치 3독으로 찌는 중생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을 假觀이라 한다. ‘아니야, 그래도 중생은 불성을 가졌기에 본래 부처야.’ 다이아몬드가 금광에서 캐내서 아무리 제련이 안 됐다 손치더라도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고, 금은 금이다. 금광에서 바로 캐내서 비록 아직 장식용으론 얼른 쓸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그래도 금은 금이고,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라고요. 그렇게 보는 것을 “眞觀” 이라 한다. 그러니까 안목이 거짓으로 보는 假觀이 있고, 俗觀 = 속된 안목으로 보는 것. ‘탐 진 치 3독으로 찌든 중생일 뿐이지, 네나 내나 뭐 다를 것이 뭐 있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만 보면 그것은 假觀이고. ‘아니야,’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그리고 600부 반야부의 안목으로 보면 그것은 空觀이라 한다./화엄경 설법에서 발췌 재정리함

    註 00 ; 解脫的 慧 - 만일 모양이 없다면(無相) 이 가운데서는 얻을 것이 없고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벗어날 것이 없다/無相이면 解脫이 필요 없다-오암. 解脫이란, 梵語 vimoksa의 音譯으로 비목차(毘木叉), 비목차(毘目叉)라 한다. 팔리어로 vimutta, vimokkha라 하며 煩惱의 사슬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즉 번뇌와 장애의 사슬에서 벗어나 自由自在를 얻었다는 뜻으로 迷惑의 세계를 넘는다는 뜻에서 도탈(度脫)이라고도 한다. 『解脫道論/12卷 12品으로 구성』 因緣品에서는 戒. 定. 慧 三學에 의하여 解脫이 이루어 진다고 하며, 解脫이 佛敎修行의 窮極的인 目的임을 分明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解脫道論』 또한 이러한 佛敎修行의 目的인 解脫에 觀하여 敍述한다는 動機를 밝히고 있다

    대반열반경 제5에선 涅槃을 이름하여 解脫이라 한다고 말하며, 참다운 해탈은 일체의 사슬에서 멀리 벗어남을 말한다. 만일 참으로 解脫해서 일체의 사슬을 원리(遠離)하면 태어남이 없다. 예컨대 부모가 화합해서 자식이 태어남과 같다. 참된 해탈은 이러하므로 해탈을 不生이라 한다고 말한다.

    현양성교론 제13에선 해탈이란 영단(永斷), 이계(離繫), 청정(淸淨), 진(盡), 멸(滅), 이(離), 지(知) 등이라 지칭한다. 거칠고 무거운 번뇌를 영원히 없애 버리는 것으로 본체를 삼는다. 명칭을 풀이하자면 능히 각종의 탐욕 등의 계박(繫縛)을 벗어났기 때문에 해탈이라 한다.

    성유식론술기 제1권에서 해탈의 체성은 원적(圓寂)이다.(중략) 번뇌장에 의지해 각종의 중생을 묶고 항상 생사에 머물게 한다. 원적(圓寂)을 증득(證得)하면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해탈이라 한다고 한다. 후세에는 해탈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했다. 즉 유위해탈(有爲解脫, 아라한阿羅漢 즉 해탈한 자가 확실히 요해了解하여 인정하는 마음의 작용), 무위해탈(無爲解脫, 열반涅槃), 성정해탈(性淨解脫, 중생이 본래의 번뇌의 오염에서 벗어나 청정한 것), 장진해탈(障盡解脫, 현실적인 번뇌 때문에 본래의 청정성이 오염되어 있으나 번뇌를 끊고 해탈할 수 있는 것), 심해탈(心解脫, 마음에 탐욕을 없앤 것), 혜해탈(慧解脫, 지혜에 의해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 구해탈(俱解脫, 멸진정滅盡定을 얻은 것) 혹은 시(時)해탈과 불시 해탈로 분류한다./불교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

    註 00 ;「凡所有相皆虛妄 若見諸相無相則見如來」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의 ‘佛告須菩提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를 잘못 인용함.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만물의 형상이 모두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들이, 형상이 아님을 보게 되면(깨달아 알게 되면) 곧바로 如來를 만나 보게 되리라’ 고 말씀하셨다. 이 네 구절의 18자 속에 금강경의 핵심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하여 반야 제일게(般若 第一偈)라 한다./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 정리함.

    註 00 ; 險夷原不滯胸中 何異浮雲過太空 - 明代 陽明學의 始祖인 王守仁(王陽明)이 지은 詩 범해(泛海)로, 왕양명이 환관 유근(劉瑾)의 전횡에 대항하였다가 36살에 곤장 40대를 맞고 감옥에 갇혔고, 유근은 왕양명을 귀주성 용장역 역승(驛丞)으로 좌천시켜 귀양 보내는 길에 사람을 시켜 죽이라고 하였다. 왕양명은 이 소식을 듣고 물에 빠져 자살하는 시를 짓고 죽이려는 사람들을 속인 뒤에, 절강성 항주 앞 바다의 주산(舟山)에서 商船을 타고 도망가다가 태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복건성 해안에 도착하여 엉겁결에 호랑이가 나오는 절간에서 잠을 푹 잤다고 한다. 이 때 쓴 시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험준함과 평탄함이 본디 마음(가슴) 속에 있지 않거늘, 어찌 뜬구름이 넓은 하늘을 지나는 것과 다르다 하겠는가. 삼만 리에 부서지는 바다 물결, 달 밝은 밤에 석장(錫杖)을 집고 걸어, 날아가듯이 天風을 타고 武夷山을 찾아 내려가는구나./ 險夷原不滯胸中 何異浮雲過太空 夜靜海濤三萬里 月明飛錫下天風.- 泛海의 原文 全文章. / 王陽明의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 석장(錫杖)이란, 승려가 필수적으로 지녀야 하는 손잡이 끝에 탑 모양의 둥근 고리가 붙어 있고 여기에 조그만 쇠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는 지팡이 즉 성장(聲杖)이라할 수 있다. 달리 유성장(有聲杖), 지장(智杖), 덕장(德杖)이라고도 한다. 로 比丘尼(승려)가 항상 갖추어야 할 18가지 物件들 중의 하나. /불교사전을 바탕으로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廓然圓의 心境 - 확 트이거나 텅 빈 동그라미 즉 大宇宙와 같은 마음.

    廓然無聖 - 日本의 禅宗에서 사용하는 말로, 활짝 열린 깨달음의 경지에 있어서는 이미 버려야 할 迷惑도 구해야 할 깨달음도 없다고 하는 것. 또는 '모든 분별이 끊어져 텅 비어있는 상태에서는 聖스러운 것도, 俗된 것도 없다.' 宇宙 자체의 眞理는 一切 空으로서 凡夫, 聖者의 差別이 없다. / 불교사전을 바탕으로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落空 역시 無能無爲의 痴에 떨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虛事가 됨. 이 역시 무엇을 해낼 수 있는 능력도 없어서 할 일도 없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落空이란 계획이나 희망 따위가 수포로 돌아감을 말한다. 無能無爲는 無爲無能(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무능함)으로 많이 사용된다.

    註 00 ; 一擲 - 무엇을 한 번에 내던져서 결판을 내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乾坤一擲이란 사자성어에서 뚜렷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천지를 걸고 단숨에 승부를 내다." 또는 ‘운명을 걸고 단번에 결판을 낼 때 쓰는 말이 乾坤一擲이다.

    例컨데 淸風明月은 소유자가 없다. 淸風明月의 소유자는 오직 淸風明月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 「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이것은 李白의 心境을 찬미한 詩이다. 江南風月은 본래 天地間의 公有物이다. 누구나 이것을 소유할 물건은 못된다. 동시에 이것을 사랑하는 자이면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있다. 風月과 같은 天地의 소유물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사랑한 사람은 오직 李白 그 사람이다. 李白의 詩的 心境은 零이다. 그러므로 風月을 자기의 소유물로 할 수 있었다. 李白은 죽었다. 風月은 남아 있다. 그러나 李白과 같이 風月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지 못했다. 보통 사람은 物慾的 限界에 얽매인 까닭이다. 「乾坤不老月長生 寂寞江山今百年」李白과 같은 詩的 心境을 가진 사람이 없는 고로 風月은 여전하지만 江山은 적막해졌다. 物慾的 限界에서 얽매인 사람은 一物執着되어 無限을 잃게 된다. 이와 반대로 無限大의 代數式的 心境을 가진 사람은 天地가 다 자기 소유인고로

    風月도 자기 소유로 할 수 있다. 이것이 解脫的 慧이다.「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경전 대조」 이것은 수운선생의 ‘偶吟’의 一節이다. 大道는 時空의 劫灰를 解脫한다. 그러므로 大道를 믿는 慧는 時空의 劫灰를 벗어야 한다. 時空의 劫灰를 벗은 사람은 萬事가 如意하다. 왜 그러냐 하면 그는 神의 至上命令(順天命 順天理者-오암)으로 사는 사람이며 그는 神의 意志(神의 攝理나 宇宙의 숨은 질서-오암)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P.204 -206

    註 00 ; 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 - 이 시는 古文眞寶 全集 第5卷 七言古風短篇 詩連番 147.燕思亭(연사정)실려 있는 唐의 馬存(馬子才)이라는 시인이 지은 燕思亭이란 시의 첫머리의 두 구절이다. 이 시는 李白이 죽은 뒤 그의 문장을 이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이 정자의 주인은 하지장(賀知章)과 같은 풍모를 지녔지만 李白과 같은 客이 없음을 어이하겠는가. 초대받은 자신은 단지 멋대로 시 읊는 나그네일 뿐이니, 어린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조롱할 것이라고 한탄한 내용이다. 연사정(燕思亭)의 소재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백이 일찍이 노닐며 시를 짓던 곳인 듯하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燕思亭

    李白騎鯨飛上天(이백기경비상천), 江南風月閑多年(강남풍월한다년).

    縱有高亭與美酒(종유고정여미주), 何人一斗詩百篇(하인일두시백편).

    主人定是金龜老(주인정시금귀로), 未到亭中名已好(미도정중명이호).

    紫蟹肥時晩稻香(자해비시만도향), 黃鷄啄處秋風早(황계탁처추풍조).

    我憶金鑾殿上人(아억금란전상인), 醉著宮錦烏角巾(취저궁금오각건).

    巨靈擘山洪河竭(거령벽산홍하갈), 長鯨吸海萬壑貧(장경흡해만학빈).

    如傾元氣入胸腹(여경원기입흉복), 須臾百媚生陽春(수유백미생양춘).

    讀書不必破萬卷(독서불필파만권), 筆下自有鬼與神(필하자유귀여신).

    我曹本是狂唫客(아조본시광금객), 寄語溪山莫相憶(기어계산막상억).

    他年須使襄陽兒(타년수사양양아), 再唱銅鞮滿街陌(재창동제만가맥).

    李白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니 강남의 풍월이 한가한지 여러 해가 되였네.

    비록 높은 亭子와 아름다운 술 있으나 어느 사람이 술 한 말에 시 백 편을 지을 수 있을까.

    주인은 분명 금빛거북이를 풀어주고 술 산 노인이니 정자 가운데에 이르기 전에 명성이 이미 아름답네.

    붉은 게가 살찔 때에 늦벼는 향기롭고 누런 닭이 모이를 쪼는 곳에 가을바람이 벌써 일어나네.

    내가 생각하니 금란전(金鑾殿) 위에 있던 이백(李白)은 취하여 궁중의 비단 도포에 오각건(烏角巾) 쓰고 있었네.

    위대한 신령이 산을 쪼개니 큰 강물 마르고 큰 고래 바닷물 들이켜 온 골짝의 물 다 마른 듯하네.

    원기를 기울여 가슴과 배에 부어 넣은 듯하니, 온갖 아름다운 문장 따뜻한 봄처럼 생겨나네.

    시서를 읽기를 굳이 만 권 독파할 것 없으니 붓을 들면 저절로 귀신 들린 듯하구나.

    우리들 본래 멋대로 시 읊는 나그네이니 시내와 산에 말하노니 서로 생각하지 말라.

    다른 해에 반드시 양양(襄陽)의 아이들로 하여금 다시 동제가(銅鞮歌) 불러 온 길거리에 가득하게 하리라./. /前集. 詩連番 147. P.343.

    ■ ‘고래’는 인간이 문자 생활을 하기 이전부터, 회화, 조각, 민담, 전설 등 여러 예술 양식에 등장해 왔던 비교적 친숙한 동물이다. 그런 한편,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 생태에 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고래를 드넓은 바다를 무대로 헤엄치는 자유로운 영혼, 혹은 인간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넘나드는 다소 신비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古文眞寶 관련 자료들과 曺蒼錄의 「한문학에 나타난 ‘고래’에 대한 인식과 그 문학적 형상」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古文眞寶』-宋나라 말기의 학자 황견(黃堅)이 1275년경에 편찬한 詩文選集으로, 이 책은 전국시대부터 송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시문을 전집·후집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漢 詩文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필독서였다. 고문(古文, 고체의 시와 고아한 문체의 산문 작품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보석과도 같이 훌륭한 작품을 가려서 모았으며, 「전집(前集)」과 「후집(後集)」 각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집은 시 217수를 10체로 분류하고, 후집은 문장 64편을 17체로 분류했다./古文眞寶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李白/701년 - 762년 - 唐나라 玄宗과 양귀비의 시대에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며 살아간 천재 시인이다. 성은 李, 이름은 白, 자는 太白, 호는 淸蓮居士라고 한다. 방랑생활을 하며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겨 ‘詩仙’이라 불리며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詩史의 巨星으로 추앙받는다. 그가 지은 1,000여 수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시의 소재로는 주로 여행, 이별, 음주, 달빛, 신선 등이 있으며, 시의 형식으로는 7언 절구의 비중이 높다. 자유롭고 장엄한 시풍을 보인 그는 자신의 시와 잘 어울리는 생애를 보냈으나, 중국의 지식인이 그러하듯이 그 또한 정치적 활약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이백은 촉나라 쓰촨 성에서 태어났다. 범전정(范傳正)이 지은 당좌십유한림학사이공묘비(唐左拾遺翰林學士李公新墓碑)에 의하면 그는 당나라 황실의 먼 친척으로, 서량의 군주 이고의 8대손이라 한다. 그에 의하면 그는 당태종이나 이헌성, 이원길과 같은 항렬의 족제가 된다. 그러나 다른 설에 의하면 이백의 할아버지가 이헌성, 이원길 중의 한 명으로, 현무문의 변을 피해 달아났던 자손이 그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이백의 아버지가 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라는 선인과 쓰촨 성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744년 43세에 현종의 칙령을 받아 한림곤봉이 되어 장안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뤄양시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당 숙종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 지금의 구이저우 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후이 성 당도(安徽省 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의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백은 고시와 절구를 특기로 했다. 그의 절구는 '神品'이라고 평해졌고, 그의 詩才는 천래의 재, 즉 '천재'라고 했다.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또한 박진감이 있으며, 때때로 환상적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매우 자유로우며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살았던 11세 연하의 시인 두보가 1자 1구의 彫琢에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 현종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궁전으로 들어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다음과 위키 그리고 지식백과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乾坤不老月長生 寂寞江山今百年 -이 시구는 방랑시인 김삿갓(金炳淵/1807~1863)의 일대기에 실린 ‘어느 客酒집 主人의 山訟(山所로 인한 訟事를 말함-오암)에서’ 에 나오는 詩句인데, 이백의 설명에 사용된 것이 異例的이다. 더욱이나 이 시의 배경이 어느 客酒집 主人인 여인과의 濃艶한 情事와 관련된 詩句와 李白의 자유롭고 莊嚴한 詩風을 남긴, 그의 詩的 心境과 삶에 비교했다는 점이 너무 뜻밖이라 매우 생뚱맞고 놀랍다고 할 수 밖에 없다./이 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掘居掘居 彼隻之恒言

    捉來捉來 本守之例題

    今日明日 乾坤不老月長生

    此日彼頃 寂寞江山今百年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산에 묻힌 屍身들을 파 간다 파 간다는 말은 관아인 저쪽에서 항상 하는 말

    잡아오라 잡아오라고 하는 것이 本郡 郡守의 널려놓은 과제인가

    오늘 내일(세월)은 乾坤은 늙지 않고 달만 오래도록 떠있구나

    오늘이나 다음 날에(이 핑계 저 핑계로) 하겠다고 하더니 적막한 강산은 백년이 되고 말았구나.

    ■ 乾坤은 天地 즉 하늘과 땅으로 온 세상 또는 온누리. 寂寞江山은 고요 속에 잠긴 쓸쓸한 강산이란 뜻으로, 매우 쓸쓸한 풍경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百年은 사람의 한 평생. /관련 자료들과 어학사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四 道成德立; P.206.

    道는 體요 德은 用이다. 道를 定在라하면 德은 如在가 된다. 비유하면 물을 道라하면 流動性은 德이다. 太陽을 道라하면 光線은 德이다. 다시 물의 流動性을 道라하면 물의 利用厚生은 德이 된다. 太陽光線을 道라고 하면 光線溫度의 利用厚生은 德이 된다. 그러므로 道와 德은 一體不相離의 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道는 成으로서 體가 되고 德은 立으로서 用이 된다.

    成은 成家라는 말이니 高臺廣室이라도 成家로서 完結치 못한 가옥는 用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약간의 풍우도 감당치 못하며, 一間草屋이라도 成家가 된 家屋이면 당당히 生活의 用이 된다. 立은 즉 用의 活動을 이름인데 立이 아니면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를 인간 일개인의 성장에 비하면 幼兒가 母胎에서 탄생되면 적어도 그는 具體的으로 道의 體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如在 즉 用은 立이 아니면 안된다. 어린애가 성장하여 直立의 태세를 임의로 하게 된다. 여기서 手足의 責任이 分立하게 된다. 바로 서게 되고 걸을 수 있게 되면 손도 자유자재로 쓰게 되는 것이므로 여기서 人體는 完全 成立이 되어진다.

    註 00 ; 利用厚生 - 생활용품을 사용하는 것을 편리하게 하며 삶을 두텁게 하다. 器物의 사용을 편리하게 하고 재물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禹가 舜임금에게 말했다. “임금이시여, 잘 생각하십시오. 덕으로만 옳은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는 백성을 잘 기르는 데 있으니, 물 · 불 · 쇠 · 나무 · 흙 및 곡식들을 잘 다스리시고, 또 덕을 바로잡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삶을 두터이 하도록 조화시키십시오. 구공(九功)의 질서가 잡히면 그것을 노래 부르게 하십시오.”禹曰, 於, 帝念哉. 德惟善政, 政在養民, 水火金木土穀惟修, 正德利用厚生惟和. 九功惟敍, 九敍惟歌./『書經』 · 虞書 대우모(大禹謨)

    또 利用厚生에 출전은 다음의 전적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晉의 대부 극결(郤缺)이 조선자(趙宣子)에게 말했다. “·····『夏書』에 말하기를 ··· 수(水) · 화(火) · 금(金) · 목(木) · 토(土) · 곡(穀)의 여섯 가지가 나오는 것을 육부(六府)라 하고,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을 일러 삼사(三事)라 합니다.”(晉郤缺言於趙宣子曰, ··· 夏書曰, ···水火金木土穀, 謂之六府. 正德利用厚生, 謂之三事/『左傳』文公 7년.

    ■ 正德은 백성의 덕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利用은 백성들이 쓰는 데 편리하게 하는 것이며, 厚生은 백성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九功은 六府를 잘 다스리고 삼사를 정비하는 것을 말한다./다음백과와 고사성어 대사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

    朝鮮朝末의 利用厚生 - 풍요로운 경제와 행복한 의·식·주 생활을 뜻하는 용어. 18세기 후반에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 등 北學派 실학자들이 주장한 이념. 그러나 이용·후생이란 말의 어원은 경서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해지는 『尙書』의 大禹謨에서 '正德,·利用, 厚生, 惟和란 구절에서 이미 나온 말이다.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정덕'은 빼고 이용·후생만 따온 점이다. 그것은 정덕이 중요시되어 온, 실로 오랜 세월 동안 일관되어온 동양의 정치적 가치관에 일대 혁신임을 뜻하는 말이다. 정덕이란 부자·형제·부부간에 지켜야 할 유교적 윤리체계이며 이용과 후생은 국민의 풍요로운 경제생활이다. 즉 윤리 우위의 정치가 아니라 경제 우위의 정치를 부르짖는 말로 변혁된 것이다. 이용후생의 정치 이론은 청나라의 절동학파(浙東學派)에서 주장한 經世致用에 고무되어 일어난 북학파에 의하여 체계 있는 이론으로 연구되었다. 북학파란 존주대의니 존화양이니 하는 명분론에서 벗어나서 우리보다 앞선 청나라의 문물과 학술을 배워야 살 수 있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정덕 이후에 이용·후생이 있다는 전통적 학설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이용·후생, 곧 경제가 넉넉해야 윤리도 있게 된다는 논리를 주장하였다. 이들 이용후생학파(북학파)는 性理學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자연과학의 도입, 중소상공업의 육성, 기술혁신 해외 통상 증진 등 국민의 경제를 향상할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이른바 실학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 당시 특권층의 비호를 받고 결탁한 개성상인의 독점 상행위를 비판하고 영세 상인들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 박지원의 〈한전론(限田論)〉에서 "백성들의 이용과 후생에 도움이 된다면 오랑캐에게도 배우고 받아들여다 한다"는 주장을 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론에 그치고 행동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이다. / 문화콘텐츠 용어사전에서.

    經世致用學派 - 토지개혁과 농민생활의 안정을 주장했던 유형원·이익·정약용 계열의 학자를 가리킨다. 17세기 이후로 중세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자 일련의 지식인들은 과거를 위한 경학공부에만 치중하거나 사회변화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논리와 제도만을 고집하는 데 반대하여 경세치용을 위한 학문을 주장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농민층 분해의 진전, 신분제 붕괴, 서구 자연과학과의 접촉 등은 일련의 학자들이 지주제와 신분제에 기초한 중세사회의 원칙을 넘어선 개혁을 추구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들 실학자들이 주장한 경세치용은 중세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했으며, 주자학의 원리를 고수하며 부세제도 개혁과 국가기구 운영의 정상화 등을 통한 사회안정을 주장하는 보수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註 00 ; 一體不相離 - 이 세상의 모든 것/만물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또는 떨어질 수가 없는 관계를 가진 존재들이다. /참고로 理氣不相離를 생각해 볼 것. 理氣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不相離)이며 서로 섞일 수도 없는 것(不相雜)이라고 朱熹는 말하고 있다. 주희의 영향을 받은(不相離) 李滉은 理氣는 二物로, 理는 理일뿐 氣가 될 수 없으며 氣는 氣일 뿐 理가 될 수 없다(理自理 氣自氣)는 이론을 철칙으로 삼았다./ 즉 一體兩面的 關係를 의미한다./ 이기론 주장에 관련된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成家 - 재물을 모아 한집안을 일으킴 또는 학문이나 기술이 탁월하여 一家를 이루다. / 例文으로. 自手成家/赤手成家, 合手成家(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이룬 것/共存共榮의 바탕이 된다), 勉學成家, 刻薄成家(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 오래가지 못한다.) / 어학사전을 바탕으로 재정리함.

    成과 立은 完全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주는 우주 자체로 성립된 우주의 道德이요 個體는 個體 그대로 성립된 것이 개체의 도덕이다. 우주는 위로 日月星辰, 아래로 微塵 纖芥에 이르기까지 一絲不亂의 整然한 道德이다. 體와 用이 全知全能의 攝理下에서 道德的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自然界의 道成德立이다. 그러나 인간 개체의 道成德立은 自然界의 道成德立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註 00 ; 微塵과 纖芥 -微塵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무한수를 의미하며, 아주 작은 티끌. 물질의 극소를 극미(極微)라고 하고, 극미의 7배를 미진이라 하며, 미진의 7배는 금진(金塵/현대에 原子核)이며, 금진은 금 가운데의 미세한 틈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작은 알맹이를 말한다. 또는 색체(色體)의 지극히 微小한 것을 極微, 극미의 칠배를 미진, 미진의 칠배를 금진이라 함. 미진수세계(微塵數世界/티끌의 수와 같이 한량없이 많은 세계를 말함. / 一微塵中含十方V -하나의 티끌(微塵) 속에 우주(宇宙)가 들어있다. 纖芥는 마른풀이나 낙엽 따위의 부스러기를 의미한다. / 열반경에서 말하는 매우 희박한 확률. 섬개투침(纖芥投針) - 바늘을 땅 위에 세워 놓고 하늘에서 겨자씨를 던져서 그 겨자씨가 바늘에 꽂히는 경우는 매우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類義語는 纖芥投鍼./ 각종 어학사전을 바탕으로 재 정리함.

    야뢰는 개벽 제4(1920년 09월 25일)호에 게재한 人乃天의 硏究(續)/PP.46-50.에서 微塵과 纖芥에 대한 표현을 한 바가 있다.

    ‘然이나大神師의所謂 天主의觀念은個體的곳人格的上帝를謂함이안이오汎神的即精神的意味함인데 精神的神이라함은一切宇宙現象을支配하는靈的眞善美를槪念함이라. 故로上으로大天星辰 下으로微塵纖芥에至하기지一切此神의精神이 歸宿치안이하는處가無타하는觀念이로다. 更言하면蟲에는蟲만한精神이有할것이오禽에는禽만한精神이有할것이오人에는人만한精神이有할지라. 그와同理로地球에는地球만한精神이有할것이오太陽界에는太陽界만한精神이有할것이며終에大宇宙에는大宇宙만한精神이 有할지니 吾人은此大宇宙의大精神을稱하야天主라하도다. 그리하야此大宇宙의精神과人의精神은根本에서唯一의實在가되나니 故로吾人은神을大宇宙에서見함과共히個體我卽人에서또한同一의神을見할만하도다.’ /P.48.의 앞부분에서 중앙까지.

    ‘玆에吾人은各宗敎의中央에立하야何者에던지不偏不倚하고 公平神聖한意識下에서何者가果然眞이며 何者가果然僞라輕輕히判斷할수잇스랴. 假定上若此를公平히判斷하엿다하는觀念下에서 若甲으로眞이라하면乙丙은不可不虛僞가되지안이치못할것이오 若乙로眞이라하면甲丙도亦是虛僞가되지안이치못할지라. 試思하라. 幾千年의歷史, 幾億萬의信徒를有한堂堂한宗敎가엇지虛僞로써幾多의史實을負하엿스랴. 엇지假妄으로써此等幾多의億兆의慰安을與하엿스랴. 若此等의歷史此等의信徒를有한事實로써虛僞라云할진대 余는寧히虛僞그者를眞理로看做치안이치못하리니是가余의大한疑案이 로다. 今에此疑點을大神師의人乃天主義인天道에依하야多少그疑端難點을解明하면 曰宇宙의一切眞理, 一切事物, 一切活動은總히天道의 發揮에不外하니故로天道는非舊非新, 亦舊亦新, 非靈非肉, 亦靈亦肉, 非神非物, 亦神亦物, 非實非虛, 亦實亦虛, 非小非大, 亦小亦大라하야宇宙의絶對體를그範圍라하고宇宙의絶對眞을그內容이라看做하되大하얀大天星辰 小하얀微塵纖芥에至하기지皆天道精彩의發揮라하고反하야人間界에歸하얀 萬宗敎의敎理가 皆天道의部分이며萬哲學의理論이皆天道의理想이라하며 萬科學의事實이皆天道의過程이라하야 무엇이던지皆天道의發揮로思함과同時에무엇이던지皆眞理의表顯으로容認하엿도다. 그러면人乃天主義의宗敎는卽哲學上汎神的宗敎이며(未完)’ P.50.의 末尾에서

    註 00 ; 道成德立 - 도를 완성하고 덕을 확립한다는 뜻으로, 천도교에서 종교적인 인격 완성을 이르는 말로 『天道敎經典』에서는 道成德立과 道成立德을 같이 사용하였다.

    道成德立과 道成立德. -『天道敎經典』에서 道成德立은 『東經大全』의 修德文에서 1回만 사용되었고, 道成立德은 『東經大全』의 論學文에서 1回, 『龍潭遺詞』의 敎訓歌에서 3回, 道修詞에서 4回, 道德歌에서 1回 등 총 9回가 사용되었다.

    夫庚申之年 建巳之月 天下紛亂 民心淆薄 莫知所向之地 又有怪違之說 崩騰又世間 西洋之人 道成立德 及其造化 無事不成 攻鬪干戈 無人在前 中國燒滅 豈可無脣亡之患耶 都緣無他 斯人 道稱西道 學稱天主 敎則聖敎 此非知天時而 受天命耶/論學文

    雖然 道成德立 在誠在人 或聞流言而修之 或聞流呪而誦焉 豈不非哉 敢不憫然 憧憧我思 靡日不切 彬彬聖德 或恐有誤 是亦不面之致也 多數之故也 遠方照應而 亦不堪相思之懷 近欲敍情而必不無指目之嫌 故 作此章 布以示之 賢我諸君 愼聽吾言/修德文

    은덕(恩德)이야 있지마는 도성입덕(道成立德) 하는법(法)은

    한가지는 정성이오 한가지는 사람이라 /敎訓歌

    부모(父母)의 가르침을 아니듣고 낭유(浪遊)하면

    금수(禽獸)에 가직하고 자행자지(自行自止) 아닐런가

    우습다 너희사람 나는도시(都是) 모를러라

    부자형제(父子兄弟) 그가운데 도성입덕(道成立德) 각각(各各)이라 /敎訓歌

    열석 자 지극하면 만권(萬卷)시서(詩書) 무엇하며

    심학(心學)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不忘其意)하였서라

    현인군자될 것이니 도성입덕(道成立德) 못미칠까

    이 같이 쉬운 도를 자폭자기(自暴自棄)하단 말가"/敎訓歌

    성경이자(誠敬二字) 지켜내어 차차차차 닦아내면

    무극대도(無極大道) 아닐런가 시호시호(時乎時乎) 그때오면

    도성입덕(道成立德) 아닐런가/道修詞

    십년(十年)을 공부(工夫)해서 도성입덕(道成立德) 되게되면

    속성(速成)이라 하지마는 무극(無極)한 이내도(道)는

    삼년불성(三年不成) 되게되면 그아니 헛말인가 /道修詞

    몰몰(沒沒)한 지각자(知覺者)는 말로듣고 입도(入道)해서

    입을배워 주문(呪文)일러 도성입덕(道成立德) 무엇인지

    나도득도(得道) 너도득도 효박(淆薄)한 이세상에

    불사(不似)한 저사람은 어찌저리 불사한고 /道修詞

    이는역시 그러해도 수신제가(修身齊家) 아니하고

    도성입덕(道成立德) 무엇이며 삼강오륜(三綱五倫) 다버리고

    현인군자(賢人君子) 무엇이며 가도화순(家道和順) 하는법(法)은

    부인(婦人)에게 관계(關係)하니 가장(家長)이 엄숙(嚴肅)하면

    이런빛이 왜있으며 부인경계(婦人警戒) 다버리고

    저도역시 괴이(怪異)하니 절통(切痛)코 애달하다 /道修詞

    이런말씀 본(本)을받아 아니잊자 맹세(盟誓)해서

    일심(一心)으로 지켜내면 도성입덕(道成立德) 되려니와

    번복지심(飜覆之心) 두게되면 이는역시(亦是) 역리자(逆理者)요

    물욕교폐(物慾交蔽) 되게되면 이는역시 비루자(鄙陋者)요

    헛말로 유인(誘引)하면 이는역시 혹세자(惑世者)요

    안으로 불량(不良)하고 겉으로 꾸며내면

    이는역시 기천자(欺天者)라 뉘라서 분간(分揀)하리/道德歌

    인간은 의식적으로 道成德立이 自在한 것이다. 인간의 道成德立은 먼저 인격 완성으로 부터 시작 된다. 人格에는 動物學的 人格, 倫理學的 人格, 神學的 人格이 있다.

    첫째 動物學的 人格이란 것은 動物學上으로 보아 사람도 一個의 동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은 인간적인 입장으로 보든지, 自由意志의 존재로 보든지, 지식 상태로 보든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수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動物學的 人格으로 보면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一律的으로 人格을 가지고 있는 人格者이며, 이런 의미에서 사람 各個의 賢愚知痴의 구별을 論하지 않는다. 사람이면 다 같이 人格者이기 때문이다.

    둘째 倫理學的 人格者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賢 不肖, 知痴, 健全 不具 등을 차별하여 人格者로 보는 것이다. 倫理的 人格의 구비자료는 옛날의 孔子나 소크라테스등의 인물을 제일류로 취급한다. 그들은 理性, 理知(りち는 일본어 표현으로, 理智(理性과 智慧/명쾌한 '판단 능력') 가 올바른 표현이다-오암), 德行, 勇斷, 건전한 體力 및 정신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리하여 倫理的 人格은 動物學的 人格에 反하여 千差萬別의 階層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 세계의 윤리적 敎化는 그를 師表로 하여 일어났다.

    셋째는 神學的 人格 卽 通神的 人格을 이름이다. 人格이란 것은 前記倫理學的 人格위에 神一合一(문장의 흐름으로 보아 神人合一의 잘못인 듯-오암)의 通神的 人格을 가진 者를 이름이다. 이들이 우주최고의 인격자이다. 석가, 예수, 마호멭트, 수운선생, 등은 通神的 人格 중 제일류에 드는 이이다. 물론 通神的 人格에도 여러가지 계층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靈媒(神靈이나 죽은 사람의 靈魂과 의사가 통하여 魂靈과 인간 사이를 媒介하는 일 또는 사람-오암)와 같은 계급도 通神的 人格으로 해석하려면 廣義의 의미에서 그 하나로 인정할 수 있고 같은 靈媒에도 高級靈媒 低級靈媒의 구별이 있다 그러나 低級靈媒는 神 卽 우주의 超越者를 通한 者가 아니요 個體的 低級神을 對象으로 하는 자라는 신학적 의미에서 通神的 人格이라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靈媒는 변태적 인격이라고 함이 적당하다.

    이러한 三種의 인간이 인간 전체이다. 어떤 인간이든지 불완전하나마 윤리학적 인격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倫理를 最高 표준으로 한 儒敎와 같은데는 윤리 완성으로써 道成德立이 된다. 그러나 종교적 입장에서는 윤리 완성과 共히 神人合一의 人格을 道成德立이라 한다. PP.206-210.

    註 00 ; 賢愚知痴 - 賢愚는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知는 사물을 인식하여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능력을 ·痴/ 癡는 불교의 삼독(三毒)의 하나로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말한다. 그러므로 賢愚知痴는 현명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능력과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의미한다. / 각종 어학사전을 바탕으로 재 정리함.

    수운선생 역시 道成德立을 倫理的 人格과 通神的 人格의 合致로 본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생이 大覺한 天道는 無極大道가 되는 동시에 그 부분적 의미에서는 儒(倫理를 대표한 명사), 佛(眞性을 상징하는 명사), 仙(人格의 靈化를 대표한 명사)을 包容 통일한 점에서 儒의 倫理, 佛의 性理, 仙의 氣理를 통일한 것을 道成德立의 完全人格이라 하였다. 선생은 曰「吾道는 非儒 非佛 非仙임과 동시에 亦儒 亦佛 亦仙이라」하였다. 이는 反對一致의 眞理가 곧 天道인 것을 說破한 것이어니와 이를 구체적으로 論하면 인간은 人格에서 天然 自然의 儒彿仙 合致라는 것이다. 身體의 관계로부터 생기는 儒의 倫理는 身에 屬하고 性의 原理는 본질 및 不滅不生의 理로 佛에 屬하고, 氣의 原理로부터 생긴 養生 및 肉的 長生은 仙에 屬한 것이다. 그러므로 天道가 儒彿仙 合致란 것은 現存한 儒彿仙의 敎理를 合致한 것이 아니요, 우주 본체 중에 旣存한 또는 인간의 본질 중에 旣存한 儒彿仙의 身 性 氣의 統一原理를 把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이 말씀한 道成德立은 儒彿仙的 人格 完成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性은 本質이며 身은 器具, 氣는 活用이다. 本質은 定在이며 器具는 如在이며 活用은 用在이다. 이 三在는 三位一體다. 三位一體의 人格 아래서 道成德立이 完成된다.

    註 00 ; 선생은 曰「吾道는 非儒 非佛 非仙임과 동시에 亦儒 亦佛 亦仙이라」하였다. - 海月神師法說 十三. 天道와 儒 佛 仙의 두 번째 문단/천도교 경전 PP. 319-320.에서

    吾道 似儒似佛似仙 實則 非儒非佛非仙也 故曰「萬古無之 無極大道也」先聖只言枝葉 不說根本 我水雲大先生主 始創天地陰陽日月鬼神氣運造化之根本也 苟非聰明達德者 孰能知之 知者鮮矣 可歎也’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우리 도는 儒道와 유사하고(비슷하고/同을 쓰지 않고 似를 쓴 이유는, 수운선생께서 똑 같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오암) 불도와도 유사하고 선도와도 유사하나, 사실인즉 유도도 아니요 불도도 아니며 선도도 아니다. 그러므로 만고없는 무극대도라 한다, 옛 성인들은 다만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일부분(부차적인 것, 또는 사물의 중요치 않은 부분-오암)만 보고 근본은 말하지 못했으나, 우리 수운 대선생님께서는 천지․ 음양․ 일월․ 귀신․ 기운․ 조화의 근본(본질적인 것-오암)을 처음으로 밝히셨다. 진실로 聰明하고 達德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누가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이 적으니 매우 탄식할 일이다.

    ------------------------------------------東學之人生觀 註解書 14-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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