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대도와 제4차 산업혁명을 생각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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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 오만년을 끌어갈 무극대도(無極大道)와 제4차 산업혁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세상은 제4차 산업혁명(産業革命)으로 떠들썩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근간으로 합니다.
얼른 생각하면, 기계의 능력이 뛰어나 사람의 직업을 빼앗고 사람과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기술이 뛰어나 인공지능이 쓴 글이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입니다.
의학계에서는 빅데이터가 초진하여 병명을 찾아낸 후,
다시 사람 의사가 치료하면 오진율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계에서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배우도 많이 필요 없습니다.
정말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업(産業)이란 말 그대로 생산활동(生産活動)을 하는 것입니다.
선천 물질개벽(物質開闢)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생산(生産)에 맞춰졌던 것 같습니다.
인지(認知)가 발달하지 못하여 한울님만 쳐다보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그저 한울님이 주시는 열매만 따먹던 시절,
그 시절에는 경천(敬天)의 도덕(道德)을 배워야 했을 것입니다.
성인(聖人)이 나시어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이 바로 한울님의 존재와 한울님의 권능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성인의 가르침으로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배우게 되고
인지가 발달하고 사람이 천시 지리를 활용하여 산업을 늘리고 저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경천(敬天) 경인(敬人)의 도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물질개벽이 극에 달해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과학이 발달하여 사람이 없어도 기계를 이용하여 생산을 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산업이 최선이고 생산(生産)이 최선이었던 물질개벽(物質開開)의 시대에는
사람은 이제 기계에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대의 변천에 비추어 보면 이제 기계(물질)가 생산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시절에는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도덕을 배워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천(敬天)의 도덕(道德)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울은 공경해도 사람과 물건은 힘 있는 자들이 이용하면 되는 도구로 생각하는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경천의 도덕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짓밟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경천만 생각하는 도덕에서 해야 하는 마음공부는 힘의 원천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도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경천(敬天) 경인(敬人)의 도덕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울과 사람은 공경해도 아직은 물건은 이용하면 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완(未完)의 도덕이다 보니 사람과 물건을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계가 사람의 직업을 뺏어가고 사람의 설자리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사람의 일자리를 기계가 뺏어간다고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회사에서는 사람보다는 말 잘 듣고 잠 안자고 일하는 기계를 선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경천 경인 경물의 도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운용한다면 무엇이 다를까?
물건을 공경하니, 물건을 더 이상 도구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시하고 이용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그런 마음’ 자체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건 또한 한울님의 이치기운에 의해 존재 하는 것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 그 물건에 담겨있는 한울님의 이치기운을 받아서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니,
물건은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울이 살아서 세상에 나타나고,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고,
이제 물건(땅)도 살아서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땅(물건)이 한울의 이치기운으로 살아 움직이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선천도덕(先天道德)의 끝자락이라 잠시 혼란하리라 생각합니다.
물건을 도구로 생각하다 보니
경천 한다고 하지마는 제대로 경천(敬天)하지 못하고,
경인 한다고 한지만 제대로 경인(敬人)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건에 대한 욕심을 내는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마도 선천은 물질개벽의 운수,
생산(生産)의 운수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과학의 발달’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배어오지 않아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니 불편하였습니까?
길에 비단을 깔아서 다니기 쉬우니 불편하였습니까?
전기밥솥이 있어서 방에서 밥을 짓고, 매 끼니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불편하였습니까?
세탁기가 있어서 추운겨울 찬물에 손 담그지 않으니 불편하였습니까?
과학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학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에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울은 계속 열려 가는데 사람의 마음이 그 한울을 못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극에 달하면 선천 도덕이 감당하지 못 한다
하신 스승님들의 말씀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바야흐로 해월신사님 말씀처럼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도덕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기계가 알아서 다해 주는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요?
이 질문의 답이 앞으로의 직업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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