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極大道는 得道, 東學은 創道, 天道敎는 大告天下.(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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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極大道는 得道, 東學은 創道, 天道敎는 大告天下.(2-2)
천도교가 일제식민지 시대라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시대적 상황이 매우 나빴을 때, 이런 시기에, 교단 안에서는 신,구의 갈등과 두 세 개의 계열의 분파싸움이 진행되고, 교단 밖에서는 20여 개의 동학계열의 계파가 난립하여 분쟁이 심할 때에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안정과 예측이 매우 어려웠다. 이 시기에 교단 내외에서 讖緯書(讖書)나 秘記와 같은 예언뿐만 아니라 경전의 해석에 있었어도 동학계열의 계파는 물론 구파를 중심으로 예언적인 해석이 생소하지 않게 들렸다. 일부에서는 주역을 바탕으로 하는 해석을 따르게 되자 심지어는 명리학과 풍수에까지 이르도록 예언적인 해석이 난무한 시대도 있었다. 1960년대 초 3부 경전인 『천도교경전』이 간행되자 讖緯書(讖書)나 秘記와 같은 예언적인 경향의 해석이 사라지게 되었다.
『천도교경전』의 간행을 함에 있어 讖緯書(讖書)나 秘記와 같은 예언적인 해석을 피한다는 문서상의 기록은 남기지 않았지만, 경전 간행의 기본 방향을 논의하는 교단과 교서편찬위원회의 공식회의에서는 논의가 된바가 있다. 『천도교경전』의 간행이 되기 이전의 경전의 구성에는, 원문 다음에 해석이 있고 주해가 있었다. 이 주해의 기본논리의 상당 부분이 주역(卜筮로 神意를 묻는 방법)을 바탕으로 하고 다양한 예언적인 요소들을 가미하여 해석하고 있었다. 『천도교경전』의 간행의 기본 핵심 중에 하나가, 앞으로 입교하여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신입 청소년들을 위하여 주해 부분을 제외시키는 것이 시대적 상황에 적합하다고 논의의 합의를 보아 주해부분을 없애기로 하여 이후 경전 해석에 있어 주해부분을 제외시키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註 00 ; 주역(周易/同義語는 易經) -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진다. 공자가 극히 진중하게 여겨 받들고 주희(朱熹)가 ‘역경(易經)’이라 이름하여 숭상한 이래로 ≪주역≫은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주역≫은 상경(上經)·하경(下經)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익은 단전(彖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 등 10편을 말한다.
한대(漢代)의 학자 정현(鄭玄)은 “역에는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간(易簡)이 첫째요, 변역(變易)이 둘째요, 불역(不易)이 셋째다”라 하였고, 송대의 주희도 “교역(交易)·변역의 뜻이 있으므로 역이라 이른다”고 하였다. 인간이란 하늘과 땅이 서로 영향을 미쳐 만물을 생성케 하는 이법(理法)은 실로 단순하며, 그래서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다. 변역이란 천지간의 현상, 인간 사회의 모든 사행(事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이고, 불역이란 이런 중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줄기가 있으니 예컨대,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해와 달이 갈마들어 밝히고 부모는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그를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주희의 교역이란 천지와 상하 사방이 대대(對待)함을 이르는 것이고, 변역은 음양과 주야의 유행(流行)을 뜻하는 것이라 하였다. ≪설문 說文≫에는 역이라는 글자를 도마뱀(蜥易, 蝘蜓, 守宮)이라 풀이하고 있다. 말하자면, 易자는 그 상형으로 日은 머리 부분이고 아래쪽 勿은 발과 꼬리를 나타내고 있다. 도마뱀은 하루에도 12번이나 몸의 빛깔을 변하기 때문에 역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역은 일월(日月)을 가리키는 것이고 음양을 말하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상 여러 설을 종합해 보면 역이란 도마뱀의 상형으로 전변만화하는 자연·인사(人事)의 사상(事象)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례 周禮≫ 춘관편(春官篇) 대복(大卜)의 직(職)을 논하는 글에 “삼역법(三易法)을 장악하나니 첫째는 연산(連山)이요, 둘째는 귀장(歸藏), 셋째는 주역인데 그 괘가 모두 여덟이고 그 나누임이 64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대의 두자춘(杜子春)은 연산은 복희(伏羲), 귀장은 황제(黃帝)의 역이라 하였고, 정현은 역을 하(夏)나라에서는 연산이라 하고 은(殷)나라에서는 귀장, 주(周)나라에서는 주역이라 한다고 하였다. 아무튼 연산·귀장은 일찍이 없어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주대(周代)의 역인 ≪주역≫뿐이다.
역의 작자에 대해서는 ≪주역≫ 계사전에 몇 군데 암시가 있다. 그 중 뚜렷한 것은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위로 상(象)을 하늘에서 우러르고 아래로 법을 땅에서 살폈으며 새와 짐승의 모양, 초목의 상태를 관찰해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해, 이로써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정에 비기었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고 신농씨(神農氏, 혹은 伏羲氏, 夏禹氏, 文王)가 64괘로 나누었으며, 문왕이 괘에 사(辭)를 붙여 ≪주역≫이 이루어진 뒤에 그 아들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어 완성되었고 이에 공자가 십익을 붙였다고 한다. 이것이 대개의 통설이다.
역을 점서(占筮)와 연결시키고 역의 원시적 의의를 점서에 두는 것은 모든 학자의 공통된 견해이다. 어느 민족도 그러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대사(大事)에 부딪히면 그 해결을 복서(卜筮)로 신의(神意)를 묻는 방법을 썼다. 하여튼 처음 점서를 위해 만들어진 역이 시대를 거치면서 성인(聖人) 학자에 의해 고도의 철학적 사색과 심오한 사상적 의미가 부여되어 인간학의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정착된 것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註 00 ; 명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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