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천도교
로그인 회원가입

주전자의 겸손함 > 자유게시판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 천도교소식
  • 자유게시판
  • 천도교소식

    자유게시판

    주전자의 겸손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문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9회   작성일Date 25-09-30 09:39

    본문

     

    Gemini_Generated_Image_jud2p0jud2p0jud2.png


    찻집에서 차를 우리며 문득 주전자를 바라본다. 뜨거운 물을 품고 있으면서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 모습에서 진정한 겸손함을 본다. 주전자는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 찻잔이 받는 찬사를 탐내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자기 PR의 시대다. SNS에는 자신의 성취와 일상을 과시하려는 게시물들이 넘쳐난다. '나를 봐달라', '내가 이런 일을 해냈다'는 외침들이 디지털 공간을 가득 메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주전자의 겸손함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전자의 지혜는 단순하지만 깊다. 자신이 비어있을 때 가장 유용하다는 것을 안다. 물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하고, 차를 우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춰야 한다. 찻잔에 차를 따라주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그 자세에서 진정한 서비스정신을 엿본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에게서도 이런 주전자의 겸손함을 찾고 싶다. 권력을 가졌을 때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인, 성공했을 때 더욱 겸허해지는 기업인, 지식이 많을수록 더욱 귀를 기울이는 학자들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오만해지고, 성공할수록 교만해지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한다.


    주전자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겸손함 때문이다. 화려한 장식이 없어도, 비싼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가장 빛이 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에서 나온다는 것을 주전자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교육의 현장에서도 주전자의 겸손함이 필요하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부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주전자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채우려 하지 말고, 학생들의 호기심이라는 찻잔에 적절한 만큼의 지식을 따라주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 하기보다는, 자녀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 주전자 같은 역할이 더 소중하다. 과잉보호는 찻잔을 넘치게 하는 것과 같다.


    주전자는 또한 인내심을 가르쳐준다.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리고, 차가 우러날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모든 것에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사회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을 때, 주전자의 이런 여유로움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겸손함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강함에서 나오는 덕목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굳이 뽐낼 필요가 없고, 자신의 역할에 확신이 있기에 다른 이의 인정을 구걸하지 않는다. 주전자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오늘 하루도 주전자를 보며 생각해본다. 나는 얼마나 겸손한가. 내가 맡은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가. 다른 사람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낮출 수 있는가. 주전자의 겸손함을 닮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숙이 아닐까.


    차 한 잔의 여유 속에서 주전자가 건네는 삶의 지혜를 다시 한번 음미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