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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범두 교령 매일경제와 인터뷰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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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사회문화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044회   작성일Date 19-11-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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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범두 교령 매일경제와 인터뷰 가져

     

    송범두 교령은 포덕 1601128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천도교 없이 한국 근대사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봉건체제가 엄혹하던 시절에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사상을 세상에 전파했고, 동학으로 탐관오리와 일제에 대항했다., 앞으로는 우리의 삶 속에 천도교가 밀접하게 녹아 있다는 걸 젊은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송범두 교령은 "특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천도교를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각 지자체에서도 앞 다투어 동학 성지화 사업에 나서고 있으며, 동학학회를 비롯한 학계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매일경제신문에 게재된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송범두 교령 "한국 근대사 열어젖힌 천도교젊은이에게 다가갈 것"

     

    독립운동 주도했던 천도교부활 이끄는 송범두 교령

     

    3·1운동 100주년 맞아 재조명 활발

    어린이·여성 운동도 천도교가 시작

     

    기성 종교 현대인의 질문에 답 못해

    신은 마음속에 있어인간 존중해야

     

    에 교도 많아 통일에 큰 역할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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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연 기자


    천도교 없이 한국 근대사를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봉건 체제가 엄혹하던 시절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사상을 세상에 전파했고, 동학으로 탐관오리와 일제에 대항했다. 3·1운동민족 대표 33인 중 15명이 천도교인이었다. ‘어린이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 아동 권익 운동을 시작한 것도, 여성 운동을 시작한 것도 천도교였다.

     

     

    김구를 중심으로 분단 반대에 앞장선 세력도 천도교였다. 하지만 천도교는 일제와 관의 박해로 교세가 위축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픈 역사를 가진 천도교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3·1운동 100주년인 올 한 해 활발하게 진행됐다. 천도교 부활을 이끌고 있는 송범두 교령(70)을 만났다.

     

    올해 천도교가 큰 관심을 받았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천도교의 의미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도 만들어지면서 국민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전주, 남원, 경주, 인제, 여주, 울산 등 천도교와 관련된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동학 성지화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천도교가 3·1운동을 주도한 배경은

     

    국치를 당하고 의암 손병희 선생이 10년 안에 나라를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봉황각을 지어 지도자 수련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뽑힌 483명이 교육을 받았다. 이들이 지역 3·1운동을 이끄는 핵심 세력이 됐다. 의암 선생은 문맹과 싸우기 위해 전국에 등사기를 보급했다. 그것이 나중에 독립선언서를 전국에 퍼뜨리는 결정적 기여를 했다.

     

    천도교 교세가 위축된 계기는

     

    남북한 전체 인구가 1800만 명이었던 시절에 300만 명이 천도교인이었다. 쇠락하게 된 건 관과 일제의 탄압 때문이었다. 동학혁명 때 최소 30만 명이 몰살됐다. 그때부터 교인들이 줄기 시작했다. 3·1운동이 끝난 뒤 말살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광복 이후에는 신탁통치 반대, 남한 단독 정부 반대를 외친 대가로 또 이승만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근본적으로 인본사상·평등사상을 내세운 천도교는 위정자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는 종교였다.

     

    동학이라는 이름을 천도교로 바꾼 이유는

     

    3·1운동 이후 탄압이 너무 심해지자 손병희 선생이 ()’이라는 말을 떼고 ()’로 바꿨다. 종교가 상대적으로 덜 박해받았기 때문이다. 오는 121일이 이름을 바꾼 지 114년 되는 날이다.

     

    천도교와 타 종교의 차이는 뭔가.

     

    천도교는 인내천(人乃天)’을 말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모시는 한울님은 사람을 떠나 어디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기존 종교는 향벽설위(向壁設位)’고 천도교는 향아설위(向我設位)’라고 말했다. 유교는 제사를 지낼 때 병풍을 치고 벽에 절을 하지만 천도교는 벽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게 절을 한다고 치자.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 벽 뒤에 있는가? 아니다 내 기억(마음)에 있다. 아버지 몸은 어디 있는가? 유전자를 통해 내 몸에 있다. 그러니 나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게 맞는다. 내가 없으면 해도 달도 없다. 자아 완성이 곧 구원이다.

     

    천도교의 자연관은 어떤가.

     

    천도교는 자연의 가치를 아는 종교다.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이라는 천도교 격언이 있다. 세상 이치가 밥 한 그릇에 담겨 있다는 뜻이다. 천도교는 식사를 하는 행위를 두고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고 말한다. 자연의 순환 과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게 없다. 천도교는 하늘, 사람, 만물을 다 공경하라고 가르친다.

     

    신도 수는 얼마나 되나.

     

    천도교는 좀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한다. 천도교에는 오관(五款)이라는 게 있다. 천도교인이면 꼭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의무다. 이 오관을 다 지킨다는 것은 타 종교 성직자 수준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이 7만 명쯤이다. 이 숫자는 웬만한 대형 종교 성직자 수와 큰 차이가 없다. 충성 신자 수를 따지면 결코 적지 않다.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도 100년 됐다.

     

    1919년 순수하게 교인들 성금으로 지은 건물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결혼을 하면 잘산다는 소문이 돌면서 결혼식장으로 한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북한에 천도교인이 많다고 하는데

     

    김일성도 동학 공부를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북한에서 천도교 정당인 청우당이 만들어졌다. 북한 제1당이 노동당이고, 2당에 청우당이다. 일당 독재가 아니라는 명분으로 활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통일을 위해 청우당을 활용할 필요는 있다.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어떤 노력을 하는가.

     

    우리가 사실 좀 폐쇄적이고 노령화됐다. 가장 큰 문제다. 이걸 개선해야 한다. 우리 역사 속에, 삶 속에 천도교가 밀접하게 녹아 있다는 걸 젊은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 사실 현대인들이 겪는 많은 문제에 대해 다른 기성 종교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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