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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8년(1867) 2월에 신사께서 울진군 죽변리로부터 예천군 수산리(醴泉郡 水山里)에 이거할 때 대신사의 가족은 상주 동관암으로 옮기게 하였는데 이것은 연루(連累)의 화(禍)를 면하고자 함이었다. 이때 신사께서 박씨부인을 전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잠깐 산곡간(山谷間)에 배회하더니 문득 정신이 황홀해지면서 어디선가 『너에게 대도의 중임(重任)을 지게 한 것은 오직 천심에서 나온 것이니 네 비록 세상에 용납을 받지 못하더라도 괴롭게 생각치 말라. 신산(神算)이 스스로 있으니 노력하여 도의 기초를 세우라』는 말이 들려왔다.
『내 혈괴(血塊)가 아니거니 어찌 시비(是非)의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만일 혈기(血氣)를 내어 시비를 추궁하면 천심(天心)을 상(傷)케 할까 두려워하여 내 이를 하지 않노라.』 『내 또한 오장(五臟)이 있거니 어찌 물욕(物慾)을 모르리오마는 그러나 내 이를 하지 않는 것은 한울을 양(養)하지 못할까 두려워 함이니라.』 『나는 비록 부인, 소아의 말이라도 배울 것은 배우며 좇을 것은 좇나니 이는 모든 선(善)은 다 천어(天語)로 알고 믿음이니라. 이제 제군의 행위를 본즉 자존(自尊)하는 자 많으니 가탄(可嘆)할 일이로다. 내 또한 세상사람이거니 어찌 이런 마음이 없겠느냐마는 내 이를 하지 않음은 한울을 양하지 못할까 두려워 함이니라.』 『제군은 생각하라. 교만과 사치의 마음이 무엇에 이익되는 바 있느냐. 교만이 많으면 사람을 잃고 사치가 많으면 진실을 잃어버리나니 사람을 잃는 것은 세상을 버림이요 진실을 잃는 것은 자아를 버림이니 이 두가지를 잃고 도를 구하는 자는 종자를 버리고 곡식을 구하는 자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평생에 외식(外飾)을 피하고 내실(內實)을 주(主)하는 것은 오로지 한울을 양함에 유감이 없기를 기함이니라.』 『여간한 개심(開心)으로써 스스로 자족(自足)하는 자는 때 아닌 과실이 조숙함과 같아 스스로 효용을 잃나니라. 기연(其然)을 아는 자와 기연을 직각(直覺)한 자와는 정도가 서로 같지 않으니 그대들은 시천주의 본뜻을 입으로 말하며 글로 그리지 말고 먼저 만심쾌재(滿心快哉)한 후에 기쁨과 감격으로 조화정(造化定)에 나아간 뒤에라야 거의 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이르리라.』 『자아(自我) 능(能)히 자아(自我)의 마음을 정(定)하면 천하에 별 사람이 없는 것을 알지라. 내 소시(少時)에 옛적 성인(聖人)은 반드시 사람 이상의 무엇을 가졌으리라 생각하였더니 내 대선생(大先生)을 좇아 마음을 배운 뒤로부터는 성인도 별 사람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정함에 있는 것을 알았노라. 마음을 정하면 곧 한울을 양(養)할 것이요 한울을 양하면 한울과 사람이 둘이 아님을 알지니라.』 이 말씀은 신사께서 제자들에게 양천주(養天主)의 뜻을 말한 것이니 제자들 중에는 아직 이 설법을 듣고 그 본뜻을 아는 자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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