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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신사

    [해월신사]  단양 사동

    명칭 단양 사동
    설명
    주소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
    방문자 수 2014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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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1. 우상전폐(偶像全廢)와 용시용활(用時用活)

    포덕15년(1874) 1월에 신사께서 철수좌의 말에 좇아 단양군(丹陽郡) 남면(南面) 도솔봉(兜率峰) 밑 사동(寺洞)에 이거(移居)하니 과연 산수가 아름답고 조용하여 수련장으로는 적당한 곳이었다. 3월에 들어 신사께서 제자들의 주선에 의하여 두번째로 안동김씨(安東金氏)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는데 이때 신사의 나이 48세였다. 이때에 신사께서 김연순(金演淳), 홍순일(洪舜一) 등과 함께 49일 기도를 행하였는데 이 무렵 생활비는 주로 안동도인(安東道人) 권기하(權奇夏)의 특성(特誠)으로 충당하였다. 포덕 16년(1875) 8월에 신사께서 정선지방(旌善地方)을 순접(巡接)하다가 무은담 유인상의 집에 이르니 도인들이 소를 잡고 특별치성식(特別致誠式)을 거행하고자 하므로 신사께서 우상전폐(偶像全廢)의 뜻으로 다음과 같이 설법하였다.


    『대선생(大先生)께서 포덕하시던 처음에는 제수(祭需)에 소와 양과 돼지고기 등을 통용(通用)하였으므로 내 또한 과거 다년간(多年間)에 걸쳐 각종 음식물로 의식(儀式)의 표준을 삼아왔는데 이것은 아직 시대의 환경과 인심(人心)의 관계로 부득이(不得已)에서 나온 일이나 이제부터는 일체 의식에 청수(淸水) 한 그릇만 사용하라. 물은 그 성질이 맑고 움직이는 것이며 또 어느 곳에나 있지 않은 곳이 없는지라 참으로 만물의 근원이라 이를 것이니 내 이로써 의식의 표준물로 정하노라.』


    이 해 10월에 신사께서 설법행제(設法行祭)의 뜻으로 정선도인(旌善道人)에게 통유(通喩)를 발(發)하였더니 그 달 28일에 강수(姜洙), 전성문(全聖文), 유인상(劉寅常), 김용진(金龍鎭) 등 여러 사람이 모였다. 신사께서 친히 예복(禮服)을 입고 주문(呪文)을 지어 기도식을 행한 뒤에 도인들에게 「용시용활(用時用活)」을 설법하였다.


    『대저 도는 용시용활하는데 있나니 때와 짝하여 나가지 않으면 이는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으리라. 하물며 우리 도는 오만년의 미래를 표준함에 있어 앞서 때를 쓰고 때를 짓지 않으면 안될 것은 선사(先師)의 가르치신 바라. 그러므로 내 이 뜻을 후세만대(後世萬代)에 보이기 위하여 특별히 내 이름을 고쳐 맹세코자 하노라.』


    설법을 마친 후 신사께서는 본명(本名) 「경상(慶翔)」을 「시형(時亨)」이라 고쳤는데 「시형」은 때를 따라 순응(順應)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강수(姜洙)의 이름을 시원(時元)으로, 유인상(劉寅常)의 이름을 시헌(時憲)이라 고치는 동시에 전시광(全時侊), 신시일(辛時一), 신시영(辛時永), 홍시래(洪時來), 최시경(崔時敬), 방시학(房時學), 김시완(金時脘), 심시정(沈時貞), 조시철(趙時哲) 등 여러 사람에게 「시(時)」자(字)를 넣어 이름을 고쳐주었다. 이 때에 대신사의 둘째 아들 세청(世淸)이 병으로 10월 25일 소밀원(蘇密院) 장기서(張基瑞)의 집에서 환원(還元)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

    ::단양군청홈페이지→단양관광→여행도우미→교통→시내버스→단성대강방면→장전, 올산행버스→사동하차
    자가용 이용


    ::중앙고속국도→단양IC→5번국도 우회전→927지방도 좌회전(길주의)→직치교에서 좌회전→장전초교 좌회전→사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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