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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신사

    [해월신사]  완주 삼례역

    명칭 완주 삼례역
    설명
    주소 전북 완주군 삼례읍
    방문자 수 2963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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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이곳 삼례에서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했다.--


    포덕33년(1892)10월 27일에 신사(神師)께서 다시 도인(道人)들에게 경통(敬通)을 발하여 전라도(全羅道) 삼례역(參禮驛)에 모이게 하였다. 11월 1일에 각포(各包) 두령이 포내 도인들을 거느리고 전주(全州) 삼례역(參禮驛)에 모이자 회중이 수천명이 되었는데 신사(神師)께서 각도동학유생의송단자(各道東學儒生議送單子)를 전주 감영에 올렸다.


    ◇ 신원운동(伸寃運動) ◇

    1. 삼례집회(參禮集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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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장사(公州狀辭) 이후 해월신사께서는 이미 그 시기가 성숙되었다고 판단하고 손천민에게 명하여 입의문(立義文)과 통유문(通諭文), 경통(敬通)을 지어 각지 도인에게 배포하고 이어서 신원운동(伸寃運動)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였으니 이 달 17日에 배포한 입의문(立義文)은 다음과 같다.

    입의문(立義文)


    대개 종교(宗敎)는 셋이 있으니 유교(儒敎)는 비롯하기를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써 주공공자(周公孔子)에 이르기까지 지나간 성인(聖人)을 이어서 내학 (來學)을 열어 인륜(人倫)이 위에 밝고 교화(敎化)가 아래에 행하여 중국(中國) 4천여년 교종(敎宗)이 되었으며, 불씨(佛氏)는 비롯하기를 인도(印度)로부터 하여 27祖에 진단(震丹)이 있었고 6조가 자비(慈悲)를 일으키고 관성견심(觀性見心)으로 중생(衆生)을 고해(苦海)에서 건지게 하였으며, 도교(道敎)는 황제(黃帝)로 부터 시작하여 도인수련(道人修煉)의 법(法)으로써 생민(生民)을 요찰(夭札)에서 면(免)케 하였다. 오직 우리 청구(靑丘)는 단군(檀君) 기자(箕子)로 부터 이래 수천 년에 신성(神聖)의 교(敎)와 인현(仁賢)의 화(化)가 거듭 빛나고 여러 번 젖어 길게 이었으며 높음을 더하였더니 숙계(叔季)에 미쳐서는 성도(聖道)가 거칠어지고 인심(人心)이 막히어 날로 더럽고 낮은 데로 나아가 도도히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하더니 어떤 다행으로 한울이 우리 동방(東方)을 도와 돈독하게 우리 선사(先師)를 내시어 3敎를 통일하고 심인(心印)을 전하여 장차 덕을 천하에 펴고저 하더니 지나간 갑자춘(甲子春)에 위도(僞道)의 혐의를 입어 몸으로써 도에 순(殉)하였으니 이것이 명(命)이냐 운(運)이냐. 또 임신(壬申)의 화(禍)를 입은 것과 을유(乙酉)의 액(厄)을 만난 것과 기축(己丑)의 체포로 원통하게 죽은 자 얼마이며 정배간 자 얼마인가. 무릇 생삼사일(生三事一)의 의(義)는 곧 우리 도의 대경대강(大徑大綱)이라 우리 스승님의 조난(遭難)이 이제 30년에 이른지라 그 문도(門徒)된 자(者) 마땅히 성력(誠力)을 다하여 써 빨리 신설(伸雪)할 바의 방법을 도모할 것이거늘 다만 구경만하고 두려워하기만 하여 혀로 거짓말만 하여 오로지 스승을 높이고 도(道)를 모시는 의(義)에 어두워 망녕되게 조화(造化)가 장차 이를 것만 믿으니 진실로 슬픈 일이로다. 무릇 우리 도인(道人)은 하나이라도 이러함이 있으면 단연코 북을 울려 죄를 성토해야 할 것이니 경계하기를 배가(倍加)하여 더욱 수도에 힘쓸지어다.

    이 달 27일에 신사(神師)께서 다시 도인(道人)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통(敬通)을 발하여 전라도(全羅道) 삼례역(參禮驛)에 모이게 하였다.

    경통(敬通)


    이 경통(敬通)은 무릇 한울을 머리에 이고 땅에 서서 대선생(大先生)께 은혜를 받고 도(道)를 받은 제군자(諸君者)는 누구인들 원통한 것을 펴고 분(忿)한 것을 씻으려는 마음이 없으리오. 그러나 지금까지 30여년(餘年)에 지목(指目)의 혐의(嫌疑)를 두려워 죄(罪)있는 자와 같이 엎디어 있은 것도 또한 천운(天運)이요 이제 금영(錦營)(충청도감영)에 원통함을 호소(呼訴)하고 완영(完營)(전라도감영)에 소장(訴狀)을 보내는 것도 또한 천명(天命)이라 각포(各包)의 모든 접장이 일제히 모이는 곳에 알고도 모임에 나오지 않은 사람을 어찌 가히 도를 닦고 오륜(五倫)을 강론(講論)한다 이르리오. 사람이라고 이름하면서 선생(先生)의 원통함을 펼 줄 모른다면 금수(禽獸)와 멀다고 하겠는가 가깝다고 하겠는가. 다시 이 경통(敬通)을 발(發)한 후에 만약 즉시 모임에 달려오지 않으면 마땅히 별반조처(別般措處)의 길이 있을 것이요 또 한울에 죄를 지으면 다시 어느 곳에서 빌기를 구하랴. 사심(私心)이 대의(大義)를 해친다는 것을 맹성(猛省)하여 소인의 거짓말을 듣지 말면 천만다행(千萬多幸)일까 하노라.


    11월 1일에 각포(各包) 두령이 포내 도인들을 거느리고 전주(全州) 삼례역(參禮驛)에 모이자 회중이 수천명이 되었는데 신사(神師)께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전주 감영에 올렸다.

    각도동학유생의송단자(各道東學儒生議送單子)


    완영(完營)은 공감(恐感)하소서. 엎디어 절하옵고 말씀드리나이다. 신등(臣等)은 즉 동학하는 선비들입니다. 동학도가 비롯되어 팔로(八路)에 펴게 되기는 지난 경신년(庚申年)으로부터 경주(慶州) 최선생(崔先生) 제우(濟愚)께서 상제(上帝)의 명(命)을 받아 유(儒).불(佛).선(仙) 삼도(三道)를 합하여 하나로 하고 지성으로 한울님을 섬겨 유(儒)로써 오륜(五倫)을 지키고 불(佛)로써 심성(心性)을 다스리고 선(仙)으로써 질병을 제(除)하는 것이라 서양(西洋)의 학(學)이 일신월성(日新月盛)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고(故)로 선생(先生)이 대도(大道)의 박식장진(剝蝕將盡)함을 슬피 여기시고 가히 독선기신(獨善其身)하지 못할 것이므로 뜻을 계왕성(繼往聖) 개내학(開來學)에 두고 문입제자(門入弟子)로 하여금 자리를 펴고 도를 강론하는 것은 그 이륜(彛倫)을 잡고 진리를 지켜 조금이라도 부끄럼이 없게 함이라. 동서지간(東西之間)은 빙탄(氷炭)과 같거늘 다만 지성으로 경천하는 까닭으로써 선생이 도리어 서도(潟)로써 무고(誣告)를 입은지라 구차롭게 면(免)하기를 도모하지 않고 종용(從容)히 의(義)에 나아가 죽기를 돌아감과 같이 보았으니 신자(臣子)의 분(分)에 충성되고 또 극진한지라 만약 백이(伯夷) 숙제(叔齊)로 하여금 탐(貪)한데 돌리면 가하려니와 어찌 차마 서교(西敎)로써 우리선생을 의심하리오. 상금(尙今) 30여년에 능히 세상에 창명(彰明)되지 못한 것은 신원(伸寃)을 얻지 못한 탓이라 세속 사람이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이단으로 지목하나 그러나 온 세상 이단(異端)의 학(學)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요 셋이 아니라 대여섯의 많음에 이른다고 할 것이라 일일이 거론하지 않으나 동도(東道)에 이르러서는 배척하는 뜻이 여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사(假使) 비록 성학(聖學)이 아닐지라도 또한 서도(西 道)가 인륜(人倫)이 없고 분별이 없는 것과는 가히 같은 날에 말할 것이 못되거늘 서학(西學)여파(餘派)로써 지목하여 열읍수령(列邑首領)이 빗질하듯이 조사하여 잡아가두고 곤장으로 돈과 재산을 요구하여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계속되고 마을의 호민(豪民)도 소문을 따라 침노하고 업신여겨 집을 헐고 재산을 빼앗아 왕왕 유리탕패(流離蕩敗)하는 터인즉 비록 이단으로 금한다 할지라도 생등(生等)은 듣기를 능히 양주흑습(楊朱黑習)을 막는 자를 성인지도(聖人之道)라 하였으되 양흑(楊黑)을 막는다고 하면서 재물을 취하는 자를 성인지도(聖人之道)라 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어찌하여 여러 고을 관리들이 동학을 화천(貨泉)으로 보아 유리표박(遊離漂迫)케 하고 생활할 길이 없게 하는고. 이것이 생등(生等)이 생삼사일(生三事一)의 의(義)를 알지 못하고 상금(尙今)것 30여년에 신원(伸寃)을 얻지 못한 죄이로소이다. 생등(生等)이 열성조(列聖朝) 화육(化育)의 민(民)으로서 선성(先聖)의 글을 읽으며 국군(國君)의 땅에서 먹으며 뜻을 이 학(學)에 향한 것은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허물을 고치고 스스로 새롭게 하여 천지를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며 스승과 어른을 높이며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 화친하며 이웃을 생각하며 붕우간(朋友間)에 미덥게 하며 부부간에 분별있게 하며 자손을 가르치는 도가 지극하고 극진한 즉 한울로 머리를 두고 땅에 선 자 이것을 버리고 무엇을 배우리오. 당금(當今) 서이(西夷)의 학(學)과 왜추(倭醜)의 독(毒)이 다시 외진(外鎭)에 방사(放肆)하여 그 극(極)할데가 없고 흉역(凶逆)의 화단이 임금수레 밑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이것이 생등(生等)의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것이오 무뢰배(無賴輩)에 이르러서는 무리를 산골짜기에 모아 대낮에 큰 도시에서 사람을 해하고 물건을 취하는 자로 하여금 귀화(歸化)케 하면 또한 가히 선류(善類)가 될 수 있는데도 능히 금제(禁制)치 못하니 이 또한 생등(生等)이 한심하게 여기는 바로소이다. 생등(生等)이 성심(誠心)으로 수도하여 밤낮 한울님께 비는 것은 광제창생(廣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대원(大願)이라 어찌 호말(毫末)인들 부정한 이치가 있으리오. 이제 순상각하(巡相閣下)께서는 근심을 북궐(北闕)에 나누고 남토(南土)를 관찰하여 은택(恩澤)이 생등(生等)에 미쳐 잔명(殘命)을 보존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열읍(列邑)에서 지목하는 것이 나날이 더욱 심하여 청천백일(靑天白日)에 원통하고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피눈물을 흘리면서 엎디어 비노니 원컨대 순상각하(巡相閣下)께서는 특히 자비의 광대한 덕을 더하고 천폐(天陛)(임금)에 장계(狀啓)로 올리어 써 지선(至善)의 도를 나타내게 하고 각읍(各邑)에 발관(發關)하여 써 빈사(濱死)의 백성을 건지면 소부두모(召父杜母)도 오히려 족히 써 인자(仁慈)로 삼아 소리를 가즉이 하여 이천순선(二天巡宣)의 아래에서 우러러 부를 것이오니 엎디어 빌건대 생등(生等)으로 하여금 선생의 원통함을 펴게 하고 한울과 같은 국가의 은혜를 넓게 펴줄 것을 천만(千萬) 간절히 비나이다.


    임진(壬辰) 11월 2일

    이 때에 도인(道人)들은 다음과 같은 삼대조목(三大條目)의 방을 붙였다.


    1. 수운선사(水雲先師) 신원(伸寃)
    1. 탐관오리(貪官汚吏) 제거(除去)
    1. 교당설치(敎堂設置) 허가(許可)

    소장(訴狀)(11월 2일자 각고 동학유생의송단자)을 받은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 이경직은 다음과 같은 제음(題音)을 발하였다.

    제음(題音)


    너희들의 학(學)은 즉 조가(朝家)에서 금하는 바라 이미 이성(彛性)을 갖추었거니 어찌 정학(正學)을 버리고 이단(異端)에 나아가 스스로 금하는 죄과(罪過)를 범하느냐. 이제 또 소사(訴辭)를 광포(廣布)하기까지를 바라니 더욱 말이나 될 일인가. 매우 놀랍도다. 곧 퇴거(退去)하여 일제히 새로운 마음으로 미혹(迷惑)치 말라.


    11초 9일

    소장(訴狀)을 낸지 5, 6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와 같은 제사(題辭)가 나오니 회중물의(會中物議)가 더욱 울분하여 다시 의론(議論)을 정한 후 다음과 같은 소장(訴狀)을 또 제출했다.

    소장(訴狀)

     
    공감(恐鑑)하소서. 엎디어 절하며 아뢰올 말씀은 생등(生等)이 드린 바 의송장(議送壯)은 이미 6일을 지난지라 각하(閣下)의 처분(處分)을 공경하여 기다리며 이에 말씀드립니다. 도로에 류연(留連)하여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면서 기한(飢寒)이 절부(切膚)하되 나날이 현망(縣望)하는 것은 각하(閣下)의 한울 같은 혜택뿐이라 수다(數多)한 유생(儒生)이 돌아갈래야 갈 곳이 없으니 이것을 장차 어찌 하리오. 각읍(各邑) 지목(指目)의 폐해가 날로 심하여 수재(守宰) 이하(以下)로부터 이서군교(吏胥軍校)와 간향활류(奸鄕猾類)에 이르기까지 기탄(忌憚)하는 바 없이 가산(家産)을 수탈(搜奪)하기를 자기 소유 같이 하며 구타(毆打) 능학(凌虐) 하기를 어떻다고 할 수 없으니 불쌍한 이 중생(衆生)은 어느 곳에 공소(公訴)하리오. 엎디어 빌건대 순상각하(巡相閣下)께서는 특히 거의 죽게 된 중생을 불쌍히 여겨 천폐(天陛)에 장계(狀啓)로 울리어 써 선생(先生)의 신원(伸寃)을 펴게 하고 각읍(各邑)에 발관(發關)하여 이서간향배(吏胥奸鄕輩)의 못된 짓을 엄금(嚴禁)하여 수만중생(數萬衆生)으로 하여금 각각 집에 돌아가 그 업(業)에 편안하게 하면 각하(閣下)의 한울 같은 덕(德)을 몰세(沒世)토록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니 세세(細細)히 밝게 살피시어 불쌍히 여기고 생각하여 주시기를 천만(千萬) 복축(伏祝)하나이다.


    임진(壬辰) 11월 일

    이 같은 소문(訴文)을 다시 제출한 수천명(數千名) 도인들이 물러가지 아니하고 삼례역(參禮驛) 부근과 전주감영(全州監營) 일대에 머무르니 11월에 이르러 감사 이경직이 부득이(不得已) 다음과 같은 감결문(甘結文)을 각 고을에 내게 되었다.

    감결(甘結)

     
    소위(所爲) 동학(東學)은 조가(朝家)의 금하는 바라 영읍(營邑)에 있어서는 조칙(朝飭)을 좇아 그 금단(禁斷)할 바를 극(極)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이제 들으니 각읍하속(各邑下屬)이 금단을 핑계로 문득 전재(錢財)를 빼앗는다고 하니 재산 빼앗는 것을 어찌 생각하리오. 범(犯)한 자를 금(禁)하며 죄지은 자를 죄(罪)를 주되 작으면 읍에서 재결(裁決)하고 크면 영(營)에 보(報)하여 감안처리(勘案處理)케 하여 조가(朝家)의 곡헌(曲憲)을 앙체(仰體)함이 가하거늘 전재(錢財)에 이르러서는 어찌 가히 거론(擧論)하리오. 한갓 금지하는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이에 도리어 토색(討索)하는 이름이 있으니 정법(政法)으로써 헤아리면 실로 작은 일이 아니므로 감도즉시(甘到卽時)로 경내(境內)에 영칙(令飭)하여 만일 미혹주오(迷惑註誤)의 민(民)이 있으면 그 마음을 고쳐 정학(正學)을 닦게 하고 관속배(官屬輩)의 토색(討索)하는 일관(一款)은 저저(這這)히 금단(禁斷)하여 비록 분문(分文)이라도 혹 탈취하는 폐단이 없게 하고 지시한 결과를 마땅히 보고하라. 이때 삼례역(參禮驛)에 모였던 도인들은 신사(神師)를「법헌(法軒)」이라 존칭키로 하는 한편 도중(道中) 대소사를 법헌(法軒)의 지휘에 따르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경통(敬通)을 발한 후 곧 해산하였다.

    경통(敬通)

     
    공주(公州)와 전주(全州) 양영(兩營)에 제소(薺訴)한 것은 곧 대선생주(大先生主) 신원(伸寃)을 위한 의리(義理)라 하청(河淸)의 운(運)이 오히려 더디어 도(道)는 비록 나타났으나 원통함은 펴지 못한지라 무릇 우리 수도하는 선비는 성심(誠心)을 배가(倍加)하고 다시 법헌(法軒)의 지휘를 기다려 원통함을 씻을 것을 고심(苦心)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道理)라 또 제음(題音)이 이같이 개유(開諭)되었으니 사자(士者)가 된 도리(道理)에 마땅히 곧 집에 돌아가 도로에서 방황(彷徨)하지 말라 약속(約束) 수개조(數個條)를 세우노니 도유중(道儒中)에 만약 이 약속을 어기면 마땅히 모두 모여 죄를 성토(聲討)해야 할 것이니 천만(千萬) 행심(幸甚)이라.
    1.이번 선생주(先生主) 신원(伸寃)은 정성과 같이 되지 못하였으나 제자의 처신행사(處身行事)가 대도(大道)에 합(合)하였도다. 천리(天理)를 어김이 없은 연후에야 가히 신원(伸寃)이 될 것이니 종금(從今) 이후로는 각고(刻苦) 공부(工夫)할 사
    1.금번대의(今番大儀)는 천지(天地)에 세워도 어그러지지 않고 귀신(鬼神)에게 질제(質諸)해도 의심될 바 없으니 법헌(法軒)이 마땅히 곧 임가(臨駕)하여 대사(大事)를 지휘해야 할 것이나 그러나 사오백리(四五百里)를 달려 왕래함은 실로 노인환후지려(老人患候之餘)에 가히 견딜 일이 아니므로 정성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모든 군자(君子)는 이로써 다른 뜻을 그 사이에 휴대(携帶)하지 말고 써 대선생주(大先生主)께서 말씀하신 현조(玄鳥)(제비)도 주인을 안다는 경계를 법(法)으로 할 사(事).
    1. 금번 모인 일은 다만 사방에 소리만 들린 것이 아니라 또 두 관칙(關飭)이 있어 스스로 지목이 없을 것이나 그러나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각도각읍(各道各邑)이 만약 또 지목하면 작은 것은 인근 각접(各接)에 통고하여 써 본관(本官)에 제소(提訴)하고 큰 것은 도소(都所)에 통고하여 다시 법헌(法軒)에 전고(轉告)하여 의송귀정(議送歸正)케 할 사(事)
    1.혹(或) 논강(論綱)을 범(犯)하면 각자 해접(該接)에서 여럿이 모여 면책(面責)하고 재삼(再三) 고치지 않으면 수접주(首接主)에 품(稟)하여 써 치책(治責)케 하되 오히려 고치지 않으면 할안(割案)하여 관(官)에 들리게 할 사(事)
    1. 먼저 대의(大儀)에 나아가 수순(數旬) 사이에 경가탕산(傾家蕩産)한데 이른 사람이 있고 집에 돌아가는 날에 생활대책이 없으면 제익(諸益)은 출의(出義)하여 급(急)한 것을 주시(周施)할 사(事)


    임진(壬辰) 11월 12일 미시(未時) 완영도회소(完營都會所)

    2. 有無相資(서로 도우라)

    이 때 신사(神師)께서 낙상(落傷)으로 인해 도회소(都會所)에 나가지 못함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가산(家産)을 잃고 고생하는 도인(道人)들을 위하여 서로 도울 것을 당부하는 경통(敬通)을 다음과 같이 냈다.

    경통(敬通)

     
    우경통(右敬通) 하는 일은 금번대의(今番大義)는 천지(天地)에 세워도 어그러지지 않고 귀신(鬼神)에 질제(質諸)해도 의심이 없을 것이라 돌아보건대 이 늙은 몸이 경통(敬通)을 각접(各接)에 발(發)하여 하여금 육속(陸續) 제진(齊進)케 하고 추후(追後)로 의(義)에 나가다가 중로(中路)에 낙상(落傷)하니 본(本)탈이 츰발(發)하여 정성과 같이 못되었으니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지라 송구함을 무엇으로 말하리오. 어희(於戱)라 대운(大運)이 장태(將泰)에 중광(重光)이 복명(復命)하야 중생(衆生)을 기위(幾危)의 곳에서 건지고 대의(大義)를 장퇴(將頹)의 제(際)에서 붙드나 그러나 도(道)가 비록 창명(彰明)되었을지라도 원통한 것은 아직 펴지 못하였으니 실제로 제자들의 정성이 부족한데서 나온 까닭이라 바라건대 모름지기 모든 군자는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잠간이라도 오매 간에 늦추지 말고 정심정신(正心正身)하여 죄를 한울님께 얻지 말고 어버이 섬기기를 효도(孝道)로써 하며 제가(齊家)에 법이 있으며 부세(賦稅)를 바치는데 때로써 하며 이웃을 사귀되 화목(和睦)으로써 하고 행하되 반드시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하며 금(禁)할 것은 반드시 주색기투(酒色技鬪)니라. 위로는 국가를 위하여 기천영명(祈天永命)하며 겉으로는 성도(聖道)를 붙들어 승천순리(昇天順理) 할지어다. 양영관제(兩營關題)는 생각건대 반드시 보아 알았을 것이나 일심(一心)에 경계하고 두려워함은 또한 피차(彼此)가 없고 병이(秉彛:항상 사람으로서의 바른 도리를 지켜 나감)의 마음은 죽음에 이르러도 변치 않을 것이라 복합(伏閤)의 거(擧)는 바야흐로 고쳐 도모할 것을 의논하니 마땅히 하회(下回)를 기다릴 것이오 지휘에 좇아 먼저 대의(大義)에 나아가 가산(家産)을 경탕(傾蕩)한 사람은 이미 불쌍하게 되었으니 집에 있으면서 관망(觀望)이나 하고 포식온처(飽食溫處)한 자 어찌 가(可)히 마음을 편안히 하리오. 유무(有無)를 상자(相資)하여 하여금 유리(流離)치 않게 하고 원근(遠近)이 합심하여 이론이 없게 하여 써 나의 이 바람이 맞게 되면 주소간(晝宵間) 우려(憂慮)하는 마음을 풀게 되리니 병(病)도 가(可)히 나으리라. 십분(十分) 경계하고 두려워하면 천만행심(千萬幸甚)이라.


    임진(壬辰) 11월(月) 16일(日) 밤  북접도주(北接道主)

    이 무렵에 신사(神師)께서 또 다음과 같은 경통(敬通)을 각지(各地) 도인(道人)들에게 내었다.

    경통동학첨군자(敬通東學僉君子)


    우통유(右通諭)하는 일은 천하수도(天下修道)의 士가 소대사정(小大邪正)을 논(論)하지 말고 각기(各其) 소도(所道)로 그 스승을 위(爲)하고 그 학(學)을 높이는 것은 그 마음이 한가지라 무릇 우리 동도(同道)의 선비를 애매고설(曖昧m-9.gif說)로써 사학여파(邪學餘派)라 지목(指目)하여 방백수령(方伯首領)이 화천(貨泉)으로 보고 각도각읍(各道各邑) 수신치심(修身治心)하는 선비를 일망타진(一網打盡)하여 장차 남김이 없게 하므로 우리들 선비는 의송(議送)으로써 열읍(列邑)에 공문(公文)을 발(發)하게하여 조금이라도 화단의 기틀을 늦추게 하는 자(者)라 사오백리(四五百里)되는 곳에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가진 것은 한 필봉(筆鋒) 뿐이라 충청(忠淸).전라(全羅) 두 감영(監營)이 지나는 곳에 과화신존(過化神存)의 묘(妙)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인의자비(仁義慈悲)의 도(道)로써 일물(一物)인들 상해(傷害)하리오. 그러나 근래(近來)에 들으니 서도를 하는 사람이 공중누각(空中樓閣)을 지어 일으키고 무리를 모아 화단(禍端)을 만든다하니 이 참으로 위기(危機)라 그러나 황천(皇天)이 위에 있어 하토(下土)를 감림(監臨)함에 선악(善惡)의 분(分)과 길흉(吉凶)이 있으니 비포이검(飛砲利劒)이 산림(山林)과 같다 할지라도 우리들이 어찌 두려워 피(避)하리오. 서도(潟)를 하는 사람도 또한 본연(本然)의 미(美)가 있으니 어찌 공연(空然)한 무근지설(無根之說)로 서로 동서(東西)의 교(敎)를 해(害)하랴. 이것은 반드시 뜬말이 서로 동(動)한 것이니 제동야인(濟東野人)(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는 시골뜨기)의 말을 어찌 족히 믿으리오. 바라건대 모름지기 모든 군자(君子)는 각고공부(刻苦工夫)하여 안심(安心)하고 굳게 단결(團結)하여 규범(規範)을 세우고 기틀을 살펴 병(病)되는 일이 없게 하면 행심(幸甚)일 것이라.


    임진(壬辰) 11월(月) 일(日) 동학회소(東學會所)

    3. 날로 심(甚)해지는 관리(官吏)의 탐학(貪虐)

    각기(各其) 집으로 돌아간 도인(道人)들은 하회(下回)를 기다렸으나 관리(官吏)의 탐학(貪虐)은 날로 더욱 심(甚)해져서 심지어는 「자칭암행어사(自稱暗行御史)」까지 생겨 도인(道人)을 괴롭히기도 하였다. 신사(神師)께서 이 소문을 듣고 다음과 같은 통유문(通諭文)을 내렸다.

    통유문(通諭文)

     
    법(法)이라는 것은 천하(天下)의 공(公)이요 한 사람의 사유물(私有物)이 아니다. 현재 들으니 이(李).노(盧).임(林) 3인(人)이 삼도어사(三道御使)라 사칭하고 왕명(王命)을 받들고 내려왔다 하여 암암리에 모모(某某) 협잡배를 위촉(委囑)하여 하여금 교인(敎人)의 좀 넉넉한 사람에게 다시 이르기를 나는 동학(東學)을 조사하기 위하여 내려왔는데 당신의 성명(姓名)과 하는 일을 이미 정탐(偵探)하여 기록하여 두었으니 만약 뇌물(賂物)을 후(厚)하게 행하면 말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보고하여 잡아 올리겠다고 한다니 이 세 사람이 모두 왕명을 받았으면 공정(公正)히 조사하여 왕명(王命)대로 함이 사리(事理)에 당연하거늘 어찌 공(公)을 빙자하여 사(私)를 경영하며 주구무엄(誅求無嚴)하리오. 가만히 동정(動靜)을 보니 비록 읍(邑)과 영(營)에 정소(呈訴)하고 써 복합(伏閤)에 이르러도 기필코 변명(辨明)할 길이 있으니 저들이 비록 침어(侵魚)의 단서(端緖)가 있을지라도 각포교도(各包敎道)는 한결같이 이 통유(通諭)를 좇아 절대로 분문(分文)이라도 시급(施給)하지 말 사. 이때 여러 가지 협박과 탐학에 견디지 못한 도인들은 12월에 다시 보은군장내리(報恩郡帳內里)에 모여 장차 임금에게 직소(直訴)키 위하여 먼저 도소(都所)를 장내(帳內)에 정하게 되자 사방(四方)에서 도인들이 매일 구름같이 모여들어 일에 두서(頭緖)가 없으므로 이에 도소(都所)에서 도인(道人)에게 다음과 같은 경통(敬通)을 내렸다.

    경통(敬通)


    우경통사(右敬通事)는 지난번 양영(兩營)에 호소하고 법헌(法軒)으로부터 8역(域)의 儒를 포괄(包括)하여 6임(任)의 명을 정출(挺出)하고 도소(都所)를 이곳에 정한 것은 그 규혼의 거(擧)가 있을 때에 의(義)를 세우고 일을 성취(成就)케 함이라 일을 의논하는 마당에 각접영수(各接領首)가 서로 왕래하여 경제(經濟)할 것을 책진(策進)하면 이에 족(足)하거늘 각처제익(各處諸益)이 일이 있든 없든 소문을 듣고 모여오니 이같이 하여 말지 않으면 종일(終日) 영송(迎送)하는데 거의 조금도 겨를이 없을 것이라 종금이래(從今以來)로는 도유(道儒)로서 도소(都所)에 들어오는 자는 해접주(該接主)의 준표(準標)가 아니면 왕래(往來)치 못할 것이니 한결같이 약속(約束)을 지키면 천만행심(千萬幸甚)이라.


    12월(月) 초(初) 6일(日) 도소(都所)

    4. 정부(政府)에 치서(致書)

    이 무렵 신사(神師)께서 손천민으로 하여금 유(儒)·불(佛)·선(仙)과 동학(東學)의 관계를 밝히는 동시(同時)에 지방관리들이 동학도인(東學道人)의 재산을 탈취하는 횡포를 시정(是正)할 것을 요망(要望)하는 글을 정부에 제출하게 하였다.

    조가(朝家)회통(回通)

     
    도(道)라는 것은 사람이 한가지로 행하는 바를 이름이니 사(邪)도 있고 정(正)도 있으며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으되 다 심리상(心理上)으로 좇아 논(論)하여 사리중(事理中)에서 구한 것이니 빈이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공맹(孔孟)의 도(道)를 행(行)하는 자는 양묵(楊墨)을 가리켜 이단(異端)이라 하고 양묵(楊墨)의 도(道)를 행(行)하는 자는 공맹(孔孟)을 가리켜 이단(異端)이라 하나니 공맹(孔孟)이 사(邪)가 되고 양묵(楊墨)이 정(正)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단(異端)이라는 것은 당세(當世)에 향(向)하는 도(道)와 같지 않은 이름이라 이러므로 옛날에도 또한 유(儒)라 이름하면서 묵(墨)을 행(行)한 자가 있었으니 이것은 곧 유(儒)를 숭상하는 세상에 그 불선(不善)을 가리우고 마음을 속이며 세상을 그릇되게 하는 것이라 지공정대(至公正大)한 눈으로 볼 것 같으면 반드시 이름이 다르고 같다는 것만으로써 그 마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분별(分別)하지 못할 것이라 지금 불도(佛道)와 선도(仙道) 또한 그 일단(一端)으로 그 스스로 옳다고 울린지 또한 이미 오래였도다. 지난 경신년으로부터 경주(慶州) 최선생(崔先生) 제우(濟愚)께서 한울님 말씀을 들으시고 도(道)를 창명하시어 학(學)을 동학(東學)이라 하였으니 동학(東學)이란 동쪽나라의 학(學)이란 뜻으로 유불선(儒佛仙) 삼도(三道)를 합한 이름이라. 유교(儒敎)의 말류(末流)는 글을 갖추는데 잘못 되었는데 근세(近世)의 유(儒)는 글을 갖추는 것도 또한 없으며 불교(佛敎)의 말류(末流)는 무멸(無滅)에 잘못 되었는데 근세의 불(佛)은 무멸(無滅)도 또한 없으니 유교(儒敎)는 유교(儒敎)가 아니며 불교(佛敎)는 불교가 아니라 한갓 허명(虛名) 뿐이니 그러므로 동도(東道)는 그 지나친 것을 덜고 그 미급(未及)한 것을 더하며 단점(短點)을 버리고 그 장점(長點)을 취(取)한 것이라 유교(儒敎)로써 윤강(倫綱)을 붙들고 공맹(孔孟)을 존경하되 오직 마음만은 불교로써 다스릴 것이니 유교(儒敎)에는 전해 받는 심법(心法)이 없고 불교는 오히려 전해 받는 것이 있어서 가히써 방심(放心)한 것을 수급(收給)할 수 있을 것이라 유교와 불교를 합한 것을 선교(仙敎)라 이르나니 다 선(善)을 좇으며 지성(至誠)으로 한울을 섬기는 것이라 이름은 비록 다르나 한울을 섬기는 도(道)는 한가지이니 실로 천명(天命)을 들으며 실로 천위(天威)를 두려워하며 실로 천시(天時)를 순(順)히 하는 것이므로 아버지를 섬기는 것으로써 지성(至誠)스럽게 한울을 섬길 것 같으면 효도(孝道)에 힘을 다했다 할 것이오 임금을 섬기는 것으로써 지성(至誠)스럽게 한울을 섬길 것 같으면 충성(忠誠)에 명(命)을 다했다 할 것이니 사람을 가르치되 충효(忠孝)로써 하는 것은 오직 스승의 공(功)이라 그러므로 전(傳)에 이르기를 「군사부(君師父) 삼자(三者)의 은혜(恩惠)로 살아가므로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라」하였으니 만약 이와 같이 못하면 이는 죄(罪)를 한울께 얻으면 빌 곳이 없는 것이라 부박(浮薄)한 세속(世俗)에 내용(內容)을 알지도 못하고 행(行)한 일을 돌아보지도 않고 허무(虛無)란 것을 날조(捏造)하여 인물(人物) 상해(傷害)하기를 좋아하며 공(公)을 빙자하여 사(私)를 경영하며 백성을 소란케 하고 재물을 취하는 자 자칭(自稱) 유도(儒道)니 정학(正學)이니 하니 이것은 옛날 소위 유(儒)라고 이름 하면서 묵(墨)을 행하는 자(者)도 또한 동례(同例)에 서기를 부끄러워하겠거든 도리어 동학(東學)하는 사람을 지목(指目)하여 지성(至誠)으로 한울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속이지 않는 자를 이단(異端)이라 하니 어찌 동학(東學)하는 사람으로서 우습고도 한심(寒心)한 일이 아니리오. 이름과 실지(實地)가 같지 않은 것이 진실로 이와 같은지라 충청감사(忠淸鑑司)는 다만 전순천군수(前順天郡守) 윤영기의 말만 믿고 조정(朝廷)의 명령(命令)이 있어 사학(邪學)을 엄금(嚴禁)한다 칭(稱)하며 공문(公文)을 발송(發送)하여 잡아가두게 하니 원성(怨聲)이 창천(漲天)하며 돈을 바친 사람은 무죄백방(無罪白放) 시키고 빈한(貧寒)한 사람은 벌(罰)을 주고 정배를 보내며 이 사람 저 사람이 서로 고자질하여 죄가 없어도 죄가 있는 것 같이 하여 백성(百姓)이 지탱하기 어려우므로 의송(議送)에 까지 이르렀는데 그 제사(題辭)에 이르기를 「이것은 조정(朝廷)의 명령(命令)을 좇아서 한 것이오 내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하니 만약 조정의 명령이 있으면 팔도(八道)가 같을 터인데 어찌 홀로 충청도감영(忠淸道監營)만 그러하며 만약 조정의 명령이 없었다면 윤영기의 감언이설을 조정(朝廷)의 명령(命令)이라 이르지 못할 것이니 신하(臣下)가 임금섬기는 명분(名分)이 가히 이 같지 못할 것이라. 영동(永同) 옥천(沃川) 청산군수(靑山郡守)들은 백성을 들볶아 재물을 빼앗은 것이 각각 수만양(數萬兩)이라 가산(家産)을 탕패(蕩敗)하고 이산(離散)한 사람이 적지 않으며 전라도는 김제 만경 정읍 여산(礪山) 등(等) 읍이 모두 탐관(貪官)의 화(禍)를 입어 죽어나가는 사람이 연속부절(連續不絶)이라 환난(患難)에 서로 구원(救援)하며 원통한 일을 펴게 하는 것은 주자(朱子)와 율곡(栗谷) 양선생(兩先生) 향약일조(鄕約一條)요 도의(道義)로 사귀며 마음으로 서로 합하는 것은 무리를 모으려는 계책(計策)이 아니라 그러므로 송(宋)나라의 인종(仁宗)은 말씀하기를 정자(程子)의 무리와 같다면 어찌 많은 것을 근심하랴 하였으며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가히 사랑스러운 것은 임금이 아니며 가(可)히 두려운 것은 백성이 아닌가 하였으니 이제 무리를 막는 길은 조정(朝廷)으로부터 어루만지며 거느림만 같지 못하니 이제 부보상(負褓商)의 예(例)와 같이 한다면 백성(百姓)들은 스스로 돌아가 각각 그 업(業)에 편안할 것이니 비록 많다고 한들 무엇을 근심하리오. 또는 도가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을 섬기게 하면 지성(至誠)으로 한울께 빌고 충성을 다하여 나라도울 것을 어찌 다른 사람에게 뒤지리오. 이것이 요직(要職)에 당(當)하여 힘쓸 것을 아는 군자의 급히 힘써야 할 큰 정사(政事)이니 헛된 이름의 같다 다르다 하는 것으로써 도탄(塗炭)에 빠진 민정(民情)을 살피지 아니치 못할 것이니 공평히 헤아려 살피시기를 천만(千萬) 바라옵니다.


    임진(壬辰) 12월 일 도소(都所)

    5. 대도(大道)의 종지(宗旨)는 천지부모(天地父母)의 효양(孝養)

    포덕(布德)34년(年)(1893년) 1월에 신사(神師)께서 다음과 같은 통유문(通諭文)을 발(發)하여 도인(道人)으로 하여금 더욱 지성(至誠)으로 수도(修道)할 것을 당부 하였다.

    통유문(通諭文)


    천지부모(天地父母)의 네 글자는 비록 각각 다르나 그 실(實)은 도시(都是) 천(天) 일자(一字)라 그러면 천지(天地)가 곧 부모(父母)요 부모(父母)가 곧 천지(天地)로서 천지부모(天地父母)가 처음부터 사이가 없는지라 명내재천(命乃在天)과 천생만민(天生萬民)은 선성(先聖)의 이른바요 건칭부(乾稱父) 곤칭모(坤稱母)는 선현(先賢)의 논(論)한 바이나 천지(天地) 섬기기를 부모 섬기는 것 같이하여 출입(出入)에 반드시 고(告)하며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예(禮)를 한결 같이하여 오만년(五萬年) 이후(以後)를 개벽(開闢)한 것은 선생(先生)의 시창(始創)한 것이니 반드시 그 그러한 이치(理致)가 있으므로 이에 그 그러한 도(道)를 창시(創始)하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 덕(德)을 알고 이 도(道)를 닦게 한 것이라. 만근이래(輓近以來)로 인륜(人倫)이 멸시(蔑視)하여 정녕(丁寧)히 부모가 나를 낳고 나를 기른 줄을 알되 만홀(慢忽)히 하여 써 효도(孝道)하는 자(者)가 심(甚)히 적거든 또 하물며 미묘난측(微妙難測)한 것은 형상은 없으되 자취는 있으니 천지부모(天地父母)의 이치를 누가 능(能)히 경외(敬畏)하여 효도로써 받드리오. 무릇 지금 하품지인(下品之人)은 보이는 데만 강(强)하고 무형(無形)한 데는 소홀함은 이치(理致)가 진실로 그러한지라 족(足)히 심(甚)히 책(責)하지 못할 것이나 도(道)가 이미 창시(創始)되었은즉 어찌 가(可)히 다만 후각(後覺)에만 돌려 전연(全然)히 포기(暴棄)하는 밖에 내버려 두리오. 그러므로 생각을 반복(反覆)하여 천박(淺薄)함을 불구(不拘)하고 논(論)하여 말하고 이끌어 깨우쳐 진심봉행(盡心奉行)하여 써 그 근본(根本)을 찾고 써 그 근원(根源)을 달(達)하게 하면 황연히 적자(赤子)의 마음을 회복(恢復)하여 확실히 천지(天地)의 이치(理致)를 분변(分卞)할 것인즉 성철(聖哲)의 역(域)에 이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으리라. 개차신발(盖此身髮)은 다 이것이 천지부모(天地父母)의 준 바요 나의 사물(私物)이 아니니 어찌 소홀(疏忽)히 하리오. 지금 세상 사람은 다만 부모(父母)의 혈기포태(血氣胞胎)의 이치(理致)만 말하고 천지조화(天地造化)의 기틀을 이루고 이치를 부여한 근본(根本)을 알지 못하여 혹(或) 이기포태(理氣胞胎)의 수(數)를 말하되 낙지이후(落地以後)에 천포지태(天胞地胎) 자연이기(自然理氣)의 중에 장양(長養)되는 것은 전연(全然) 어두우니 가히 탄식할 일이로다. 행주좌와(行住座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 어느 것이나 천지귀신조화(天地鬼神造化)의 자취 아님이 없거늘 혹 천리(千理)를 말하고 혹 천덕(天德)을 말하나 그러나 절대로 효경(孝敬)이 없어 하나도 받들어 섬기지 않으니 실로 쾌연(快然)의 이치(理致)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부모(父母)가 나를 낳고 나를 기르되 자연히 장성(長成)하는 것은 천지(天地)의 조화(造化)요 천지(天地)가 나를 화(化)하고 나를 이루게 하되 천명(天命)을 받아 어루만지고 기르는 것은 부모(父母)의 은덕(恩德)이니 천지가 아니면 써 나를 화생함이 없고 부모가 아니면 써 나를 양육함이 없을 것이니 천지부모(天地父母)가 덮어 기르는 은혜에 어찌 조금인들 사이가 있으리오. 천지(天地)가 이미 부모(父母)의 이름이 있고 또한 부모의 은덕(恩德)이 있은 즉 부모에게 효도하는 도로써 받들어 같이 섬기며 공경하여 같이 봉양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으며 또한 옳지 않으랴. 선성(先聖)이 다만 신체발부(身體髮膚)를 부모(父母)에게서 받은 은혜(恩惠)만 알고 천지(天地)에게서 받은 근본(根本)을 명확히 말하지 않은 까닭은 선성(先聖)이 어찌 알지 못한다 하리오. 때에는 그 때가 있으며 운(運)에는 그 운이 있어 먼저 미래(未來)의 도(道)를 발(發)하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라. 한울이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써 만민(萬民)을 화생(化生)하고 오곡(五穀)을 장양(長養)한 즉 사람은 곧 오행의 빼어난 기운(氣運)이오 곡식(穀食)도 또한 오행의 원기(元氣)니 오행의 원기로써 오행의 빼어난 기운을 사양(飼養)하여 화생(化生)하고 성장(成長)케 하는 자(者) 한울이 아니고 누구이며 은혜(恩惠)가 아니고 무엇이라 하리오. 그러므로 우리 스승께서 오만년(五萬年) 무극지운(無極之運)을 받아 덕(德)을 천하(天下)에 펴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 덕(德)을 알고 이 도(道)를 행하게 한 것이 다만 이 한가지뿐이라. 우리 스승의 대도종지(大道宗旨)는 첫째는 천지(天地) 섬기기를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하는 도(道)요 둘째는 식고(食告)니 생존한 부모를 효양(孝養)하는 것과 같은 이치(理致)라 내수도(內修道)를 가히 힘쓰지 않으랴. 도유(道儒)가 식고(食告)의 이치(理致)를 잘 알면 다만 삼재(三災)를 면(免)할 뿐만 아니라 도통(道通)도 또한 그 가운데 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어늘 지금은 그렇지 않아 스승의 도(道)를 배반하여 한울의 마음을 거슬리며 한울의 이치(理致)를 업신여기면서 말하기를 도(道)를 닦는다고 하니 천우신조(天佑神助)는 오히려 말할 것 없고 한울이 내리는 꾸지람을 받을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지라 지금 우리 도유(道儒)는 이미 천지부모(天地父母)의 도(道)를 받아서 길이 모시기로 하였으나 처음에는 부모의 도(道)로써 효경(孝敬)하다가 나중에는 심상(尋常)한 로인(路人)으로써 대접하면 그 부모(父母)의 마음이 어찌 가(可)히 편안하며, 그 자식이 어버이를 배반(背反)하며 잊어버리고 어디를 가리오. 한울이 간섭(干涉)하지 않으면 고요한 한 물건덩어리이니 이것을 죽었다고 할 것이오 한울이 항상 간섭(干涉)하면 지혜스러운 한 영물(靈物)이니 이것을 살았다고 할 것이라. 사람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이 어찌 천지(天地)의 소사(所使)가 아니리오. 오래도록 힘써 행하면 천지(天地)가 감응(感應)하리니 감응하여 드디어 통(通)하는 것이 한울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잘 생각하고 자세히 살필지어다. 부부(夫婦)도 또한 천지(天地)니 천지(天地)가 화(和)하지 못하면 이에 한울이 싫어 하나니라. 싫어하면 화(禍)를 내리우고 기뻐하면 복(福)을 내리울 것이니 가내(家內)가 화순(和順)하도록 더욱 힘쓰는 것이 어떠할꼬. 말을 일으켜 이에 미치매 크게 두렵고 크게 두려우니 경계(警戒)하고 삼가서 함께 대도(大道)를 이루도록 복축(伏祝)하고 복축하나이다. 나의 이 말이 노망이 아니라 오직 성인(聖人)의 가르침이니 영세(永世)토록 잊지 않는 것이 어떠하리오.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

    ::완주군 문화관광→여행가이드→교통안내 홈페이지 참조→삼례
    ::전주~삼례:매 3분간격(40분소요)
    ::익산~삼례:20분간격 운행(40분소요)
    자가용 이용


    ::호남고속국도→삼례IC→삼례
    -- 삼례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바로가기 --
    -- 삼례읍 홈페이지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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